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32화 악마세요?(1)
내가 아파트 정문에서 나오자 차에 타고 있던 김 비서가 차에서 내려 내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뒷문을 열었다.
“반공일인데 저 때문에 출장과 야근까지 하시겠네요.”
연봉을 많이 준다고 해도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버릇을 만들어놔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
정말 옳은 말이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말이다. 거기다가 사람 때문에 흥하지 못해도 사람 때문에 망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해놓고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으면 그게 개소가 되고 배신이고 사기다.
“많이 받으면 많이 일해야죠.”
김 비서의 마인드 하나는 정말 좋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타십시오, 여수까지 내려가려면 한참입니다.”
“가면서 병원에 좀 들립시다. 둘째 처남 입원 치료를 잘하고 있는지 한번 봐야겠네요.”
여수로 내려가는 길에 둘째 처남이 입원한 정신병원이 있다. 나도 바쁘기에 특별히 시간을 낼 수 없었고, 이번에 가볼 참이다.
“예, 알겠습니다.”
“가시다가 백화점에도 잠시 들리시고요.”
“예, 대표님.”
“참, 텔레마케팅 실적은 어떻습니까?”
내 말에 김 비서가 백미러로 나를 봤다.
“황당하고 놀랍고 다채롭습니다.”
“예?”
“대한민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기를 많이 당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달러로 투자를 하면 40%의 이자를 지급한다고 하니 투자 문의가 꽤 됩니다.”
“입금된 달러는 얼마입니까?”
“현재 200만 달러입니다.”
“그럼 투자자들이 최대 200명이라는 소리군요.”
한 명의 투자자가 만 달러만 투자하라는 법은 없다.
“거기까지는 확인 못 했습니다. 입금 금액이 그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 달부터 이자가 지급될 예정입니다.”
40%나 되는 엄청난 이자가 투자자에게 지급되면 입소문을 타고 투자는 더 몰리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모일 달러는 엄청나게 될 것이고 그 돈들이 모두 내 수익이 될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대표님.”
김 비서는 운전을 하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고 마지막 말의 뉘앙스가 묘했다.
‘후순위 투자를 받아서 선순위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하냐고?’
그렇게 하면 다단계다.
‘그건 못된 짓이고.’
나중이 되면 감당이 안 될 짓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백범이 아니라 조희팔이 될 것이고 내 못된 짓 때문에 죽어 나갈 사람들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경계할 것이고 이 순간에도 진짜 나를 경계할 것이며 내 속에서 진짜 내가 탐욕을 불태우지 않게 통제할 것이다. 그런 통제가 실패하게 된다면 나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가 되겠지만 그런 후에는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게 될 것이고 오직 내가 쓰는 도구만 나를 위해 굽실거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내 은혜도 나를 떠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진짜 나를 이겨내야 한다.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생각해 둔 것이 다 있습니다."
투자라는 것은 결국 원금이 보존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투자자들의 원금을 까먹을 일은 없다.
‘지금은 내 자본금을 까먹고 있지.’
하지만 7개월 후 나는 앉은 자리에서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그럼 된 것이다.
‘욕심부리지 말자.’
돈다발을 찢어먹고 살 것 아니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죽어 내가 갈 지옥은 없을 것이다.
‘현실이 지옥일 테니까.’
현세 지옥?
진짜 나는 그런 곳에서 살았고 군림했었다.
* * *
청담동에 있는 용하다고 소문이 난 처녀 보살 무당집.
“여의도 벚꽃이 피기도 전에 벌써 오셨네.”
청담동 처녀 보살은 기가 찬다는 듯 두 남자를 보며 말했다.
“조 보살, 이번에는 어딥니까?”
청담동 처녀 보살 앞에는 중늙은이 두 명이 번듯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앉아 점괘를 재촉했다. 양복 상의에는 금배지까지 박혀 있는데, 청담동 처녀 보살은 어두운 표정으로 점괘를 내고 있었다.
“용하기는 합니까? 이런 거 다 미신 아닙니까?”
한 남자가 조 보살에게 물었던 남자에게 물었다. 이 둘은 모두 국회의원이다. 사실 대선이나 총선 시즌이 되면 정치인만큼 바쁜 사람들이 무속인이었다.
전국에서 용하다는 무당이라면 이때쯤 선거 특수를 누린다는 말도 있다.
왜 그러냐고?
천거에 출마를 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불안하니까. 그래서 뭐든지 의지할 곳을 찾게 마련이다.
