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42화 (42/415)

# 42

42화 바르게 되돌려 놓다(1)

저 말의 뜻을 해석하면 돈 더 달라는 소리다.

‘사실…….’

피식 웃음이 나올 뿐이다.

200만 원이면 시쳇말로 떡을 치고도 남을 돈이다. 하지만 지갑을 열어 보니 남은 수표는 천만 원짜리 10장하고 1억짜리 수표 한 장이 전부였다.

‘잔돈은 막내 처남에게 주고!’

졸부인 내게 10만 원짜리 수표와 백만 원짜리 수표는 잔돈이다.

거기다가 동네 조폭 뒤에 있는 똘마니한테 내기 당구를 치다가 50만 원을 줬다. 그래서 남은 잔돈(?)이 없어서 천만 원짜리를 꺼내 놓은 것이다. 한 마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돈 지랄을 제대로 한 꼴이다.

‘200만 가지고 거슬러 달라면?’

제대로 모양 빠질 일이다.

“돈 더 달라는 소린가?”

내 직설법에 동네 조폭은 똥 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저 동네 조폭은 무게를 잡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니 저 동네 조폭을 위해 내가 몰아붙여 주면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주면 돈 2,000만 원 싫어할 놈 없다.

‘아무리 옛말에!’

옛날 말에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옛날 군부 육사 장성들 마누라 중에 순천 출신이 많다. 그리고 지금도 조폭들 중 벌교 출신이 많다. 또 여수는 부산과 함께 밀수가 꽤 이루어지는 곳이니 옛말이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시쳇말로 강남에 산다고 다 부자는 아닌 것처럼 여수에 사는 양아치는 그냥 돈 없는 양아치에 불과하다.

“당신한테 내가 후배를 팔라는 것이 아니라 정신교육 좀 하라고. 이 조그마한 시골에서 오토바이 날치기가 뭐야?”

“염병. 여가 어디라고 헛소리를 삐약삐약한다요?”

과도하게 흥분하는 동네 조폭이다. 뒤에 있는 똘마니들에게 보란 듯 저러고 있다.

‘이미 눈깔은 2,000에 팔았다.’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가 저런 눈깔이었을 것 같다.

이제 저 동네 조폭이 어쩔 수 없이 내게 굴복할 협박만 하면 그 협박이 놈의 명분이 될 것이다.

“정신이 나가서 여기로 왔을 것 같나? 여기로 바로 올 정도면 이 바닥 생리 정도는 알고 왔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환생 전에 나는 대부님 소리 듣던 존재다. 그렇기에 이런 바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조폭 영화에서는 조폭의 의리를 미화하지만, 조폭들에게 의리는 쥐똥만큼도 없다.

그것들은 오직 돈에 움직이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환생하기 전의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질 뿐이다.

[대부님!]

[원하는 대로 처리해 줘.]

[하지만 식구를 파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예, 알겠습니다.]

하여튼 나의 전생은 올바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생은 올바르게 살고 싶다.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으니까.

“그쪽 머리 없어? 아니면 감이 없는 건가?”

“시방 뭐라고라?”

양아치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 이리 당차게 말하는 사람을 저들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는 목걸이만 찾아서 가면 그만이야. 너희들이 말하는 그대로 서울 뜨내기고 돌아갈 생각이니까. 그런데 벌써 그 금목걸이 녹였으면 일이 커져. 그 금목걸이가 우리 처남 장모님 유품이거든, 벌써 녹았으면 그 새끼들도 다 녹여 버릴 거야.”

매섭게 노려봤다.

“그짝, 대체 뭣허는 사람이당가?”

“말했잖아. 매형이라고.”

“아, 시발…….”

“돈 싫어하는 사람이 다 있군. 할 수 없지, 경찰서로 가야겠어. 참고로 내 아내가 훌륭하신 판사님이 되실 분이야.”

엉뚱한 곳에서 마누라 자랑을 하고 있는 나다.

“뭐, 뭐시여?”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이는 동네 조폭이다.

“알다시피 판사는 검사랑 정말 친해.”

“으음…….”

“털면 다 털리고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안 털릴 사람 없을 거야.”

“지금 우리덜 협박하는 거여?”

“사실이잖아.”

사실 검사에게 말해서 찾아달라고 하면 제일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며칠은 걸릴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이러고 있고 또 매형으로 막내 처남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이다.

