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34화 (34/415)

# 34

34화 이다지도 끈끈하고 얄궂다.(1)

‘심성은 착해.’

결국, 둘째 처남을 알코올 중독 초기로 만들고, 분노조절 장애까지 생기게 한 그 집안을 가만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당 4선 의원 한준호입니다. 초선일 때는 야당이었는데, 2선 때는 여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한호성이고, 현재는 대후증권에서 선물 투자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 비서에게 알아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대선이 끝남과 동시에 끝장낼 쓰레기의 이름이 한준호다.

‘대후증권?’

거기다가 선물 투자 매니저란다.

‘끝장낼 방법이 아주 간단하군.’

풋옵션도 투자할 생각이니 막내 처남을 여수에서 데려오고 나서 대후증권에 들러야겠다.

“둘째 처남, 나는 이제 간다.”

“오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안 와. 밥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나를 보며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는 둘째 처남이다.

“참, 이거 처남 주려고 하나 샀다.”

나는 구치소에서 롤렉스 시계를 탐내던 둘째 처남이 떠올랐다. 그래서 작은 샘플 양주도 살 겸 시계도 살 겸 백화점에 가자고 했던 것이다.

“롤렉스 시계네요?”

“둘째 처남이 차고 싶어 했던 것이 생각나서 하나 샀다.”

“그 시계만 보면 치가 떨려요. 됐습니다.”

“그럼 다음에 더 좋은 것으로 사 줄게.”

“진짜 우리 매형은 돈이 많은가 보다.”

“많아, 아주 많아, 그리고 앞으로 더 많아질 거야.”

내 말에 둘째 처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겠죠. 그런데 가끔 보면 정말 재수 없게 느껴지는 거 아세요?”

“내가?”

“너무 잘났잖아요. 매형, 친구 없죠?”

둘째 처남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게…….”

[소대장 동무, 형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또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

‘흐른 세월이 얼마인데!’

그리고 여긴 뭔가 살짝 다른 대한민국!

그 녀석이 살아 있다고 해도 그 녀석이, 그 녀석이 아닐 수도 있다.

“없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시크하게 웃는 둘째 처남이다.

‘없네, 그러고 보니 정말 없어.’

백범의 기억 속에도 친구가 거의 없었다. 아니, 친구라고 부를 인간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똥파리들만 바글바글할 뿐이군.’

진짜 백범은 딱 똥 같은 새끼였다.

* * *

읍내 시외버스 터미널 앞.

어디나 그렇듯 시골은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어 있고, 은철을 고용한 70대 할아버지는 염전 주인이라서 그런지 소금보다 더 짠돌이라 은철에게 일당으로 돈을 줬고, 바쁜 일이 없다면 부르지 않았다. 이건 다시 말해 은철이 일하지 않는 날에는 방파제 앞 횟집 할머니가 김 상사라고 부른 할아버지가 몇 사람의 몫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여튼 은철과 선희는 할 일이 없기에 읍내로 나왔다.

“먹고 싶은 거 없어?”

은철은 선희에게 물었고, 선희는 무엇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잠깐만.”

“어디를 찾아?”

“금은방, 아니면 전당포.”

선희는 은철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거긴 왜?”

“우리, 돈 없잖아.”

선희가 현실을 말하니 괜히 미안해지는 은철이었다. 그리고 은철은 자신이 자신만의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래도 내가 팔 게 있네, 호호호!”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는 선희다.

“선희야…….”

“괜찮아, 아빠 금은방에서 얼떨결에 차고 나온 목걸이인데, 팔아서 쓰지 뭐.”

“아무리 그래도.”

“저기 금은방 있다!”

선희가 금은방을 발견하고 은철의 손을 잡아끌었고, 괜히 미안해지는 은철이었다. 그리고 금은방으로 들어가는 은철과 선희를 골목 모퉁이에서 몰래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서울 촌닭들이네.”

“사고 나올까, 팔고 나올까? 히히히!”

“사서 나오면 낚아채고 팔고 나오는 것 같으면 따라가서 조지자고.”

“오늘 거시기 하게 거시기 할 것 같네. 하하하!”

* * *

정신병원 건물 앞 주차장.

내가 정신병원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차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비서가 내게 다가왔다.

“둘째 처남은 어떠십니까?”

“사람 되고 있네요.”

“그럼 다행인데, 대표님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저보고 친구는 있냐고 묻네요.”

“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없더라고요.”

“아…….”

“아니군요. 이제 한 분 계시네요.”

“예?”

“김 비서님이 제 친구가 되어 주실 것 아닙니까?”

나는 김 비서를 보며 웃었다.

‘보고 싶다!’

딱 한 번이라도 마지막까지 나를 믿어 준 그 녀석을 보고 싶어졌다.

[소대장 동무, 형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그때의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부하들을 속였고, 나는 국가에 속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 녀석은 나를 끝까지 믿어 줬고, 그 녀석까지 사라져 버렸을 때 나는 모질게 변했다.

“하하하, 하하하!”

속은 씁쓸하나 김 비서에게는 웃어 보였다.

“친구라, 나중에, 정말 나중에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가시죠, 여수는 멉니다.”

* * *

시골 금은방.

금은방 주인은 선희가 내놓은 금목걸이를 보더니 선희와 은철을 유심히 살폈다.

“아가씨, 이 금목걸이는 어디서 났어야?”

