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38화 백지수표?
호텔 내부에 있는 술집.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다. 나는 처남과 처남댁이 쉬고 있는 특실의 초인종을 눌렀고 처남이 바로 문을 열어줬기에 처남만 따로 불러냈다.
“처남댁은 잔다고 했지.”
“고맙습니다. 먹고 싶어 했던 과일 실컷 먹고 졸린다고 잠들었어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막내 처남이다.
“현실이 안 쉽지?”
내 말의 뜻을 이해했는지 막내 처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 안 쉽네요.”
“막내 처남의 용기는 정말 멋지고 가상해.”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랬어?”
“예?”
“왜 도망칠 생각을 했어?”
“애를 죽일 수는 없잖아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제 알았고 이제 , 우리 막내 처남은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으음…….”
“포기할 생각을 했어요.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쉬는 막내 처남이다.
“담배 피워?”
“끊었어요.”
“우리 막내 처남 멋지네.”
자기 여자가 임신했기에 담배를 끊은 것 같다.
“그럼 나만 하나 피울게.”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했어요. 라는 대답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거겠지?”
“예, 매형을 보니 포기를 못 하겠어요.”
“나를 보니? 왜 내가 도와줄 것 같아서?”
“아니요. 매형이 제게 말했잖아요. 김 상사 할아버지가 매형 손을 잡고 계셔서 놓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선희가 제 손을 잡고 있는 한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그럼 갈 때는 있어?”
“무슨 일이든 찾아볼 겁니다.”
“막내 처남, 우리 현실을 직시하자. 한 달 전과 지금은 많이 변했어.”
“예?”
“한 달 전만 해도 막내 처남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막내에 불과했어, 하지만 지금은 누나는 사법연수원생이고 매형은 졸부야. 어디에 내놓아도 꿀릴 것 없는 집안이 됐다는 소리다.”
“매, 매형…….”
“막내 처남은 이제 겨우 22살이잖아.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러니까 버리라고요?”
“꼭 그런 뜻은 아니야.”
“그럼 죽여요?”
나를 노려보는 막내 처남이다.
“정말 포기가 안 되나?”
“포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심장이 뛴다고 했어요.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 포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처남 인생을 포기하고 어린 아빠로 살겠다고?”
“예, 포기하려고 했던 제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처남 처가에서도 반대하잖아.”
“나중에라도 설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를 낳을 때까지 숨어 살겠다고?”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죠. 이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지가 확고한 막내 처남이다.
‘꼬맹이가 뭐가 되도 되겠군.’
나는 이 순간 막내 처남에게 기대가 됐다.
“막내 처남.”
“예, 매형.”
"농사일은 해봤어?"
“아니요. 그런데 왜요?”
“내가 아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계신 두 분은 참 좋은 분이시고 지금이 딱 일손이 많이 부족할 때야.”
“정말요? 정말 좋으신 분인가요?”
“아마 숙식 제공에 월급까지 두둑하게 주실 거야. 거기로 갈래?”
“거기가 어딘데요?”
“우리 집.”
“예?”
“우리 아버지 집.”
내 말에 멍해지는 막내 처남이다.
“김 상사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자. 내가 아버지께는 잘 말씀을 드릴 테니까.”
“사돈 어르신께서 불편해하시지 않을까요?”
“막내 처남, 나 빈말하는 성격이 아닌 것은 알겠지?”
“예…….”
“막내 처남이랑 처남댁이 오면 정말 좋아하실 거야. 아들은 바빠서 자주 못 가거든.”
“매형, 정말 고맙습니다.”
내게 고맙다고 말하는 막내 처남의 눈동자에서 이제야 눈물이 맺혔고 저 눈물은 안도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일 것이다.
“울지 말고. 처가 내력이 울보네.”
“예, 매형…….”
“처남 처가 문제는 내가 알아서 정리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된다.”
“매형이요?”
“왜 내가 그런 능력도 없을까 봐?”
“그건 아니고요.”
내가 다 처리해주겠다는데 다시 내 눈치를 보는 막내 처남이다.
