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20화 이게 진짜 사죄다(2)
“아, 아무리 그래도…….”
“개망나니고 철딱서니가 없는 둘째 처남이 주제넘게 선생님의 여동생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그 사실은 아시죠? 저는 그 일이 빌미가 되어 결국 싸움이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지수라 생각되는 아가씨를 보며 피해자에게 말했다.
‘아예 싫은 눈빛은 아닌 것 같고…….’
자기 오빠 옆에서 둘째 처남이 만신창이가 된 사진을 볼 때마다 오빠의 눈치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며 걱정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게…….”
피해자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나와 사진 그리고 자기 여동생을 번갈아 봤다.
“개망나니기는 하지만 자신의 진심을 오해받고 거절당해서 흥분했고,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일이 잘되면 형님이 될 사람인데 말입니다.”
“걔가 다혈질이기는 해요…….”
“물론 그런 이유가 감경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
눈빛이 살짝 누그러지는 피해자다.
“죄송합니다. 정말 매형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나는 바로 피해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릎까지 꿇는 것은 과도한 행동이다. 하지만 신파로는 잘 먹히는 행동이고, 나중에는 이런 사실을 내 아내 은혜와 둘째 처남이 알게 될 것이니 무릎 한 번 꿇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나보다 약한 자의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반대로 나보다 강한 자에게 굴복해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애원해서 금전적 이익이나 기회를 구걸하는 게 진짜 추태다.
“왜, 왜 이러세요?”
내가 무릎까지 꿇자 기겁하는 피해자다.
“제 생각에 둘째 처남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라도 교도소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둘째 처남의 인생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그게…….”
교도소라는 말에 피해자는 덜컥 겁이 난 모양이다.
사실 둘은 친구다.
하지만 지금은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아플 것이고, 눈이 튀어나올 만큼 아프기에 화가 단단히 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 아내가 판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판사 임용 절차에서 범죄를 저지른 혈족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 결격 사유가 됩니다. 혹시 개망나니의 누나이자 제 안사람에 대해서 아십니까?”
“개망나니까지는 아닌데…….”
피해자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제 아내는 훌륭한 판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까지 공평하게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법률 사회를 구현하고 싶어 합니다. 제 처남을 용서할 수 없으시다면 가난한 사람과 누명을 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판사가 되고자 하는 제 아내를 위해서 다시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개망나니는 제가 책임지고 사람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패서라도?”
“예, 개망나니니 패서라도!”
피해자는 내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눈빛을 보였다.
“은석이가 개망나니까지는 아니에요.”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 너무 많이 실망해서 울분이 많아요. 자기 형이 의로운 일을 했는데 가난해서 범죄자가 됐다고 생각했고, 술만 먹으면 제게 그런 소리를 했어요. 결국 그러다가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하더니 삐뚤어지더라고요.”
둘째 처남의 친구이면서 폭행 피해자의 말을 통하면 아예 구제 불능은 아니라는 소리다.
“정말 친한 친구였군요.”
“저기, 형님, 이만 일어나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너무 민망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피해자는 고민하는 눈빛이다.
“저는 둘째 처남이 아닌 제 아내를 위해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정말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아내가 올바른 판사가 될 수 있게 기회를 주십시오.”
“예, 예, 알겠습니다.”
피해자가 말했고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비서님.”
“예, 대표님.”
전직 법무사 출신인 내 비서가 007가방을 하나 들고 내 앞에 섰다.
“여기 있습니다.”
“나가 있으세요.”
“예, 대표님.”
김 비서가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약소하지만 선생님의 현재 상태에 대한 보상입니다.”
나는 007가방을 열어서 가방 속에 든 돈뭉치를 의도적으로 보여 줬다.
“3000만 원입니다.”
“괜찮습니다…….”
“공장에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전치 8주고, 이 상태면 최대 3달 동안 근로를 할 수 없죠. 그에 따른 피해 배상입니다. 물론 합의금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또 부러진 치아도 새로 하셔야 하니 받아 주십시오.”
배상과 보상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합의는 이미 해 드리기로 했는데…….”
“돈부터 내민다면 진정한 사죄가 아니죠.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나를 보는 피해자의 눈빛에서는 존경심까지 담겼다.
‘이런 졸부 처음 보지?’
나는 앞으로도 이런 졸부로 살 것이다. 물론 이런 졸부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재벌이 되고, 돈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다.
“선생님…….”
“오동철입니다. 형님.”
“예, 동철 씨.”
