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사업은 인생을 거들뿐(2)
태양기업 대표이사 집무실.
대표실에 모인 직원들은 지난 주말이 그저 평범한 주말이었겠지만 나는 파란만장한 주말이었다.
“아흐으읍……. 죄송합니다.”
어젯밤에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기에 하품이 절로 나왔고 그래서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직원들은 내가 하품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 내가 신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계속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지난주 금요일까지 일반 개인에게서 투자받은 달러는 220만 달러입니다.”
한화로 계산하면 17억 6천만 원이다.
‘엄청나군.’
달러로 우리 회사에 투자하면 1년 이자를 40%나 준다고 했기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자자들은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유한 자금이 580억쯤 되니까. 597억쯤이다.’
이 자금으로는 4월에 최종 부도처리가 되고 그룹의 결정에 따라서 매각이 진행되는 백두 소주를 내 손에 넣을 수 없다.
“일주일간의 성과로 220만 달러면 엄청난 성과군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내 격려에 보고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진행되고 있는 투자 문의가 많기에 이번 주 목표액은 1,000만 달러입니다.”
1,000만 달러면 80억이다.
[백두 소주가 만약 매물로 나온다면 2,000억 원 정도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나는 이미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에게 백두 소주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했다.
‘풋옵션에도 투자해야 하니……!’
더 많은 자금을 투자받지 못하면 4월에 최종 부도처리가 될 백두 소주를 포기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다음 달부터는 투자자들에게 투자자금에 대한 약속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가진 자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면 풋옵션을 포기해야겠지.’
하지만 풋옵션 투자는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투자다. 자본금 증대와 함께 처가에 대한 복수의 포석을 깔고 그 망할 새끼를 응징하는 일이니까.
‘기대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백두 소주보다는 100배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
‘국가 부도에 투자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투자이니까 승자가 된다면 독식이다.
‘이번 생에 중요한 것은!’
사업은 인생을 거들뿐이라는 것이다.
돈 많은 재벌보다는 행복한 졸부가 될 참이다.
‘돈 때문에 천국을 바라보며 지옥에 살지는 않을 테다.’
돈?
그건 내 전생에서도 가질 만큼 가져봤으니까.
그러니 내가 하는 사업들은 이제는 내 인생을 거들뿐이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보고자의 말에 나는 시계를 봤다.
“제가 태양기업 대표로 개인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는 상태에서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릴 것이 있습니다.”
내 말에 회의에 참석한 모든 직원이 나를 주목했다.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태양기업에 유입되는 자금들은 모두 개인들의 피눈물이 담겨 있는 소중한 돈입니다. 그러니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개인투자자들을 속이지 맙시다.”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지급할 수 있는 최대 투자 이익금은 1년에 40%입니다. 이 투자금은 한시적인 기간 받는 투자입니다. 올 12월 29일이면 모든 투자에 대한 이익이 창출될 것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그러니 9월부터는 더 이상의 투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부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 투자 문의가 오는 고객들에게 분명하게 인지시키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들의 돈은 목숨과 같은 돈일 겁니다. 그러니 소중히 여기고 이익을 창출해 드려야 합니다.”
말은 정말 그럴듯하지만 환율 상승에 의한 차액을 남기고자 하는 투자에 불과하다.
‘진짜 사업과 투자는……!’
풋옵션 투자부터 진짜일 것이다. 그 풋옵션 투자와 함께 손위 처남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
“벌써 점심시간이군요. 모두 점심 맛있게 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대표님.”
직원 모두의 표정이 밝다.
‘오늘은 영등포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지.’
왜 영등포냐고?
영등포에 막내 처남의 처가가 될 금은방이 있다.
* * *
사법연수원 지도 법관 사무실.
심은혜는 지각 때문에 지도 법관의 사무실로 호출을 당한 상태다.
현재 심은혜는 사법연수원 제1학기 연수 과정을 밟고 있었고 1997년 3월 2일부터 1997년 8월 14일까지 사법연수원 1학기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아파 보이는데?”
지도 법관이 호출을 당한 심은혜를 보며 말했고 그의 눈빛은 동문 관계라서 그런지 온화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피곤한 것뿐입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안 된다는 것 잘 알죠?”
“예, 압니다. 앞으로는 늦지 않겠습니다.”
“사법연수원부터 진짜 경쟁입니다. 법관이 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결혼생활과 병행하기 힘듭니까?”
“죄송합니다. 다시는 늦지 않겠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누가 뭐라고 해도 동문이잖아, 동문.”
지도 법관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예.”
“연수원 내 연수는 법률이론 과목, 법률실무 과목과 함께 법조 윤리 과목으로 나뉘어서 자질을 확인해요.”
“예.”
“무엇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냥 노파심에서 불렀습니다. 동문에서 기대가 참 많아요.”
“예,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심은혜는 지각에 대한 정중한 문책을 받아야 했다.
‘태웅 선배에게 전화해야지.’
그런데 심은혜는 이 순간에도 백범을 돕기 위해 박태웅이라는 학교 동문 선배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판교 본가 사과 저장창고.
“형님, 사과 하나 드십시오.”
백범의 부친이 김찬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건넸다.
“아우님, 먹어도 돼요?”
“됩니다. 되고말고요. 하하하!”
백범 부친의 말에 김찬 할아버지는 사과를 받아서 먹기 시작했고 사과를 먹을 때의 김찬 할아버지의 표정은 행복함 그 자체였다.
