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화 신혼부부의 아침과 라면수프?
방파제 앞 횟집.
할아버지를 따라 은철은 할아버지가 잡은 우럭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선희와 함께 횟집까지 따라왔다.
“할아버지, 여기는 왜요?”
선희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바꾼다.”
“예?”
할아버지의 뜬금없는 말에 선희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저기요!”
할아버지가 횟집 문을 열고 사람을 찾았고,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할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사람 좋게 생긴 할머니가 나왔다.
“김 상사 왔어요?”
사람 좋게 생긴 아주머니는 할아버지를 김 상사라고 불렀다.
“군인이셨나 봐.”
할아버지의 뒤에 서 있는 선희가 은철에게 속삭였고, 고개를 끄덕일 때 할아버지가 돌아서서 은철이 들고 있는 찌그러진 양동이를 받아 다시 돌아섰다.
“이거 받고, 줘.”
“누굴 주려고 그 비싼 바나나를 구해 오라고 했대?”
“많이 잡았다.”
“아이고 많이도 잡았네, 힘도 안 드시나? 염전에서 그렇게 일하고 피곤할 건데, 쯧쯧!”
할머니는 김 상사 할아버지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줘, 줘요, 줘.”
“알았어요, 알았어.”
할아버지가 재촉했고 할머니는 웃어 보이며 주방으로 갔고 바나나 한 송이와 담배 한 보루를 가져와서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그 고얀 영감탱이 보면 또 다 빼앗아가니까, 담배는 여기에다 두고 한 갑만 가져가요.”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은철은 염전에서 할아버지를 모질게 구타를 했던 염전주인이 떠올라 인상을 찡그렸다.
‘비겁했다.’
오갈 때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모질게 매를 맞는 할아버지를 외면했던 자신이 떠오른 은철이었다.
“꽃분이 고맙다.”
“호호호, 그래도 내 이름은 안 잊었네, 그런데 김 상사, 바나나가 먹고 싶었어?”
할머니가 다시 할아버지를 김 상사라고 부르며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선희에게 바나나를 줬다.
“야야, 이거 먹고 싶었지? 먹어.”
“저, 저 주시는 거예요?”
선희와 은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파제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자연산 우럭을 잡은 것이 모두 자기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은철은 할아버지께 미안해졌다.
‘비겁했는데!’
은철은 그런 자신이 싫어졌다.
“야야, 먹어, 먹고 싶었잖아.”
은철보다 더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선희였다.
‘어떻게 알았지?’
이곳에서 선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선희와 은철은 뜨내기라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선심을 쓰듯 골방을 내어준 염전주인이 흑심 가득한 눈으로 자기를 볼 때가 가끔 있지만, 그 정도는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선희였다.
“야야, 먹어라, 맛있어 보인다.”
할아버지는 또 선희에게 야야라고 불렀다.
“아이고, 전쟁 통에 죽은 마누라 생각이 났나 보네, 쯧쯧, 나라에서 훈장을 받으면 뭐 해?”
아주머니가 김 상사 할아버지를 보며 가엽다는 듯 혀를 찼다. 하여튼 그렇게 선희는 김 상사 할아버지 덕분에 비싼 바나나를 먹을 수 있었다.
* * *
세상에 완벽한 여자는 없다.
공부도 잘하고, 성적 매력을 풍기고, 남편에 대한 욕망까지 충족시켜 주는 은혜지만 음식 하나만은 정말 못한다.
‘먹어 봐야 맛을 알고……!’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장모께서 만드는 것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은혜가 어릴 적에 백 서방 자네 장인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그 이후로 장모께서는 식당 일이며 파출부로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그러니 네 남매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음식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침을 준비할 때마다 나를 위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아침을 준비하는 그녀고, 아침 식사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식전 땡(?)도 했지만 그래도 은혜는 완전무결한 결점이 없는 여자는 아니다.
‘된장찌개에 무엇을 넣은 걸까?’
보통 맛없는 된장찌개는 짜거나 심심한데, 은혜가 만든 된장찌개는 달다.
진짜 달다.
“된장찌개는 맛이 어때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는 은혜는 내가 된장찌개를 떠먹자마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간을 보는 것도 빠트린 모양이군.’
