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40화 (40/415)

# 40

40화 법대로 또 인맥대로?(2)

여수 방파제 옆 횟집.

백범의 지시를 받은 전두성은 꼭두새벽부터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곳 주민들의 증언을 확보하고 있었다.

-돈을 좀 쓰면 쉬울 겁니다. 물론 돈을 지급하고 확보한 증언들은 증거효력을 잃는 것은 아시죠?

백범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전두성이다. 물론 돈을 써서 증언을 확보하면 그 자체가 증거의 효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항상 꼼수가 작용하는 법이고 어떻게 꼼수를 써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전두성이었다.

-백지수표라고 해서 그냥 막 33조 쓰는 거 아닙니다.

전두성은 백범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내가 필요하단 말이지?’

그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줬다는 것에 마음이 가는 전두성이었다.

“가여운 할아버지이십니다, 할머니.”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은데…….”

바나나를 건넬 때 김 상사 할아버지를 가엽게 보던 횟집 할머니였지만 이제는 남의 일이라고 나서고 싶지 않다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옆집에 사시는 돌산댁 할머니도 증언해 주셨습니다. 들어보실래요.”

전두성은 작은 녹음기를 켰다.

-염전주인 그 인간은 인간도 아니여, 얼마나 모질게 사람을 패는지 보고 있는 내가 겁이 날 정도라니까.

-그래요?

-저러다가 딱 맞아 죽겠다고 생각했지.

“정말 돌산댁 목소리네.”

“그렇습니다. 가여운 할아버지시죠. 이웃들이 좀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인간이 이곳 유지라서…….”

여수에서도 훨씬 들어가야 하는 촌이고 이런 곳은 지역사회라서 유지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격도 워낙 괴팍해서 괜히 내가 증언을 했다가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김 상사 할아버지라는 분을 30년 동안 월급도 안 주고 일을 시켰다죠? 그 돈만 받아내도 빈털터리가 될 겁니다.”

“월급만 안 줬겠어? 우리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얻어가서 먹였다니까.”

횟집 할머니의 말에 전두성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 정도입니까?”

거칠게 살았던 전두성이다. 그런 전두성도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는 눈빛을 보이고 말았다.

“말도 마요, 개밥도 아니고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삶아서 먹인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다 알아요. 그냥 정신이 오락가락한 김 상사만 가엽지, 쯧쯧!”

말로만 부탁해서는 증언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전두성이다.

“할머니, 그건 그렇고 여기 장사 잘됩니까?”

“3월인데 장사가 잘될 턱이 있나요.”

“그러시죠.”

전두성은 두둑한 봉투를 꺼내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뭐래요?”

살짝 놀라는 횟집 할머니다.

“오늘 저녁에 단체 손님 50명 올 겁니다. 미리 돈 드리는 겁니다.”

돈 봉투를 보니 바로 표정이 밝아지는 횟집 할머니였다.

“50명이나?”

“예, 사실 돈 받고 증언을 하시면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꼼수로 여기서 회식을 할 겁니다.”

전두성의 말에 멍해지는 횟집 할머니다.

“아……!”

“가여운 할아버지 한번 도와주시죠. 그 염전주인은 동네 사람들이 증언만 해주면 알거지가 되어서 이 동네에서 쫓겨날 겁니다. 아니 교도소에서 평생 썩게 될 겁니다.”

“그런가…….”

“오늘 회식은 하겠지만 바빠서 취소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준비는 하지 마시고요. 뭐 하세요. 회식 준비, 선금입니다.”

이건 꼼수다.

“사람이 이래요, 이 돈 받으면 안 되는데…….”

“증언해 달라고 돈 드린 적 없습니다. 저는 회식 때문에 미리 드리는 돈입니다.”

횟집 할머니를 보며 전두성은 미소를 보였다.

“알았어요, 알았어.”

횟집 할머니가 말했고 전두성이 테이블 위에 녹음기를 놨다.

