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37화 기억의 파편?
여수 시내로 나와 여수 관광호텔의 특실 3개를 잡았다.
원래 계획은 하루를 묵고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운전을 해야하는 김 비서도 피곤하고 임신한 처남댁한테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김 상사 때문에 하루 이틀은 더 이곳에 있어야겠다.
‘셈이 안 끝났거든.’
염전주인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모질게 밟아줘서 작살을 내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개 값만 물어주는 꼴이고 단 몇 분의 폭력이 김 상사가 겪어야 했던 모진 30년 이상의 세월에 대한 한풀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가 그 자리에서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혹시나 모를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인터넷이 활발하게 발달하지 못한 시절이라곤 하지만 혹시라도 70대 노인과 말다툼 끝에 폭력까지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은혜가 판사로 임용되는 데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애써 참았다.
“염전 노예라……!”
더러운 대한민국, 무서운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폭력으로 해결할 일이 아닌 것이다. 단 이틀 동안 내가 가진 힘을 최대한 이용해 볼 참이다.
“영혼까지 탈탈 털어주마.”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며 환생하기 전의 기억이 떠올라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자네 중대장이 안타깝게 전사해서 자네가 오늘부터 중대장이다.]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내일 피의 능선 탈환 공격에 자네 중대가 선봉에 선다.]
[예.]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다시 탈환해야 할 곳이다.]
군인에게 명령은 지엄했고 나는 임시중대장이 되어 피의 능선 탈환 작전에 선봉이 되어 내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소대원 30명 중 26명을 잃어야 했다. 그리고 피의 능선을 탈환했고 정식 중대장이 되고 죽은 부하들과 함께 훈장도 수여 받았다.
‘그때 살아남은 생존자 4명 중에……!’
김 상사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중대장이 됐고 김 상사 또한 어린 나이에 상사가 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급자가 전사하면 바로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래서 나는 소대장에서 중대장이, 김 하사는 하사에서 상사가 될 수 있었다.
[소대장 동무, 중공군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옵니다.]
피의 능선 아래에 정말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중공군을 보고 김 상사가 소리쳤던 것이 지금 내 뇌리에 생생하게 메아리치고 있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고 항상 그랬듯 탈환했던 피의 능선은 딱 이틀 만에 다시 빼앗기고 말았고 그때 김 상사는 행방불명이 됐고 나는 그때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이 됐었다. 그것이 김 상사와의 마지막이었다.
[대부님.]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찾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찾은 거야?]
[예, 그렇습니다. 김찬 씨는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정신병원?]
[행려병인으로 발견이 되어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것 같습니다.]
행려병인은 떠돌다가 병이 들었다는 소리다. 보통의 경우 병든 노숙자들을 행려병인으로 부르고 그런 사람들은 감금해 놓으면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오기에 그런 노숙자들만 찾아서 감금하는 정신병원도 존재한다.
[그런데 왜 정신병원이야?]
[발견됐을 때 정신이 오락가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김찬 씨는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합니다.]
[차 대기 시켜. 내가 꼭 봐야 할 사람이야.]
[예, 알겠습니다.]
운명은 이다지도 끈끈하고 얄궂다. 환생하기 전에 김 상사를 찾았고 만나기 위해 이동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게 사고였을까?’
깊은 밤이었고 사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던 내 차에 달려오던 대형 트럭이 그대로 추돌해 버렸다.
‘토사구팽일까……?’
모진 짓을 많이 하고 살았기에 또 숨겨져야 할 비밀을 너무나 많이 공유하고 있었기에 그리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당했던 교통사고가 사고가 아닌 음모에 의한 사건이라면 이유도 없이 환생을 해버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복수의 주체도 없다.’
나는 환생을 했고 또 수십 년 전으로 회귀까지 해버렸으니까.
그리고 김 상사를 다시 만났다.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건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욕실 쪽을 봤고 그곳에선 나 대신에 김 비서가 악취가 진동하는 김 상사를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아이고 까마귀가 형님 하시겠네.”
한 시간째 목욕이다. 그런데도 김 상사의 몸에는 때가 남은 모양이다.
‘김 비서가 열일 하시네요.’
그저 고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내 고마움은 연봉인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연봉인상이 김 비서에게는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니까.
따르릉, 따르릉!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딸깍!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급하신 일이 있으시니 전화를 하셨겠죠. 무슨 일이십니까? 백범 대표.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9시다.
돈이 이래서 좋다.
“채무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 줄 수 있는 변호사 한 명만 급히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채무 관계요? 그리고 급히요?
“예, 그렇습니다. 여기 여수입니다.”
-이 밤에요?
“죄송합니다. 꼭 악착같이 받아내야 할 돈이 생겼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겠습니다. 유능한 변호사보다 악랄한 변호사가 필요하신 모양이시군요.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든다.
악랄하기에 유능한 변호사로 불릴 것이다.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도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쉬십시오.
뚝!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셈이 남았다고 했지?’
염전주인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남았지, 30년 월급, 그리고 위자료!’
