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46화 (46/415)

# 46

46화 부창부수(夫唱婦隨)?(1)

여수관광호텔 로비 앞.

모든 일을 해결하니 오후 6시였고 식사까지 끝낸 상태였다.

“처남댁.”

나는 담담한 말투로 어린 처남댁을 불렀다.

“예.”

“관광은 잘하셨어요?”

아침보다 훨씬 표정이 밝아진 처남댁이다. 아마 내가 막내 처남에게 해준 말을 여행 중에 들은 모양이고 그래서 저리 표정이 밝아진 것 같다.

‘밝은 아가씨군.’

저 어린 아가씨 때문에 막내 처남도 멋진 남자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내 처가는 여자 때문에 팔자가 망가지거나 팔자를 고칠 팔자인 모양이다.

‘손위 처남은 위기에 빠진 여자를 구하다가 인생을 망치셨고……!’

두 손아래 처남들은 결국 여자를 위해 인생을 건 남자들이니까.

‘곧 4월이고!’

4월이 오면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달래주던 백두 소주가 유동성 자금 압박 때문에 최종 부도처리가 된다. 그리고 백두 그룹은 어쩔 수 없이 백두 소주의 부도가 백두 그룹에 여파를 미치지 않고 자금 확보를 위해 매각공고를 내게 된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내 본격적인 사업은 백두 소주 인수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또!’

내 처가를 풍비박산을 내놓은 그놈을 파멸로 빠트리기 위해 풋옵션에 투자할 것이다.

“예, 돌산은 갔는데 볼 것이 없어서 오동도에 다녀왔어요. 동백꽃이 만개해서 정말 예뻤어요.”

여수 오동도 하면 동백꽃이다. 붉은 동백꽃이 만개할 때면 마치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곳이 바로 여수 오동도다.

‘나는 돌산도에서 뜨는 동녘을 보고 심장이 뛰었는데!’

여자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하하하, 그래요? 그렇겠군요. 동백꽃은 예뻤습니까?”

“예, 아주 예뻤어요.”

“참, 이거.”

나는 주머니에서 처남댁이 강탈을 당한 어머니의 유품인 금목걸이를 꺼내 내밀었다.

“어, 어떻게?”

내가 자기 어머니의 유품인 금목걸이를 건네자 놀란 듯 말까지 더듬는 막내 처남댁이다.

“제가 찾아드린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저는 약속한 것은 지킵니다.”

“정말 고마워요.”

“처남댁, 관광하느라 많이 피곤하시죠?”

“아니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흑흑흑!”

“울지 마시고요. 엄마가 자주 울면 딸 낳는답니다.”

“아……!”

“호텔에 들어가서 쉬십시오. 막내 처남, 처남댁 모시고 들어가, 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할 거니까.”

“예, 매형, 정말 고맙습니다.”

막내 처남도 나를 한없이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서 들어가.”

“예.”

그렇게 처남댁과 막내 처남이 관광호텔로 들어갔다.

“김 비서님.”

“예, 대표님.”

“김찬 할아버지 모시고 올라가서 쉬세요.”

“예, 알겠습니다.”

“내일 일찍 출발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 비서와 김찬 할아버지도 관광호텔 특실로 올라갔다.

* * *

“대표님, 저 꼬맹이를…….”

호텔 로비 앞 주차장에는 나와 전두성 그리고 박태수만 남았고 전두성이 내가 데리고 온 박태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기회랍니다.”

“예?”

“그래서 내가 기회가 한번 되어줄까 합니다.”

“혹시?”

이상한 눈빛으로 변해 의문을 던지는 눈빛을 보이는 전두성이다.

“예, 그 날치기 중 하나입니다.”

내 대답에 전두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대표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소리다.

“그 소리 저도 들어서 잘 압니다.”

“그런데 왜?”

전두성은 박태수는 안중에 없다는 듯 내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박태수의 눈빛이 그저 담담할 뿐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 정말 대표님은 특이하십니다.”

“하하하, 그러게요. 내가 자신의 기회라고 하잖습니까. 태수야.”

“예.”

내가 자기를 부르자 태수가 내게 다가왔다.

