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7화 (17/415)

# 17

17화 둘째 처남(2)

“돈 많은 매형이 생겼으니 당연히 알아서 합의해 줄 거라고 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정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모님만 아니었으면…….”

노진현 변호사가 자신도 모르게 개인감정과 의견을 드러냈다.

“변호사님.”

“예.”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을 판단할 일이 있습니까? 만약 의뢰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변호 수임 계약을 해지하면 됩니다. 저는 변호사님의 개인적인 감상이나 생각보다 원만한 해결을 더 원합니다.”

일침을 가하는 순간이다.

내 둘째 처남이 아무리 개양아치 망나니라고 해도 내가 돈을 주고 부리는 변호사에게 그렇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

‘가르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군.’

하지만 내가 지불한 수임료에 대한 내가 가진 분명한 권리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사실 누군가에게 잘난 척하며 가르치려는 사람은 꼰대로 보일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노진현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신출내기군.’

구치소 특별 접견실을 사용하기 위해 태평양법무법인에서 내게 배정해 준 변호사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내가 피해자와 합의를 통해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것을 알고 이런 신출내기를 붙여준 것이다.

“변호사님.”

“예.”

“변호사라는 것이 일하다 보면 자괴감이 들 때가 참 많을 겁니다. 개인의 양심을 잣대에 놓는다면 명백한 죄인을 무죄로 만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니 마음을 잘 다독이셔야 할 겁니다. 그게 싫으면 세상이 정말 좋게 돌아가게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충고에 변호사가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봤다.

“인권 변호사…….”

“개인적으로는 명예를 가졌다고 자위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을 겁니다.”

“으음…….”

찰나의 순간 변호사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신음을 터트리며 나를 봤다.

‘괜히 열심히 살겠다는 변호사를…….’

엉뚱한 길로 빠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치의부터 신출내기 변호사까지!’

내가 왜 이러냐고?

대한민국은 인맥 사회고, 나는 왕의 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은 왕의 남자로 가기 위한 포석이다.

이게 바로 진짜 내 목적이다.

“의뢰인님께서는 변호사의 속성을 너무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나를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말하는 노진현 변호사다.

“원래 세상사는 일이 그렇지 않습니까? 명예와 돈, 둘 다 가지려면 탈이 나는 법이죠.”

노진현 변호사에게 묘한 미소를 보여 줬다.

“하여튼 그렇다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합의하기 전에 사람부터 만들어야겠습니다.”

“예?”

변호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딴생각 중이었는지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구급차 좀 부탁드립니다.”

“구급차는 왜……?”

“결국 상습 음주 폭행이고, 그건 정신병이죠. 정신병원에 처넣어도 시원치 않을 인생이라는 소리입니다.”

내 말에 노진현 변호사가 멍해졌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완전한 격리다.

이미 나는 내 아내인 은혜와 장모님께 둘째 처남의 정신병원 강제입원 동의서를 받았다. 이번 일을 가장 쉽고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합의하셔야 구속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그리고 제게는 돈으로 하는 일이 제일 쉽습니다.”

많이 해봤다.

협박과 강요를 적절히 섞어서 그 어떤 사건이라도 합의를 받아 냈다. 어떤 면에서 그런 합의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피해자 소재지와 위치를 파악해 주십시오. 바로 찾아갈 생각입니다.”

물론 피해자는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으니 병원에 입원해 있을 것이다.

“합의 종용은 변호사인 제 일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신출내기에게 맡길 일이 아닌 것 같다.

‘기절할 때까지 맞았으니!’

피해자는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친분이 있었다니 아마도 자괴감까지 들었을 것이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지.’

항상 어느 부류든 같이 어울리는 것들은 거기서 거기라는 소리다.

“제가 직접 할 겁니다. 최소한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죄부터 해야 맞지 않습니까? 카메라 챙기셨죠?”

“챙기라고 해서 챙기기는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느냐는 눈빛을 보였다.

“시간 됐지 않습니까?”

“예, 들어가면 됩니다.”

오늘 둘째 처남에게 고통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괴로운지 절실히 느끼게 해줄 것이다.

‘말로 안 되는 인간은!’

매로 다스려야 하니까.

