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52화 깡그리 정리하다? (1)
“이제 겨우 22살이고 따님의 나이는 만으로 18살입니다. 어른들이 보시기에는 두 꼬맹이의 사랑은 장난스러운 불장난처럼 보이실 겁니다. 그래서 어르신께서 걱정이 많이 되실 겁니다. 저렇게 둘이서 죽고 못 살 정도로 좋아하다가 마음이 식으면 쉽게 헤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큰일이라고 걱정하고 계신 줄 잘 압니다.”
“그 말씀 참 잘하셨소. 그 녀석이 겨우 22살이고 아직 군대도 안 갔다고 했소.”
그러고 보니 군대도 아직 안 간 막내 처남이었다. 또한,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마땅한 직업도 없는 상태다. 한 마디로 현실감각 제로인 막내 처남이다.
“그러게요. 제가 생각을 해도 정말 갑갑합니다.”
“그러니 내 속은 오죽하겠습니까. 결혼을 시켰다가 마음이 식어서 덜컥 헤어지기라도 하면 내 딸 인생은 누가 책임져 줍니까.”
어르신은 그렇게 말하고 빈 잔을 다시 봤고 나는 조심히 빈 잔에 술을 채웠고 어르신은 그 술을 마셨다.
“어르신, 그런데 말입니다. 책임감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뭐라고요?”
“그 철없는 22살짜리 꼬맹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여수까지 도망을 쳐서 염전에서 일했습니다. 아마 제가 찾지 않았다면 계속 거기서 일을 했을 겁니다.”
“염전이라고 했소?”
어르신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저도 막내 처남한테 애를 지우고 공부부터 다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막내 처남이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으음······.”
“그러면 안 되는 일이랍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했다가는 처남댁 마음에 평생 멍으로 남을 거랍니다. 자기는 열심히 일해서 행복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답니다. 요즘 애들은 염전에서 일할 생각도, 자기를 희생할 생각도 못 합니다. 제 막내 처남이 그런 녀석입니다. 너무 현실감각이 없습니다.”
“으음······.”
“저도 잘 모르지만, 여자의 몸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지우는 것도 출산하는 것만큼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됐으니 결혼을 시키자고 말씀을 드리면 억장이 무너지실 겁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막내 처남이 어리지만 사람 하나는 반듯합니다. 부인께 약속하셨다 하셨지요? 처남댁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고 하셨다면서요. 제가 여수에서 봤을 때 둘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우리 선희가 행복해 보였소?”
살짝 눈빛이 누그러드는 어르신이다.
“예, 그렇습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두 손을 꼭 잡은 것이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사돈댁께서는 오지랖이 넓으시군요.”
“허락하시는 겁니까?”
사돈댁 어르신은 나를 분명 사돈댁이라고 말했다.
“허락하려고 해도 당사자들이 없지 않소.”
“어르신, 따님이 많이 보고 싶으시죠?”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나는 요즘 매일 선희가 눈에 밟힙니다. 꿈에서도 보이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전화 한 통 하겠습니다.”
“뭐라고요.”
“사실 제 처남과 선희 씨는 근처에 와 있습니다.”
“그래요?”
“전화해서 오라고 하겠습니다.”
내 말에 눈빛이 변하는 어르신이시다.
* * *
한식당 주차장 앞.
-예, 모시고 가겠습니다.
김 비서가 백범의 전화를 받자 은철과 선희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김 비서가 트렁크를 열더니 미대생들이 들고 다니는 화통을 꺼내 은철에게 내밀었다.
“매형인가요?”
“단단히 각오하십시오.”
“이, 이게 뭡니까?”
“대표님의 마음이십니다. 역지사지라고 하시더군요.”
“예?”
김 비서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은철은 화통을 받아 들었고 그 화통이 묵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가시죠.”
“오, 오빠,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하여튼 그렇게 은철과 선희는 김 비서를 따라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 순간 은철은 김 비서가 왜 자꾸 자신에게 단단히 각오하라고 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매형의 마음이라고······?’
은철은 괜히 걱정이 됐다.
***
한식당 특실.
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고 문이 열리면서 김 비서가 나를 보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 김 비서의 뒤에는 화통을 맨 처남과 처남댁이 겁먹은 얼굴로 서 있었다.
“대표님, 모시고 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김 비서에게 말하고 처남과 처남댁을 봤다.
“선, 선희야······!”
자기 딸의 얼굴을 보자, 말까지 더듬는 어르신이다.
“아, 아빠······!”
부녀상봉의 순간 처남댁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
자기 딸이 오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시는지 안타까운 탄성을 터트리시는 어르신이다.
“처남댁 앉으세요.”
내 말에 처남댁이 눈치를 보며 의자에 앉았고 처남도 덩달아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처남은 의자에 앉으면 안 되지.”
역지사지로 나는 이 순간 온전하게 어르신의 편이 되어 드릴 참이다.
“예······!”
처남이 눈치가 있으면 자기 장인이 될 사람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리고 막내 처남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막내 처남.”
“예, 매형.”
“화통은 이리 주고.”
내 말에 막내 처남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게 화통을 내밀었고 나는 그 화통을 어르신께 내밀었다.
“어르신 받으십시오.”
“뭡니까?”
“사위도 자식 아닙니까, 자식이 잘못했다면 회초리를 드셔야죠.”
“예?”
어르신이 당황한 눈빛을 보였고 나는 화통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양구산 싸리나무 회초리 다발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놨다.
“이, 이게 뭡니까?”