“인사드려라. 앞으로 너를 담당하실 전 부장님이시다.”

전두성은 이미 스카우트가 됐다. 그리고 태양기업 영업부장으로 임명할 생각이다. 물론 사업 업무 외적인 일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박태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박태수가 전두성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눈빛 하나는 살아 있네.”

전두성이 박태수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전두성은 박태수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태수야.”

“예. 대표님.”

“너, 나랑 서울 가기로 했지?”

“예.”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박태수다.

‘잘만 고쳐진다면 딱 쓰기 좋은 성격이다.’

말이 많은 놈들은 실수도 많은 법이고 모든 문제는 혀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목숨 내놓기로 했지?”

“예.”

“너 어디까지 배웠냐?”

“예?”

막둥이처럼 꼬박꼬박 대답을 잘하던 박태수가 내 뜬금없는 물음에 이번에는 이해를 못 한 눈빛으로 내게 되물었다.

“최종학력?”

“중학교 중퇴입니다.”

“그럼 한창 바쁘겠네.”

“예?”

“오늘이 3월 중순이니까. 올해 12월 31일까지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까지 합격하면 내가 너의 기회가 되어준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박태수의 표정은 굳어졌다.

“예……?”

“알아들었으면서 왜 되물어? 싫어?”

“아,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돌대가리는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럴 자신 있으면 나를 따라가면 된다.”

내 말에 박태수가 나를 빤히 봤다. 그리고 전두성도 나를 빤히 보며 정말 대표님은 특이하신 분이라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

“할 수 있겠어?”

“예,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박태수를 대학까지 보내볼 참이다.

저 녀석이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해지고 있으니까.

“나는 머리 안 돌아가는 직원은 필요 없다.”

“예, 알겠습니다.”

“전 부장님.”

“예, 대표님.”

“염전 관리할 분을 구하십시오.”

그 염전은 곧 김찬 할아버지의 염전으로 되돌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찬 할아버지를 이곳에 그냥 홀로 둘 수도 없다. 그러니 서울로 모시고 가야 하고 염전을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니 구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면 된다.

* * *

판교 본가 안방.

내가 본가로 막내 처남과 처남댁 그리고 김찬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니 아버지께서는 입이 쩍 벌어지셨다.

‘두 분의 눈빛이 이상하네.’

내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두 분께서는 안도하는 눈빛을 보이고 계신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왜 내 이야기를 듣고 안도하는 눈빛을 보이시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돈댁 막내 처남댁이 임신했단 말이지?”

아버지께서 되물으셨다.

‘원래 이런 분 아니신데…….’

오늘따라 꼬치꼬치 캐묻고 계시는 아버지시다.

거기다가 처음에도 느꼈지만, 사돈댁 막내 처남댁이 임신했다는데 누구보다 안도하는 눈빛을 보이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것도 두 분이 동시에 말이다.

‘뭘까?’

뭔가 있는 것 같다.

“예, 막내 처남의 처가가 반대하고 있고 그쪽에서 애까지 지우려고 해서 도망쳤다가 제가 여수에서 찾아서 데리고 오는 길입니다.”

그제야 내 말에 아버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다면 사돈댁 총각이 마음고생이 많았겠네.”

“예, 마땅하게 당분간 지낼 곳이 없어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잘했다. 품은 생명 함부로 죽이면 큰 벌 받는 법이다.”

“일꾼도 필요하실 테니까, 일도 시키고 월급도 주시면 됩니다.”

“일을 시켜?”

사돈댁 총각에게 일까지 시키라는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나를 빤히 보셨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가 사돈지간이다.

“예, 그래야 아버지께 막내 처남이 미안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사돈댁에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일하고 돈 벌러 온 거였으면 저는 좋겠습니다.”

“맞는 말이네.”

아버지께서는 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신 것 같다.

“사돈댁 총각.”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막내 처남을 불렀다.

“예, 어르신.”

“여기서 당분간 일할 겁니까?”

사돈이라서 함부로 하대를 못 하시는 아버지시다.

