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28화 남보다 못한 사촌 새끼?
강북 스페이스 룸살롱 특실.
사촌 형 새끼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술판을 거하게 벌였고, 테이블 위 쟁반에는 자기가 한 번도 벌어 보지 못한 돈을 깔아 놓고 알랑거리는 호스티스들에게 뿌리고 있었다.
‘저게 다 아버지 돈이지.’
작은고모가 아버지께 징징거려서 얻은 돈이다. 하여튼 아버지는 농사만 짓고 사셨지, 돈 제대로 쓴 적이 없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빨대를 꽂는 것 같다. 더 기가 차는 것은 작은고모는 서울에 5층짜리 상가 건물을 가진 건물주인데 여전히 틈만 나면 뜯어가지 못해 안달을 부리고 있다.
“범이, 왔어?”
사촌 형인 종수 새끼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박종수 개새끼!’
사촌지간이고 또 형이라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개새끼다. 거기다가 거지 근성도 특출한 새끼다.
“아가씨들, 쟁반 챙겨서 나가세요.”
쟁반 위에는 대충 봐도 100만 원 정도 깔린 것 같다. 그리고 내 말에 아가씨들이 놀란 표정으로 돈이 깔린 쟁반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저 아가씨들은 모두 나를 아는 눈빛이다. 그리고 진짜 백범의 기억에도 저 아가씨들이 담겨 있었다.
하여튼 아가씨들이 돈이 깔린 쟁반을 챙겨 나갔다.
“그래, 조용하게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내보낼 참이었어.”
“종수 형.”
이 새끼는 아직도 내가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니 제대로 알려 줘야 할 때고, 그래야 귀찮은 일이 줄어든다.
“왜?”
“혼자 놀면서 아가씨들을 넷이나 불러?”
“짝 맞추면 서먹서먹하잖아. 이것도 주물러 보고, 저것도 쓰다듬어 보고, 하하하!”
나는 망할 새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양주병과 맥주병을 번갈아 봤다.
‘비싼 거로만 처먹었네.’
양주병으로 까면 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말로 해서는 안 될 것에게 말로 하는 놈이 병신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 역시 내가 아니 이 몸뚱이가 개망나니로 살았기에 당연히 따라올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어울렸고!’
같이 즐겼다. 그리고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같이 쳤고 그때마다 작은고모는 돈을 벌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왜 보자고 했는데?”
오늘 기분 제대로 더러운데 종수 형 저 새끼가 제대로 방점을 찍을 것 같다.
“범아, 이 형이 정신 차리고, 이제부터 정치하기로 했다.”
“정치?”
기가 찰 노릇이다.
누가 저 개망나니의 허파에 바람을 넣었을까?
누가 또 내 할아버지의 이름을 들먹였을까?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리에 맴돈다.
“그제 여당에서 다녀갔다. 시즌마다 항상 인사하러 오고 그래서 내가 답을 주기로 했다.”
“형한테? 아니면 우리 집에?”
“하하하,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총선이 있을 때면 가끔 여당에서 찾아온다.
물론 아버지께 출마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유공자이신 할아버지의 후광을 받으려고 지지를 부탁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일자무식 농사꾼이라서 정치는 모른다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냈었다.
‘벌써 시즌이 됐구나.’
곧 선거철이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총선과 함께 대선이다. 정치인들은 아마 강아지가 표를 물고 있으면 강아지에게도 넙죽 절할 놈들이다. 그리고 당선되면 잘도 꺾이던 목이 깁스한 듯 뻣뻣해지고 4년 또는 5년 동안 국민 위에 군림하며 산다.
-백범 대표, 정치할 생각 없나?
야당 중진 의원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 야당 중진 의원이 내게 직접 제안했다.
‘오늘 하루 정말 길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이 형이 외할아버지 후광 좀 받아서 여의도에 입성하겠다는 거지.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정치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해.”