“막내 처남, 할 말 있으면 바로 해, 뜸 들이지 말고.”
“매형…….”
“뭔데?”
“오늘 낮에요, 선희가 아끼는 금목걸이를 날치기를 당했어요.”
“그래?”
“장모님 유품이라는데 찾아주실 수 있으세요?”
“내가 찾아줄게.”
“정말 찾으실 수 있어요?”
바로 내가 찾아주겠다는 말에 막내 처남은 놀랍다는 눈빛을 보였다.
“막내 처남은 앞으로 나만 믿으면 돼. 하하하!”
“예,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이니셜이라도 있나?”
“예, 목걸이 뒤에 JP라고 새겨져 있어요.”
“알았어, 내가 찾아줄게, 참 누나한테 전화는 했어?”
“예.”
“많이 혼났겠구나.”
내 물음에 머리를 끄덕이는 막내 처남이다. 그리고 나를 보며 미소를 보이는 막내 처남이었다.
“……예.”
“알았으니까, 어린 처남댁이 자다 깨서 놀랄지도 모르니까 처남은 올라가서 쉬어.”
“매형은요?”
“만날 사람이 있어서.”
이미 내가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 * *
유명 나이트클럽 룸.
“요즘 와?”
청담동 처녀 보살인 조비가 웨이터에게 물었다.
“4개월 동안 발길을 완전히 끊으셨습니다. 연락 안 되십니까?”
웨이터 조용필의 물음에 조비가 피식 웃었다.
“안 보이니 보고 싶네.”
묘한 미소를 보이는 조비였고 조비는 백범의 얼굴을 떠올렸다.
“조비님…….”
웨이터 조용필이 조비를 부르며 말꼬리를 흐렸다.
“궤를 보니 죽다 사셨고 장가도 가셨다지?”
“알고 계셨습니까?”
웨이터 조용필은 역시 조비는 용한 처녀 무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궤가 그리 나오네. 그리고 여기에 급살 맞을 놈이 둘이나 있어.”
조비는 웨이터 조용필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예?”
“어울리지 말라고, 곧 쪽박 차고 쇠고랑 찰 팔자니까.”
조비의 말에 웨이터 조용필은 조금 전 후배 웨이터를 떠올렸다.
“혹시……!”
“내가 아까 그 새끼한테 살이라도 날릴까 봐서 걱정하는 거야? 호호호!”
“그럴 가치도 없는 놈입니다.”
“그러니까. 무당이라고 살을 그냥 막막 날릴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그거 목숨 걸고 날리는 거야.”
“…….”
“그냥 신빨이 떨어졌고 괘도 확인해 볼 겸 왔어.”
“예, 알겠습니다. 조비님, 제가 연락해 볼까요?”
조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부남 건드리면 장군님한테 내가 혼나~ 업소 바꾸면 연락해.”
미소를 보이는 조비다.
“예, 알겠습니다. 조비님.”
"원래 내 사람은 따로 있었어……"
"예?"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고 조금 전 웨이터 조용필에게 뒤통수를 맞은 웨이터가 문을 열고 들어섰고 그의 손에는 고급 양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호성이 미소를 보이며 들어왔다.
“웨이터들은 나가 있어.”
한호성은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웨이터 조용필은 후배 웨이터를 죽일 듯 노려봤다.
“뭐해?”
그때 한호성이 웨이터 조용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귀에 좆 박았어? 나가 있으라고.”
“무례하십니다.”
웨이터들은 보통의 경우 고객에게 이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뭐, 뭐라고?”
한호성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을 보였고 이 순간 조비는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섬뜩하게 떠올라 인상을 찡그렸다가 다시 담담하게 변했다.
“아, 됐고…….”
한호성은 웨이터 조용필에게 말하다가 말고 룸 밖으로 나가려는 조비를 봤다.
“마침 룸이 비었는데 잘됐네요. 놀다 가세요.”
