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화 둘째 처남(1)
내가 타는 외제 자동차가 구치소 건물 앞에 섰고, 운전기사 겸 비서인 전직 법무사 출신 김 비서가 급하게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모든 사업을 나 혼자 처리할 수 없기에 꼼꼼하게 서류 작성 업무를 할 수 있는 법무사 출신을 스카우트했고, 비서실장을 시켰다.
“앞으로는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비서실장입니다.”
김 비서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나보다 10살이나 많지.’
변호사나 법무사가 모두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김 비서도 아마 경제적인 이유로 내 제의를 수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비서로 스카우트 되었다고 해서 내가 그에게 갑질을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운전기사들에 의한 말썽은 수시로 일어났지.’
내가 살던 미래에서 막장 회장님들을 엿 먹이는 것은 인격 모독과 폭언을 비롯한 많은 일을 당한 운전기사다.
“비서실장이 종은 아니잖습니까.”
나는 김 비서를 보며 웃어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알아봐 달라는 것은?”
“사람 찾는 일은 경찰보다 사채업자들이 더 잘해서 그쪽에 의뢰했습니다.”
내 아내 은혜가 대출까지 받아서 월세로 막내 처남과 처남댁이 살 집을 마련해 줬는데 막내 처남의 처가에서 들이닥쳐 난장을 깠고, 처남댁을 데려가 버렸다. 그 길로 배 속의 아이를 낙태시키기 위해 병원으로 끌고 갔는데 거기서 도망친 처남댁은 막내 처남과 함께 잠적해 버렸다.
‘괘씸해!’
나는 막내 처남의 처가 놈들이 무척이나 괘씸한 상태다.
‘막내 처남은 귀여운 사랑꾼이라서 다행이다.’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거기다가 책임감까지 있으니 내가 비빌 언덕이 되어 주면 그럭저럭 사고 치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건 그렇고 처남댁은 어떤 집안입니까?”
이것도 김 비서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부친께서는 금은방을 크게 합니다. 오빠가 둘 있는데, 한 명은 건달이고, 한 명은 백수입니다.”
자기 아버지 피 빨아먹고 사는 부류다.
‘왜 잘사는 집 자식들은 다들 이 모양일까?’
부모가 돈 버느라 정신이 없어서 자식들 교육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건달에 백수?”
“예, 그렇습니다. 거기다가 처남댁 되는 분께서는 이제 겨우 19살이기도 하고…….”
막내 처남댁은 겨우 성년이 되었다.
‘19살짜리가 애를 뱄다.’
부모나 오빠라면 눈이 돌아갈 일이다. 막내딸이니 아마 금지옥엽으로 키웠을 것이다.
“그쪽에서는 저희 처가에 대해서 잘 몰랐나 봅니다.”
짐작건대 그럴 것 같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사모님께서 사법연수원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좀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막내 처남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판사 누나가 있기에 그럭저럭 참아 넘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죠. 저도 곧 사업에 몰두해야 하니 처남이랑 처남댁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의뢰한 쪽에서 이번 주 안에 찾아서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 말 믿어도 될까요?”
“빈말은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는 사람인 모양이군요.”
“예, 이런저런 일로 좀 안면이 있습니다.”
“믿어도 되는 사람입니까?”
내 물음에 김 비서가 나를 빤히 봤다.
“사람을 어떻게 믿습니까? 대표님, 사람은 함부로 믿는 것 아닙니다.”
“충고 고맙습니다.”
“그래도 객관적으로는 최소한 맡긴 일은 깔끔하게 하고, 뒤통수는 안 치는 쪽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김 비서는 앞으로 꽤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것 같다.
* * *
구치소 특별 접견실 앞.
태평양법무법인에서 동행시켜 준 변호사와 함께 구치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의뢰인을 변호한다는 미명으로 특별 접견실 사용을 승인받았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인맥의 힘이다.’
나는 구치소 복도를 둘러봤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구나…….’
너무나도 익숙하다. 지금의 구치소 모습이 21년 후와 똑같아서 싫다.
어쩌면 시공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 나는 비슷한 위치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녕하십니까? 심은석 씨의 변호를 맡게 된 노진현 변호사입니다.”
젊은 변호사가 자신을 소개하며 내게 인사했다.