사람들은 꼭 이렇게 좋을 때만 우리를 찾는다. 그리고 이익이 없을 때는 남보다 더할 때가 많다.
“여당에서 형한테 공천은 준대?”
정치인들의 목숨 줄은 선거 공천이다.
“그래서 어제 어머니랑 같이 삼촌한테 갔는데, 네가 외삼촌의 그 많은 돈을 다 가져갔다면서?”
표정이 바뀌는 종수 형이다. 아버지께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내가 사업하기 위해서 돈을 다 받아갔다고 작은고모에게 말씀하신 모양이다.
‘100억도 잘 받아 놨지.’
받아 가지 않았다면 아버지께서는 작은고모가 징징거리면서 울고불고하면 얼마를 뚝 떼어 내줬을 것이다.
‘아예 없는 것도 아니면서!’
5층 상가 건물주라서 작은고모와 저 새끼가 더 괘씸했다.
하여튼 내게는 두 명의 고모가 있는데 큰고모는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신다.
정말 필요할 때만 오고, 딱 필요한 돈만 빌려 가신다.
정말 뜯어가는 것과 빌려 가는 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큰고모와 작은고모다. 그래서 큰고모 집의 형과 누나는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고 살고, 때가 되면 항상 고맙다고 우리 집에 찾아오신다. 하지만 저 새끼랑 작은고모는 뜯어낼 구실이 생기면 온다.
“돈으로 정치하겠다고?”
“다들 그렇게 시작하잖아. 처음에는 다 그렇게 한다네.”
누군가가 정치에 ‘정’자도 모르는 새끼한테 바람을 넣은 것 같다.
제대로 욱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보고 돈 달라고?”
“좀 도와주라. 이 형이 금배지 달면 네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형이 이번 총선에 여의도 가는 길을 잘 닦아놓으면 너도 다음에 형 따라서 오면 되잖아. 돈이 있으니 이제는 명예도 가져야지.”
국회의원 선거를 초등학교 반장 선거쯤 된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사촌 형이다.
“형.”
“왜?”
나를 보며 비릿하게 웃는 종수 형이다.
“작은고모가 아버지한테 뜯어낸 돈이 한두 푼이 아니야. 그 돈으로 구입한 강남 아파트랑 상가를 팔면 형 정치자금으로는 충분할 것 같은데?”
이런 말을 하면서 종수의 호구였던 진짜 백범의 기억이 떠올랐다.
“뜯어내?”
“아닌가?”
“졸부인 오빠가 가여운 여동생한테 편히 살라고 한밑천 떼어 준 것이 뜯어낸 거야?”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를 졸부라고 말했고, 욱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형.”
“그러지 말고 한번 도와주라.”
“나 어릴 적에 아버지랑 똥지게 맬 때도 형은 자동차 타고 다녔어. 그렇게 자동차 타고 외가에 놀러 와서 우리 아버지한테 냄새난다고 코 막고 그랬지? 그때는 작은고모가 더 잘살았어.”
사실 우리 집은 졸지에 졸부가 된 집이다. 물론 그래서 졸부소리를 듣는 것이다.
“옛날 일은 왜 꺼내고 그래.”
“이젠 작작 좀 하라고. 거머리처럼 왜 이렇게 달라붙어?”
처음으로 종수 형 새끼를 매섭게 노려봤다.
“뭐?”
“이제 작은고모도 갑부 소리 듣잖아. 그런데 형의 정치에 왜 우리 아버지가 돈을 내놓아야 해?”
대한민국 국민이 대기업의 낙수효과는 못 누려도 작은고모는 아버지가 졸부가 되고 제대로 덕을 봤다.
“와, 범이, 너 많이 변했네.”
여전히 감을 못 잡고 있는 종수다.
“변했지, 그리고 정치는 아무나 해?”
“야, 나도 독립유공자 후손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아직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하고, 외가가 독립운동가라는 후광만으로는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저런 인간이 국회의원이 되면 할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할 것이 분명했다.