한호성이 룸 밖으로 나가려는 조비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오늘 내 손목이 싸구려네~”
“하하하, 제가 원래 이런 성격 아닌데 술이라도 한잔 안 하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예, 그렇습니다. 하하하! 원래 용기 있는 남자가 미녀를 얻지 않습니까?”
“제가 마음에 드시나 봐요.”
“예, 아주 마음에 듭니다.”
“아, 그러시구나.”
조비는 핸드백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한우성에게 내밀었다.
“생각 있으면 연락하세요. 예약하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조비는 그렇게 명함을 건네고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고 한호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조비가 건넨 명함을 봤다.
“청담동 처녀 보살? 무당이었어?”
명함을 보고 당황스러운 한호성이었다.
* * *
내 앞에 건장해 보이는 남자 하나가 정중한 자세로 서 있다.
“전두성입니다.”
건장한 남자가 내게 머리를 숙였고 그는 김 비서가 막내 처남을 찾기 위해 의뢰한 사채업자다.
‘신기하게 외모가 딱 전두환을 닮았군.’
머리가 벗겨지지 않은 전두환처럼 생긴 전두성이다.
-상당한 실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김 비서가 여수로 내려올 때 전두성에 대해서 내게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주먹 실력도 일류급이고 의리도 출중합니다. 특히 입이 무겁습니다.
-괜찮겠군요.
-필요하실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부분을 참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여튼 열일 하는 김 비서다.
“앉으세요.”
“예.”
내 앞에 전두성이 앉았다.
“술을 마시고 싶은 밤인데 그럴 시간이 없네요.”
“바로 지시하시면 됩니다.”
“막내 처남 살펴보면서 대충 상황파악은 하셨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그 염전에서 일하던 할아버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시고요. 그 염전 주인도 확인하십시오.”
내 말에 전두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언제부터 일했는지도 확인합니까?”
“그게 핵심이라면 핵심이죠. 증거 모으시고, 주변 증언 확보하시고 그러시면 됩니다.”
“외람되지만 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의뢰비가 꽤 많은 거로 아는데 궁금할 필요가 있나요?”
내가 모두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실수를 했습니다.”
“뭡니까? 개인적으로 궁금하다는 말에 내가 더 궁금해지네요.”
“왜 그러셨습니까?”
“뭐가요?”
“생면부지의 시골 노인까지 왜 챙기시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궁금증이다.
“나를 보며 소대장 동무 이러는데 뭔가가 뭉클하더라고요. 그게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좀 이상하죠?”
전두성을 보며 웃어 보였다.
“이상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 노인을 돌보실 수 있다면 훌륭한 일을 하신 것이고 지금 감정이 식어서 어느 곳으로 보내버리시면 참 나쁜 짓을 하신 겁니다.”
“일반적인 사채업자와는 다르네요.”
“대표님의 행동이 저를 잠시 감성적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전두성 씨라고 했죠?”
“예.”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 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사람 찾아내는 것은 이미 확인 끝냈고 다른 능력은 또 뭐가 있습니까?”
“왜 그게 궁금하시죠? 저처럼 개인적인 호기심입니까?”
담담한 어투로 내게 묻는 전두성이다.
“내가 당신 사려고.”
내 말에 나를 뚫어지게 보는 전두성이었다. 그리고 미소를 보였다.
“대표님, 저 비쌉니다.”
“얼마면 될까?”
“얼마나 주실 수 있는데요?”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나는 전두성에게 말하고 지갑에서 백지 수표를 꺼냈다.
“자기 몸값은 자기가 알지, 써.”
나를 위해 어두운 곳에서 귀찮은 일들을 처리해 줄 사람으로 쓰일 것이다.
“백, 백지 수표군요.”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교차 되는 눈빛이다. 그냥 딱 봐도 내게 기가 확 눌린 눈빛이다.
“아……!”
전두성이 뚫어지게 백지 수표를 바라보고 있다.
“전두성 씨,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그게 백지 수표라고 해서 막 33조 그렇게 쓰는 거 아닙니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나를 따라 호탕하게 웃는 전두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