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7화 (27/415)

# 27

27화 결국 협잡(3)

서울 강북 금은방.

“아직도 못 찾았어?”

50대 중반의 남자가 금은방 진열대 앞에 껄렁껄렁하게 서 있는 두 아들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찾고 있다니까요. 갈 만한 곳을 다 찾아보고 있다고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배 속 애가 더 큰다고.”

“알고 있다니까요. 백방으로 찾고 있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저도 미치겠습니다.”

백범의 막내 처남의 처가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다.

“아버지.”

그때 아무 말도 없던 둘째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불렀다.

“왜?”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는 것을 이제 아셨죠? 막내라고 오냐오냐하다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 어떠세요?”

“지금 그게 아비한테 할 소리야?”

50대 남자가 둘째 아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데 상황이 좀 달라진 것 같은데요.”

“뭐가 달라져?”

“은철이, 그 새끼 매형이 졸부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졸부?”

“예, 판교, 땅 부자라는 소리가 있어요.”

“그게 정말이야?”

살짝 놀라는 50대 남자였다.

“예, 그리고 저도 어제 알았는데, 걔 누나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답니다. 이렇게 되면 판검사 집안입니다.”

“정말이야?”

“그렇다니까요? 돈 있는 처가에 판검사 누나에, 미운 오리 새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백조네요.”

묘한 눈빛으로 말하는 둘째 아들이었다.

“괜한 헛소문이면?”

“아버지께서 애지중지한 막둥이 인생 망치는 거죠.”

“그게 오빠가 할 소리야!”

50대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는 겁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납니까? 뭐가 있으니까 그런 소문이 나는 거죠.”

“하여튼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네 동생 선희나 어서 찾아, 아휴…….”

50대 남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몰아붙였어.”

홑몸도 아닌데 어디서 고생하고 있을지 걱정되는 선희의 부친이었다.

“찾아, 찾아야 뭐를 하든 할 것 아니야!”

“예, 찾아야죠.”

“말로만 찾지 말고 어서 나가서 찾아보라고!”

“알았다니까요.”

두 아들은 퉁명스럽게 말하고 금은방 밖으로 나갔고, 50대 남자는 두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게 사실이면 우리 선희, 미운털이 제대로 박히겠군. 아휴…….’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게 진짜야?”

금은방 밖으로 나가자마자 첫째 아들이 둘째 아들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나도 소문만 들었어.”

“진짜면 땡잡았네? 히히히!”

“그렇기는 하지. 우리도 선희 시댁 덕 좀 보고.”

“그게 선희 시댁 덕인가? 선희 시댁의 시댁 덕이지. 으흐흐!”

건달과 백수인 두 아들은 자기 좋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꼬맹이들은 어디로 꼭꼭 숨은 거야?”

* * *

오후 6시, 고급 한정식집 특실.

똑같은 봉투에 똑같은 액수의 무기명채권을 여당 중진 의원에게 넘겼다. 야당 중진 의원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다는 포지션을 취하는 여당 중진 의원이다.

‘재수 없다.’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내가 더 재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환생했지만 구태의연한 짓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런 식이고, 정부에 바라는 것이 많은 기업인은 이럴 수밖에 없다.

달라니 준다?

이런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

달라기 전에 주고 있으니까. 양쪽에 똑같이 주면 누구도 내가 선거 자금을 내놓은 사실을 거론할 수 없다. 그리고 내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총선이나 대선 시즌이 되면 중견기업 이상들은 일정 금액을 정치 후원금으로 낼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 사업으로 인터넷 대중화 사업과 함께 태양광 자가발전을 국민에게 보급하겠다는 말씀이군요.”

이 자리 역시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주선만 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여우라니까.’

해당 자리에 없었으니 만약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이 없다. 그것도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자리를 떠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태양광 패널을 생산할 핵심 기술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미국 기업에서 태양광 패널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조건으로 원천 기술을 제공받기로 계약되어 있습니다.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되면 전기 생산에 필요한 원유와 기타 에너지 수입에 드는 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국 핵심은 정부 보조금 아닙니까?”