“들은 것처럼 아버지 돈은 내가 다 가져왔고, 이제 형한테 줄 돈은 없어, 그거 말하려고 여기 왔어. 이제는 작작 좀 해라. 전생이 거머리였어? 왜 이렇게 들러붙어?”
“이 새끼가 오냐오냐하면서 봐줬더니!”
내 말에 화났는지 종수 형이 벌떡 일어나 앞에 놓인 맥주가 든 잔을 뿌렸고, 나는 얼떨결에 맥주 따귀를 맞았다.
“어린놈의 새끼가 형한테 말하는 꼴이 그게 뭐야? 싸가지 없게! 너희가 언제부터 부자였다고 유세를 떨어?”
여기까지 참으면 두 번 참는 것이다.
“형.”
“야, 이 새끼야! 친척끼리 돕고 살면 좋잖아!”
“너네는 우리 도운 적 있어? 우리 엄마 교통사고 났을 때 병원비 없어서 쩔쩔맬 때 도왔어?”
기억하기 싫은 것이 자꾸 떠오른다.
‘친척은 거머리일 때가 많다.’
그래서 싫다. 아니, 적당히 까불면 귀찮아서 거지에게 적선하듯 적선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저 새끼는 도를 넘었다.
“그런 적 있냐고, 새끼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나서 소리를 지른 게 아니라 예열하는 것이다.
분위기를 만들고, 절정에 도달했을 때 제대로 찍어 누를 것이다.
“너, 너 지금 형한테 새끼야 라고 했어?”
“그래, 이 개망나니 새끼야! 너는 35살이나 처먹고 왜 그렇게 사냐?”
“이 새끼가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맥주 싸대기도 맞았다. 그러니 이제 내 성깔을 보여 줄 때다.
참을 인 세 개면 호구 소리 듣는다.
“이 새끼가!”
종수를 매섭게 노려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맥주병으로 뚝배기를 까도 되는 명분이 생긴 거지.’
나는 양주병을 잡았다가 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맥주병으로 바꿔서 들었고, 종수 형 새끼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으윽!”
맥주병이 산산이 깨졌고, 종수 형 새끼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서 기절했다.
그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 때문에 웨이터가 급히 들어왔다.
“어…….”
“양동이에 얼음물 좀 담아서 가져다주세요.”
“……예.”
내가 이곳 VIP 고객은 고객인 모양이다. 웨이터도 나를 아는 눈빛이니까.
* * *
웨이터가 양동이 가득 얼음과 물을 담아 왔고, 나는 그 양동이를 기절한 새끼에게 쏟아부었다.
촤아악!
룸살롱에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으으윽……!”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새끼다. 그리고 깨어나자마자 덜덜 떨면서 잔뜩 겁먹은 눈빛으로 날 봤다.
“정신 들어?”
이제야 내가 눈빛부터 달라진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꼭 이렇게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족속들이 있다.
“범, 범아…….”
내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눈빛을 보이는 종수 형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종수 새끼의 호구였다.
돈이라는 똥이 가득하면 똥파리가 끼는 법이고, 그 똥파리는 종수였다. 사실 둘이 어울리면서 못된 짓도 참 많이 했고, 대부분 작은고모가 수습하면서 합의금이라는 명목으로 아버지께 참 많이도 뜯어냈다. 그리고 합의하고 남은 돈으로 강남 5층 상가도 올렸다. 결국 내가 상가를 지어 준 것이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돌변하니 종수 형이 기겁한 것이다.
“형, 내가 정신 차리고 살기로 마음먹었거든? 그러니 형이 나 좀 도와주라.”
나는 양주병을 들었고, 내 모습에 종수가 화들짝 놀라 몸을 웅크렸다.
맞고 살지 않은 인간들에게는 매가 제일 무섭다. 그리고 맞은 적 없는 매를 맞았을 때 상상 이상의 공황에 빠진다.
