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45화 (45/415)

# 45

45화 바르게 되돌려 놓아야겠다.(4)

박태수와 함께 경찰서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내 앞에 딱 봐도 검사로 보이는 남자와 검찰 수사관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경찰서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게 법조계의 인맥이구나.’

오늘은 일요일이다. 일요일에 일하는 공무원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열성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도 드물 것이다.

‘인맥과 권력의 힘이!’

내 손위 처남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부자(夫子)를 그냥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셨습니까? 황 검사님!”

경위 계급장을 단 경찰이 검사를 보고 말했다.

“피의자는?”

경위에게 말하는 황 검사는 검사 특유의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

“저기 있습니다.”

형사의 말에 황 검사가 도만복을 매섭게 노려봤다.

“오셨습니까? 백범 대표님.”

백영기 변호사가 나를 보고 다가와 말했고 황 검사라는 검사와 경찰들이 나를 봤다.

‘마치 주인공이 등장했다는 눈빛이군.’

경찰을 움직인 황 검사다.

또 황 검사를 움직인 백영기 변호사다.

그리고 백영기 변호사를 오게 만들어 이 모든 일을 실행시킨 사람이 나다.

그러니 내가 저들에게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순간 황 검사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유심히 살폈고 나는 백영기 변호사가 황 검사와 전화 통화를 할 때 옆에 있었기에 저 눈빛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이 된다.

‘내게 잘 보이고 싶은 눈빛이군.’

법조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백영기 변호사가 내게 이리 공손하니 저런 눈빛을 보이는 것이다.

“증언과 증거 자료는 전달받으셨죠?”

이미 전두성에게 증거 자료와 증언을 백영기 변호사에게 넘겨주라고 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박태수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를 살피면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다.

“바로 검찰에 이첩이 되어 조사를 받게 될 겁니다. 그와 동시에 태평양법무법인이 민사재판까지 진행하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은 바로 잡게 될 겁니다.”

“그래야죠.”

나는 백영기 변호사에게 말하고 잔뜩 겁을 먹은 도만복을 봤다.

‘검사까지 등장했으니!’

사악한 도만복이 저리 겁을 먹고 있다.

“피의자랑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잠시면 됩니다.”

내 물음에 백영기 변호사가 황 검사라는 검사를 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가능할 겁니다.”

백영기 변호사가 내게 대답하자마자 황 검사가 경찰을 봤다.

“여기서 잠시 확인할 것이 있는데 경찰 조사실 좀 빌립시다.”

“예, 검사님.”

경찰이 바로 대답했다.

‘이야, 정말 돈이 좋구나.’

변호사와 검사, 그리고 경찰까지 내 돈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내 전생에서도 이랬지.’

나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어떤 것이든 결과를 바꿔놓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 떠올랐다.

[미스터 리!]

[말씀하십시오.]

[우린 은행을 가지고 싶소. 미스터 리, 당신이 우리를 위해 결과를 바꿔줬으면 합니다.]

지금 생각을 해도 나는 전생에서 너무 많은 죄를 지은 것 같다.

‘이신, 너는 왜 환생을 했을까?’

환생한 직후에도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을 이제야 자꾸 고민하게 된다.

* * *

경찰 조사실.

나는 도만복과 마주 보고 앉아 있고 황 검사는 조사실 입구 쪽 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황 검사의 눈빛은 시쳇말로 정말 돈이 좋다고 이죽거리는 눈빛이지만 그 눈빛을 내게 바로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이 경찰 조사실이 어두컴컴한 곳이라서 그런지 김찬 할아버지는 벌벌 떨면서 김 비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도만복 씨.”

나는 담담한 어투로 도만복을 불렀다.

“왜, 왜 이럽니까?”

“제가 오늘 남은 셈을 치를 것이 있으면 찾아뵙는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죠.”

“서, 서울 양반, 내가, 내가 정말 잘못했어라.”

이제야 자신이 뭐가 됐다는 것을 직감한 듯 내게 빌고 있는 도만복이다.

“내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 김찬 할아버지께 정말 잘못하셨죠.”

“뭐, 뭐든 내가 잘못했지라.”