그때 욕실에서 김 비서와 김 상사가 말쑥한 차림으로 변해 나왔는데 김 상사는 온몸이 멍 자국이다.
‘오늘까지도 맞았겠지.’
그냥 화가 치민다.
* * *
서울 유명 나이트.
“에이, 가시자니까요.”
한호성의 사주를 받은 웨이터가 청담동 처녀 보살의 손목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탁!
“됐다니까.”
청담동 처녀 보살은 웨이터의 손목을 뿌리쳤다.
“나이트에서 춤만 추시면 무슨 재미입니까? 룸에 가셔서 부킹도 좀 하시고 그러셔야…….”
“나 몰라? 용필이 어디에 있어?”
“용필이 형님은 좀 늦으십니다. 그러지 말고 가시죠.”
웨이터가 다시 청담동 처녀 보살의 손을 잡았고 청담동 처녀 보살은 인상을 구겼다.
‘요즘에 왜 이리 일진이 사납지?’
그저 이 순간이 짜증스러운 청담동 처녀 보살이었다.
저벅, 저벅!
그때 웨이터 뒤편에서 중년이 웨이터가 다가왔다.
팍!
그리고 다짜고짜 청담동 처녀 보살의 손을 잡은 웨이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윽, 뭐야, 형님…….”
“이 새끼, 상도덕이 없네.”
드디어 조용필이 나타난 것이다.
“용필이 형님…….”
“그 손 놔드려라, 아무나 덥석덥석 잡을 수 있는 손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웨이터는 바로 꼬리를 내리며 조용필이라는 가명의 웨이터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음악 소리 때문에 요란한 홀이기에 웨이터 조용필은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조비님, 룸으로 옮기시죠.”
청담동 처녀 보살의 이름은 조비였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여수 관광호텔 특실.
“대표님.”
내가 말하기도 전에 김 비서가 나를 불렀다.
“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예전에 제 아버님을 씻겨드릴 때가 떠올라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병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이거 그냥 넘어갈 일 아닌 것 같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비서는 말꼬리를 흐렸다. 김 비서는 법무사 출신이다. 그래서 법에 대해 잘 안다. 그리고 김 상사의 몸에 난 멍 자국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졌는지 짐작하는 눈빛이다.
“그런데 이 밤에 진료를 보는 병원이 있을까요?”
“응급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치료도 해드리고 진단서도 끊어오겠습니다.”
김 비서는 김 상사를 힐끗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피곤하시지 않겠습니까?”
“내일 아침부터 바로 정리 작업 들어가실 것 아닙니까?”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 비서다.
“그래야죠.”
나는 이미 모레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말해 놓은 상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식으로든 김 상사의 한풀이를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김 비서인 것이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김 비서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김 상사를 봤다.
“어르신, 옷 입으시고요. 저랑 같이 병원 가시죠.”
“소대장 동무는?”
바로 나를 바라보는 김 상사다.
“하실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가십니다.”
“그럼 나도 안 갑니다.”
김 상사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막내 처남은 지적장애가 있다고 내게 말했지만 어떤 충격 때문에 저리된 것 같다.
“가셔야 합니다.”
“싫습니다. 수색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기다렸는데 끝내 소대장 동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김 상사는 과거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김 상사의 말을 들은 김 비서는 그저 김 상사를 가엽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이제는 내가 기다릴게.”
“소대장 동무……!”
“여기 가만히 앉아서 김 상사를 내가 기다릴게.”
나는 김 비서에게 그냥 맞춰주는 것이 좋겠다는 눈빛을 보인 후에 김 상사에게 말했다.
“치료받고 와. 이건 명령이다.”
“……예, 알겠습니다.”
김 상사가 대답했고 그렇게 김 비서와 김 상사는 모텔을 나갔다.
‘이제 막내 처남한테 가봐야겠군.’
내가 여수에서 김 상사를 만나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막내 처남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은 물어봐야 한다.
-그거 우리가 결정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 순간 내 아내 은혜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 *
유명 나이트클럽 룸.
“비싸게 군다고?”
한호성이 웨이터에게 물었다.
“예, 죄송합니다. 그리고 룸으로 옮겼습니다.”
“혼자 왔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어느 룸이야?”
“예?”
“마음 급한 놈이 가야지. 그거나 챙겨. 그게 술에 타면 효과는 직방이거든. 그냥 15분이면 좋다고 질질 싸더라. 히히히!”
“어쩌시려고요?”
웨이터는 웨이터 조용필이 떠올랐다.
“룸에 둘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아…….”
원래 못된 놈들은 못된 짓에는 잘 통하는 법이다.
“싫어도 싫은 것이 아니잖아. 으흐흐, 그냥 확 벗겨드려야지. 나는 알다시피 따먹겠다고 마음먹고 안 따먹은 년이 없어.”
더러운 미소를 보이는 한호성이었다. 이래서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소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호성이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청담동 처녀 보살 조비는 경국지색에 가까운 미모였다.
‘내가 본 년 중에 제일 새끈해. 으흐흐! 이상하게 자꾸 끌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