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33화 (33/415)

# 33

33화 악마세요?(2)

“둘째 처남이 사고만 안 치면 내가 못 꺼내 줄 것도 없어. 그런데 빵집은?”

“아……!”

바로 한탄을 터트리는 둘째 처남이다.

“그리고 그 아가씨는?”

“……매형.”

눈빛이 변하는 둘째 처남이다. 내게 했던 말에 대한 후회가 둘째 처남의 눈동자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사람이 언제 제일 힘들고 괴로운 줄 알아?”

나는 둘째 처남을 담담히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내게도 해당하는 질문일 것이다.

“으음…….”

그저 신음을 터트리는 둘째 처남이다.

‘어떤 좋은 말을 해줄까?’

내가 처남에게 지금 해줘야 하는 말은 희망적인 말일까? 아니면 현실을 말해 줘야 할까? 나 역시 고민스러운 순간이다.

“죽을 때?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과연 그럴까?”

담담한 어투로 물었지만 나는 내가 살았던 전생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네가 죽인 거다, 이 망할 놈아!]

[죽은 놈들한테 훈장 따위가 뭐라고 그딴 것을 달아줘!]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그렇게 이 지랄 같은 나라에 충성해서 네가 얻는 것이 뭐냐고!]

수많은 주검 앞에 섰을 때 내게 절규하던 사람들의 외침이 생생히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때는 그것이 정의롭다 생각했었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다.

“매, 매형?”

둘째 처남이 내 눈빛이 변한 것을 느끼고 나를 불렀고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으음, 처남은 언제라고 생각을 해?”

내게도 하는 질문이다.

“그건, 그건……!”

“꿈을 버릴 때, 희망을 잃을 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같이 꿈을 꿀 사람이 없을 때이지 않을까? 처남은 지금 딱, 거기 앞에 서 있는 거야. 지금은 도망칠 수도 있고 외면할 수도 있어, 그런데 아무리 도망쳐도 현실은 검은 그림자처럼 바로 옆에 붙어 있어. 그러니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해.”

내 말에 둘째 처남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매형…….

“말해.”

“다시는 오지 마요. 왜 갑자기 와서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까?”

여수로 가는 길에 일부러 왔다. 둘째 처남은 어느 정도 정신병원 생활에 적응했을 것이고, 포기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둘째 처남의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놓으려고 왔다.

“앞으로는 매형도 오지 말고, 누나도 오지 말고, 엄마도 오지 마요. 여기 의사가 나가도 된다고 할 때 알아서 나갈게요. 괜히 와서 내 마음 흔들지 마시라고요.”

이래서 남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여자다. 따지고 보면 아담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도 이브다.

“저, 아직 꿈을 안 버렸습니다.”

내게 또렷하게 말하는 둘째 처남이다.

“그래, 나는 처남을 믿어.”

아니, 믿고 싶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제는 내 처남이다. 그리고 동생이다.

나는 독자라서 형제가 없다. 그래서 은혜 씨에게 고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장모님께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결혼과 동시에 형제를 만들어 주셨으니까.

[소대장 동무, 형이라고 불러도 됩니까?]

나를 형으로 부르고 싶어 했던 한 사람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내게는 아픈 앙금이다.

* * *

태양기업 고객 투자 상담실.

“투자 제의 전화 받고 왔는데요.”

아기를 둘러업은 새댁이 걱정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태양기업 투자 상담 담당 직원에게 말했다.

“예, 잘 오셨습니다. 저희 태양기업은 아니 우리 태양기업은 신생에너지 개발 및 태양광 패널 수입 및 설치 전문 기업으로 국민들의 에너지 비용 절감 목적과 이익 창출을 위해 설립된 회사입니다.”

-항상 저희가 아닌 우리라는 말로 고객님들을 응대하십시오.

태양기업 투자 상담 담당 직원은 백범이 지시한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백범은 우리라는 단어를 통해 태양기업과 태양기업에 투자하는 서민들에게 유대감을 조성하고자 했다.

“아, 그렇군요.”

“또한 신생 에너지 개발 및 그에 따른 주식과 선물을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회사입니다. 우선 태양기업 설립자이신 백범 대표님께서는 독립운동을 하셨던 백선우 선생님의 손자가 되시는 분으로 공익사업에도 힘을 쓰고 계십니다.”

태양기업 투자 상담 담당 직원의 설명에 아이를 업은 새댁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정말 돈을 맡기면 연 25퍼센트를 주고 달러로 투자를 하면 40퍼센트를 주나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손해를 보면요?”

투자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원금 손실일 것이다. 사실 은행에서도 10~12퍼센트의 이자를 줬다. 그에 반해 태양기업은 두 배가 넘는 투자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홍보했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거였다.

“원금보존이 됩니다.”

“정말요?”

“예, 그렇습니다.”

“이 증서를 보십시오.”

태양기업 투자 상담 담당 직원은 산업수출은행에서 예치해 놓은 7,500만 달러를 새댁에게 보여줬다.

“한화로 600억입니다. 은행에 예치가 되어 있고 우리 태양기업은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딱 600억만 투자를 받을 계획입니다. 그러니 투자자들의 원금 소실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달러로 투자를 하면 정말 40퍼센트의 이자를 주나요?”

“물론입니다.”

순간 새댁의 눈빛이 변했다.

“그럼 제가 투자자들을 더 모아 오면 제게는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그건 어렵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면 태양기업은 금융 다단계 피라미드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태양기업은 단 1달러의 투자도 받지만 추가적으로 투자자가 피라미드 형태로 투자자를 모아 오신다고 해도 그 이상의 보상은 없습니다.”