신출내기 변호사로 판단된다. 외형이 젊다고 해도 3대 법무 법인인 태평양법무법인 소속이니 제법 실력과 인맥을 갖췄을 것이다.
“반갑습니다. 태양기업 대표이사 백범이라고 합니다.”
내 태양기업과 태평양법무법인은 투자 파트너십을 체결했기에 환하게 웃으며 환대했다.
* * *
“의뢰인의 변호를 담당하고 나서 사건을 확인해 본 결과…….”
노진현 변호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단순 폭행이 아니죠?”
그가 확인했듯 나 역시 둘째 처남의 사건을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음주 폭행 사건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사건 전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시비가 붙어 폭력을 행사했고, 만신창이가 되어 도망치는 피해자를 쫓아가서 실신할 때까지 폭행해 전치 8주의 상해를 입혔습니다.”
노진현 변호사의 말에 씁쓸할 뿐이다.
한마디로 내 둘째 처남은 지인이든 나발이든 수틀리면 폭행하는 개또라이라는 소리다.
“정말 골치 아픈 사람이군요.”
분명한 것은 내 아내 은혜가 판사로 임용되려면 둘째 처남이 교도소에 수감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치부가 아니라 가족의 치부더라도 인생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나와 내 아내 은혜가 처한 상황이다.
“콩밥을 먹여도 시원치 않지만 제 안사람의 소망이 판사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깔끔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노진현 변호사는 내 심정이 이해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일을 했었지…….’
환생하기 전에는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았고, 구치소를 자주 방문했다.
물론 대부분은 구치소에 들어올 필요도 없이 피해자와 합의하고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협박과 강요로 피해자를 굴복시킬 때가 많았다.
평범한 사람들은 돈이 많은 재벌이나 졸부들은 피해자와 합의할 때 돈을 많이 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재벌이나 졸부들은 대부분 수전노고,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않는다.
“어제와 그제 접견했는데, 의뢰인의 성격이 많이 비뚤어진 것 같습니다.”
노진현 변호사가 이 정도로 말할 정도라면 둘째 처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개망나니라는 소리다.
“비뚤어졌다면 바로잡아야죠.”
만약 처가에 돈이 있었다면 악착같이 합의했을 것이다. 음주 폭행 사건이기에 합의해서 고소를 취하한다면 구치소에 수감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사정을 봐주면 둘째 처남은 죽을 때까지 속죄도 개과천선도 없이 계속해서 사고를 치는 개망나니로 살 것이다.
‘형님께서는 의협심이 충실하시고!’
둘째 처남은 그냥 개망나니다. 둘의 공통점은 나와 내 아내 은혜 인생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둘은 거머리에 가깝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피해자와 접촉해 합의를 종용할 계획입니다. 만약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외상 후 격분 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라 주장해 심신미약으로 집행유예를 유도할 것입니다.”
쉽게 말해 분노 조절 장애로 몰아가서 실형만은 면하겠다는 소리다.
‘변호사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지.’
대한민국은 이렇게 가진 자들과 취한 자들 또는 미친놈들에게 자애심이 충만한 나라다.
술에 취했다고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고,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는다면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 성의를 보이면 감형된다. 또 미쳤다고, 심신미약이라고 감형해 주는 나라다.
나는 그 맹점을 참 많이도 이용했다.
‘피해자가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았는데…….’
법원이 피의자를 용서해 주는 세상이다.
“그건 최후의 방법이겠군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와 원만하게 합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처남의 정신머리를 고치는 일이다.
“피해자와 합의를 최우선으로 추진하겠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휘어진 못에 아무리 망치질을 해도 나무에 박히지 않고 휘어지죠. 그러니 못부터 반듯하게 바로잡은 후에 빠져나오지 못하게 망치로 처박아 넣어야죠.”
나도 모르게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내 말에 나를 다시 보는 노진현 변호사다.
‘원래 가진 사람들은?’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돈을 더 받으려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다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한 삶이다.
그러니 최대한 누군가의 원망을 만들지 않고, 누군가의 분노를 사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원래 내 성질이라면?’
처남이고 나발이고 그냥 새우잡이 어선에 팔아넘겨서 개고생부터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험악한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합법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노진현 변호사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