정경 유착도 경험이기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맥을 짚는 중진 의원이다.

“그렇습니다. 태양광 자가발전 설치비가 상당하기에 자택을 가진 중산층이라고 해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달러 절감을 한다는 발상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아낄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은 달러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기업의 인지도가 높지 않기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보증서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보증서로 태양광 패널을 대량으로 수입할 계획입니다.”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설치비는 얼마나 듭니까?”

이제야 세부적인 것이 궁금한 모양이다.

“1,000만 원 정도 필요합니다.”

“적은 금액이 아니군요.”

“그래서 중산층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번 목돈을 쓰면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다?”

“예, 그렇습니다. 매일 내일의 태양은 뜨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지요. 60년이 지나면 석유가 바닥이 난다니까 장기적으로 본다면 꼭 실행해야 할 국책 사업이기는 하겠군요.”

셰일 가스나 셰일 석유가 주목받지 못하는 시기다. 그러니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의원님.”

“좋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자고 하는 일이니 어르신께 말씀 올리겠소.”

보험용이지만 당장에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997년 3월 4일, 협잡꾼이 됐다.’

오늘 하루를 정의한다면 이 이상의 말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 아내의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

당장 내 아내 은혜가 판사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손위 처남께서 무죄로 풀려나셔야 한다.

‘혹시 모를 뒷감당은!’

나중에라도 내가 하면 된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할 테니까. 하지만 쉽게 밝혀질 일은 아니다.

왜냐고?

양쪽에 똑같이 선거자금을 제공했으니까.

* * *

달리는 자동차 안.

김 비서가 백미러로 나를 흘끗 봤고,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8시다.

“대표님.”

“예, 김 비서님.”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지친다.

오늘 오후 다섯 시부터 시작한 협잡은 저녁 일곱 시에 끝났다. 시간상으로는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말 지치는 일이다.

‘두 정당에서!’

이번 총선에서 간택(?)이 들어올 확률이 높다. 그리고 산업수출은행이 안기부 쪽에 내가 달러를 모으고 있다고 통보했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 지친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서 좀 피곤하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모신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늘이 제일 피곤해 보입니다.”

“김 비서님.”

“예, 대표님.”

“제 제안을 왜 수락하셨죠?”

뜬금없이 그게 궁금해졌다. 김 비서는 법무사다. 그런데 내가 고용을 제안했을 때 잠깐 고민하다가 바로 수락했다.

제안을 수락한 것은 돈 때문이다.

“제가 가장이라서요.”

“가장이라서?”

“예, 모르는 사람들은 법무사라면 돈 많이 버는 줄 아는데, 꼭 그런 것이 아닙니다. 브로커 안 끼고 법원 서류를 대필하거나 대신 작성해 주는 것으로는 애들 공부시키기도 벅찹니다.”

“꿈이 변호사셨죠?”

내 말에 미소를 보이는 김 비서다.

“하하하, 개천의 용은 아무나 되겠습니까? 1차만 3번 합격하고, 2차에서 모두 탈락했습니다.”

“그랬군요.”

“딱 돈 궁할 때 대표님께서 제게 손을 내미셨죠. 그 덕분에 아들놈 조기 유학 보냈습니다.”

“그럼 기러기 아빠군요.”

“예?”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김 비서가 되물었다.

‘아차!’

이 시절에는 기러기 아빠 같은 말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때부터 조기 해외 유학의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바꾼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들은 식구밖에는 없다. 물론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와 백영기 변호사도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

‘은혜 씨인가?’

전화를 건 사람이 은혜 씨라면 내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다.

딸깍!

-전화번호를 바꿨으면 이 형한테 바로 문자를 보내야지, 어디야? 좀 보자.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퉁퉁거리고 있는 고모 집 아들 새끼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촌 형 새끼다.