“우리 그럼 기억을 더듬어 봅시다.”

“뭐라고요?”

“도만복, 최 부자 댁, 종놈 아니었습니까?”

“예?”

내게 되묻지만 기겁한 눈빛으로 변하는 도만복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이다.

“무, 무슨 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요?”

“어떻게 종놈이 주인댁 어르신이 죽자마자 염전주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도만복은 이미 잔뜩 긴장한 상태다. 그리고 그 긴장감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숨기려고 전전긍긍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저럴수록 실수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 그건, 제, 제가 그 집, 사위라서 당연히 물려받았지라,”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도만복이다.

[혼인신고가 한국전쟁 끝나고 이루어졌습니다.]

원래라면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이런 부분은 확인이 불가하다. 하지만 인맥이 좋고 여수 복지과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것에 관해 확인을 끝낸 상태였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아직 거짓말을 하는군.”

“정말입니다. 하늘에 맹세코 정말입니다.”

악인은 자신이 불리할 때 하늘을 팔고 어머니를 판다.

그리고 약자는 최악의 순간 하늘을 부르짖고 어머니를 찾는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최 부자 집 무남독녀인 최꽃분 씨는 전쟁 때 부친과 함께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누군가의 밀고 때문에 국군에게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는데 어떻게 전쟁이 끝나고 혼인신고를 할 수 있지?”

“증거 있어?”

도만복은 궁지에 몰린 쥐처럼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내 말 안 끝났어요. 종놈이 주인을 밀고하고 죽음으로 몰고 염전까지 갈취하고 거기다가 겨우 돌아온 그 집안의 진짜 사위를 종처럼 부리면서 살았지. 당신이 그러고도 인간일까?”

“증거 있냐고? 내가 그 병신을 때렸다. 하도 멍청해서 일도 못해서 쥐어박아부럿제. 그 부분은 인정하고 죄가 있으면 죗값을 받으면 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덜 말어! 증거를 내놓으라고, 증거를!”

작은 것을 포기하고 큰 것을 지키려는 도만복이었다.

“증거 없을 것 같나?”

나는 도만복을 매섭게 노려봤다.

“증, 증거 있, 있냐고?”

“도만복 씨, 진심으로 사죄를 하면 용서를 받을지도 몰라, 김찬 할아버지는 아주 너그러운 분이셨거든.”

증거를 내놔. 내가 그 집, 사위야.”

“도만복 당신은 정말 안 될 사람이군요.”

나는 테이블 위에 녹음기 하나를 꺼내 놨다.

“그, 그건 뭐, 뭐시여?”

“들어 보세요.”

틱!

-정말 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 인간이 돈을 주면서 사망한 최꽃분을 자기 호적에 올려 달라고 해서 그 돈 받고 제가 올려줬습니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온 증언을 듣고 도만복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가짜가 먹히겠습니까?]

전두성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먹히게 만들면 됩니다.]

다시 말해 이 증언은 가짜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에 그 시절에 면사무소에서 근무한 사람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주차장 차 안에서 급조한 녹음이다.

“도만복, 이제는 뭐라고 할 거지?”

“이, 이런…….”

도만복은 절망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나는 도박을 했고 그는 걸려들었다.

“당신은 지은 죄가 워낙 커서 교도소에서 죽게 될 겁니다. 아니 교도소에서 죽는 것이 편할 겁니다.”

“이, 이런 망, 망할…….”

도만복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죽을 수가 없을 거야.”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책상을 집고 허리를 숙여 그의 귀에 속삭였다.

“뭐, 뭐라고?”

“곧 나오게 될 거야. 빈털터리가 되어서 출소를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조용히 어딘가로 끌려가게 될 거야.”

내 말에 도만복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김찬 할아버지처럼 종처럼 노예처럼 살게 될 거야. 알다시피 전라도 오지에 염전도 많고 새우잡이를 하는 멍텅구리 배도 많잖아.”

“나, 나헌티 왜, 대체 왜 이런다요?”

내 속삭임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제는 울먹이기 시작하는 도만복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매섭게 도만복을 노려봤다.

“그러니 교도소에서 편안하게 죽고 싶으면 진심으로 김찬 할아버지께 사죄하십시오.”