“우리 처남이 왜 그렇게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둘째 처남이 흠모하는 지수 아가씨의 눈치를 살피니 저 아가씨도 우리 둘째 처남이 아예 싫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둘째 처남과 오동철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사실 형님, 매제 하기 딱 좋은 사이다.
“그게…….”
“궁금해서요. 참, 둘째 처남은 앞으로 알코올 의존성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을 겁니다.”
“정, 정신병원요?”
다시 크게 놀라는 오동철이다.
“예, 그리고 치료가 끝나면 빵집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왜 빵집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저 아가씨가 제빵기능사 자격증이 있다고 빵집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처남이 정말 지수 씨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둘째 처남이 진짜 개과천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이뤄지는 기적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그 기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게 개망나니 둘째 처남에게 주는 당근이지.’
항상 이렇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해야 한다.
“아……!”
지수 씨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사실은요…….”
“예, 그저 궁금해서 여쭈는 겁니다.”
“형님, 말씀 놓으세요.”
“예, 그럽시다. 궁금해서.”
“은석이나 저희나 찢어지게 가난하거든요. 가난한 것들끼리 합쳐 봐야 더 가난해지잖아요. 그게 이유라면 이유고요, 그 녀석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도 있고요, 한번 화나면 물불을 안 가리는 것도 있습니다. 오빠의 입장에서 달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동철의 말에 나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래서!’
반대의 경우도 끼리끼리 뭉치는 것이다.
없는 집안끼리는 서로가 싫은 것처럼 있는 집안들은 서로서로 결혼해 한 울타리에 묶인다.
‘대부분의 재벌이…….’
혼인으로 뭉쳐져 있다.
“그렇군. 그런데 첫 번째 상황은 많이 달라졌어, 짐작은 하겠지만 나는 졸부야. 가진 게 돈밖에 없어.”
어떻게 들으면 정말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미리 내가 해 놓은 행동이 있기에 그런 생각 없이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눈빛이다.
“아, 그러시죠…….”
“둘째 처남의 알코올 의존은 격리 치료로 완치시킬 예정이고, 둘째 처남이 화나면 물불을 안 가리고 이성을 잃는 것은 형님의 억울함 때문으로 판단되는데, 올해 안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야. 나보다 동철이, 너랑 우리 둘째 처남은 젊으니 둘째 처남의 바뀔 미래를 생각해 줘. 지수 씨만 옆에 있으면 뭐든 해서라도 개과천선할 수 있을 것 같다네.”
시쳇말로 둘째 처남의 인생 개조 솔루션은 이미 준비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지수라는 저 아가씨를 둘째 처남의 희망으로 놓고자 한다.
“으음…….”
“빵집을 하고 싶다고 할 때 느꼈어, 아,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정, 정말 정신병원에서 치료받는 건가요?”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던 지수 씨가 내게 물었다.
“예, 그러기로 저하고 약속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폭력으로 강요한 거지만 짐작건대 둘째 처남의 옆에 저 아가씨가 있으면 둘째 처남도 달라질 것이다.
“자기가 완치되면 빵집을 할 수 있게 도와 달라잖아요. 아가씨 때문이겠죠. 혹시 제 처남이 싫으신가요?”
“그건 아니고요…….”
“그럼, 동철 씨.”
“예, 형님…….”
은근슬쩍 나를 형님으로 부르는 오동철이다.
“우리 처남이 새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지수 씨 옆에 얼씬도 못 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 푸세요. 그리고 철없는 우리 처남에게 지수라는 희망 하나 줍시다. 그렇게 하면 내가 동철 씨의 미래가 되어 주고, 희망이 되어 줄 겁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말씀 놓으셔도…….”
“그러기로 했죠. 어쨌거나 처남 친구면 내 동생이기도 하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억울한 일이 있으면 앞으로는 내가 힘이 되어 줄게.”
나는 명함 케이스에 명함을 꺼내 이불 위에 올려놨다.
“……예, 감사합니다.”
하여튼 이렇게 둘째 처남 문제는 깔끔하게 진심 어린 사죄와 합리적인 합의금으로 처리했고, 둘째 처남은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서울 외곽 정신병원에 바로 격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막내 처남이군.’
잠적한 막내 처남과 처남댁이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원하는 대로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내가 다음에 할 일인 것이다.
‘우리 막내 처남은 사랑꾼이야.~’
그러고 보니 잘못된 하나의 사건이 내 처가를 풍비박산을 낸 것 같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한 쪽의 부친이 여당 국회의원입니다.
백영기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4년짜리 임시직 주제에 내 처가를 건드려?’
그냥은 못 두겠다.
물론 당장 건드릴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냥 많고 많은 졸부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