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31화 (31/415)

# 31

31화 우리, 피임 안 하기로 했다.

“정말 맛있네요, 호호호!”

된장찌개를 끓일 때 간도 안 본 모양이다.

‘라면 수프의 힘은 위대하다.’

내가 먹어 봐도 감칠맛이 정말 제대로다. 그렇게 우리는 된장찌개와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밑반찬으로 맛있게 식사했다.

“은혜 씨.”

“예, 백범 씨.”

“공부하느라 힘들죠?”

막내 처남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기 전에 먹을 만한 음식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줄 모르고 공부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도 나가 봐야 해요…….”

오늘은 3월 8일이고, 토요일이기에 내게 미안해서 저렇게 말꼬리를 흐리는 은혜다.

‘늦는다는 의미겠지.’

1997년은 주 5일 근무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러니 어제처럼 아침부터 나가 늦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 미안해서 저리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다.

“공부해야죠. 그 어려운 공부도 해야 하는데 제 식사까지 챙기니 힘드시죠?”

내 말에 찰나의 순간 은혜가 진짜 힘든 것은 자꾸 짐승처럼 덤벼드는 나라는 눈빛을 보였다가 나를 보며 웃어 보였다.

‘찔리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포기할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신혼이고, 내가 워낙 정력가라서 내 의지로는 안 될 일이다.

‘밥 먹었는데 금방 배고프다는 느낌!’

딱 그 말로 설명이 된다. 그게 아니면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체 구조상으로는 먹히는 거지만, 흐흐흐!’

나도 남자라서 야한 생각이 떠올리며 미소를 보였는데 찰나의 순간 은혜 씨는 ‘또?’는 눈빛을 보였다가 설마 30분 전에 했는데 또 덤비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요. 음식을 해주는 아주머니를 구할까 합니다. 물론 그 아주머니가 청소도 해주실 거고요, 기타 일도 도와주실 겁니다. 제 생각은 이런데 은혜 씨 생각은 어떠세요?”

오늘은 내 정력(?)과 라면 수프로 은혜의 된장찌개를 환골탈태를 시켰다. 하지만 매번 이럴 수는 없다.

물론 은혜가 만드는 음식이 맛없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도 음식 솜씨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법연수원 생활을 하는데 음식을 못하니 요리 학원이라도 다니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가혹할 것이고, 은혜 씨가 그만큼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 내게도 가혹한 선택이 될 것이다.

‘임을 봐야 뽕을 따지~’

하늘을 봐야 별을 따고.

지금 당장은 은혜 씨가 직접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내 옆에 벗겨 두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흐흐흐, 남는 시간에는!’

서로를 탐닉하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백범 씨, 저는 내조와 공부 둘 다 병행할 수 있어요.”

은혜 씨가 말했고 나는 ‘당신은 정말 음식을 못합니다.’라고 말할 뻔했다가 미소를 보이며 은혜 씨를 봤고, 은혜 씨도 내가 웃기에 따라 미소를 보였다.

‘내가 웃으면 은혜도 웃는다.’

이것이 신혼의 행복이리라. 그리고 나는 은혜 씨에게 그 만큼의 믿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은혜 씨, 슈퍼맨과 슈퍼우먼은 영화에서나 존재하는 겁니다.”

“예?”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고요. 제가 아마 슈퍼맨이었다면 인생이 참 피곤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멀리도 보이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도 너무 잘 들리니 챙겨야 하고, 나서야 하니 매일매일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훌륭한 판사님이 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셔야죠.”

물론 은혜 씨가 판사로 임용되려면 형님을 교도소에서 꺼내놓는 것이 1차 급선무다.

“저는 괜찮은데…….”

“제가 이렇게 부탁할게요. 은혜 씨는 공부하면서 저만 봐주세요. 그렇게 웃으면서요.”

환생하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닭살 멘트를 날릴 수 있는 녀석인지 정말 몰랐다. 그때는 항상 딱딱한 말투와 경직된 표정으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며, 부정하며 현실에 대처하며 살았다.

‘그래야 했으니까.’

많이 가지고 싶었고 남보다 위에 서고 싶어서 악착같이 발버둥을 치며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며 살았었다.

‘타인의 목숨도 하찮게 생각을 했었지.’

훈장을 받기 위해 전멸할 줄 알면서도 돌격 명령을 내렸던 나일 정도였고 그것을 내 야망이 아닌 반드시 해내야 하는 명분을 만들어 사람들이 내게 속는지 모르게 속였었다.

‘그런 삶은 이제 싫다!’

이번 생은 그리 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자가 할 일은 여자가 해야죠.”

1997년대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다. 그리고 그런 사회라는 것을 꽤 많은 여성이 깨치지 못하고 있고, 은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혜 씨, 저는 여자든 남자든 할 일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혜 씨가 바쁘면 제가 요리하고 설거지할 수 있고 집 청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을 못 하게 되어 실업자가 되면 판사님이 되신 은혜 씨가 저를 먹여 살릴 수도 있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몰랐네요. 백범 씨가 남녀평등 주의자라는 것을요.”

