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법대로 또 인맥대로?(1)
여수관광호텔 특실.
오전 일곱 시에 문자 메시지가 왔고 잠에서 깼다. 사실 어제 내 아내 은혜와 거의 밤을 새워서 통화했고 야릇한 폰섹스도 했다. 거기다가 이틀 후에나 서울로 갈 수 있다는 말에 은혜는 꽤 실망한 목소리로 변했었다. 하여튼 문자 메시지 알림 때문에 잠에서 깼다.
-여수에 도착했습니다. 백영기입니다.
놀랍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께서 백영기 변호사를 내게 보낼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사실 백영기 변호사는 태평양법무법인 최고의 에이스 변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에이스가 나를 위해 서울에서 여수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 시간에 여수에 도착했다는 것은?”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내 전화를 받자마자 백영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바로 테이블 위에 놔둔 휴대전화로 백영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딸깍!
-저는 호텔 로비입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마땅하게 이야기를 드릴 곳이 없으니 호텔 특실 1301호로 와주십시오.”
-20분 후에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백영기 변호사는 내가 자다가 문자를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나는 일류 변호사에게도 대우를 받는 졸부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뚝!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 * *
여수 관광호텔 로비 앞.
백영기 변호사는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백변, 정치에 관심 있다고 했지요? 백범 대표가 당신을 찾습니다.
“정치라……?”
놀랍게도 백영기 변호사는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라서 누구보다 힘을 가지고 싶어 하는 그였다.
-예?
-지금 백범 대표는 여수에 있답니다. 여수에서 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내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사소한 문제 때문에 이 시간에 내게 전화할 정도로 백범 대표가 정신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백범 대표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제 말씀 이해하셨습니까? 아시는 것처럼 백범 대표의 행보가 남다르지 않습니까.
-감사합니다. 대표님.
-하하하, 백 변에게는 백범 대표가 동아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백영기 변호사가 신음을 터트렸다.
“정치 그게 괜찮지.”
* * *
여수 관광호텔 특실 응접실.
“형님, 저 때문에 너무 멀리 오시게 한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고 죄송합니다.”
분명하게 따진다면 돈이 움직이는 관계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인맥 관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 이용할 수 있는 법조계 라인으로 태평양법무법인과 백영기 변호사를 선택했다.
“아닙니다. 백범 대표님.”
“형님, 말씀 놓으세요. 이러면 너무 사무적이지 않습니까.”
“나중에 사석일 때 그럽시다. 지금은 의뢰인의 의뢰를 받고 온 변호사입니다. 그래야 백범 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기 편하실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변호사님, 혹시 염전 노예에 대해서 아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 할 때다.
“예?”
내 말에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백영기 변호사였고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니 더욱 황당한 눈빛과 나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백영기 변호사다.
‘인권적인 부분으로 접근해야겠지.’
아마도 이번 일을 통해서 백영기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라는 인지도도 쌓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참이니까.
“염전 노예였다는 분이 저분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는군요.”
백영기 변호사는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변호사님,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법대로 하셔야죠.”
내게 담담하게 말하는 백영기 변호사다.
“제게 주신 진단서는 전치 8주입니다. 이 정도면 구속수사 가능합니다. 구속부터 해 놔야 피의자가 압박감을 가지게 될 겁니다. 형사 재판과 함께 민사 재판을 준비하겠습니다.”
변호사는 역시 법대로 하잖다.
당연한 일이다.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마.’
그리고 그 법에 인맥이 더해진다면 얼마나 가혹해지는지도 제대로 알려줄 참이다.
“주변인들의 추가적인 증언과 증거들도 확보 중입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백영기 변호사다.
“저는 제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응징을 하고 싶습니다.”
“응징이라고 하셨습니까?”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고 인권이 보장되는 국가입니다. 3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노예로 살았던 어르신입니다. 비록 어제까지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분이지만 제게 달려와 살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모른 척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을 했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다는 눈빛을 보이는 백영기 변호사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내게 대답을 한 백영기 변호사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김 상사를 살폈다. 김 상사의 이름은 김찬이다.
“지적장애가 있으신 분 같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악랄한 인간이라면 장애인 정보보조금도 횡령할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민등록이 말소되지 않았다는 의미겠죠.”
내가 원하는 것을 딱딱 짚어내는 백영기 변호사다.
“그렇군요.”
알면서도 호응해주고 있다.
“백범 대표님, 제가 저분을 위해 움직이기 위해서는 법률대리인과 금융대리인 자격을 확보해야 합니다.”
백영기 변호사가 내게 말하고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법률대리인 위임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저분이 위임장에 서명하시면 제가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또한, 백범 대표께서 원하는 그 이상의 응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게 자신 있게 말하는 백영기 변호사다.
“어르신.”
“예, 소대장 동무.”
김 상사가 나를 다시 소대장 동무라고 불렀고 그 말에 백영기 변호사가 묘한 눈빛으로 김 상사를 봤다.
“역시 지적장애가 있으시군요.”
“그래서 더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정말 백범 대표께서는 다른 분들과는 다른 면이 정말 많으신 것 같습니다.”
백영기 변호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지금 해석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르신, 제 이름은 백범입니다. 소대장 동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백범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소대장 동무 이름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김 상사는 내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는 백범이라고 부릅니다.”