“어르신께서 앞으로 한없이 아끼고 사랑하실 사위입니다. 어른들 걱정하실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못되게 도망을 쳤으니 회초리를 드셔야죠.”
내 말에 멍해지는 어르신이다.
“제 막내 처남은 아버지의 정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어르신께서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잘못을 할 때마다 따끔하게 혼을 내주십시오.”
내 말에 무릎을 꿇고 있는 막내 처남은 놀랍고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일어나서 바지를 걷어 올렸다.
“잘못했습니다. 따끔하게 혼을 내주십시오.”
막내 처남의 말에 어르신은 더욱 황당한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에서도 딸 가진 아버지의 분노의 이글거림이 느껴진다.
“회초리를 들면 군말 없이 맞을 건가?”
“예, 맞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좋아, 종아리 걷어 올려.”
지금부터는 딸 가진 아버지의 한풀이가 시작될 것이다.
“어르신, 각자에게 드실 회초리를 열 개씩 준비했습니다.”
사실 싸리나무 회초리는 착착 감겨서 잘 부러지지도 않는다. 회초리의 굵기가 새끼손가락 정도이니 열 개가 다 부러질 때까지 맞으면 걸어서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각각 열 개요?”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께는 저 둘이 똑같이 잘못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처남댁이 나를 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치마를 살짝 걷어 올렸다.
“하지만 처남댁은 지금 홑몸이 아니니 남편 될 처남이 다 맞을 겁니다. 그렇지, 처남.”
“예, 그렇습니다. 매형······.”
“종아리 바짝 걷어 올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처남의 앞에 놨다.
“매, 매형······.”
“올라서.”
매를 들 사람이 편한 자세로 회초리를 휘둘러야 제대로 타격이 될 것이다.
하여튼 내 말에 처남이 의자 위로 올라섰다.
“어르신, 처남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저 놀랍고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어르신이다. 그리고 내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눈빛을 보이셨다.
“내가 때리는 만큼 맞을 텐가?”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
막내처남은 장인어른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에 어르신은 마음이 약해진 눈빛을 보이셨다.
“어르신,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약해지지 말라고요?”
“말씀을 드린 것처럼 어르신을 찾아뵈면서 역지사지해 봤습니다. 저라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놨을 겁니다. 지금 당장 그러지는 못하시지만 딸 가진 아버지의 입장으로 한풀이는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렇지요.”
다시 눈빛이 이글거리시는 어르신이시다.
“자네, 단단히 각오하게.”
막내 처남에게 말하고 회초리를 들기 시작한 어르신이시다.
철썩!
“으으윽······!”
막내 처남은 바로 신음을 터트렸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르신, 저는 나가서 전화를 받고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사돈댁.”
어르신은 이제 나를 사돈댁이라고 부른다. 확실히 결혼은 승낙한 것이다.
‘좀 많이 맞아야 해.’
나는 의자 위에 서 있는 막내 처남을 봤다.
사실 이 시대는 처녀가 애를 가지면 흠이 되는 시절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막내 처남은 사돈댁이 미성년자일 때 성행위를 했다. 그러니 처남댁이 임신한 것에 대한 책임의 90% 이상이 막내 처남에게 있다. 그러니 회초리를 많아 맞아야 한다.
‘내 딸이었으면!’
그런 놈이 있었다면 회초리로 끝내지 않고 땅에 파서 묻어 버렸을 것이다.
따르릉, 따르릉!
* * *
고급 한식당 특실 앞 복도.
딸깍!
나는 복도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태양기업 대표 백범입니다.”
발신 번호 서비스가 간절할 뿐이다. 발신 번호 서비스가 실행되면 받기 싫은 전화는 안 받아도 되니까.
-저예요. 백범 씨.
내 아내 은혜다. 그리고 은혜의 목소리만 들어도 나는 이렇게 반갑고 보고 싶고 또 만지고 싶어진다.
“공부하느라 힘들죠?”
-제 특기가 공부예요.
내 아내 은혜는 많고 많은 특기 중에 공부가 특기고 취미란다.
-참, 오늘 시간 어때요?
“바쁜 일 없습니다.”
-그럼 저녁은 밖에서 같이 먹어요.
“그럴까요.”
신혼부부에게 외식도 괜찮다.
-소개해 드릴 사람도 있어요.
아침에 내가 부탁했던 것을 바로 알아본 모양이다.
“아······!”
-왜요?
“하하하, 나는 둘이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을 먹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럼 내일은 둘이서만 밖에서 외식해요.
“그래야겠네요.”
-저녁에 뵐게요.
“저녁때까지 보고 싶어서 참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저도요.
그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 달곰한 통화를 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밥은 둘이서 못 먹어도, 으흐흐!’
내가 부탁한 경제 전문가를 만나는 자리이니 호텔 식당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호텔 식당 위에는 수많은 호텔 룸이 있다.
그때 김 비서가 내게 다가왔다.
“김 비서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대표님께서도 아직 못 드셨죠?”
“그러게요.”
특실 안은 밥을 먹을 분위기가 아니다.
“안에서 회초리를 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립니다.”
“많이 혼이 나야 할 처남입니다. 아, 김 비서님은 식사부터 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식사 후에 국제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해 주시고요. 그 호텔 레스토랑도 예약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내게 말하고 김 비서님이 돌아서서 걸었다.
‘가끔 밖에서 먹는 것도 맛있지, 으흐흐!’
한식당 특실 안에서는 막내처남의 곡소리가 나고 있지만 나는 오늘 내 아내와의 짜릿한 밤을 상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