미소를 보이는 은혜다.

“남녀는 절대 평등하지 않습니다. 평등이라는 의미가 참 포괄적으로 쓰이는데, 남녀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서로가 그 차이를 확인할 때 동등해집니다. 남녀 지위 동등이라고 해야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은혜 씨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은혜 씨가 지금은 연수원 1년 차라서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2년 차가 되면 정신없이 바쁠 겁니다. 집안일을 하면서 출근해서 공부도 하면 결국 제게 소홀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게 좀 더 충실해 달라고 제가 지금 떼를 쓰는 거죠. 제 부탁대로 일해 주시는 아주머니를 고용합시다.”

나는 국이나 찌개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런데 은혜는 정말 음식을 못한다. 그러니 내가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당신은 저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아요. 저를 위해서 파출부 아줌마를 쓰는 것도 부탁하니까요.”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제는 환하게 웃어 보이면 끝이다.

“예, 알겠어요. 정말 이런 배려까지 해주셔서 고마워요.”

“부부끼리 고맙다는 말 자주 합시다. 제 부탁 들어 줘서 저 역시 고맙습니다.”

이렇게 가끔은 이렇게 진실(?)이 왜곡되거나 숨겨져도 좋을 때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맛난 요리를 먹으면 되니까.

“그리고 은혜 씨.”

“예, 백범 씨.”

“제가 의뢰한 곳에서 막내 처남을 찾았답니다.”

내 말에 놀라는 은혜다.

“정말요? 어디래요? 아픈 곳은 없대요?”

질문을 쏟아내는 은혜다. 은혜 씨로서는 자기 막냇동생이 걱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제가 데리러 갈 생각입니다.”

“어디에 있는데요?”

“여수 인근에 순천만이라는 곳이랍니다.”

염전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까지 해주면 울 것 같다.

“여수까지…… 정말 멀리도 도망갔네요.”

“먼 곳이라서 오늘 출발해서 내일 데려올게요. 처남댁이 홑몸도 아니라 급하게 움직이면 안 될 것 같네요.”

“고마워요.”

또 울먹이는 은혜다.

“또 울려고 한다. 우리 은혜 씨,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네. 하하하!”

“이제는 안 울게요.”

큰 눈망울이 촉촉한데 나를 위해 웃어 보이는 은혜다.

“하여튼 처남댁과 같이 있다고 하니 데리고 올게요.”

처남댁이라는 말에 은혜 씨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은혜 씨, 처남댁이라는 호칭이 싫으세요?”

“싫은 것보다 걱정되네요. 그리고 좀 가엽기도 하고요.”

막내 처남이 아니라 선희라는 처남댁이 가엽다고 말하는 은혜 씨다.

“19살이면 정말 친구들과 쫑알거리며 어울릴 때인데 이제는 그 흔한 나이트클럽도 한번 못 가겠네요.”

은혜 씨는 마치 넋두리를 하듯 말했다.

‘당신이 그랬겠구나.’

나는 이 순간 은혜 씨가 가여웠다.

-저는 공부를 참 잘했고, 공부밖에는 할 수가 없었어요.

가난했기에 은혜 씨의 공부에 아무 지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은혜는 다른 여고생과 다르게 정말 공부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공부했을 것이다. 그러니 친구를 사귈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 흔한 롤러장도 한번 못 가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올케가 될 19살짜리 처남댁이 가엽게 느끼는 것 같다.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러니까요.”

은혜 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39살이 되면 태어날 아이가 20살이잖아요. 그때부터 편하게 놀고, 처남이랑 여행을 다니면 좋겠네요. 우리는 아마 그 나이에 열심히 아이를 키우고 있을 건데 말이죠. 하하하!”

“백범 씨.”

그때 은혜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왜요?”

“아이 가지고 싶으세요?”

“그러고 싶지만, 은혜 씨가 사법연수원도 다녀야 하고, 판사로 임용도 돼야 하고, 좀 그러네요.”

“아니에요. 저도 노력할게요.”

은혜는 24살이다. 만약 올해 임신해서 내년에 아이를 낳는다면 25살이고, 은혜가 45살이면 나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재력을 확보해 놨을 테니 그때부터 제2의 신혼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 아이를 가지겠다고요?”

“저도 아이를 거부한 적은 없어요. 때때로 피임을 하지 않을 때가 많았고요.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그런지 임신이 잘 안 돼서 백범 씨에게 미안해요.”

말이라도 고맙다. 아마 은혜가 임신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도 나만큼 기뻐하실 것이다.

“뭐가 미안해요? 그 부분은 미안할 것도 없어요. 또 부부끼리는 고맙다는 소리는 해도 미안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가 좀 더 노력해 보죠. 하하하!”