속삭이는 것을 멈추고 다시 의자에 앉아 도만복에게 말했다.

“살, 살려주십시오.”

“그러니까, 진심으로 비세요.”

내 말에 도만복이 김찬 할아버지를 봤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덜덜 떨면서 무릎을 꿇었다.

“서, 서방님, 제가 아니 이 종놈이 죽을죄를 지었지라. 제발,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흑흑흑!”

도만복은 울고 있지만, 진심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 존재이니까.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러고 있다.

“도만복 씨, 지금부터 녹음해도 되죠?”

내 물음에 황 검사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녹음에 동의를 하면 법정에서 효력을 발생하는 증거 자료가 됩니다. 그래도 녹음에 동의하시겠습니까?”

황 검사가 도만복에게 되물었고 나는 도만복을 매섭게 노려봤다.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됩, 되지라. 당연히 되지라.. 녹, 녹음하세요.”

나는 바로 녹음기를 켜고 도만복에게 계속 사죄를 하라는 눈빛을 보였다.

“서방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원래 서방님이 가지셔야 할 염전을 제가 차지했습니다.”

“주, 주인님…….”

김찬 할아버지는 이런 상황에서도 영문을 몰라 도만복을 그저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벌벌 떨고만 있다.

“제가 종입니다. 서방님이 진짜 주인님이셔요. 흑흑흑!”

이 정도면 증거 자료로 충분한 것 같다.

“최 부자 어르신과 최꽃분 씨는 왜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국군에게 끌려갔습니까?”

내가 도만복에게 물었고 최꽃분이라는 말에 김찬 어르신이 나를 뚫어지게 봤다가 다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졌다.

“그, 그건…….”

“진심으로 사죄를 하면…….”

종놈 도만복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데 나라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법 없다.

“제가 밀고를 했습니다. 서방님이 이북 출신이라서 그걸 이용해서 국군에게 밀고했습니다. 사실 서방님을 강제 입대를 시킨 것도 접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흑흑흑!”

다시 거짓 눈물을 흘리는 도만복이다.

“그런 후에 최 부자 어르신과 꽃분이가 죽은 것을 알고 면에 다니는 놈을 매수해서 제가 염전을 갈취했어라.”

틱!

나는 녹음기를 껐다.

“검사님.”

“예.”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피의자께서 스스로 이렇게 자백을 하니 정상참작을 해드려야겠죠.”

말만 저렇게 하는 황 검사다.

“감사합니다. 검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도만복은 아무것도 모르고 검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교도소에 썩어라.’

종놈 도만복은 그렇게 될 것이고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백영기 변호사에게 원했다.

‘다 끝났군.’

나는 거짓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도만복을 내려다봤다.

“제가 이렇게 사죄를 했으니께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도만복은 이제는 내게 애걸복걸하고 있고 나는 도만복을 보며 미소를 보여줬다.

“정말 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 인간이 돈을 주면서 사망한 최꽃분을 자기 호적에 올려 달라고 해서 그 돈 받고 제가 올려줬습니다.”

내가 녹음기에 나온 목소리로 도만복에게 말하자 도만복의 눈동자가 커졌고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 이, 이게……. 이 망, 망할 놈, 놈아!”

“왜요? 놀랐습니까?”

사악한 미소를 보였다.

“검사님, 검사님!”

“왜 그러십니까? 피의자님.”

황검사는 그저 담담히 도만복에게 물었다.

“저 어, 어린놈이, 어린놈이!”

그에 반해 도만복은 당장에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듯 흥분했다.

“누구, 우리 말고 누가 있는데?”

“뭐, 뭐라고요?”

“이 조사실에는 저와 피의자밖에는 없습니다. 헛것이 보입니까?”

“검, 검사님, 너, 너그들 모두 한, 한통속이지!”

절규하는 도만복이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은 이 조사실에서 먼저 나가면 된다.

“죄는 항상 벌로 돌아오는 법이다.”

마지막 일침을 가하고 경찰 조사실에서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도만복에 대한 형사재판과 모든 것을 되돌려 놓는 민사재판만 남았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라 백영기 변호사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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