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26화 결국 협잡(2)
“그렇게 생각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각 가정에도 태양광 패널을 보급해서 자가발전을 할 수 있다면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원유와 기타 에너지 수입에 사용되는 달러가 상당히 감소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화석 에너지는 다들 알다시피 유한하지 않습니까?”
현시점은 셰일 유전이나 셰일 가스가 거론되지도 않아서 화석 에너지의 핵심인 석유가 60년 후에는 바닥날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전 세계가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그 대체에너지의 핵심으로 원자력발전이 추진되고 있다. 거기다가 방점을 찍은 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그 이후 원자력발전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대체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지만 사실 태양광 산업은 미래가 밝은 사업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수익을 낸 기업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슈화가 되기 충분하고 자금을 모으기도 좋다. 그래서 내가 태양광 패널 사업자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아, 그렇기도 합니다.”
“하하하, 저도 모르게 제 포부를 말씀드렸습니다.”
“아닙니다. 백범 대표처럼 패기 넘치는 젊은 사업가가 많아져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질 겁니다. 하여튼 오늘 참 고맙습니다.”
밥 먹으러 온 자리지만 밥은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무엇인가 오간 자리니 이런 자리는 빨리 끝낼수록 좋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머리 한 번만 숙이면 된다.
“백범 대표.”
“예, 의원님.”
“혹시 정치할 생각 없습니까?”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
‘내 배경이라면?’
국회의원이 못 될 것도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질색이다. 그리고 나는 내 포지션을 현명한 해외 투자자로 정했다. 그리고 30살에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도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거기다가 독립유공자의 후손 중 몇 명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을까?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몇 없을 것이다.
‘시대의 아픔이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대의 추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해방 후 정권을 잡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은 놀랍게도 친일파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쭉 이어져 내려왔다. 그래서 이런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90% 이상을 친일파와 그의 후손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면?’
바로 몰아붙여 대권까지 노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30살은 너무 어리다. 그리고 정치인이 되면 행동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그러니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 이롭다.
사실 지금 내 행보도 나중에는 내 아내 은혜의 정치적 행보에 걸림돌이 될 일이지만 언 발에 오줌이라도 눠야 하는 상황이라 알면서도 밀어붙였다.
“의원님, 저는 아직 어립니다.”
내 나이 서른이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정치하면서 욕을 먹고 살 나이도 또 아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26살에 국회의원이 되셨습니다. 각하의 부친께서 멸치를 잡아 밀어주셨죠.”
내 나이가 어리지 않다고 말하는 야당 중진 의원이다.
“그러니 백범 대표의 나이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정치에 투신해 나라를 바로 세운다면 그 역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야당에는 의욕이 넘치고 진취적인 젊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고요.”
관광을 강간으로 발음하시는 그분을 말씀하신다.
[제주도를 세계 최고의 강간 도시로 학실히 만들겠습니다.]
대권 유세 연설을 하실 때 일어난 해프닝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내가 오케이를 하면?’
목포든 광주든 100% 당선될 지역구를 줄 것 같은 표정을 보이는 야당 중진 의원이다. 그리고 지금 야당 중진 의원은 그 정도의 힘이 있다고 내게 과시했다.
‘저 사람의 목적은?’
내가 젊기는 하지만 내가 가진 후광은 보수 쪽에 가깝다. 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고, 내 조부께서는 상해임시정부의 일원이셨다. 대한민국은 헌법에서도 임시정부의 적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보수층인 어르신들이 내 배경을 보고 이번 대선에 투표해 줄 것이다.
‘색깔론을 지울 수 있겠지.’
항상 대한민국의 선거는 네거티브 선거로 이어졌고 누가 얼마만큼 더 많이 헐뜯느냐에 따라 결과가 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이번 대선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게 입당을 제의하고 있다.
“저는 사업가로 또 해외 금융 투자가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했다면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는 자본으로 경제 식민지를 추진할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돈으로 이 대한민국을 지킬 것입니다.”
내 말에 야당 중진 의원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경제 식민지라……?”
“그렇습니다. 여전히 대한민국 경제는 일본의 기술력에, 미국의 투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비록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있지만 계속 그렇게 금융 투자 보호 정책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기억에서 IMF가 요구한 것은 국외 자본 투자 비율의 확대와 자율성 보장을 통해 적대적 인수 합병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였다.
‘그게 되면!’