“오토바이 날치기면 특수절도고 검사가 형량 풀로 때리고 판사가 동의하면 어떻게 될까?”

“이, 이것이 어따대고 약을 팔어?”

버럭 화를 내는 남자다.

“특수절도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또한, 상습적이라면 각각 그 죄에 정한 형의 1/2까지 가중하여 처벌한다. 말한 것처럼 털면 털리는 것이 세상 이치고 대낮에 그런 짓을 했으면 여죄들도 꽤 있지 않을까?”

“…….”

“이번 참에 해결 안 된 사건들 다 뭉쳐서 똘똘 말아 버리면 그 새끼들의 젊은 날은 끝나는 거야. 거기다가 이것저것 엮여 있을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고 동네 금은방부터 장물 취급으로 결딴이 날 거고, 그쪽은 뭐가 엮여 있을까?”

이 말을 해석하면 무엇으로 ‘엮어 줄까?’라고 묻는 것이다.

“아…….”

“금목걸이 하나 날치기하고 15년을 썩고 보호감호까지 받으면 너무 억울하잖아. 사람 좋아서 내가 여기로 온 거야. 내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야.”

나도 사실 법 좀 안다.

“그만 일어날까? 보호감호까지 추가되면 30년이야, 오토바이 타는 새끼들이니 끽해야 20~22 정도일 테고 50이 되어서 맑은 공기 마시겠네.”

“대체 뭣허는 사람이요?”

긴장하는 눈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니까, 나는 금목걸이만 찾으면 그만이다.”

“참말이요?”

바로 겁을 먹은 동네 조폭이다.

‘어디든 급이 있지.’

저 동네 조폭은 내가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급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새끼들, 몇 대 쥐어박을 생각도 있어, 우리 처남댁이 임신 중이었거든. 운 좋은 줄 알아.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내가 정말 그 새끼들 갈치 밥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협박도 해본 놈이 잘한다. 그리고 내 말에 내가 빈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 같다.

“아……!”

“순천지청에 황 검사에게 전화하면 그냥 쉽게 끝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직접 왔다.”

나는 양복에서 휴대전화를 꺼냈고 미리 백영기 변호사에게 받아놓은 전화번호로 입력한 단축번호를 남자에게 보여줬다.

“눌러? 말아?”

“잠, 잠깐만…….”

이제야 좀 겁을 먹은 것 같다.

“쬐까 기다려 보랑께.”

동네 조폭이 바로 돌아섰다.

“뭣허고 있어. 싸게싸게 거시기해불지 않고!”

“예, 형님.”

“한 시간이면 되겠죠?”

나는 돌아서 있는 동네 조폭에게 말했고 그가 급하게 돌아서서 나를 봤다.

“되지라)/. 돼요, 되야것네요잉.”

이래서 졸부는 돈을 써야 할 때 힘쓰는 거 아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딸깍!

“여보세요?”

-전두성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담담한 어투로 말했고 동네 조폭을 보며 손을 뻗어 검지와 중지를 벌렸다.

‘눈치는 있겠지.’

내 행동에 바로 동네 조폭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내가 담배를 물자 동네 조폭은 허리를 숙여 정중히 불까지 붙여줬다.

이것은 완벽한 굴복을 의미한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들으시면 좀 놀라실 것 같습니다.

“뭡니까? 어디 한번 놀래 봅시다.”

* * *

종합병원 특실.

“공부하다가 시간이 남으면 고마운 시댁이나 가지 여긴 왜 왔어?”

은혜의 모친이 은혜에게 말했다.

“시댁 가는 길에 잠시 들렸어.”

“은혜야, 너도 그러겠지만 시댁에 잘해라.”

“알았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시다.”

모친의 말에 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정말 좋은 분이시라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얼른 가봐.”

“몸은 괜찮은 거지?”

“그냥저냥 그래, 그래도 이렇게 특실에서 지내는 마음은 불편해도 몸은 편하네. 이게 사람인가 보다.”

“마음이 불편할 것이 뭐가 있어?”

“사위 돈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니 마음이야 불편하지, 백 서방이야 워낙 사람이 좋아서 신경을 쓰지 말라고는 하지만 너한테나 백 서방한테나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은 불편해.”

“엄마는 그런 생각하지 말고 치료나 잘 받아, 그이한테는 내가 잘할 테니까.”