* * *

1997년 3월 3일, 구치소 특별 접견실

변호사 특별 접견실에는 피의자와 변호사가 변론을 상의하는 곳이기도 하기에 구치소 교정직 공무원이 참관하지 않는다.

12평 정도의 넓은 공간에 나와 나를 보며 비릿하게 웃고 있는 둘째 처남, 변호사만이 자리하고 있다.

“변호사님.”

“예, 의뢰인님.”

“제가 부탁드린 것 조치하셔야죠.”

“예, 알겠습니다.”

변호사는 내 말에 바로 대답하고 테이블 위에 카메라를 놓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구치소 특별 접견실을 나갔다.

‘벌써 3월 3일이군!’

오늘까지 해서 둘째 처남 막내 처남을 처리하고,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러 예금 및 대출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둘째 처남, 이런 곳에서 처음 보네.”

둘째 처남과는 오늘 처음으로 만났다.

“그러게요, 갑갑해 죽겠어요, 매형.”

나를 보며 느글느글하게 웃는 둘째 처남이다. 구치소에 수감됐기에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사실 느글느글하다는 표현은 내 기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기에 따라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처남들이 다 참석하지 못했군.’

형님을 우리 결혼식에 참석시키기 위해 인맥과 돈을 써서 특별 귀휴를 신청했는데, 형님께서 귀휴를 거부하셨다.

[좋은 자리에 내가 참석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은혜가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이 가슴 아픕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형님은 은혜를 정말 아끼는 것이 확실하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

나서지 말았어야 할 상황에 괜히 나서서 자기 동생의 앞길을 막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는 형님이신 것이다.

하여튼 형님은 그런 분이시다.

“둘째 처남, 어릴 적에 무슨 일 있었어?”

그에 반해 둘째 처남은 그냥 내가 봐도 개망나니 양아치다.

“예? 무슨 뜬금없는 소리예요?”

“그게 아니면 사람을, 그것도 아는 사람이 도망치는데 쫓아가서 기절할 때까지 팼을까?”

“훈계하려고 오셨어요?”

“요즘은 훈계를 말로 하나?”

“뭐라고요?”

변해 버린 내 눈빛과 말에 살짝 겁먹은 눈빛을 보이는 둘째 처남이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느글거리는 눈빛으로 변했다.

“둘째 처남, 왜 가여운 누나 인생을 방해하지 못해서 안달이지?”

나는 둘째 처남이 보는 앞에서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와, 롤렉스를 차고 다니네~ 히히히, 가진 것이 돈밖에 없다더니 그게 제대로 물었네, 히히히!”

“그게?”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지는 순간이다.

‘은혜 씨부터 막내까지 한 살 터울이지?’

연타로 연년생이다. 그러니 저렇게 부를 수도 있다. 이건 장인께서 사고로 사망하시기 전까지 장모님과 금실이 좋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교통사고였어요.

내 아내 은혜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태성실업의 회계 담당 부서에서 일하셨는데,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 아내 은혜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심 태성실업과 회계 담당 부서와 교통사고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억측을 했었다.

‘내가 하던 일이…….’

내가 환생하기 전 미래에 살았을 때 하던 일이 그런 짓이었으니까.

“아, 누나요, 누나! 나이 차이가 안 나서 그렇게 부르다 보니 버릇이 됐네요. 히히히, 앞으로는 고칠게요. 매형 정말 돈이 많은가 보다. 히히히!”

“버릇이 됐다고?”

“하하하, 매형은 형제자매가 없어요? 다 그런 거죠. 매형, 돈 많다면서요? 어서 빼 줘요. 여긴 지긋지긋해요.”

마치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표정이다. 나를 제대로 호구로 보는 것이다.

“둘째 처남, 누나는 판사가 될 사람이야.”

“그건 나도 알죠, 그러니까 매형이 나 좀 빼 달라고요. 매형도 그러려고 여기 온 거잖아요? 드라마 보면 돈 많은 사람이 막 돈다발을 던지면서 합의를 보잖아요? 나도 돈 많은 매형 덕 좀 보자고요.”

와!

백범이 개망나니 짓을 하고 산 것은 개망나니 짓도 아니었다.

-성격이 좀 비뚤어진 것 같습니다.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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