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21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1)
3월 3일 저녁 판교 본가.
병원에 있었던 일 때문에 본가를 찾아갔고, 어머니께서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저녁을 차렸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시지.’
짧은 시간에 이 많은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능력일 것이다.
어머니께서도 며느리가 판사가 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해야 하는 것을 아시기에 아들의 끼니 걱정을 하셨다.
“요즘 밥 못 먹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엄마 밥이 맛있잖아요. 하하하!”
“너, 요즘 이상해.”
아무 말씀 없이 식사하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왜요?”
“촌구석이라고 코빼기도 안 보이던 녀석이 자주 와서 알랑방귀를 뀌고, 살랑거리잖아. 왜, 돈이 더 필요해?”
“그건 아니고요,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요.”
“무슨 말?”
“병원에 갔다가 왔습니다.”
내 말에 두 분께서는 본능적으로 내 눈치를 보셨다.
“그래? 안사돈은 좀 어떠시냐?”
“그러지 마세요.”
“내가 뭘?”
“다행히 조직 검사가 일치하지 않는답니다.”
“으음…….”
아버지께서는 신음을 토했다.
“죄송하고요, 감사합니다.”
“뭐, 남도 아니고……. 밥 먹자.”
“혹시라도 조직 검사가 통과했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밥 먹자니까.”
“아버지나 어머니 수술대 위에 눕는 것을 제가 어떻게 보겠습니까?”
“두 개 있는 거 하나 나눠 쓰면 좋지.”
“그건 제가 할 일이고요.”
내 말에 어머니께서 놀란 눈빛으로 변했다.
“혹시 너…….”
“적합하지 않다네요.”
내 말에 그제야 안도하는 어머니다.
‘자기 신장은 아깝지 않으면서?’
혹시나 아들이 장모에게 신장을 기증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고, 또 자식의 마음일 것이다.
* * *
순천만별량염전.
호리호리한 청년과 환갑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염전에 모인 소금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다.
호리호리한 청년은 헉헉거리며 일하고 있고 할아버지는 항상 해왔던 일이라도 되는 듯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다리를 절었다.
“휴우우…….”
청년이 힘든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고, 다리를 저는 할아버지가 청년에게 다가왔다.
“소대장 동무, 힘들면 쉬어, 쉬어, 쉬어!”
쉬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할아버지의 말투가 어눌한 것을 보니 지적장애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리를 저는 할아버지는 청년을 소대장 동무라고 불렀다.
“괜찮아요. 힘들어도 일당 받은 값은 해야죠.”
“소대장 동무, 일당이 뭐야?”
“예?”
일당도 모르는 할아버지기에 청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헤헤헤, 소대장 동무는 쉬어, 쉬어, 내가 해.”
“할아버지 혹시 일당 안 받고 일하세요?”
“그게 뭔데?”
할아버지는 그저 해맑게 웃을 뿐이다.
“은철 오빠~”
그때 이제 갓 소녀의 티를 벗은 여자가 머리에 새참을 이고 농로로 걸어왔고, 그 모습에 청년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다리를 저는 할아버지는 소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 절룩거리며 뛰어가 머리에 이고 있는 바구니를 자기가 들었다.
“위험해, 위험해.”
“괜찮아요.”
“위험해, 안 좋아.”
“왜요?”
“그냥 위험해.”
지적장애가 있는 할아버지는 그렇게 위험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아가씨를 보며 웃었다. 마치 신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은철이었다.
“소대장 동무, 밥 먹자!”
“할아버지 그런데 저를 왜 자꾸 소대장 동무라고 부르세요?”
은철 청년은 다시 물었지만, 그저 웃기만 하는 할아버지셨다.
* * *
“할아버지, 가슴에 단 그건 뭐예요?”
새참을 이고 온 선희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줘서 달았어.”
“누가 줬는데요?”
은철의 눈에는 절름발이 할아버지가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이 훈장처럼 보였다. 그리고 절름발이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허름한 옷을 입었는데, 누가 봐도 거지처럼 보였다.
“소대장 동무가.”
