# 57
57화 75D?
-서민은행을 설립한다면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사람은 원래부터 남의 것을 더 많이 빼앗아서 가지고 싶어 하는 존재니까.
내 전생 때 박태웅과 나눴던 말들이 떠올랐다.
“제가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없습니까?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은 제 사람에 속할 수 없습니다.”
“예?”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책임지지 않으려 할 것이란 의미일 테니까요. 박태웅 당신이 이제부터 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내 양심이 되고 내 도덕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바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이번 생은 악어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다. 그러니 도덕책을 옆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민은행 설립 자금을 지원해 주십시오.”
박태웅은 자신의 꿈을 내게 말했다.
“서민은행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개인이나 특정 단체가 은행을 설립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시지 않습니까.”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좋습니다. 서민은행 설립에 자금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서민은행은 결국 저축은행이 되지 않을까요?”
“저축은행?”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렇게 되겠죠.”
또 어떤 면에서는 서민은행이라는 간판을 달지만, 금융기관이 아닌 투자 전문 회사가 될 가능성도 크다. 아직은 금산분리 정책에 의해 개인이나 특정 단체가 금융기관을 가질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날이 오면!’
세상이 많이 변할 것이다.
물론 론스타는 사모펀드의 형태로 은행을 집어삼켰기에 후일 대한민국과 소송전을 펼쳐야 했다. 그래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났다.
‘은행 좋지.’
나 역시 은행을 가질 계획을 하고 있다. 그러니 그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면 된다. 내 계획대로 된다면 론스타에 강탈당한 은행을 내 수중에 넣을 수 있다. 물론 사모펀드 형태로 접근해야 하니 훗날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올바르게 관리하고 투명하게 경영을 한다면 좋은 선례로 남게 될 것이고, 또 그것을 이용하려는 악당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대표님.”
“예, 박태웅 씨.”
“그런데 왜 풋옵션 투자를 국내에서 하시려는 겁니까?”
이제야 내가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점을 이야기할 모양이다.
‘이렇게 나와야지.’
정말 이제야 내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알면서도 박태웅에게 물었다.
“종합 주가 지수가 300포인트까지 하락하게 된다면 풋옵션 투자는 100배 이상의 수익이 날 가능성도 큽니다.”
“그렇게나 수익이 납니까?”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박태웅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급 불능 상태가 됩니다.”
그럴 것이다.
“외환 금융 위기가 닥치면 증권사들이 공중분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계약서는 휴지가 됩니다.”
고려증권이 그렇게 IMF 외환 위기에 의해 공중분해가 됐다.
“그렇겠죠.”
“그런데 왜? 국내 투자보다는 외국 투자가 더 이로울 수 있습니다.”
“현금 지급이 불가능하겠지만 지분으로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후증권 외에는 은행을 통해 풋옵션 계약을 체결해 볼까 합니다.”
“현재 은행은 그런 업무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다면 하게 만들면 됩니다.”
“으음······.”
“왜 무리수 같습니까?”
“결국에는 증권사를 가지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왜요? 증권사 설립은 허가만 받으면 됩니다.”
“이름값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 정도로만 아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1997년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면 주식 거래를 인터넷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편리한 시장을 만들어주는 일이고 더 쉽게 주식을 통해 돈을 잃게 만드는 도박장을 세우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니 증권사를 가져야겠다.
‘결국, 지분을 가지면 되는 거지.’
이게 진짜 내 목적이다.
거기다가 나는 미래의 기억이 있다. 최소한 어떤 주식이 앞으로 상승하게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니 증권사의 최대 지배 주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분을 확보한 후에!’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통해서 증권사들이 매각 절차를 밟을 때 태양기업의 이름으로 그 증권사를 넘겨받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금은 국외에서 가지고 올참이다.
“박태웅 씨.”
나는 그를 불렀다.
“예, 대표님.”
“내게는 아직 300억이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박태웅에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답은!’
태국이다.
“태국 바트화 폭락에 투자하십시오.”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IMF 외환 위기의 시작은 내부적인 요소인 불안전한 여신 거래와 한보 사태 그리고 외부적인 요소인 동남아시아 외환 위기에서 뇌관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동남아시아에 투자하라는 말이군요.”
1995년 멕시코 페소화가 폭락했었고 1997년에는 바트화의 폭락이 예정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태국의 모든 것은 헐값이 된다.
‘미국이 주워 담겠지.’
또 일본도 콩고물을 챙길 것이다. 그런 후에 그 마수들이 동남아시아를 넘어 동북아시아인 대한민국으로 뻗어 나올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가 허용되면서 미국은 알짜 은행을 집어삼키고 일본은 땅콩머니를 비롯한 대부업체들이 서민의 피를 빨게 된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보다 동남아시아에서 먼저 외환 위기가 닥치지 않겠습니까?”
박태웅이 내게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일본을 경유를 해서 미국 그리고 태국이지 않겠습니까.”
자금 확보를 내게 말하고 있는 박태웅이다.
“그것이 싫으시다면 대표님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셔야 할 겁니다.”
찰나의 순간 내가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방법을 말하는 박태웅이다.
사실 돈이 급해도 일본에서 자금을 빌리고 싶지는 않다.
“어떤 의미입니까?”