“그럼 이제 지금부터 녹음합니다.”

“에이 그럽시다. 나도 그 망할 인간 정말 싫어, 전쟁 때부터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그런 인간이었다니까.”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전두성이 되물었고 횟집 할머니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이건 진짜 비밀인데 그 인간 때문에 전쟁 통에 이곳 사람 여럿 죽었어.”

“예?”

횟집 할머니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고 있기에 전두성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 통에는 빨갱이로 몰리면 다 죽였거든. 여수 앞바다에 시체가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고.”

여수는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적이 없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여순반란사건이 있었고 그래서 그 당시 빨갱이 지역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거기다가 이승만 정권은 수많은 양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했고 그 시체들이 대마도까지 떠밀려가서 일본 정부가 항의를 했을 정도였다.

“참, 그리고 그 염전도 아마 그 처음부터 그 영감탱이 것이 아니었다는 소리가 있어.”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무엇인가 더 큰 것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드는 전두성이었다.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그 영감탱이가…….”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리는 할머니였고 아무도 없는 횟집 밖을 바라봤다.

“원래 도만복, 그 인간이 그 염전주인인 최 부자 댁에 종살이를 하던 종이었고 그 인간 때문에 주인집이 빨갱이로 몰려서 다 죽었어. 정말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하더라고.”

“무슨 이유에서 빨갱이로 몰렸습니까? 빨갱이로 몰려고 해도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최 부자 댁 사위가 북에서 월남한 사람이었다네.”

“그래요?”

“그런데 전쟁이 나자마자 그 집, 사위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고 그래서 간첩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최 부자 댁이 워낙 인심이 좋아서 사람들이 쉬쉬했지.”

“아 그렇군요.”

“그러니 빨갱이로 몰기가 쉽지 않겠어?”

“그렇죠.”

“그래서 빨갱이로 몰린 거지. 최 부자랑 그 집 딸인 꽃분이랑 국군한테 끌려간 후에 소식이 없어.”

“그게 정말입니까?”

“말했잖아. 나도 들은 소리야.”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내게 말해 준 사람은 다 죽었지. 세월이 얼마인데?”

“그렇군요.”

전두성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카더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두성이었다.

“하여튼 염전주인인 도만복 씨가 김 상사라고 불리는 할아버지를 30년 동안 때리고 감금하고 일 시킨 것은 할머니 눈으로 직접 보셨죠?”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음식물 쓰레기 얻어가서 먹이는 것도 보셨죠?”

“그 영감탱이가 돈이면 환장하는 수전노라서 개도 안 키워, 그런데 왜 생선 대가리부터 뼈까지 얻어가겠어?”

“그렇군요.”

“며칠 전에도 내가 두 눈 똑똑하게 그 영감탱이가 김 상사를 때리는 것을 봤다니까.”

“그런데 김 상사 할아버지는 원래 여기 사람입니까?”

“여기 사람 아니야.”

“그렇다면 어떻게 여수까지 오게 됐을까요?”

“서울 양반, 내 말을 뭐로 들었어?”

“예?”

“최 부자 댁 사위가 이북사람이라고 했잖아.”

“정, 정말입니까?”

기겁한 표정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전두성이었다.

“나도 들은 이야기야, 하여튼 여기로 돌아올 때부터 정신이 살짝 이상했었데. 그리고 돌아와 보니 그 집안사람들 빨갱이로 몰려서 다 죽고 김 상사가 충격을 받아 정신이 완전히 나가 버린 거래.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까, 도만복, 그 인간이 그때부터 주인 행사를 한 거야. 쯧쯧!”

“확실한 겁니까?”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전두성이었다.

“나도 들은 이야기라니까.”

“말씀해주신 분은 다 돌아가셨고요?”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살아 있겠어.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아마 나밖에는 없을 거야.”

“그러시겠죠. 하여튼 감사합니다.”