내가 먼저 먹기를 잘한 것 같다.
“맛있네요. 이런 된장찌개는 처음 먹어 봅니다.”
소금과 설탕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요리를 못하는 여자가 바로 내 아내 은혜다. 정말 이런 맛의 된장찌개는 난생처음 먹어 본다.
-밥은 얻어먹고 다니는 거니?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공부만 하느라 요리하는 것을 배웠겠어?
시어머니는 역시 시어머니고, 슬쩍 은혜를 까는 어머니셨다. 이래서 ‘시’자는 ‘시’자 인 것이다.
‘그러게요, 애매하게 얻어먹고 다니네요.’
내가 본가에 갔을 때 차려 준 밥상을 게 눈 감추듯 먹은 이유가 이런 것이다.
“휴, 다행이다. 호호호!”
내가 맛있다고 말하자 그제야 안심하는 은혜다. 이것은 자신도 요리를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라면은 정말 잘 끓이지.’
그래서 가엽다.
어릴 적에 라면만 먹고 자랐을 것이다.
-라면은 제가 정말 잘 끓여요.
은혜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고 그때 은혜가 맛을 보려고 된장찌개에 숟가락을 넣었다.
“은혜 씨, 나 물 좀 줘요.”
떠먹으면 자신이 만든 된장찌개가 어떤 맛인지 알 것이고, 그래서 내게 미안해할 것이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만들었지…….’
나는 은혜가 자신의 요리 실력에 실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잠깐만요.”
은혜는 여전히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은혜를 보며 남자이기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은혜가 된장찌개를 못 먹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내게 미안하고 부끄럽지 않아 할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은혜는 식탁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고, 나는 은혜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를 따라가 뒤에서 살포시 안았다.
“또요?”
은혜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내 남편, 정말 짐승이라는 눈빛인데, 또 그게 싫지 않은 눈빛이다.
“좋잖아요.”
하여튼 이 몸뚱이에 고마울 따름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정력 하나는 타고났으니까.
이런 정력을 가졌으니 개망나니로 살았을 때 정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질질 싸고(?) 다녔을 것이다.
‘혹시?’
순간 나도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백범이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스쳐 지나갔고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진짜가 싸놓은 똥을…….’
가짜가 채워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떠오르는 여자만…….’
한 다스다.
만약 그 여자 중의 한 명이라도 임신해서 출산했다면 골치 아프고 은혜에게 미안해지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그럴 수도 있어.’
결국은 시한폭탄 하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본의가 아니지만…….’
내가 백범이 되었다.
그러니 본의가 아니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전화번호도 바꿨다. 물론 전에 쓰는 휴대전화는 해지하지 않고 내 서재 서랍에 넣어 뒀다.
결혼하고 나서도 수많은 여자가 전화를 걸었고, 문자를 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바꿔 버렸다.
하여튼 시간을 내서 그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확인해 봐야겠다.
시라도 처리해야할 실수한 일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정말 있다면 은혜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된장찌개를 처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주방에 혼자 남아야 한다.
그러니 섹스밖에 없다.
“당신은 정말 모든 면이 완벽한 남자예요.”
나는 이미 은혜를 돌려세웠고, 그대로 애무했다. 그리고 이 몸은 여자의 성감대를 정확하게 찾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본능을 가졌고, 말 그대로 선수이기에 은혜는 바로 젖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
그렇게 은혜의 몸은 이제 남자를 제대로 아는 몸이 되었다.
이것은 짧은 신혼 동안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밤낮으로 은혜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풍 같은 신혼부부의 또 한 번의 러브(?)가 절정으로 향했고, 아침에 한 번 해서 그런지 관계 시간이 평소보다 더 길었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고, 결국 나는 오늘도 법률 공부에 몰두해야 하는 은혜를 아침부터 녹초로 만들어 버렸다.
‘일단 1단계 작전은 성공이고…….’
주방에서 간신히 일어난 은혜의 다리가 덜덜 떨린다. 그리고 내 무릎은 다 까졌다.
“저, 저 씻고 된장찌개 다시 데워 드릴게요.”
말까지 더듬는 은혜다. 여운이 아직 남은 것이다.
“나도 씻어야겠네요.”
