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23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3)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아직은 준비해 온 것을 쓰지 않고 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해드려야죠.”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허, 나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백범 대표.”
600억 규모의 달러를 확보했다.
“은행장님.”
“예, 말씀하세요, 백범 대표님.”
“그리고 부탁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라 경제 살리고 수출을 증대하시기 위해 하시는 말씀이실 것 같으니 말씀해 보세요.”
“담보로 잡힌 달러는 6개월 이후부터는 언제든지 한화로 환전이 가능할 수 있게 담보대출 계약서에 특약 조건으로 삽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약 조항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올해 12월이 되면 은행들은 달러가 동이 난다. 그러니 내가 달러를 달라고 해도 달러가 없다고 지급 불이행을 선언하면 나는 결국 닭 쫓던 개꼴이 된다.
‘은행에 달러가 없지 한화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내 목적은 환율에 의한 수익 증가이니 이런 약정을 걸어두는 것이 좋다.
“왜요?”
요상한 눈빛으로 변한 은행장이다.
“사업이라는 것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미국기업과 진행이 되는 계약이 파기될 수도 있고 돌발 상황이 많으니 만약을 대비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대출금 조기 상환 이후 담보대출금 중도상환수수료를 3%를 추가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지금 나는 계속 은행에 이익이 되는 것만 말하고 있다. 이래서 정보는 중요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요구하는 특약조항 삽입은 은행 측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의 말씀도 있고 은행 측에 이로운 조건을 계속 제시하셨으니 그 특약조약을 삽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특약 조약까지 계약서에 삽입하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 * *
태양기업 대표이사 집무실.
태양기업은 페이퍼 컴퍼니에 가깝지만 종로에 보란 듯 넓은 사무실을 차렸고, 직원도 10명 정도 채용했다.
‘거짓으로 시작해서!’
진짜로 만들 것이다.
태양광 패널 사업을 진짜로 시작할 것이다.
-태양광 패널 설치에 정부 보조금만 지원된다면 에너지도 절감하고 괜찮은 사업인 것 같소.
물론 태양기업은 투자 전문 회사로 그것도 헤지펀드의 포지션을 명확히 하겠지만 말이다.
‘5년 안에 대한민국 10대 재벌이 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IMF가 자기도 모르게 나를 위해 재주를 부려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해야 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거기에 굴복해 적대적 인수 합병을 합법화해야 한다.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종합 금융회사에 부도 처리를 강요하겠지.’
종합 금융회사가 무너지면 도산할 기업은 넘쳐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자본을 가진 자가 모조리 독식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자본금이 충실한 핵심 재벌들만 더 거대해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목해야 할 것은 IMF의 강요로 이루어질 정부 추진 빅 딜이다. 그때까지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
“태양기업은 태양광 패널 수입 및 설치를 영위하는 사업체지만 투자 전문 회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의 올바른 재테크를 위해서 서민들에게 투자 제의를 할까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직원에게 업무 내용을 말했다.
‘텔레마케팅을 위한 투자 제의!’
텔레마케팅은 전화 등의 매체를 이용하여 소비자들의 구매 이력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하여 세심한 세일즈를 하는 과학적 마케팅 방법이다.
소비자 개개인의 소비를 포함해 시장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하는 점에서 무차별로 전화를 거는 텔레폰 마케팅과 구별된다.
‘결국 텔레폰 마케팅이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것이 좋은 거라고 나는 사전에 자금을 이용해 전화를 걸 고객들의 신상정보를 확보해 놓은 상태고 그것을 통해 투자를 제의할 생각이다.
물론 한마디로 다단계 금융 피라미드를 만들어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소리다.
“이미 입수해 드린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세요.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태양광 패널 사업에 투자를 제의하세요.”
“무작위로 말씀입니까?”
김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사실 텔레마케팅을 위해 직원을 열 명이나 채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의 책상마다 전화기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제야 김 비서실장은 책상마다 전화기가 설치된 이유를 알았다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
“그렇습니다. 텔레마케팅에 의한 투자 제의입니다.”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법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나는 특별한 경로로 개인 정보를 상당히 확보했다. 그 특별한 경로는 사실 산업수출은행이다.
‘돈은 항상 제값을 한다.’
-자금력이 있는 개인에게도 투자를 받을까 합니다.
일이 좋게 끝난 후 나는 준 만큼 챙기기 위해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에게 고객 정보를 요구했다.
-개인 투자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 자금이 여유 있는 일반 주택 소유자들이 태양기업 고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도 하군요.
-정부 지원 사업으로 50퍼센트 정도 정부에서 지원해 주고, 은행에서 장기 지원 대출을 해준다면 많은 사람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산업수출은행에 이익이 될 것입니다.
내 말에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고, 내가 모든 것을 얻은 후에 은행 본점에서 나오자 은행원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묵직한 서류 뭉치를 건네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은행 건물로 들어갔다.