태양기업 투자 상담 담당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태양기업에 투자하시겠습니까?”

“투자는 얼마를 해도 상관이 없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 저 우리 태양기업에 투자할게요.”

우리라는 말이 전염이 되는 순간이다.

“예, 감사합니다.”

“이 돈, 우리 아기 아빠, 목숨값이에요.”

“예?”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돈이에요. 우리한테는 목숨 줄이나 다름이 없는 돈이고요.”

“아, 아무 걱정 마십시오. 우리 태양기업은 소신과 정직 그리고 신용으로 투자자의 투자 증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원금 손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것입니다. 계약서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태양기업 투자 상담 담당 직원이 하던 말을 끊었다.

“단, 최소 투자 기간이 존재합니다.”

“얼마나 투자를 해야죠?”

“계약 수립일로부터 2년간 계약을 유지해야 합니다. 단, 그 전에 기대 이상의 수익이 발생했고 더 이상의 수익이 발생할 수 없다고 판단을 기업 측에서 내렸을 때 투자계약은 종료됩니다.”

태양기업 투자 상담 담당 직원의 설명에 새댁은 고개만 끄덕였다.

“신중하게 결정하십시오. 계약 기간 이전에 투자를 철회하셨을 때는 약속된 이익금을 지급 받지 못하고 원금만 보존 받게 되십니다.”

꼼수 하나 정도는 넣어둔 백범이었다.

“그래도 원금은 준다는 거네요.”

“예, 그렇습니다. 투자자들의 소중한 원금은 반드시 보존해 드립니다.”

“알겠어요. 투자를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개인 투자가 체결이 되는 순간이다.

* * *

정신병원 특별 면회실.

“고맙습니다. 나, 사실 술이 생각날 때마다 마시고 싶어서 한숨만 나와요. 그러니까 오지 마세요.”

“잘 생각했어. 둘째 처남, 한 잔만 마실래?”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샘플 양주병을 꺼냈다.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앙증맞지만 들어 있는 것은 당연히 진짜 고급 양주고, 샘플 병은 유리가 아닌 철재였다.

“매, 매형……!”

술을 보자 눈빛이 변하는 둘째 처남이다. 마시고 싶다는 간절함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마시고 싶으면 마셔.”

내 말에 침을 꼴딱 삼키는 둘째 처남이고 손까지 떨리며 자신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작은 술병에 손이 갔다가 멈추고 나를 째려봤다.

“매형, 정말 악마세요?”

매섭게 나를 째려보는 둘째 처남이다.

‘악마를 보았다?’

정말 나를 보는 눈빛이 딱 그렇다. 그리고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냐는 눈빛이다.

“하하하, 우리 둘째 처남, 사람 됐네.”

“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눈빛이다.

“이거는 선물이야, 병원 사람들한테는 압수하지 말라고 말해 놨다.”

“휴우, 우리 매형 진짜 악마보다 더하네요.”

“두고 갈 테니까, 보고 참아. 마실 수도 없는데 참기만 하면 나중에 퇴원하고 술을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알코올 중독자들에게는 그때가 첫 번째 시험이라더라. 둘째 처남은 그 시험을 병원에서 해.”

내 말에 둘째 처남이 다시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으음…….”

“지금이라도 마시고 싶으면 마셔도 돼. 그 대신에 둘째 처남의 꿈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을 거야.”

모든 중독은 결국 의지의 문제고, 그 의지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실 마약 중독자들이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만기 출소 후 바로 마약에 손을 대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의지가!’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도 안 하는 것이다.

“매형, 진짜 너무하네!”

나를 보며 눈을 흘기는 둘째 처남이다.

“정말 마시고 싶을 때 빵집하고 그 아가씨만 생각해, 그 아가씨가 기다리겠다고 하더라.”

“시발……!”

자기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리는 둘째 처남이다. 그러고는 내 앞에서 욕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 바로 내 눈치를 봤다.

‘이래서 폭력은!’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둘째 처남.”

“예, 매형.”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

내 머릿속에 구치소에서 내가 저질렀던 그 가혹한 폭행이 떠올랐다.

내 말에 둘째 처남도 그날을 떠올렸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매, 매형…….”

“사람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쉽게 가려고 했어.”

내가 생각해도 말 하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나다. 그렇게 나는 내 전생 때 그 뛰어난 언변을 이용해 청년들을 사지로 몰았었다.

“제가 맞을 짓을 하기는 했죠. 그래도 정말 아팠습니다.”

둘째 처남은 여전히 이빨이 부러져 있었고, 퇴원하면 임플란트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매형, 정말 고맙습니다. 누나가 정말 고마워하실 겁니다.”

점점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둘째 처남이다.

“1년은 금방이고, 늦어도 2년이면 완치될 거야. 그때 내가 압구정동에 엄청나게 큰 빵집 차려 줄게.”

희망은 거대한 산도 들어서 옮길 힘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돈으로 하는 것이 제일 쉽다.

“고마워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세요. 괜히 또 매형한테 징징거릴 것 같으니까요.”

사람이라는 것은 원래 징징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징징거리는 법이다. 엄마 앞에서 우는 애처럼 다 그런 것이다.

“바빠서 올 틈도 없어.”

“예, 그냥 누나한테나 잘해 주세요.”

“이 세상에서 제일 부질없는 걱정이 재벌 걱정하는 것하고, 연예인 걱정하는 거였는데 이제는 또 하나가 더 생겼어.”

“예?”

“내 아내 걱정하는 것이 제일 쓸데없는 짓이야.”

“진짜 우리 매형, 말은 정말 잘하십니다.”

“말만 잘하겠어? 나는 뭐든 잘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둘째 처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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