내 말에 은혜가 눈을 흘겼다.

‘임신이 되려면!’

당연히 오늘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그러려면 은혜 씨는 옷을 입은 시간보다 벗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니 당연히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기에 저렇게 좋으면서도 내게 눈을 흘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겠지.’

막내 처남의 나이는 22살이다. 그리고 처남댁이라고 부른 아가씨의 나이는 19살이다. 사실 엄마, 아빠가 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 포기할 것도 많은 나이다.

“은혜 씨.”

내 표정이 갑자기 변하자 은혜 씨는 내가 자기한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알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쪽에서는 우리가 가난해서 결혼을 반대했었죠. 그런데 이제 처지가 바뀌었습니다.”

“우리라고요?”

“우리잖아요.”

“고맙게도 그러네요. 우린, 정말 우리네요.”

은혜 씨에게는 우리라는 단어가 정말 믿음직하게 들리고 행복 자체의 단어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처지가 바뀌었으니 우리 쪽에서도 처남댁이 달가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처가가 곧 판사 집안이 될 것이고, 사위는 재산이 엄청나게 많죠. 무엇보다 저는 막대 처남이 아빠가 되는 것도 좋지만 다시 공부하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부정적인 뜻을 담아 은혜에게 말하자 은혜 씨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백범 씨.”

“예, 은혜 씨.”

“그것을 우리가 결정해도 될까요?”

“예?”

“우리가 함부로 결정지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은혜 씨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군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막내 처남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죠.”

모든 선택은 결국 각자가 내리는 것이고, 그 책임도 각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은혜 씨가 나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내가 은혜 씨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모두 각자의 선택으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은혜 씨는 막내 처남과 처남댁의 인생을 우리가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

“고마워요. 이해해 주셔서.”

* * *

청담동에 있는 용하다고 소문이 난 처녀 보살 무당집.

고운 색동옷을 입은 20대 여자 무당이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아서 외운 사주를 풀고 있었다.

‘익숙한 이 느낌은 뭐지?’

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20대 여자 무당의 앞에는 백범의 모친이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20대 여자 무속인의 외모는 놀랍게도 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백범의 모친은 20대 무당이 신이라는 듯 두 손을 비비며 빌었다. 갑자기 20대 여자 무당이 감았던 눈을 떴다.

“급해, 급해, 왜 이렇게 급해?”

“제가요?”

“뭐가 그렇게 급해서 우물에서 숭늉을 찾아.”

“보살님, 무슨 말씀이세요.”

“궁합도 안 보고 혼례를 올렸는데 이리 궁합이 좋아, 그러니 걱정할 일이 없는데 왜 달도 안 찼는데 뭐 이리 급해?”

“그런가요.”

백범의 모친은 미소가 머금어졌다.

“부부 금실에 속궁합까지 딱딱 맞네, 호호호. 그쪽 며느리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 그래서 이생에서 복을 받았네.”

20대 무속인의 말투는 낭랑했고 여자 보살이 무속인이 아니었고 백범이 유부남이 아니었다면 백범 모친은 탐을 낼 정도의 미모였다.

“우리 아들은 어떤가요?”

“그쪽 아들은 며느리만 꼭 품고 있으면 모든 화를 피할 팔자야, 결혼 후에 변했지? 한 번 죽어서 환골탈태를 했어.”

“예, 맞아요. 결혼 후에 사람이 달라졌어요.”

“그러니까, 둘은 서로 상생해서 황금을 깔고, 봉황을 품고,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닐 사주야. 호호호, 이런 상생의 사주는 또 처음 보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뭐가 고마워?”

“예?”

“내가 부적을 써 줬어, 굿을 해줬어? 그냥 아는 것을 알려 준 것이 전부인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집 청소나 해 놔!”

“왜, 왜요?”

“식구가 늘겠네.”

20대 여자 무당의 말에 표정이 한없이 밝아지는 백범의 모친이었다.

“정말요?”

“곧 식구가 늘어나겠어.”

“딸인가요? 아들인가요?”

백범 모친의 질문에 20대 여자 무당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백범의 모친을 봤다.

“딸이야.”

딸이라는 말에 백범의 모친은 살짝 실망한 눈빛을 보였다.

“그런데 데리고 들어오는 딸이네.”

“예?”

20대 여자 무당의 말에 백범의 모친이 기겁했다. 이 순간 백범의 모친은 자기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 파락호로 지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니 얼른 가서 방이나 치워!”

“……예.”

“왜 표정이 그래? 싫어?”

“싫은 것이 아니라…….”

20대 여자 무당의 말에 백범의 모친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싫어도 어쩔 수 없어, 팔자야, 팔자. 늘어난 식구 떠받들고 모셔. 그래야 액운이 없어.”

“그렇게 나쁘다는 거죠?”

“쯔쯔쯔, 무당도 아닌 것이 작두를 타네. 타. 얼른 가, 청소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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