“금융 실명제가 실행되고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 지하 경제는 여전히 거대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셔야 일본도 미국도 미끼를 물지 않겠습니까.”
“미끼라?”
내가 일본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보이자 미끼라고 말하는 박태웅이다.
“결국, 단기 외환 차입이 진짜 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시려면 정확한 시작점을 찾으셔야 할 겁니다.”
이래서 박태웅은 천재다. 내가 생각하는 목표를 정확하게 간파했다.
‘지하 경제의 큰손이라?’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진짜 백범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청담동 처녀 보살이다.
-너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
-무당이 대단해봐야 무당이지. 백수가 돈이 많아도 백수인 거처럼.
-내가 부르면 수천억을 움직이는 할매도 오고 정치인도 오고 막 그래.
-그래서 참 좋겠다.
-이죽거리지 좀 마라. 하여튼 차 조심해라.
‘차 조심해라······!’
진짜 백범의 마지막 기억에 청담동 처녀 보살은 진짜 백범에게 교통사고를 조심하라고 말했었다.
‘수천억을 움직이는 할매라?’
분명한 것은 그 자금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 * *
고속도로를 달리는 봉고차 안.
“전 부장······님, 어디로 갑니까?”
선희의 첫째 오빠가 전두성 부장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부장님의 근무지는 여수입니다.”
“여수요?”
둘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여수는 왜요?”
“여수에 태양기업 지사가 설립됐습니다.”
“지사······?”
“예, 그렇습니다. 지사장으로 내려가시는 겁니다.”
전두성의 말에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둘은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사장?”
“사장이 아니라 지사장.”
“그래도 사장이지.”
그 모습에 피식 웃어 버리는 전두성이다.
-건강한 개고생이어야 합니다.
-염전에서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규칙적인 생활, 충분한 영양 공급이면 가능할 거로 생각합니다.
‘쯧쯧쯧!’
그저 혀만 차는 전두성 부장이다.
‘대표님은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시지.’
* * *
국제호텔 승강기 앞.
승강기의 문이 열렸고 나와 박태웅은 호텔 승강기를 탔다.
박태웅은 1층을 눌렀고 나는 40층을 눌렀다. 원래는 박태웅을 호텔 로비까지 배웅할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40층을 눌러 버렸다.
“왜?”
또 호기심이 폭발하는 박태웅이다.
“40층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멋질 것 같습니다.”
“하하하, 신혼은 신혼이십니다.”
“부러우십니까?”
“예, 부럽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내 농담에 박태웅이 나를 보며 웃었다.
“하하하, 졌습니다. 졌어요.”
“내일 김 비서님이 모시러 갈 겁니다.”
“어디부터 시작하실 생각입니까?”
“대후증권입니다.”
한호성의 이름이 마음속으로 뇌까려진다.
* * *
국제호텔 로비.
박태웅이 호텔을 나갔고 김 비서가 내게로 걸어왔고 그는 양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김 비서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모님의 사이즈가 44 사이즈라고 생각이 되어서 44 사이즈와 55 사이즈를 모두 구매해 왔습니다.”
정말 제대로 고액 연봉 값을 하는 김 비서다.
“김 비서님은 모든 부분에서 참 세심하십니다.”
오늘 나와 은혜는 국제호텔 스위트룸에서 묵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 우아하게 호텔 조찬을 즐긴 후에 출근할 생각이다.
‘오늘 입은 옷을!’
내일 또 입고 사법연수원에 출근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김 비서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이미 구매해 왔다.
“속옷 사이즈는 제가 가늠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모든 사이즈를 구매해 왔습니다.”
그래서 쇼핑백이 두 개인 거였다.
“75D사이즈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것만 주시면······. 아닙니다. 다 주십시오.”
국제호텔 로비에서 여자 속옷들을 꺼내서 75D 사이즈를 찾으면 변태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눈빛이죠?”
“대표님께서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나도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씁쓸함을 감추기 위해 크게 웃었다.
“김 비서님.”
“예, 대표님.”
“내일은 박태웅 고문을 모시고 오십시오. 내일부터 증권사를 방문해야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태양기업의 실적에 대해서 간단하게 보고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시네요.”
내가 김 비서에게 말했다.
“1,000만 달러 돌파했습니다.”
1,000만 달러면 800억이다.
“입소문이 날개를 단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편안한 밤 되십시오.”
* * *
국제호텔 40층 스위트룸.
큰 쇼핑백 하나에 든 것은 모두 여자 속옷이다. 그리고 지금 그 속옷들이 나만을 위한 패션쇼의 의상이 되고 있다. 스위트룸 넓은 거실에는 속옷들이 널브러져 있다.
“오······!”
지금 내 앞에는 내 아내 은혜가 야한 속옷만 입은 상태에서 속옷 패션쇼를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속옷 모델이 된 상태고 스위트룸 넓은 거실은 런웨이로 변해 있다.
정말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 패션쇼를 능가할 정도다.
‘이제는 즐긴다니까.’
나를 위한 판타지가 이제는 내 아내의 판타지가 되는 것 같다.
‘75A는!’
아예 착용 불가다. 그래서 은혜는 75B부터 착용했고 겨우 아랫부분의 가슴만 가릴 수 있다.
‘숨 막힌다.’
정말 나는 전 전생에서 나라를 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