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36화 (36/415)

# 36

36화 이다지도 끈끈하고 얄궂다.(3)

“에이, 재수가 없어. 김가야, 가자! 어서 안 걷고 뭐 해, 이 병신 새끼야!”

염전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가자니께, 저것들이 병신인 너를 먹어주고 입혀주고 재워줄 것 같어? 가자니까.”

“소, 소대장 동무…….”

김 상사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자기를 잡아주기를 바라는 눈빛이다.

“김가야! 가자니까!”

염전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고 김 상사는 덜덜 떨며 천천히 돌아섰다.

“얼른 가자니까.”

“…….예, 주인님……!”

척!

나는 김 상사의 손을 잡았다.

“가지 마세요.”

“소, 소대장 동무.”

“저를 오래 기다렸다면서요?”

김 상사가 어떻게 백범의 몸속에 들어 있는 나를 알아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나를 소대장 동무라 불렀다.

[소대장 동무, 내 월남했을 때 홀로 내려왔는데 좋은 어르신 만나서 장가도 갈 수 있었는데 전쟁이 터져서 식만 못 올렸습니다.]

[그랬나?]

[우리 색시 보시겠소?]

김 상사가 내게 어린 아내 사진을 보여줬을 때가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참하군.]

[예, 참합니다. 우리 야야는 정말 참합니다.]

[그런데 왜 야야라 불러?]

[부르다 보니 그리됐습니다.]

[진짜 이름은 뭔데?]

[최꽃분, 이름도 예쁘지 않습니까?]

[여기 팔불출 하나 있었군.]

[그건 그렇고 우리 소대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

[피의 능선……!]

‘피의 능선은 지옥이었다.’

환생하기 전의 과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피의 능선이 있는 양구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래서 이곳의 산들은 이전에는 무명고지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씩 주인이 바뀌는 처절한 싸움 뒤에 제각각 이름들이 붙었다.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펀치볼 분지!

크리스마스 고지!

유엔 고지!

각각 이름은 달리 불렸지만, 그 이름의 뒤에는 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었다.

그 둥근 언덕 세 개를 차지하기 위해 4000명도 더 되는 아군 병사들이 죽어야 했다.

그리고 그 죽음에 내 소대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 소대장 동무.”

“김가야, 가자니께!”

염전 주인이 다시 재촉했다.

“어르신 그냥 가세요.”

“뭐라고?”

“그냥 가시라고요. 이분은 저희와 함께 가실 겁니다.”

내 말에 염전 노인의 눈빛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누구 마음대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 준 셈도 안 치르고 그냥 데리고 가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셈을 치를 것이 있다면 내일 치르시죠.”

염전 주인을 매섭게 노려봤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괘씸함을 넘어 화가 치민다.

김 상사의 몰골을 딱 봐도 염전에서 노예처럼 부린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게 김 상사를 돌봐준 돈을 요구하다니 기가 차는 것을 넘어 분노까지 치민다.

하지만 여기서 욱할 필요는 없다. 알아볼 것은 알아보고 준비할 것은 준비하면 되니까.

“됐어, 서울 뜨내기들의 말을 어떻게 믿어, 내 식구는 내가 챙길 테니께, 신경 쓰덜 말고 갈 길 가.”

생떼를 쓰기 시작하는 염전 주인이다.

“저, 저기요, 매, 매형……!”

그때 막내 처남이 나를 불렀다.

“왜?”

“어쩌시려고요?”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처남, 이 할아버지께서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소대장 동무라고 부르고 내 손을 잡고 계시네.”

“저도 그렇게 부르셨어요…….”

“그래?”

“사실 김 상사 할아버지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기도 하고…….”

“막내 처남.”

“예, 매형…….”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지 막내 처남은 나를 바로 매형이라고 불렀다.

“나는 내 손을 잡은 사람은 놓고 싶지 않네.”

“아……!”

