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화 바르게 되돌려 놓아야겠다.(3)
“어린 양아치가 커서 뭐가 되는 줄 알아?”
“예?”
“잘, 잘 모르겠는디요”
또 한 새끼만 대답이 없다. 그리고 녀석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덜 맞았다는 소리군.’
그렇다고 더 팰 수도 없다. 이미 멈췄고 나를 노려본다고 패면 모양 빠지니까.
“모르지. 모르니까 이따위로 살지?”
“…….”
그저 두 놈만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어린 양아치가 이대로 크면 늙은 양아치가 된다. 어제까지는 운이 좋아서 교도소에 안 가고 껄렁껄렁하게 살았지. 그런데 내일까지 운이 좋을까?”
나도 모르게 늙은 잔소리꾼 어른처럼 어린 양아치 셋에게 훈계하고 있다.
“오늘처럼 기회가 있을 때 인생 똑바로 살아라.”
“우리한테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요.”
그때 정신을 차린 어린 양아치 하나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 뭐라고 했어?”
나는 소리친 어린 양아치 새끼를 매섭게 노려봤다.
“똑바로 살 기회가 없었다고요.”
“이것 봐라.”
“부모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이렇게밖에는 못 사는데 어떻게 똑바로 삽니까?”
내게 발악을 하듯 말하는 어린 양아치 새끼는 나를 떠나 세상 전체에 불만을 가진 눈빛처럼 느껴졌다.
‘저런 것이 크면 악마가 되겠지.’
어느 탈옥수가 말했다. 내가 어릴 적에 선생님이 머리 한번만 쓰다듬어줬어도 내가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구차한 변명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탈옥수에게는 어릴 적부터 누구도 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뚤어지고 망가지고 증오하며 살게 됐고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가진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너 이름이 뭐야?”
“박태수입니다.”
자기 이름을 당당히 밝히는 어린 양아치다.
“박태수?”
눈깔에 독기가 느껴지는 놈이고 헬멧을 쓴 상태로 구타를 당할 때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던 놈이 바로 저놈이다.
“태수야, 기회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야.”
정말 나도 모르게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져 있다. 그런데 박태수의 눈빛이 변했다.
“됐고, 나는 여기 사람 말대로 서울 뜨내기니까 찾을 거 찾았으니 됐다.”
새삼 저런 어린 양아치들 훈계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라도 또 보지 말자.”
나는 어린 양아치 셋에게 그렇게 말하고 동네 조폭을 봤다.
“협조 감사합니다.”
“야아, 들어가소.”
동네 조폭은 2,000만 원이 생겼다는 것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눈빛이다.
따지고 보면 아파트 한 채 값을 챙긴 동네 조폭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당구장을 나가기 위해 돌아섰다.
“저기요, 서울 아저씨.”
그때 박태수가 나를 불렀다.
“왜?”
“저 좀 서울에 데리고 가 주세요. 저도 여수 생활 지긋지긋합니다. 아니 이렇게 사는 거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박태수는 인생의 변곡점을 찾고 싶은 모양이다.
“버스표를 사면 아무 때나 서울 갈 수 있다.”
“기회는 없잖아요.”
“기회?”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거라면서요.”
엉뚱한 소리를 하는 박태수이다. 그리고 그 엉뚱한 소리는 내가 먼저 했다.
“내가 네 기회가 될 것 같아?”
재밌어지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예.”
나를 뚫어지게 보는 박태수이다.
“내가 기회?”
황당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저 녀석에게는 내가 기회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네가 잡은 기회?”
사람은 항상 모든 상황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게 마련이다.
“예!”
박태수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박태수의 눈에는 오기가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너를 서울로 데려가 주면 너는 나한테 무엇을 줄 수 있지?”
인생의 모든 상황은 거래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전생에 항상 그렇게 거래를 하며 살았고 내가 거래를 제안할 때나 제안을 받을 때마다 누군가는 희생이 되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커졌고 점점 더 거대한 악인이 되어 있었다.
‘그날이 사고였을까? 사건이었을까?’
또 전생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환생을 하고 회귀를 했기에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교통사고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고 해도 환생을 했고 시간까지 회귀를 했기에 복수의 대상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잠깐!’
나도 엄청난 사실 하나가 떠올라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내가 진짜 백범의 몸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김 상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소름이 돋는 순간이다.
“드릴 것은 목숨밖에는 없습니다. 제 목숨 그거라도 가지시겠습니까?”
박태수가 큰 목소리로 내게 말했고 나는 찡그렸던 인상을 다시 펴며 박태수를 봤다.
“목숨?”
“예!”
다시 우렁차게 대답하는 박태수다. 두 양아치와 다른 사람들은 박태수가 왜 저러냐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 박태수는 나를 뚫어지게 보며 마치 인생 게임에서 자신을 몰방하겠다는 표정이다.
“야, 꼬맹이. 목숨 아무한테나 던지는 것 아니다.”
“아무나가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 아저씨한테 던질 수 있는 것이 목숨밖에는 없습니다.”
박태수의 말에 나는 녀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대부님, 한번만 용서해 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지금까지 대부님께 충성했던 녀석입니다.]
[그리고 배신을 했지.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고 했다.]
[……예.]
전생 때의 과거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는 전생 때 내가 부리던 사람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버렸다. 그러면서도 그가 왜 배신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그냥 사람을 도구로만 알고 살았었다.
“운전할 줄 아냐?”
내 말에 당구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빛을 보였다.
“예, 할 줄 압니다.”
“가자.”
