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35화 (35/415)

# 35

35화 이다지도 끈끈하고 얄궂다(2)

금은방 앞 도로.

“왜, 오빠?”

금은방에서 갑자기 끌려 나온 선희가 은철에게 물었다.

“그 아저씨가 옛날 금이라잖아.”

“옛날 금이 어디에 있고, 요즘 금이 어디에 있어? 괜히 아저씨가 값을 깎으려고 그러는 거야. 금은 원래 처녀 금만 있고, 나머지는 다 똑같은 금이야.”

선희는 금은방집 딸내미다. 그래서 다른 아가씨들보다 금에 대해 잘 알았다.

“처녀 금?”

“응, 금광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진 금을 처녀 금이라 해. 그리고 가공하면 다 똑같은 금이야, 그냥 금.”

“그럼 이니셜은 뭔데?”

금은방에서 들고나온 금목걸이를 선희에게 보였고, 선희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부으으응!

그때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은철과 선희 쪽으로 급하게 달려와 은철이 쥐고 있던 금목걸이를 낚아챘고, 그 순간 은철은 놀라 선희를 부둥켜안고 급하게 몸을 틀어 오토바이를 피했다.

“선희야, 괜찮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는 은철이었다.

“오, 오빠……!”

선희가 놀라 벌벌 떨기까지 했다. 그리고 금목걸이를 낚아챈 오토바이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괜찮아?”

“으응…….”

은철의 눈에는 선희는 거의 넋이 나간 것 같아 보였다.

“엄마 유품인데…….”

자기도 모르게 날치기 오토바이가 사라진 쪽을 보며 중얼거리며 울먹이는 선희였다.

“아……!”

선희의 말을 들은 은철은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내가 선희를 고생시키고 있구나.’

은철은 이 순간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서 울먹이는 선희를 보면서 시외버스 정류장 쪽을 바라봤다.

‘그래, 서울로 돌아가자, 휴우……!’

자기 때문에 더는 선희를 고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은철이었다.

* * *

시외버스 터미널 앞.

이미 해는 졌다.

선희와 은철은 염전 근처에 있는 주인집 쪽방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은철의 고민 때문이었다.

“선희야, 서울 가자.”

은철이 선희에게 말했다.

“서울?”

“더는 너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내가 욕심을 부렸어.”

현실에 부딪힌 은철은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은철이기도 했다.

“오, 오빠……!”

“서울 가자. 지금 당장 가자.”

“지금 당장? 옷도 못 챙겼고, 할아버지한테 간다고 인사도 못 했어.”

“아!”

은철도 선희에게 바나나를 건네줬던 김 상사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러네…….”

“서울로 올라가도 할아버지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지, 오빠…….”

선희는 은철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은철과 선희는 타향살이가 며칠밖에는 안 됐지만, 그 며칠 동안 자신들에게 너무나 잘해 준 김 상사 할아버지에게 인사도 안 하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목걸이는 어쩌지?’

날치기를 당했으니 되찾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은철이지만 장모님의 유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야야, 야야!”

그때 골목길에서 급히 허겁지겁 뛰어오는 김 상사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고, 은철과 선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야, 야야!”

선희에게 뛰어온 할아버지는 선희를 불렀다.

“할, 할아버지?”

“너희, 어디를 가노?”

김 상사 할아버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선희에게 물었다.

“저, 저희 서울, 서울 올라가려고요.”

“내를 두고?”

주름 가득한 얼굴에 김 상사 할아버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실 이 상황은 은철과 선희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야야, 야야, 가지 마라, 내를 두고 가지 마라. 흑흑흑!”

어느 순간 아이처럼 우는 김 상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울지 마세요.”

“고운 우리 야야, 내 올 때까지 타향에서 기다린다고 안 했나? 야야, 가지 마라. 소대장 동무가 훈장 받으면 나라에서 돈도 주고, 쌀도 주고, 일자리도 준다고 했다. 야야, 그때까지만 가지 마라. 야야, 흑흑흑!”

“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은철은 그저 한탄에 가까운 탄성만 터트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선희를 죽은 자기 아내로 생각하는구나.’

며칠 같이 일해 봤기에 김 상사 할아버지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은철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또 이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만 한 은철이었다.