내 말에 눈만 껌뻑이는 김 상사 아니 김찬 할아버지시다.
“이건 소대장 동무가 내리는 명령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글자를 쓰실 수 있으십니까?”
없을 것이다. 정신도 오락가락하니까.
“까막눈입니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소파에 앉아 있는 김 상사인 김찬 할아버지의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볼펜을 쥐여 준 후에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여기다가 이름을 쓰는 겁니다. 서명이라고 하는데 그 서명을 하면 저랑 계속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억울했던 것들도 저분께서 다 해결해주실 겁니다.”
나는 아주 자상하게 김찬 할아버지에게 말해 줬다.
“알았습니다.”
“할아버지 이름이 뭐죠? 혹시 이름도 기억나지 않습니까?”
나는 이름을 알고 있지만 내가 먼저 김 상사의 이름이 김찬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다.
“내, 내 이름이…….”
“기억이 나세요?”
“찬입니다. 김찬!”
“이름은 기억하시네요.”
그렇게 해서 나는 아이처럼 볼펜을 엉성하게 쥔 김찬 할아버지의 손을 포개 잡고 법률대리인 서명을 하는 곳에 김찬이라는 이름을 쓰게 해줬다.
“이제 됐습니까?”
이제부터 김찬 할아버지의 법률대리인은 백영기 변호사다.
‘내가 기억하는 미래에서도!’
염전 노예 관련 보도와 사건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그 염전 노예들은 뉴스 보도가 나고 민사소송이 진행되어도 합당한 금전적 피해 보상을 받지 못했고 피의자들도 강력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없고……!’
여론의 관심은 빠르게 식으니까. 그에 반해 김찬 할아버지는 다를 것이다.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졸부가 후견인이 됐으니까.
“그럼 제가 이제부터 움직이면 되겠군요.”
백영기 변호사는 위임장을 서류 가방에 넣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전화 한 통 하겠습니다.”
“예, 그러시죠.”
백영기 변호사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를 확인하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딸깍!
-백 선배님, 아침에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황 검, 잘 지났나?
‘황검?’
황 씨 성을 가진 검사일 것이다. 이제부터 백영기 변호사의 법조계 인맥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좋은 일에 법조계 인맥이 동원될 때가 있군.’
보통 법조계 인맥이 동원될 때는 어떤 사건을 무마하기 위함일 때가 대부분이다.
-저야 뭐 오지까지 떨어져서 일에 치여 삽니다. 하하하!
“아직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이지?”
-예, 그러게요. 아직도입니다.
휴대전화로 들리는 황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
“이번에 서울지검으로 올라와야지.”
-선배님이 신경 좀 써 주십시오.
“내가 대표님께 말씀을 드려서 신경 써주면 뭐 해줄래?
백영기 변호사의 목소리가 변했고 황 검이라고 불린 검사가 잠깐 아무 대답도 없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우리 같이 좋은 일 좀 한번 하자.”
-예? 좋은 일이라고요?
“대한민국 검사가 이렇게 멋지고 인간적이라는 것을 한번 보여줄 기회가 생겼는데 어때?”
-저는 지금 그 반대라도 합니다.
“황 검 혹시 염전 노예라는 소리 들어 봤어?”
그렇게 해서 자초지종이 설명됐고 내가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 나왔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움직여서 도만복이라는 그 자를 체포하겠습니다.
이제 법과 인맥의 심판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내 의뢰인께서는 그 피의자가 무슨 의미인가요? 계속 있었으면 하시는데 법대로 움직여 줄 수 있겠지?”
-좋은 일 하는 거 아닙니까? 법대로 하겠습니다.
“고마워.”
뚝!
백영기 변호사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변호사님.”
“잠깐만요. 전화할 곳이 한 곳 더 남았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백영기 변호사가 내게 말하고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딸깍!
-하하하, 우리 후배께서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셨을까?
“잘 지내셨습니까? 선배님.”
-나야 잘 지내야지.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급한 모양이군.
“예, 급합니다.”
-무슨 부탁인가?
“전라남도 도청에 계시죠?”
-그렇게 됐어.
* * *
-그래?
백영기 변호사는 도청 고위 공무원으로 짐작되는 선배라는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제가 여수 시청에 아는 복지과 공무원이 없습니다.”
-내가 지시해 놓고 바로 담당자에게 자네한테 전화하라고 하겠네.
“저 여수입니다.”
-그래? 그럼 어딘가? 바로 찾아가라고 하겠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동문끼리 뭐 이런 일로 그런 말까지 하나? 어려운 청탁도 아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는데.
“그래도 오늘 일요일인데 죄송합니다. 일이 급하게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나 곧 서울로 올라갈 거네. 건설부 국장으로 다시 올라가네, 그때 잘 좀 부탁함세.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 바로 전화하라고 하겠네.
공무원 사회도 상명하복의 사회고 인맥의 사회다.
뚝!
그렇게 통화가 끝이 났다.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백영기 변호사가 내게 자신 있게 말했다.
‘인맥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군.’
염전주인은 아마도 곧 영혼까지 탈탈 털리게 될 것 같다.
이게 바로 돈의 힘이고 또 졸부의 힘이다.
분명한 것은 법에 인맥을 더하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 난?’
-찾아주실 수 있어요?
막내 처남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벌써 녹이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처남댁 장모님의 유품인 금목걸이나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