‘발신 번호 서비스가 간절하군.’

미리 전화를 건 사람을 알았다면 안 받았을 것이다.

‘여전히 개망나니!’

내 아버지의 피를 빨아먹는 작은고모의 아들 새끼로, 달갑지 않은 기억이 참 많다. 물론 내가 이 몸에 빙의하기 전까지는 죽이 잘 맞아서 제법 어울렸다. 백범이 저지른 모든 사건 사고에 연루가 되어 있고 그 사건 사고들의 수습을 한 작은고모가 합의금 이상을 챙긴 것도 떠오르는 순간이다.

“왜요?”

-네가 사업한다고 외삼촌 돈을 다 털어 갔다며?

“그게 형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돈을 받아간 것을 저렇게 말하는 사촌 형 새끼니 가깝게 지낼 이유 없다.

-왜 이래? 여기 강북 스페이스야. 와라,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저 바쁩니다.”

-비싸게 굴지 말고 와. 부탁할 것도 있으니까.

부탁하는 사람의 말투가 아니다.

“그럽시다.”

오늘 끊을 것은 제대로 끊어야겠다.

‘처가 건사하기도 지치는데 사촌이 지랄이야!’

오늘 정말 지친다.

* * *

동교동 어느 주택 거실.

풍채가 좋은 노년의 남자는 김대준 총재고 그는 거실 창문을 통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백범이 만난 야당 중진 의원인 권 의원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만나 보니 참된 청년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총재님.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대선이라…….”

“그렇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후광이 있으니 어쩌면 유공자 협회와 재향군인회의 표까지 부분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김대준 총재는 돌아보지도 않고 창밖을 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많은 국민이 그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대선 지지율은 여당 대권 후보인 이희창 후보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것보다 이번에는 야권 통합을 이루느냐, 못 이루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야권 대통합을 전제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렇겠죠.”

“그리고 백범 군은 경제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미래 에너지 사업에도 무척이나 관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특히 태양광 패널을 통한 자가발전 사업을 대북 지원 사업으로 추진한다면 북한 주민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 인상에 남습니다.”

“그 청년, 몽상가군.”

“보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차후 대권의 주인이 되시면 경제 분야 특별 보좌관으로 쓰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경제 분야 특별 보좌관까지 할 깜냥이라는 거요?”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봤다면 그렇겠지.”

“거기다가 말씀드린 것처럼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니 보수층의 지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아보지도 않던 총재는 창밖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백범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말이 가시처럼 걸렸다.

-네 이름은 뭐냐?

-도요타 다이슈입니다.

-그래? 나는 백선우다. 이름을 바꾼 것이 어린 너의 죄는 아니지, 다 어른의 죄다.

-왜 못 이기는 싸움을 하십니까?

-너 같은 소년에게 진짜 이름을 찾아주려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어린 날이 떠오르는 김대준 총재였다. 어린 날에 그의 이름은 도요타 다이슈였고, 또 누군가의 이름은 다카기 마사오였다.

그저 시대를 탓하기에는 이름 없는 의병들의 투쟁이 많이 존재했다.

“여전히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김대준 총재는 그 말을 하며 돌아서서 소파에 앉았다.

“좋은 날이 올 겁니다. 그날이 오면 그 청년의 쓰임도 생각해 봅시다. 태양광 패널을 북한 주민에게 지원해 준다? 몽상가지만 나쁘지는 않군.”

“그렇습니다.”

“권 의원.”

“예, 총재님.”

“당신은 왜 이리 힘든 싸움을 이어 가고 있습니까?”

“예?”

“나는 소년들에게 진짜 세상을 찾아주려고 이리 싸우고 있습니다.”

김대준 총재의 말에 권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같은 소년에게 진짜 이름을 찾아주려고.

“으음…….”

자신의 포부를 밝힌 김대준 총재는 이름 없는 의병이었던 백선우가 자기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그분의 손자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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