이 순간 아버지의 농장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여수에서 막내 처남과 처남댁을 찾으면 판교 아버지 농장에 데려다 놓을 생각이었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막내 처남에게 말하고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는 염전 주인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갈 길 가라고! 사람이 가엽다고 데려갔다가 개새끼 길에 버리듯 버리는 거 아니니까. 데리고 산 세월이 얼마인데 저 병신도 식구라면 식구야.”

“어르신,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닙니다.”

“뭐, 뭐야?”

“내일 찾아뵙죠. 셈은 치러야 하니까요.”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은 변호사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존재를 꼽으라면 나는 변호사를 꼽겠다.

“그럼 저 병신한테 결정하라고 해!”

인간이 이래서 악마다. 그리고 얄팍한 이익이라도 존재하면 포기할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뭐라고요?”

“누구랑 살지, 저 병신한테 결정하라고 하자고.”

염전 주인은 그렇게 말하고 김 상사를 노려봤다.

“저 뜨내기들 따라갈 거여?”

“…….”

김 상사는 내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다.

“왜 말을 혀. 어쩔 거냐고? 따라가서 불믄 어쩔 건데? 그러니까 군말 말고 어서 가자. 담배도 주고 밥도 주고 술도 줄텐께.”

이건 감언이설이라면 감언이설이다.

‘탐욕스러운 인간은 더럽다.’

딱 이 상황이 그런 것이다.

“저, 저는…….”

“너는 나랑 30년을 넘게 살았어. 러니께 싸게싸게 가자고.”

김 상사가 나를 다시 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어딘가에서 두꺼운 파카와 신발을 사온 김 비서가 내 앞으로 걸어와 섰다.

“대표님, 구입해 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김 비서에게 말하고 김 상사를 보며 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낡은 옷을 손수 벗긴 후에 김 비서에게 두꺼운 파카를 받아 입혀줬다.

“입으세요.”

“소대장 동무……. 흑흑흑!”

“그 버릇은 변하지를 않네.”

나는 김 상사 귀에 다 대고 속삭였다.

“소대장 동무가 아니라 소대장 동지라고 몇 번이나 말해 줬는데.”

동무는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을 뜻하고 동료나 친구의 의미다.

그리고 동지는 이름이나 칭호 뒤에 사용하면 존경과 흠모의 정을 나타내는 말이고 분단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편하게 아무렇지 않게 쓰던 말이다.

“신발은 여기 있습니다. 얼추 맞을 겁니다.”

김 비서가 내게 말하며 사오라고 지시했던 신발을 내밀었다.

“우선 편한 운동화로 사 왔습니다.”

“잘하셨네요.”

나는 김 비서에게 운동화를 받아 김 상사 앞에 무릎을 꿇고 다 떨어진 신발을 손수 벗기고 운동화를 신겨주고 끈까지 묶어 줬다.

“소대장 동무……!”

김 상사가 나를 다시 불렀고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할아버지 저희랑 같이 가요.”

“예, 알겠습니다.”

김 상사가 대답했고 나는 일어나서 염전 주인을 봤다.

“똑바로 바라보고 저 인간에게 똑바로 말하세요. 저랑 같이 가겠다고!”

이 순간 막내 처남과 처남댁은 내가 왜 이러냐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

‘설명될까?’

설명할 이유는 없다.

설명을 해줘도 믿지 않을 테니까.

“싫어!”

김 상사가 소리쳤다.

“싫다잖어, 느그들허고 같이 가는 거 싫다 안 혀.”

염전 주인이 사악한 미소를 보이며 내게 이죽거리듯 말했다.

“네가 싫어, 너랑 안 살아, 나는 소대장 동무랑 갈 거야.”

김 상사가 손가락으로 염전 주인을 가리키며 절규하듯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염전 주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할아버지, 사람한테 그렇게 삿대질하는 거 아닙니다. 아, 사람 아니네요. 쓰레기지.”

결국, 김 상사는 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염전 주인은 똥을 씹은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에이 퉤! 먹여주고 재워주고 돌봐준 공이 없는구먼, 에이 퉤!”