“예, 여기서 일하게 해주시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그래요, 그럼 그럽시다. 보통은 일당으로 셈을 하는데 사돈총각이니 월급으로 계산해서 200만 원을 드릴게요.”

“아버지.”

“왜?”

“뭘 그렇게 많이 줍니까?”

원래 일꾼들에게 한 달 주는 월급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일당으로 노임을 계산해 줬으니까. 그리고 200만 원이면 대기업 사원 월급이다.

“내 마음이지.”

“그러시면 막내처남이 부담되지 않겠습니까?”

“됐다. 내 마음이고 나랑 네 엄마는 너, 여수 갔다는 소리에 십년감수 했고 처남댁이 우리 집에 와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제가 여수 내려갔던 거 아시네요.”

“며느리 와서 파김치 만드는 거 배우고 갔다.”

아무 말도 없으시던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파김치 만드는 법 알려주면서 파김치 담그신 건 아니시죠?”

내 말에 어머니가 눈을 흘겼다.

“팔불출이야?”

“예.”

“내가 말을 말아야지, 범아.”

“예, 어머니.”

“며느리가 공부는 잘하는데 음식 만드는 솜씨가 꽝이더라.”

어머니께서 처남과 처남댁의 눈치를 보며 내게 말씀하셨다.

“하하하, 하하하!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파출부 쓰기로 했습니다.”

“그건 잘했네. 하여튼 식구들이 갑자기 생긴다는 말에 나는 정말 네 아버지랑 십년감수를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또 십년감수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시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데요?”

“청담동 처녀 보살이 식구가 늘어난다고 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진짜 백범이 저질렀던 총각 때 일이 떠올랐다.

‘아……!’

내가 사생아라도 데리고 들어온다고 청담동 처녀 보살이 말한 모양이다. 그래서 십년감수를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여튼 그런 일이 있어.”

“……예.”

이제야 대충 짐작이 된다.

‘용하기는 하군.’

이 순간 나도 모르게 진짜 백범의 기억 속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처녀 무당 한 명을 떠올렸다.

‘청담동 처녀 보살…….’

진짜 백범이 주체할 수 없는 정력 때문에 처녀 무당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다행스럽게 그 처녀 무당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여자 사람 친구?’

딱 그 정도의 관계처럼 여겨지는 기억들만 가득했다.

[너, 차 조심해라.]

청담동 처녀 보살 조비가 내게 말해 줬던 것이 떠올랐다.

* * *

강북 백범의 고급 아파트.

백범과 심은혜가 합의를 본 것처럼 백범의 고급 아파트에서는 정말 사람 좋게 보이는 아주머니가 파출부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주머니 옆에서 심은혜는 노트에 음식을 만드는 법을 열심히 적으며 배우고 있었다.

“사모님, 뭐 더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아주머니가 어린 심은혜를 사모님으로 부르자 심은혜는 살짝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아주머니, 저 그렇게 부르지 마시고…….”

사모님 소리가 부담스러운 심은혜였지만 또 마땅한 호칭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심은혜였다.

“사모님 소리가 부담스러우세요?”

“예…….”

“그럼 아가씨라고 불러드릴까요?”

아주머니가 사람 좋게 웃었다.

“저 아줌만데요.”

“호호호, 호호호, 농담도 잘하시네요. 뭐 더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그럼……?”

“말해 보세요. 제가 음식 하나는 자신이 있어요.”

“장어구이 될까요?”

“장어구이요? 호호호!”

아주머니가 요상한 눈빛으로 변했다.

“예.”

“남자한테는 장어 꼬리가 최고죠. 호호호! 신혼이시라면서요? 좋을 때네요. 제가 얼른 시장가서 싱싱한 놈들로 사 올게요.”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돈 받고 하는 일인데.”

하여튼 은혜는 백범이 여수에서 출발할 때 저녁에 도착한다고 미리 연락을 받은 상태였고 백범 맞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좋아하시는 속옷으로 입어야지.’

은혜는 백범 맞이를 위해 백화점에 가서 정말 섹시한 속옷도 준비해 놨다.

‘정말 좋아하실 거야.’

백범을 위해서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은혜로 변해 있었고 오늘 밤을 기대하는 여자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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