대한민국의 경제를 손아귀에 쥘 수 있게 되니 미국이 대한민국을 경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IMF와 협잡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고 군대를 보내 식민지로 만든 것과 같다.
물론 미국과 IMF가 그런 마각을 꾸밀 수 있도록 경제력을 튼튼하게 만들지 못한 대한민국의 책임도 있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과거 대한제국의 무능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맞물려 일제강점기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결국에는…….’
가여운 백성들만 개고생했다.
나라를 빼앗긴 왕조도 자존심은 구겼지만 배불리 먹고 살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 역시 일제강점기 때 더 큰 부를 축적하여 배를 두드리며 살았다.
결국 이름 없는 백성들만 죽어났던 시대였고, 곧 터질 IMF 시기도 그때와 똑같이 이름 없는 수많은 서민만 죽어나게 될 것이다.
“마치 독립군 같은 민족자본이 되겠다는 투로 말씀하시는군요. 허허허!”
야당 중진 의원은 거창하게 말했다. 원래 정치인은 이렇게 거창하게 말한다.
“그저 사업가가 되겠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고마운 말씀 거둬 주십시오.”
“하하하,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하시군요. 이것도 집안의 내력인 것 같습니다.”
우리 집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는 야당 중진 의원이다.
‘조부의 함자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러고 보니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혹시 저 야당 중진 의원이 아버지도 아시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고, 물어볼 이유도 없다.
“저는 그저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백범 대표에게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야당 중진 의원이 손목시계를 봤다. 이제는 일어날 때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백범 대표와 식사하고 싶지만, 선생님께서 찾으셔서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국회의원이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백범 대표, 밥은 거하게 먹은 걸로 칩시다. 그리고 내가 따로 동교동에서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하겠소.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포함하지 않았다.
‘진짜 부르려나?’
이 시기에 동교동에서 나를 부르는 것은 이롭지 않다. 나는 다음 청와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니 만약 그쪽에서 부르면 울며 겨자 먹기로 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행보를 하면 반대쪽에서 나를 경계할 것이고, 내 일을 방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은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양분되는 시대다.
‘딱 권불십년이군.’
10년마다 정권이 바뀐다.
진보에서 보수로 그런 후에 다시 진보 쪽이 정권을 잡는다. 그때마다 철새 노릇을 하기는 싫다.
“예,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동교동은 김대준의 자택이 있는 곳이다. 정말 내가 제일 처음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한 모양이다.
‘이번 일은…….’
이런 협잡은 나중에 은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런 인맥을 만들어 놓지 못하면 손위 처남의 무죄를 밝힐 방법이 없다.
‘썩어도 준치다.’
가해자였다가 위증으로 피해자가 된 놈의 부친이 여당 의원이니 정치력을 발휘하지 않고 재심청구를 한다면 무죄 입증은 어려울 테니까.
* * *
야당 중진 의원이 특실에서 나가 사라졌고, 5분 후에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다른 입구를 통해 한정식집 특실로 들어왔다.
“이야기는 잘 끝났습니까?”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자리에 앉으며 내게 물었다.
“아직도 여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하하하, 나는 모험을 거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리고 여당이면 어떻고 야당이면 어떻습니까?”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누구든 법이 필요하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법무 법인은 그 사이에서 결국 줄타기해야 하는 업종이라서 한곳으로 치우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이 민주화될수록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되겠죠. 그때마다 법무 법인이 보복을 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정말 현명한 처세를 유지하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나도 그래야겠지.’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은 진보 쪽이 두 번 해 먹고, 나중에 보수 쪽이 또 두 번 해 먹은 후에 엄청난 불상사를 통해서 다시 진보 쪽으로 대권이 넘어간다.
‘그 후에!’
내 아내 심은혜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건 그렇고 산업수출은행에 가셨던 일은 잘됐습니까?”
이미 결과를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내 입을 통해 답을 듣고자 하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잘 처리됐습니다.”
“그럼 이제 여당 중진 의원을 만나실까요? 하하하, 백범 대표께서 오늘 바쁘시군요.”
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면, 아깝지만 여당에도 당연히 제공해야 한다.
‘완벽한 비밀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대한민국 5대 은행에 입김이 작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를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하하! 백범 대표는 역시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우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완벽한 우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관계일 뿐이다.
그것을 나도 알고 그도 안다.
‘최소한 적이 되지 않게 움직여야겠지.’
이것이 관계의 개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