염전 주인은 그렇게 몇 번이고 바닥에 침을 뱉고 더는 공짜로 부려 먹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 * *

서울 유명 나이트클럽.

청담동 처녀 보살은 흥겨운 디스코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점을 칠 때와 다르게 섹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인간은 요즘 왜 전화가 없지?’

청담동 처녀 보살은 춤을 추면서도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꽤 많은 남자가 그런 청담동 처녀 보살을 보며 흑심을 품고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 중에 한호성 과장도 있었고 그의 옆에는 웨이터가 한호성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보기 드문 년이네, 으흐흐!’

청담동 처녀 보살을 보며 음흉하게 웃는 한호성이 대기하고 있는 웨이터를 보며 지갑을 꺼내 수표 몇 장을 꺼내 웨이터에게 쥐여줬다.

“그거 있지? 그거.”

“그거 말씀입니까?”

“그래, 그거, 훅 가는 그거. 흐흐흐!”

“으흐흐,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거 나가 깔면 두 배 준다.”

저거는 청담동 처녀 보살일 것 같고 깔면은 섹스를 의미했다.

“그거면 15분 안에 그냥 훅 갑니다.”

“그러니까, 룸으로 데려다 앉혀.”

“하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비열하게 웃는 웨이터였다.

* * *

시외버스터미널 앞.

염전 주인은 퉁퉁거리며 사라졌고 이제 우리만 남았다.

“막내 처남.”

“예, 매형…….”

지랄 같은 상황이 다소 정리가 되니 막내 처남이 다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벌써 늦었네, 오늘 내일은 여기서 묵고 모레 다 같이 서울 올라가자.”

내가 모레 올라가자는 말에 막내 처남은 김 상사를 바라봤다.

“김 상사 할아버지도요?”

“모시고 가야지. 우리랑 같이 가겠다고 하셨잖아.”

“매형, 어쩌시려고요?”

걱정이 되나 보다. 아직도 막내 처남은 내가 졸부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눈빛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럴 때는 웃어 보이면 되고 나는 바로 막내 처남댁을 봤다.

“처남댁, 많이 놀라셨죠.”

“아니에요.”

“막내 처남댁 씩씩하시네요.”

막내 처남이 김 상사를 위해 나서지 못할 때 어린 막내 처남댁이 나섰던 것이 떠올라서 하는 말이다.

“김 상사 할아버지가 저희한테 잘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너무 나쁜 사람이에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정말 처음이에요.”

“아, 그래요?”

“예…….”

막내 처남댁도 내게 대답을 하면서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늦었으니 묵을 호텔부터 찾고 뭐래도 먹으면서 이야기하죠. 김 비서님.”

“예, 대표님.”

“이 근처는 모텔도 없겠네요?”

정말 시골이다. 이런 곳에는 허름한 여관이라도 있으면 다행일 것 같다.

“옷을 사러 갈 때 봤는데 여관밖에는 없습니다. 너무 허름해 보여서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수 시내로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럽시다. 여수시로 나가면 호텔 비슷한 것은 있겠죠.”

우린 그렇게 내가 타고 온 차에 모두 탔고 김 상사 때문에 악취가 진동했다.

“대표님.”

“예.”

“호텔 잡고 어르신 목욕부터 시켜드려야겠습니다.”

“제가 하죠.”

“생각하실 것 많으신 것 같으니 제가 시켜 드리겠습니다.”

김 비서는 내가 내일부터 무엇을 할지 짐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주실래요?”

“예, 그러겠습니다.”

“출발하시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여수 시내로 출발했다.

“참, 만나기로 했던 그분들한테도 연락하세요.”

“이쪽으로 오라고 할까요?”

“예, 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올 때 이것저것 알아서 과일 좀 여러 종류로 많이 사오라고 하세요.”

막내 처남댁은 임산부이니 먹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내 말의 뜻을 알았다는 듯 김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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