“쯧쯧,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장군님께 괘를 여쭈는데.”
짜증 가득한 어투로 말하는 청담동 처녀 보살이었다. 사실 청담동 처녀 보살은 이 둘이 들어올 때부터 인상을 찡그렸었다.
‘신빨 떨어지게 아침 댓바람부터, 짜증 나, 쯔쯔!’
국회의원 앞에서 싫은 내색을 팍팍 풍기는 청담동 처녀 보살이었다.
“뭐라고?”
툭!
청담동 처녀 보살은 젊은 여자라면 젊은 여자다. 남자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여자가 대놓고 반말하니 되받아치려고 할 때 점괘를 물었던 남자가 그 남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조용히 해요, 없는 것 빼고 다 맞추시는 분이시니까. 저번 대선과 지난 총선도 오차 없이 다 맞추셨어.”
“그래요?”
불신하던 눈빛을 보이던 남자가 신기한 듯 되물었다.
사실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속인은 사기꾼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국회의원이 된 후부터 그 누구에게도 반말을 들어보지 않아서 특권 의식에 젖어 있었다.
“나왔네.”
그 순간 청담동 처녀 보살이 입을 열었고, 두 남자는 청담동 처녀 보살을 봤다.
“이번에는 정말 어딥니까?”
이들이 이러는 것은 갑자기 김대준 총재가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또 상황에 따라 당을 바꾸는 철새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결정할 일이야.”
“바람이라고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처음부터 퉁퉁거리던 국회의원이 짜증이 난다는 투로 말했고 청담동 처녀 보살은 그 국회의원을 째려봤다.
“왜 째려봐?”
“그럼 왜 왔는데?”
“뭐라고?”
“내 얼굴 구경이라고 왔나?”
“반반하기는 하네.”
“한 의원 그러지 맙시다. 나 여기 자주와요.”
“참, 의원님도 답답하십니다.”
“금방 끝납니다. 끝나요.”
“예, 예, 알겠습니다.”
한 의원이라는 국회의원이 건성으로 대답했고 다른 국회의원이 청담동 처녀 보살을 바라봤다.
“계속 말씀해 주십시오.”
“괜히 대추나무 달고 오지 마.”
대추나무?
‘벼락 맞을 놈!’
청담동 처녀 보살은 자신에게 퉁퉁거리는 한 의원을 보며 속으로 뇌까렸다.
“예, 죄송합니다. 그러니 들으신 말씀 계속해주십시오.”
“누가 될지 결정되려면 북풍이 불어야 해.”
“북풍……?”
청담동 처녀 보살의 말을 들은 장의원이 그 의미를 나름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그 바람 때문에 금상의 자리가 바뀌겠어, 괜히 어설프게 했다가 큰일 나겠어.”
“좀 알기 쉽게 말해야 알아듣지.”
따라온 한의원이 다시 퉁퉁거렸다.
“장군님이 해주시는 말씀인데 내가 어떻게 풀어?”
청담동 처녀 보살이 한의원을 째려봤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서라는 것 아닙니까?”
“그리 볼 수도 있지.”
“바람이 부는 쪽!”
청담동 처녀 보살을 신봉하는 장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람몰이는 이희창 후보 쪽이다. 그렇다면…… 흐흐흐!’
여당 쪽에 서겠다는 중년 남자였다.
“다 됐으면 가봐.”
“저 여자는 말끝마다 반말이네.”
“한 의원님, 원래 이런 곳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국회의원인데 저리 어린 여자한테 반말이나 들어야 합니까?”
한 의원이라고 불린 국회의원은 여당 중진 의원으로 4선 의원이었다.
“당신!”
그때 청담동 처녀 보살이 한 의원을 불렀다.
“왜?”
“지은 죄가 크네.”
“그래서? 세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 있어? 이러면 나도 무당 하겠다.”
한 의원의 말에 청담동 처녀 보살이 한 의원을 다시 저주를 하듯 째려봤다.
“지은 죄는 돌아오는 법이지, 아들 때문에 배지 뗄 날 멀지 않았어.”
“뭐라고?”
한 의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국회의원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낙선이고 공천 탈락이며 의원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장군님 말씀인데 귀담아들어. 가서 빌고 빌어. 돌려놓을 것 돌려놓아야 화를 면해. 괜한 사람 가둬 놓고 두 다리 뻗고 몇 해나 편히 잤으면 이제 쪽잠 잘 때도 됐어.”