김 상사 할아버지에 대한 일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서울 양반……. 나 재판장에 가야 해?”

“예, 하지만 차비는 제가 두둑하게 드리겠습니다. 법원 구경삼아 한번 가시죠. 순천 미도파 백화점에 가셔서 옷도 몇 벌 사시고요.”

전두성의 말에 눈동자가 반짝이는 횟집 할머니였다.

“뭐 그러라고 하면 그래야지.”

이래서 돈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횟집 할머니로부터 증언을 확보한 전두성이었다.

“월요일에 염전 등기부 등본부터 확인해야겠어.”

횟집 할머니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니까.

* * *

여수 관광호텔 로비 앞.

여수 하면 돌산 갓김치와 간장게장이다. 그리고 선어회라는 것을 김 비서가 아는 듯 미리 이름 있는 식당을 예약했고 든든히 챙겨 먹은 후 호텔로 돌아왔다.

“처남.”

“예, 매형.”

어제보다 여유로운 표정이 된 막내 처남과 처남댁이다.

“여수까지 내려왔는데 돌산도에 안 가보면 나중에 서운할 거야.”

김 상사 아니 김찬 할아버지의 일도 처리해야 하고 금목걸이도 회수해야 하니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처남과 처남댁은 이번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

“나는 할 일이 있고 둘은 따라올 필요 없으니까, 관광이나 하라고.”

“아, 예…….”

막내 처남도 이제부터 김 상사 아니 김찬 할아버지의 일을 내가 처리하고자 한다는 것을 짐작하는 눈빛이다.

“그리고 이거 받아.”

나는 지갑에서 법인카드와 현금을 꺼내 막내 처남에게 쥐여줬다.

“우선 이걸로 쓰고 10시쯤이면 여수 미도파 백화점 개장할 거니까 처남댁 편안한 옷도 좀 사드리고.”

처남댁은 임산부이기는 하지만 임신 초기라 아직 배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봐도 딱 불편해 보이는 옷차림이다.

“안 주셔도 되는데요.”

“다음부터는 안 줄 거야, 나중에는 처남이 벌어서 써.”

막내 처남의 직장은 이미 구해 준 상태다. 곧 농번기가 되니 아버지께서도 일손을 구해야 하시니까.

“매형……!”

“고맙지?”

“예, 매형. 정말 고맙습니다.”

“그럼 잘 살자.”

“예.”

막내 처남이 내게 짧게 대답했고 나는 어린 처남댁을 봤다.

“처남댁, 이틀 동안 관광 잘하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내게 꾸벅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어린 처남댁이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꼬맹이 놀랠지도 모르니까요.”

“예, 알겠어요.”

내 말에 어린 처남댁이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처남, 처남댁 모시고 호텔에 들어가서 준비해.”

“예, 매형,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소리는 백번도 더 들은 것 같다. 앞으로는 내가 막내 처남한테 고맙다는 소리 좀 하고 살자.”

“그렇게 되게 노력하겠습니다.”

“어서 들어가 봐.”

그렇게 막내 처남과 처남댁이 다시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대기하고 있는 백영기 변호사를 봤다.

“백범 대표님 덕에 아침은 정말 든든하게 먹었습니다.”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여수 하면 간장게장이라더니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다행입니다. 김 비서님이 요즘 열심히 일하시네요.”

내 말에 아무 말도 없이 김찬 할아버지를 케어하고 있는 김 비서가 미소를 보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백영기 변호사가 내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이 요청하신 그대로 해드릴 뿐입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한 응징, 그거 이제 제게 의뢰하신 그대로 시작합니다.”

“예, 고맙습니다. 그리고 전두성이라는 사람이 증거와 증언이 확보되면 전화를 드릴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백영기 변호사는 내게 말하고 김찬 할아버지를 봤다.

“김 비서님.”

“예, 대표님.”

“어르신을 모시고 변호사님과 동행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은……?”

“저는 따로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는 각자의 임무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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