사실 사과하면 대구·경북이고 수도권에서 사과과수원을 하는 농장은 백범의 부친밖에는 없었고 모두가 사과 묘목을 사고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할 때 모두가 미쳤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백범의 부친은 고집스럽게 사과재배에 도전했다.
물론 대구·경북에서 생산되는 사과보다는 씨알이 굵을 수가 없기에 상품 가치는 하락했지만, 백범의 부친은 수도권 지역에서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백범의 부친이 운영하는 농장의 주 생산품이 사과가 아니기에 그저 일종의 취미생활에 가까웠다.
“저장창고에 사과가 가득하네요.”
은철이 사과를 닦고 있는 백범의 부친에게 말했다.
“씨알이 그리 굵지 않아서 판매가 잘 안 되서 그래요. 하하하!”
“아, 그렇군요. 그럼 이대로 계속 저장창고에 두시나요?”
“뭐 사실 취미라면 취미고 귀한 손님들에게 드리는 선물용이라면 선물용입니다.”
신도시 개발 때문에 졸부가 된 백범의 부친이었다. 그렇기에 백범의 부친은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할 줄 아는 것이 농사밖에는 없기에 취미생활처럼 농사를 짓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때 백범의 모친이 무말랭이를 들고 저장창고로 들어왔고 그 모습을 본 선희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말랭이가 담겨 있는 바구니를 받아들려고 했다.
“저 주세요. 무거워요.”
“호호호, 무거워서 주면 안 돼요.”
“예?”
“지금은 항상 조심조심할 때라는 것을 잊으면 안 돼요.”
“아……!”
백범 모친의 말에 선희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희의 모친은 선희가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고 그래서 항상 엄마의 품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감사해요.”
“뭐가요?”
백범의 모친은 온화한 얼굴로 선희에게 되물었다.
“신경을 써주시잖아요.”
“호호호,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하게 신경을 써줬다고. 그런데 먹고 싶은 것은 없어요?”
“말씀 놓으세요.”
“어떻게 사돈댁에게 말을 놓아요.”
“그래야 제가 편해요.”
선희의 말에 백범의 모친이 백범의 부친을 봤다.
“어떻게 해요?”
“그러게…….”
“그냥 저는 엄마라고 부를게요.”
그때 선희가 백범의 모친을 보며 말했다.
“엄마?”
“예, 안 되나요?”
“안 될 것은 없지만…….”
하여튼 선희는 붙임성 하나는 탁월했다.
“그럼 앞으로는 엄마라고 부를게요.”
“호호호, 딸이 한 명 생겼네.”
백범의 모친은 선희의 행동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뭐 먹고 싶은 것 없어……요?”
바로 말을 놓기 어색한 백범의 모친이었다.
“어…….”
“뭐든 말해 봐요?”
“말씀 놓으세요.”
“말해 봐, 호호호!”
“한라봉이 먹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은 없겠죠?”
“한라봉?”
백범의 부친이 선희에게 말했다.
“예, 그게 먹고 싶기는 하지만 3월이라서 없을 것 같아요.”
“왜 없어.”
백범의 부친이 사과를 닦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온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라봉 한 박스를 꺼내서 가지고 나왔다.
“와……!”
은철과 선희는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라봉이 다 있네요.”
그저 놀랄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올해 1월에 몇 박스 구입해 놨지, 하하하!”
“왜요?”
뭐든 궁금하면 질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선희였다.
“그게요…….”
사실 백범의 부친은 혹시나 심은혜가 임신을 하면 먹고 싶어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생각이 나는 대로 구입해 놓은 것이다.
“먹고 싶어 했으니까, 먹어요, 아니 먹어 봐.”
백범의 모친도 선희에게 한라봉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참 탐스러워요.”
“이걸 처음 봤을 때 제주도 가서 한라봉이나 재배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 하하하!”
백범의 부친이 선희와 은철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어르신.”
그때 은철이 무엇인가가 생각이 났는지 백범의 부친을 불렀다.
“왜요?”
“말씀 놓으세요. 그래야 제가 편합니다.”
“그럽시다. 왜?”
“사과 자체로는 그냥 못 팔잖아요.”
“그렇지, 씨알이 좀 작아서 상품성으로는 떨어지지.”
“그럼 식초를 만들면 어떨까요?”
“식초?”
“예, 아니면 무말랭이를 보니까 말려서 과자처럼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불가능하겠죠?”
“허허허, 식초라, 그리고 사과 말랭이라?”
“그냥 그런 생각이 나서요.”
“뭐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네.”
“될까요?”
“될지 안 될지는 해봐야 알지.”
백범의 부친은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은철 역시 상품성이 떨어지는 사과로 2차 가공을 하면 백범의 부친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기뻐졌다.
“사돈총각.”
“예, 어르신.”
“나랑 점심 먹고 시내에 좀 나가보자고.”
“예.”
“내 생각에는 사과를 무말랭이처럼 그냥 말리면 안 될 것 같고 건조기를 돌려서 말려야겠어. 마땅한 건조기가 있는지 알아보자고.”
“정말 해보시려고요?”
“말이 나왔으면 해봐야지. 뭐든 해봐야 되는지 안 되는지 알지.”
백범 부친의 말에 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돈총각, 건조기를 구입해서 뭐든 말려 보자고.”
“무엇이든 이라고 하셨습니까?”
“사과만 말릴 것이 있나? 감도 말려 보고 고구마도 쫀득하게 말려 보고, 하하하, 재미있겠어.”
돈이 많은 사람은 일이 취미가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일을 취미로 삼는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범의 부친은 이 세상 누구보다 부자일 것이고 그에게 사업은 인생을 거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