“이 잡것이 미쳤나!”
한 의원은 찰나의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군님 말씀 안 따르면 후회하게 될 거야.”
“괜한 곳에 왔네. 갑시다, 장 의원님이 가자고 해서 왔지만 나는 이런 미신 안 믿습니다. 신도 없는 세상에서 귀신이 어디에 있어?”
한 의원이 문을 박차고 나갔고, 청담동 처녀 보살을 철석같이 믿는 장 의원은 청담동 처녀 보살을 바라봤다.
“나도 벼락 맞습니까?”
“못된 놈 옆에 있으면 당연히 맞지.”
“그렇군요.”
장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것을 데려와서 신빨만 떨어지게 만드셨네, 쯧쯧!”
여전히 도도한 청담동 처녀 보살이었다.
“미안합니다. 저럴 줄은 나도 몰랐어요.”
“바람이 부는 곳의 반대에 서.”
눈빛이 변하는 청담동 처녀 보살이었다. 마치 한 의원이 있어서 해주지 않은 말을 지금에서 해준다는 눈빛을 장 의원에게 보였다.
“예?”
“바람이 거칠게 불면 다 날려 버리지. 그게 이치잖아.”
“그, 그럼 이번에야말로……?”
“나는 그런 거 몰라. 그냥 그렇다고 하시네.”
“혹시 이니셜이라도……?”
장의원의 부탁이 청담동 처녀 보살은 묘한 미소를 보였다.
“D~”
“아, 나는 조 보살만 믿습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네.”
이 정도면 거의 맹신 수준일 것이다.
‘지금 둥지를 옮기면…….’
여당에서 야당으로 옮기면 철새 소리를 떠나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장 의원이었다.
“그럼 이만 갑니다.”
“자주 오지 마, 협잡꾼 점괘 봐주면 신빨 떨어지니까. 돈도 좋지만 지치네.”
“하하하, 또 그런 소리 하신다.”
장 의원은 웃으며 밖으로 나갔고, 청담동 처녀 보살은 백범 모친이 놓고 간 백범의 사주를 서랍에서 꺼내 놓고 문을 박차고 나간 한 의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사주랑 그 관상이랑 왜 상극이지?”
청담동 처녀 보살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보살님.”
그때 밖에서 서무를 보는 남자가 조심히 들어섰다.
“오늘은 끝이야, 신빨 떨어져서 더는 못 봐.”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용필이한테 오늘 저녁에 가겠다고 그래.”
“스페이스A로 가십니까?”
“춤이라도 춰야 떨어진 신빨을 다시 올리겠어.”
“예, 용필이에게 전화해 놓겠습니다.”
이 조용필이가 가수 조용필은 절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웨이터 조용필일 것이다.
* * *
정신병원 면회실.
정신병원에 오기 전, 고급 양주 판매점에 들려서 작은 샘플 양주를 하나 사서 주머니에 넣고 왔다.
“휴우…….”
둘째 처남은 내 앞에 앉아 나를 한없이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둘째 처남의 눈 밑은 휑했고, 며칠 사이에 살이 쏙 빠진 느낌이다.
“매형, 매형, 나 좀 여기서 빼 줘요. 다시는 술 안 마실게요. 정말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둘째 처남은 알코올 중독 초기와 분노 조절 장애 판정을 받았다.
“정말 미치겠어요. 답답해 죽겠고, 막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정신병원은 창문에 창살이 있다. 그러니 뛰어내리고 싶어도 못 뛰어내린다. 난 이 정신병원에 꽤 많은 비용을 지불했기에 둘째 처남은 특별환자로서 밤낮으로 두 명 이상의 직원에게 극진한 감시와 간호를 받고 있었다. 말 그대로 둘째 처남은 죽고 싶어도 죽을 기회도, 틈도 없다.
‘애걸복걸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사람은 원래부터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다. 그러니 이렇게 격리되면 처음에는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게 둘째 처남이 정중하게 애걸복걸하는 것은 내게 심하게 맞았던 기억이 있고, 이 면회실에는 우리 둘만 있기 때문이다.
“빵집은?”
둘째 처남에게 이 말 저 말 할 것 없다. 순순히 이곳에 들어온 것은 모두 그 아가씨 때문이다. 물론 내게 죽도록 맞아서 반항할 수도 없었다.
“아…….”
온몸을 부르르 떠는 둘째 처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