“……예.”
은혜는 내게 대답하고 안방 화장실로 들어갔다.
쫘아악!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뿜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식탁에 놓아둔 된장찌개를 싱크대로 가져가서 국물만 버리고 물을 부어 다시 끓였다.
‘라면 수프!’
그리고 소금을 찾아내서 간하고, 감칠맛을 위해 만능 조미료인 라면 분말 수프를 하나 뜯어 넣었다. 이거면 웬만한 음식은 간이 맞는다. 거기다가 화학조미료의 맛 때문에 감칠맛까지 생긴다.
‘이제는 시간과 싸움이네.’
여자는 남자보다 샤워 시간이 길다. 남자는 군대라면 1분이면 샤워를 끝낼 수 있고, 보통은 5분이면 끝낸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그러니 은혜가 샤워를 끝내기 전에 된장찌개가 끓을 것이다.
* * *
끓은 된장찌개를 다시 식탁에 놓고 맛을 봤다.
‘라면 수프의 힘은!’
그저 위대할 뿐이다.
“이제 샤워만 하면 되겠군.”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 번호를 확인하니 김 비서다.
‘찾았군.’
그리고 보니 김 비서가 말한 일주일이 거의 다 됐다.
딸깍!
“전화 받았습니다.”
-대표님, 김 비서입니다.
“찾았군요.”
-예, 그렇습니다. 대표님의 막내 처남 되는 분을 찾았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막내 처남과 처남댁은 정말 꼭꼭 숨었다.
“어딥니까?”
-대표님 아파트 앞입니다.
엉뚱한 대답이지만 농담은 아닐 것이다.
“아니, 김 비서 말고 막내 처남은 어디에 있냐고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죄송합니다. 두 분 다 전라남도 여수 인근 있습니다.
“여수요?”
참 멀리도 도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간절했을 것이고 사실 나는 막내 처남이 괜찮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에는 막내 처남댁 배 속에 있는 태아를 지키려고 그렇게 사랑의 도피를 했으니까.
-그렇습니다. 사채업자 쪽에서 곧 출발할 거라고 합니다.
“서울에서입니까? 아니면 여수입니까?”
-여수입니다.
김 비서가 말한 사채업자의 사람 찾는 능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쓸모가 있겠어.’
가능하다면 옆에 두고 써야겠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내가 나를 빛으로 포장할 때 내 주변 어두운 곳에서는 나를 반짝이게 하려고 움직여야 하는 검은 그림자들은 반드시 존재하니까. 그리고 이제는 부릴 손이 많아져야 할 때니 밝은 곳에서 나를 보좌할 사람은 서울대 출신자들로 하고 어두운 곳은 사채업자를 비롯한 사람들 써야겠다.
“그럼 대기하라고 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불쑥 나타나면 처남댁이 놀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제가 직접 가야겠습니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기시켜 놨습니다.
그렇다면 숨어 있는 위치도 확인해 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주소도 이미 받았겠군요.”
-그렇습니다. 여수 인근 순천만 별량염전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수에 염전이 있다고요?”
-예, 순천만 별량염전입니다.
“우리 막내 처남이 염전에서 일한다고요?”
아마도 자기 여자를 책임지기 위해 염전에서 일하는 것 같다.
‘염전일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닐 건데.’
살짝 걱정이 되는 순간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여수로 내려간 것은 아닐 것이다.
정신없이 도망쳤을 것이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을 것 같다.
아마 그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이 여수였을지 모른다.
하여튼 막내 처남은 사랑꾼이면서 책임감도 강하기에 마음에 든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1시간 정도 기다려 주십시오. 식사 전이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은혜가 만든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어야 하기에 김 비서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대표님.
김 비서의 목소리가 살짝 변했다.
“예.”
-지시하시면 될 일입니다. 과도한 배려는 부하 직원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저는 대표님에게 상당한 연봉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제게 이러시면 저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군요. 기다리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뚝!
그렇게 통화가 끝났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은혜가 옷을 챙겨 입고 주방으로 나왔다. 아마도 오늘 아침은 더 이상의 신혼부부 섹스가 없을 것으로 속단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으흐흐!’
나는 정력 하나는 타고난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