“야, 이 망할 놈의 김가야!”

그때 김 상사 할아버지가 왔던 골목길에서 70대 염전 주인 할아버지가 허겁지겁 뛰어오며 김 상사 할아버지에게 욕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김 상사 할아버지는 벌벌 떨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이다.”

울던 김 상사 할아버지는 70대 염전 노인을 보고 겁에 질렸다.

“김가 이 육시럴 놈의 새끼! 어데로 튀었나 했다. 나가 처묵여 주고 재워 주고 돈까지 줬는디 도망을 칠라고 해?”

벌써 해가 졌다. 이 시간까지 일을 시키는 것도 이상하지만 일을 안 하고 농땡이를 부린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노인도 참 이상했다.

“아, 아니에요. 일, 일했어요? 일 끝나고 왔어요. 야야가 갈 것 같아서 왔어요.”

퍽!

“어디서 뚫린 주댕이라고 나불거려!”

염전 주인 할아버지는 벌벌 떨며 대답하는 김 상사 할아버지의 면상을 앙상한 손으로 후려쳤다.

“으윽!”

김 상사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때리지 마세요. 때리지 말아 주세요!”

김 상사 할아버지는 죽을죄를 지은 듯 엎드려 빌었다.

‘아, 시발! 또 때리시네.’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은철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선희는 이제는 떠날 사람이라 나설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왜 김 상사 할아버지한테 이러세요?”

은철이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선희가 먼저 나섰다.

“워매, 대갈빡에 피도 안 마른 년이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여, 말대꾸가!”

“왜 김 상사 할아버지를 때리시냐고요!”

“이런 잡것들. 나가 남덜 일에 참견질 허지 말랬지!”

염전 주인 노인은 은철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은철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선희의 손을 잡았다.

“선희야, 우린…….”

“우리가 왜?”

“우린 서울로 가야 해…….”

“그렇지만 김 상사 할아버지가…….”

선희도 현실을 직시하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느그들이 그 반편이를 평생 책임질 것 아니면 신경 꺼!”

염전 주인 노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니까, 저런 것도 멕여주고 재워 주고 하는 것이여!”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따 이런 싸난년보소. 무신 가시나가 어른헌테 따박따박 말대꾸질이여?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았야제!”

“어른이시면 어른답게 행동을 하셔야죠.”

“그래? 그라믄 너그들이 데리고 살던가? 여수 바닥에서 저 반편 굶어 죽지 않게 30년 뒤치다꺼리한 게 나여. 나 아녔음 저 병신은 진작 굶어죽었당께!”

“할아버지, 자꾸 반편이나 병신이라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어린년이 어른 앞에서 핏대를 세우고 지랄이야!”

염전 주인이 선희를 보며 씩씩거리며 당장에도 칠 것 같이 노려봤다.

끼이익!

그때 고급 자동차 한 대가 이들 앞에 섰다.

* * *

자동차 안.

7시간을 넘게 달려 이제야 이곳에 도착했다.

‘정감이 넘치는 시골 시외버스 터미널이군.’

흑백 TV에서나 볼 것 같은 시골 풍경이다.

“여기서도 30분쯤 더 가서 어촌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의뢰한 사채업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김 비서에게 대답하고 창밖을 봤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사진에서 봤던 막내 처남이다.’

나는 눈썰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한 번 본 것은 꼭 기억한다. 그리고 시외버스 터미널 앞 공터에 서서 노인 앞에 서 있는 막내 처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대표님.”

“막내 처남을 찾았네요.”

“예?”

“저기 노인들 앞에 서 있는 청년이 제 막내 처남입니다.”

그러니 막내 처남 옆에 서 있는 어린 아가씨가 처남댁인 선희일 것이다.

막내 처남댁은 노인 한 명과 실랑이를 펼치고 있었고, 막내 처남댁 뒤에는 잔뜩 겁먹은 노인이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나 낯익었다.

‘김, 김 상사!’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순간이다. 아마 김 상사가 늙어 노인이 됐다면 딱 저 모습일 것이다.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고, 환생 전 과거가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김 상사가 맞다!’

나는 바로 차에서 내렸다.

‘인연은 이다지도 끈끈하고 얄궂다.’

* * *

시외버스 공터 앞.