“형은 그냥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살아, 형이 무슨 정치를 해?”
“범, 범아, 그러니까, 여당 쪽에서 10억만 가져오면…….”
“공천을 준대?”
“그럴 수 있다고…….”
“그렇다는 것이 아니잖아.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나는 종수를 노려봤다.
“우리 할아버지 이름은 내가 팔아먹고 살기도 바쁘니까 형은 외할아버지 이름 팔아먹고 살지 마. 형은 그냥 살던 대로 살아, 그럼 내가 신경 안 끄고 가끔 챙겨 줄게.”
빌어먹을 것들이라도 그래도 피붙이니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 그랬다가는 아버지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기회가 아주 좋아.”
“아버지 이제 돈 없어. 내가 아예 신경을 끌까?”
“그, 그게 아니고…….”
“그냥 형은 여기서 여자들 주무르면서 살아. 원래 그랬잖아? 네 명이 싱거우면 여덟 명으로 늘려서 놀아. 노는 거 좋아하잖아.”
“나도 이번에는 잘할 수…….”
“형은 절대 잘할 수 없어.”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는 종수다. 이래서 정치는 마약과 같다는 소리가 있다. 남자의 허파에 바람 넣기 딱 좋은 것이 정치다.
“그러니까, 괜히 할아버지 이름 팔고, 우리 아버지 돈으로 뭔가 하려고 하지 말고, 정말 하고 싶으면 거면 형네 엄마 돈으로 하고, 형네 친가 쪽 들먹이면서 해.”
물론 박종수의 친가는 볼품없는 집안이라 샅샅이 찾을 건더기도 없다.
“범, 범아…….”
“형, 남보다 못한 친척은 되지 말자. 알았으면 한 잔 받아.”
내 말에 겁을 집어먹은 종수가 잔을 내밀었다.
졸졸졸, 졸졸졸!
100만 원이 넘는 양주가 잔에 넘쳤고, 겁먹은 종수는 잔을 빼지도 못했다.
“내가 약속하는데, 만약 형이 할아버지 이름 팔아서 정치한다면 절대 그냥 안 둬, 내가 변했다는 것은 이미 느꼈지?”
옛날 같으면 절대 맥주병으로 못 깠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여기저기에 함부로 이름 오를 분 아니잖아? 내 할아버지잖아. 형한테는 외할아버지고.”
“…….”
“다음에 또 쓸데없는 일에 나 부르면 그때는 정말 대가리만 안 깨진다.”
종수 형을 매섭게 노려봤다.
“알, 알았어.”
“뚝배기 깨진 형 때문에 고모가 걱정하는 것은 상관없는데, 괜히 아버지가 걱정하게 만들면 진짜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들었지? 내 손에 600억 있는 거.”
내가 무서운 것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거지 근성 투철한 인간이니 내가 가진 600억에 더 신경을 쓸 것이다.
“으응…….”
“돈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참 무서워요. 어디다 쓰는지 모르고 쓰일 때가 참 많거든.”
종수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고, 종수는 섬뜩했는지 오줌을 싼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막 사라지고 그러더라.”
“범, 범아…….”
“영화를 보면 그렇다고.”
내 말에 그저 덜덜 떠는 종수 형이다.
‘정말 지친다.’
확 그냥 남 같은 친척들 없는 곳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계를 봤는데, 벌써 8시 30분이다.
“나는 이제 갈 건데, 형은 더 마실 거지?”
“나, 나는…….”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주병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에 종수가 화들짝 다시 놀랐다.
“이거 묵직하네. 이걸로 맞으면 정말 골로 가겠어, 애처럼 고자질하기 없기야.”
“……알았어.”
바로 대답하는 종수 형 새끼다.
‘한번 밟아 놨으니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러니 또 언제 기어오를지 모른다. 그래서 자꾸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