‘하여튼 돈으로 하는 일이 제일 쉽지.’
또한 나는 개인 정보를 한 건당 5원을 주고 샀다. 물론 이것은 편법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이 제정되면 불법이 될 것이다.
‘나처럼 이중적인 놈도 없지.’
장모님의 장기이식을 위해 조직 검사 결과를 확인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 의사는 내게 편법으로 장기이식 순서를 당길 수도 있다는 투로 말했고, 나는 거절했었다. 그때는 세상 누구보다 더 공명정대한 도덕군자처럼 말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편법을 쓰고 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도 정치인과 협잡을 위한 자리가 준비됐다. 이래서 인간은 이중적이다.
“지금 은행 적금 이자가 얼마입니까?”
“12~15퍼센트 정도입니다. 종합 금융회사에서는 15퍼센트까지 주는 곳도 있습니다.”
내가 살았던 미래를 기준으로는 엄청난 이자율이다.
“우린 투자자들에게 25퍼센트를 제시하세요. 1년 수익 배당금 지급액이 25퍼센트입니다.”
“25퍼센트라고 하셨습니까?”
직원 중 한 명이 놀라 내게 되물었다. 마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눈빛이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달러로 투자하면 1년 투자 수익금을 40퍼센트까지 지급한다고 하세요. 그리고 테이블마다 산업수출은행에서 예치된 600억 예치금 증서를 복사해 부착하세요. 방문 고객이 그 예치금 증서를 보고 안심할 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달러로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개인들에게 투자를 받는 것의 핵심이다.
‘개인당 1만 달러씩 환전할 수 있으니까.’
1만 달러를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가 100명만 되어도 100만 달러고 그 돈은 12월 27일이 되면 2.7배의 환차익이 발생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습니까?”
내 말에 직원들이 걱정하는 눈빛을 보였다.
“대표님…….”
“왜 그러십니까? 김 비서님.”
“이러시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없는 사람들의 눈물로 부를 쌓을 생각 없습니다.”
나는 직원들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산업수출은행에서 했던 것을 다른 은행에 가서도 했을 것이고 더 많은 자금을 확보했을 것이다.
“아…….”
“으음…….”
모두가 여전히 불안해하는 눈빛이다.
“개인에게 투자를 받고 투자금으로 수익을 낸 후에 약정한 수익을 서민들에게 돌려줄 생각입니다. 증권사나 종합 금융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투자받고, 성공시키고, 이익이 발생하면 배당금을 나눈다. 딱 그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여러분이라도 저를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김 비서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라미드라고 생각하십니까?”
금융 다단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환율에 대한 차익을 얻을 것이고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줄 참이다. 물론 막대한 수수료(?)가 차감될 수밖에 없다.
원래 정보는 비싼 거니까.
“그게 아니라…….”
“투자자들을 모아 오면 추가 배당을 준다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텔레마케팅은 금융 피라미드 사기와 다릅니다.”
“그러겠죠.”
“결국에는 주택을 가진 서민들이 태양광 패널을 자가에 설치할 겁니다. 자가 설치를 추천하면서 투자까지 제의하라는 겁니다. 태양기업은 어쩔 수 없이 미국 기업에 달러로 태양광 패널을 구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달러로 투자하거나 설치하겠다는 고객에게 더 많은 이익금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 태양기업이 투자 전문 회사라는 것을 알고 입사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일 먼저 김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부터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준 것까지!’
김 비서실장의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예, 투자 전문 회사라고 알고 입사했습니다.”
김 비서실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이 넘쳐야 합니다. 사내에 활기가 넘쳐야 합니다. 텔레마케팅 직원을 더 채용하세요.”
“몇 명이나 더 채용하면 되겠습니까?”
“10명 정도 더 채용하십시오.”
이것으로 달러를 모으면 된다. 그리고 나는 12월 27일에 전액 한화로 환전해서 투자자에게 40퍼센트의 이익을 나눠 주고, 나머지는 내가 가질 것이다.
‘달러를 한화로 환산해서 기록하고!’
배당해 줄 때도 한화로 기록된 금액의 40퍼센트만 지급한다면 나는 엄청난 차익을 거둘 것이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열심히 일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가짜로 시작한 일이 진짜로 변하게 될 것이다.
‘태양광 패널 사업?’
나쁘지 않다. 물론 실제로 태양광 패널 사업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돈을 끌어오기에는 정말 좋은 아이템이다.
‘정부 지원 사업으로 채택되고 보조금이 지급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저녁 정치인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결국!’
12월 27일 이후 달러를 환전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나서 미국 현지에 태양광 패널 회사를 인수하고, 외국계 투자 기업의 탈을 쓰고 IMF 외환 위기를 겪는 대한민국에 투자할 것이다.
‘가장 위험할 때지.’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나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