“할아버지, 저희에게 자꾸 욕하지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은철이 염전 주인에게 말했고 내가 다가서는 것도 저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서로에게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내가 김 상사를 알지만!’

김 상사는 나를 모른다. 나는 환생을 했고 원래의 내가 아니게 됐으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 때문에 마음이 착잡하다. 당장 달려가 김 상사를 안아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너희들 바로 방 빼, 가여워서 도와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쯧쯧! 이래서 검은 털 짐슴은 거두는 게 아니라제. 한번만 더 내 염전에 얼씬하기만 혀! 확 조사블랑께!”

“예, 거기 살 마음 없습니다.”

“야, 김가야, 가자, 가자니께.”

염전 주인이 김 상사 할아버지의 멱살을 다시 잡아 개처럼 끄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어르신, 그 손 놓읍시다.”

내가 무거운 어투로 김 상사의 멱살을 잡은 염전 주인에게 말했고 염전 주인은 바로 나를 노려봤다.

“넌 또 뭐야! 오늘따라 연놈들이 왜 다들 지랄이야, 지랄!”

막말을 일삼는 염전 주인이다. 그리고 나를 본 김 상사의 눈동자가 바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총명한 녀석이었는데!’

왜 저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대한민국인가?

처음 내가 이곳으로 환생했을 때 떠올렸던 그 생각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이다.

“지랄은 늙어서 나잇값을 못 하는 당신이 하는 거고.”

어른이라고 무조건 공경해야 할 이유는 없다.

“뭐여?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어른에게 반말을 찍찍하고 지랄이여!”

다시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염전 주인이다.

“어른 새끼는 어린 새끼한테 아무 때나 반말 찍찍해도 됩니까?”

분노가 끌어 오르는 순간이다.

“뭐, 뭐라고?”

내 말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하는 염전 주인이다.

“그리고 당신은 잠깐 기다려.”

“이, 이 후레자식이!”

제대로 흥분한 염전 주인이고 내 멱살을 잡겠다고 손을 뻗었지만 나는 손으로 그의 손을 툭 쳐서 뿌리쳤다.

“기다려, 기다려!

나는 마치 애완견에게 명령하듯 다시 말했다.

“이, 이 어린 새끼가 정말……!”

그저 씩씩거리는 염전주인이다.

“막내 처남, 나 처음 보지?”

“예? 누, 누구세요.”

내 말에 막내 처남이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결혼식에 막내 처남도 참석하지 못했다.

“놀랐지? 네 매형이 나야.”

“우리 누나가 결혼을 했다고요?”

“그래서 이 매형이 막내 처남 찾으러 여수까지 내려왔지. 간단하게 정리하자. 누나 심은혜, 나 백범이 결혼해서 책임감만 강한 사고뭉치 막내 처남이 생겼네.”

“아……?”

놀랍고 황당한 눈빛을 보이는 막내 처남이다.

“소, 소, 소대장, 동무우우!”

그때 김 상사가 나를 불렀고 그의 외침에 내가 더 놀랄 수밖에 없는데 김 상사가 절룩거리며 내게 뛰어와 나를 와락 안았다.

“흑흑흑, 소대장 동무, 왜 이제 왔습니까!”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나, 나를 아세요……?”

김 상사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고 나직이 물었다.

“내가 왜 소대장 동무를 모르겠습니까, 왜 이제야 왔습니까. 내 얼마나 눈이 빠져라. 기다렸는지 압니까.”

“아……!”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기다리느라 고생했다.”

김 상사만 들을 수 있게 속삭여줬다.

“흑흑흑, 소대장 동무……!”

나를 부둥켜안고 우는 김 상사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나를 안고 우는 김 상사를 떼어내고 그의 모습을 바라봤다.

‘낡은 옷에 다 떨어진 신발!’

거지도 저렇게 입고는 다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 수많은 상상과 추측들이 나를 분노케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리가 필요한 시간이다.

“김 비서님.”

나는 착잡한 어투로 김 비서를 불렀다.

“예, 대표님.”

“따뜻한 옷과 신발 좀 구입해 오십시오.”

내 말에 김 비서가 김 상사를 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김 비서가 내게 묵례를 하고 돌아서서 빠르게 걸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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