“알았어, 그런데 요즘 네 얼굴이 홀쭉해 보이네, 공부하기 힘들지?”

“내가 백 서방한테 정말 잘하고 있거든.”

은혜가 자기 어머니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엄마, 나 이제 갈게. 오늘 어머님께 파김치 담그는 것을 배워야겠어.”

“백 서방이 파김치를 좋아해?”

“응, 정말 좋아해.”

심은혜는 백범이 파김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밤마다 자기를 파김치로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도 백범에 의해 파김치가 되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래, 그래, 어서 가봐.”

“응, 엄마.”

* * *

종합병원 특실 복도.

심은혜가 어머니 병원 면회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고 마침 지나가던 젊은 의사가 특실에서 나오는 심은혜를 봤고 무엇인가 고민하는 눈빛을 보였다가 심은혜에게 다가섰다.

“혹시 특실 환자분 보호자십니까?”

“그런데요?”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저희 엄마 상태가 더 나빠진 건가요?”

바로 겁을 먹고 되묻는 심은혜였다.

“그게 아니고요. 부군께서 백범 씨죠?”

“예, 그런데요?”

“잠시만 저쪽으로 가실까요?”

* * *

종합병원 복도 모퉁이

“아……!”

심은혜는 젊은 의사의 말을 듣고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세 분 모두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안타깝게 조직검사에서 불일치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닐 겁니다. 모르실 것 같아서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젊은 의사가 심은혜에게 묵례를 하고 돌아서서 걸어갔다.

“백, 백범 씨……!”

자기는 자기 남편인 백범에게 한없이 받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운 심은혜였다.

그리고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백범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중이라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 * *

당구장 구석 소파.

-놀라셨습니까?

전두성이 내게 말했다.

“으음……!”

그래, 나는 전두성의 보고에 제대로 놀랬다.

“꽃분이?”

-예, 그렇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횟집 할머니가 말씀하신 최꽃분 씨는 김 상사 아니 김찬 할아버지의 아내이십니다. 다시 말해 김찬 할아버지는 원래 염전 주인인 최 부자라는 분의 사위고 상속자입니다.

‘최꽃분……!’

나도 모르게 내 전생의 기억의 한 파편이 떠올랐다.

[소대장 동무, 내 빨갱이 새끼들 피해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후에 좋은 어르신 만나서 장가도 갈 수 있었는데 전쟁이 터져서 식만 못 올렸습니다.]

[그랬나?]

[우리 색시 보시겠소?]

김 상사가 내게 어린 아내 사진을 보여줬을 때가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진짜 이름은 뭔데?]

[최꽃분, 이름도 예쁘지 않습니까?]

[여기 팔불출 하나 있었군.]

[그건 그렇고 우리 소대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피의 능선……!]

[피의 능선이 어딥니까?]

[강원도 양구라더군.]

[와, 내 함경북도에서 여수까지 월남했는데 꽃신 하나 사러 갔다가 읍내 장터에서 국군들한테 트럭에 태워져 강제 입대 당하고 이제는 강원도까지 갑니까? 거기 갔다가 또 어디로 갑니까?]

[거기로 가면 살아나올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소대원들에게 솔직했던 순간이었다.

‘운명은 이다지도 얄궂구나!’

모든 것이 잘못됐고 이제는 다 되돌려 놔야 할 때다.

“그렇다면 내일 바로 옛날 토지대장부터 확인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종 출신이었다면 무식할 것이니 뒤에서 도와준 존재가 있을 겁니다. 찾으세요.”

-세월이 워낙 지나서…….

“모두가 다 죽었다고 확신할 때까지 찾으십시오. 짐작건대 일본 순사 출신이거나 면에 다니던 사람이 도왔을 겁니다.”

-저도 그렇게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찾아봅시다. 그리고 다 돌려놓읍시다.”

-예, 알겠습니다.

종이 지금까지 주인 행세를 했단다.

‘딱 지금 대한민국 꼴이군.’

나라를 팔아먹은 민족반역자들이 이승만 정권부터 비호를 받으며 오늘까지 대한민국의 주인 인양 떵떵거리며 살고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애국열사들은 폐지나 줍고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과 똑같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모두 다 돌려놓을 생각이다.

‘돈 벌어서 선우재단, 그거 설립해야겠어.’

아버지를 설득시키기 위한 감언이설을 현실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돈 벌어서 뭐하겠어? 그런데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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