또 모를 소리만 하는 절름발이 할아버지였다.
“소대장 동무는 어디에 있는데요?”
“몰라, 갔어, 웃어 주고 갔어.”
그때 저 멀리 농로에서 염전 주인인 70대로 보이는 노인이 걸어오자 절름발이 할아버지가 놀라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세요?”
“주인님 오신다.”
은철과 선희는 표정이 굳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 할아버지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이러고 놀 줄 알았다.”
염전에 온 70대 노인은 멍하니 서 있는 절름발이 할아버지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다짜고짜 절름발이 할아버지를 매질했다.
‘뭐지?’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은철과 선희는 놀라 서로만 바라보다가 은철이 70대 노인을 말렸다.
“왜 그러세요?”
“신경 쓰지 말랑께!”
“왜 다짜고짜 할아버지를 때리시냐고요?”
“저건 맞아야 일해!”
“예?”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는데 일을 안 하잖아!”
이 상황이 그저 당황스러운 은철과 선희였다.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막무가내로 때리면 안 되죠.”
“뭐라고?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지금 뭐라고 했어?”
70대 노인의 눈빛이 변했다.
“예?”
“오갈 곳이 없다고 해서 거둬 줬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됐고, 내 염전에서 나가!”
“할, 할아버지…….”
“군말 없이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예?”
“신경 쓰지 말라는 소리야.”
“……예.”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있다는 것을 짐작한 은철과 선희지만 70대 노인이 말한 것처럼 오갈 곳이 없기에 마지못해 알았다는 투로 대답했다.
* * *
3월 4일, 산업수출은행의 은행장 집무실.
이 순간은 대한민국 5대 법무 법인의 힘과 내가 가진 600억의 힘이 합쳐 이루어졌다.
‘당장 10억을 쓴 보람이 있군.’
내 계획의 시작으로 산업수출은행을 선택한 것은 산업수출은행이 원활한 수출입을 위해 기업을 보증해 주는 은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신력 있는 은행이기에 600억 원 상당의 달러를 예치하고, 그 예치금으로 대출을 받을 생각이다.
‘문제는…….’
8개월간 내야 하는 이자다.
‘자기 자본으로 그룹 경영하는 곳 없다.’
자기 자본 대비 대출금이 일대일이면 초우량 기업이다. 그리고 현재는 신용 사회로 나간다는 명분이 있어 그룹이 유리한 조건으로 어음거래가 활발하다. 나는 그런 맹점을 파고들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7월쯤 돼서 농협에 대출받아 달라고 했지만 아파트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7월이면 기업이든 개인이든 너 나 할 것 없이 달러를 구하려고 혈안이 되는 시기라 바로 대출을 받아 달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나는 가장 위험한 시기에 가장 간 큰 투자를 계획했다.
“안녕하십니까, 은행장님. 저는 태양기업 대표 백범이라고 합니다.”
“말씀은 이미 들었습니다.”
온화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는 산업수출은행 은행장이다.
나는 산업수출은행의 일반 통장에 600억을 예치했고, 은행장도 그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은행장님의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젊은 사업가를 돕는 일이 산업수출은행이 해야 할 일이지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에게 대략 내 소개를 들은 것 같은 눈빛이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묘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것은 태양기업의 사업 계획서고, 핵심만 말하자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태양광 패널을 대량으로 수입해 설치하는 사업으로, 국민에게 보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태양광 패널이라?”
은행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였다. 사실 이 시기에 태양광 발전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정부는 저렴한 가격에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박차를 가했고, 또한 북한에는 곧 경수로를 지원할 시기라 그 누구도 태양광 발전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그렇습니다. 은행장님께서 저 같은 풋내기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사실 은행장님처럼 훌륭한 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드셨고, 대한민국을 이 정도까지 발전시켰지 않았습니까? 국민들이 먹고살 만해진 것도 모두 은행장님 같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이 살길은 수출뿐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태양광 패널을 대량으로 수입한다는 명분으로 거래 대금인 달러를 환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수입에 관한 이야기보다 수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