“그건 왜요?”

“이거, 옛날 금이네.”

금은방 주인의 말에 선희는 은철을 힐끗 봤다. 그리고 선희는 금은방 주인이 왜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변했다.

‘내가 금은방 딸내미거든요.’

금은방 주인이 괜히 금값을 깎으려고 트집을 잡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드는 선희였다.

“금에 옛날 금이 어디에 있고, 요즘 금이 어디에 있어요? 괜한 소리를 하시네요.”

그래도 선희는 금은방집 딸내미였기에 금에 대해서 제법 잘 알고 있어서 되받아치듯 말했다.

“그래서 이거 팔라고?”

“예, 팔려고요.”

“돈 급해?”

“왜 그런 것을 물으세요?”

금은방 주인이 물었는데 선희는 괜히 은철의 눈치를 봤다.

“색시한테는 쪼까 귀해보이니께 그라제. 뒤에 이니셜도 있고.”

금은방 주인도 선희의 시선을 따라 은철의 눈치를 살폈다.

“안 귀해요. 값만 맞으면 팔게요.”

“그려?”

선희에게 되물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금은방 주인이었다.

“……예.”

선희 말에 금은방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저 금은방집 딸이에요.”

“허허허, 아따 나가 거시기 할까 봐 그라는가잉. 나가 그렇게 써글 놈은 아니제.”

금은방 주인은 선희를 보며 웃었다.

“거시기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선희와 은철이었다.

거시기?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거시기라는 단어면 뭐든 다 말이 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여튼 서울 사람이 듣기에 거시기는 정말 거시기 했다.

“그랴, 거시기, 아하, 말투를 봉께 외지 사람인 모양이네. 그렇다면 거시기를 모르겠구먼, 여기서는 다 거시기가 거시기야.”

그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선희였다.

“선희야, 이 목걸이는 뭐야?”

그때 아무 말도 없던 은철이 선희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응, 오빠, 아무것도 아니야. 금목걸이가 그냥 금목걸이지.”

“됐다, 나가자. 아저씨, 죄송합니다. 저희 그냥 나갈게요.”

은철이 금목걸이를 챙겨 선희의 손을 잡고 금은방을 나왔다.

“아따 딱 봐도 엄마 목걸인디…….”

금은방 주인은 선희가 내놓은 금목걸이가 장물이 아니면 유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대후증권 선물투자 담당 한호성 과장의 사무실.

한호성은 대후증권에 입사할 때 당연히(?) 낙하산이었다. 3선 의원이라는 아버지의 후광이 대후증권 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1997년까지는 증권사 직원 하면 엘리트라면 엘리트였고 소도 뒷걸음질을 치다 쥐를 많이 잡는 증권시장 호황기라 제법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그 능력 뒤에는 아버지의 정보제공도 도움이 됐었다.

“하하하,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가입에 국민소득 만 불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 요즘 분위기가 축제 전야라니까.”

“당연하죠, 이제 대한민국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한성호 과장의 말에 VIP 고객도 고개를 끄덕였다.

TV 뉴스에서는 연일 대한민국의 OECD 회원국 가입을 보도했고 국민소득 1만 불 시대가 열렸다고 환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대한민국 국민의 50% 이상이 자신들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갑자기 IMF 외환위기가 터졌으니 서민들이 받아야 했던 충격은 상상 이상 그 자체였고 다시는 중산층으로 올라서지 못하는 서민들이 자신이 중상층이라고 생각했던 서민들의 90%가 넘었다.

“그러니 당연히 종합지수 1,000포인트 이상 갑니다.”

한호성 과장은 VIP 고객에게 파생상품인 콜옵션을 제안하고 있었다.

콜옵션은 풋옵션과 상반된 개념이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종합지수 1,000포인트 이상 간다. 수수료만 챙겨도 그게 얼마야? 으흐흐!’

한호성 과장은 VIP 고객을 호구로 보며 속으로는 수수료와 수익보수를 챙길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콜옵션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옵션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자산의 종류에는 제한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옵션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은 주식과 사채에 대한 옵션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콜옵션에 투자하실 때입니다.”

“콜옵션?”

옵션거래에서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다.

“예, 그렇습니다. 콜옵션을 매입한 사람은 옵션의 만기 내에 약정한 가격으로 해당 기초자산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겁니다.”

한호성 과장의 설명에 VIP 고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가 옵션은 선물과 달리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으므로 매입자는 해당 옵션을 매도한 사람에게 일정한 프리미엄을 미리 지불해야 하면, 이에 따라 옵션 매입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그 권리를 행사하여 이익을 누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권리행사를 포기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됩니다.”

“일이 잘못되어도 프리미엄만 손해를 보면 된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1년 후에는 반드시 종합지수 1,000포인트 갑니다. 요즘 자고 나면 오르는 것이 부동산이고 주식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러니까요. 하하하! 금이 투자 적기입니다.”

“확실한 거지?”

“제 정보가 어디서 나오는지는 고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묘한 미소를 보이는 한호성 과장이었고 VIP 고객은 한호성 과장의 부친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알지, 아암, 잘 알고말고. 하하하!”

“얼마나 투자하시겠습니까?”

“우선 20억쯤 투자를 해볼까?”

“그러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이번 투자도 제대로 성공하면 내가 한 과장 공을 잊지 않을게.”

“하하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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