눈깔에 독기가 가득한 놈이다. 거기다가 내가 엄청난 사람이라는 것을 판단한 놈이고 이 순간이 자신의 인생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단을 내린 놈이다.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는!’
서울 가서 따져보면 될 일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편견이다.’
어디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
* * *
여수 경찰서 주차장 앞.
박태수가 차를 운전했고 여수 경찰서로 가자는 내 말에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차를 운전해 여수 경찰서 주차장까지 들어왔다.
“태수야.”
“예…….”
“이래서 죄짓고 살면 안 되는 거다.”
“예…….”
저 녀석은 22살 때까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았을까?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내가 전생 때 부하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차에서 내렸고 내가 경찰서로 온다는 말을 듣고 전두성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표님.”
내가 차에서 내리자 전두성은 머리를 숙여 내게 인사를 했고 운전했던 사람이 김 비서가 아니라 처음 보는 박태수라 살짝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주웠습니다.”
“예?”
“당구장에서 주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전두성은 박태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내게 말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어떻게 됐습니까?”
“제게 지시하신 부분을 찾아봤지만, 생존자가 없습니다. 더 찾아봐야겠지만 쉽게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토지대장 부분은 어떻게 됐죠?”
“여수 복지과 과장이 보관 문서들을 확인해 보겠다고 시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답이 나오겠죠,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문서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요. 그래도 대단한 것을 찾으셨습니다.”
“제시해 주신 백지수표 값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두성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두신 액수는 있으십니까?”
내 말에 전두성이 미소를 머금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내게 말하면서 미소를 보이는 전두성이다.
‘그나저나 생존자를 못 찾았다?’
없다면 만들면 그만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전두성을 봤다.
“녹음기 있습니까?”
“예.”
전두성이 내게 녹음기를 내밀었고 나는 녹음기를 받아 차에 다시 탔고 내가 차에 타자 박태수도 비서처럼 차에 탔다.
“됐다. 밖에서 기다려라.”
“예…….”
“왜 눈치를 보지?”
“제가 어떻게 불러 드려야 합니까?”
“너와 나 둘이 있을 때는 나를 대부라고 불러라.”
“대부요?”
“내가 너를 고쳐 쓸 생각을 했으니 그렇게 불러라.”
“예, 대부님, 그럼 사람들이 있을 때는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대표님.”
“예, 알겠습니다.”
박태수가 대답을 하고 차에서 내렸다.
“으음, 으음!”
박태수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아아, 으음……. 죽, 죽, 쉽지 않군…….”
전생 때의 내 목소리를 떠올려 봤다.
“으음……. 죽, 죽을죄를……. 됐군.”
틱!
나는 바로 녹음기를 켰다.
* * *
여수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사람을 막무가내로 잡아 왔으믄 조사를 하던지 맞았다는 그 바보랑 대질신문을 하든지 뭐든 해야 할 것 아니여!”
경찰서에 잡혀 올 때 벌벌 떨던 도만복은 자신을 의자에 앉혀 놓기만 하는 경찰들을 보고 증거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기 조용히 좀 하세요.”
“조사하던 뭐든 해야 할 거 아니여, 나가 누굴 팼다 그려? 잉? 누굴 감금했단겨!”
“우리가 조사할 사항이 아니라서 그럽니다. 조용히 좀 있으세요.”
“뭐시여?”
“검사님 곧 오실 겁니다.”
“검, 검사?”
“예. 쯧쯧, 인생 왜 그렇게 사셨어요.”
형사의 말에 도만복의 표정이 굳어졌다.
“도만복 씨.”
그때 백영기 변호사가 경찰서로 들어와 도만복을 불렀고 그의 뒤에는 김 비서와 김찬 할아버지가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전두성도 백영기 변호사의 뒤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누구여?”
“김찬 할아버지의 법률 대리인입니다.”
“무슨 소리야?”
“김찬 할아버지께서 도만복 씨를 폭행과 감금죄로 고소하셨습니다.”
“이 양반이 뭔 염병할 소리를 지껄이는 거여. 증거 있어?”
한 마디로 배를 째라고 말하고 있는 도만복이었다.
“있죠.”
백영기 변호사는 전두성에게 받은 녹음기를 켰다.
-그 인간은 사람 사람도 아니여, 매일 김 상사 할아버지를 매질하는 모습을 내가 똑바로 봤당께.
-음식물 쓰레기를 얻어가서 다시 끓여서 먹였다니까.
녹음기 소리를 듣고 기겁하는 도만복이었다.
“이게 증거입니다. 그리고 전치 8주 진단서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나, 나가, 그러니까, 내가…….”
그때 경찰서 사무실로 황 검사가 들어왔고 그의 뒤에 백범이 따라 들어오자 경찰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황 검사님!”
“피의자는?”
“저기 있습니다.”
형사의 말에 황 검사가 도만복을 매섭게 노려봤다.
* * *
청담동 처녀 보살의 사당.
청담동 처녀 보살 조비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명상을 하는지 무상무념에 잠겨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의 전생을 더듬고 있었다.
-야야, 야야
-이게 뭣이요?
-이게 명태 식해다. 이북사람들이 먹는 명태 식해. 하하하, 야야 주려고 내가 담갔다.
-내 이름은 야야가 아니라 꽃분이랑께.
-너는 내 색시 야야다.
순간 조비가 눈을 번쩍 떴다.
‘내가 최꽃분이었구나……!’
자신의 전생을 끝내 더듬어낸 청담동 처녀 보살 조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