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5화 (15/415)

# 15

15화 진짜인 나를 나만 안다(2)

종합병원 장기기증센터 의사 집무실.

내 앞에는 장모님의 주치의가 앉아 있다. 40대 초중반의 주치의지만 벌써 교수직을 달고 있는 정도로 능력과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의사다.

거기다가 젊지만 야망보다는 의사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환자들에게도 정말 잘하는 의사라고 한다.

그런 의사가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환생하기 전과 환생 후에 내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검사 결과 나왔습니까?”

내 신장이 장모님의 조직과 적합한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했고, 그 결과를 들으려고 이곳을 찾았다.

‘확률로는…….’

장모님의 조직과 내 조직이 일치할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나는 은혜를 위해 조직 검사를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곧 장모님을 통해서 은혜가 알 것이다. 물론 아직은 장모님도 모르지만 굳이 비밀로 해달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한 행동은 선행이기에 장모님의 귀에 들어갈 확률이 아주 높다.

결국 계획된 행동이다.

“죄송합니다. 조직 검사 결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내가 안타까운 만큼 주치의도 안타까운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으음…….”

나는 안타까움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신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게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안도감보다 안타까움이 더 크기에 환생 전의 나와 지금 백범으로 사는 나는 확실히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보호자님, 아직 희망을 버리실 때는 아닙니다. 신장의 손상을 최대한 늦추는 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기증자를 찾는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주치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천운으로 일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기대했는데 안타깝습니다.”

나 스스로 내게 가증스러운 순간이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선행도 분명 존재했다. 하여튼 내가 내 아내 은혜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줬다.

“보호자님께서는 참 대단하십니다. 아니,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가족도 남 같은 세상인데…….”

맞는 말이다.

가족이 남보다 못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나는 환생 전에 그런 경우를 아주 많이 봤다.

“제가 뭐가 대단합니까?”

내심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피붙이 가족이라도 장기이식을 눈앞에 두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을 위해 조직 검사를 받으시다니, 마음이 요즘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조직 검사를 받으신 두 분이 남으셔서 병원에서도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두 분이라고요?”

처가 쪽 모든 가족이 신장이식이 적합한지 검사를 받았고, 불일치 판정을 받았는데, 두 명이 더 남았다는 의사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안사돈은 무슨 병이냐?

-아버지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사돈댁 일인데 내가 왜 신경을 안 써? 사돈댁이랑 우리가 남이야?

“혹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어 주치의를 봤다.

“생각하는 분이 맞습니다. 정말 모두가 대단하십니다.”

“아……!”

정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욕심 없이 산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두 분을 위해서라도!’

나는 두 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진짜 나를 통제하고 올바른 인간으로 살 것이다.

“정말 이런 끈끈한 가족애는 제가 의사가 되고 나서 처음입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1시간 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곧 두 분의 검사 결과가 나올 겁니다.”

정말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고, 간호사가 조직 검사 결과로 예측되는 서류를 들고 들어오더니 의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서류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검사 결과 나왔어요?”

의사는 보통 간호사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

‘권위주의적 시대이니…….’

그런데도 주치의는 간호사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다.

“예.”

간호사는 짧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고, 의사는 서류를 확인했다.

“으음…….”

의사는 서류를 확인하고 신음을 터트렸다.

“결과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내 마음속에는 조직 검사가 일치했으면 하는 마음과 불일치했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안타깝습니다. 이 정도의 정성이면 하늘도 은혜를 베풀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주치의의 말에 나는 이 의사가 무척이나 감성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군요…….”

내 대답에 주치의는 내 마음이 어떤지 잘 알겠다는 눈빛을 보였다.

맞다.

지금의 내 마음은 참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다.

‘장모 살리겠다고…….’

부모님이 수술대 위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는 없는 입장이다.

“보호자님의 심경이 복잡하다는 것 이해합니다.”

“이제는 장기 기증 순서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군요.”

“사후 장기 기증과 골수 기증 서약서를 쓰신 것으로 압니다. 기증자 우선 이식이 일부분 반영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실행에 옮긴 상태다.

“그래도 오래 걸리겠죠? 정말 마음 같아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싶지 않습니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하신 장모님이시거든요.”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인데, 내 말에 의사의 눈빛이 변했다. 주치의의 눈빛에서 번뇌와 고민이 느껴졌다.

“보호자님…….”

나를 보는 의사의 눈빛이 묘하다.

“예?”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제가 좀 더 알아봐야…….”

의사의 목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정도로 작아졌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닫고는 경악하는 눈빛을 보였다.

‘눈빛만큼은 실수였군.’

물론 저 떨리는 눈빛이 실수인지 의도적인 눈빛인지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파악한 주치의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장기이식 순번을 당길 방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분명한 것은 악마의 유혹이 내게 손을 내미는 순간이다.

현실적으로 주치의는 내게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장모님은 VIP 특실 병실에 입원했으니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주치의는 내 아내 은혜가 서울대 졸업생이며 사업연수원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스스로 법조계 인맥을 만들고자 꾸밀 수도 있는 일이다.

“그걸 떠나서 보호자님의 마음과 보호자님의 부모님의 마음이 정말…….”

“제 아내와 선생님은 대학 동문이시죠……?”

의사와 은혜가 서울대 동문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악마의 유혹에 학연이 더해지는구나.’

대한민국이 원래 이런 세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 선택만 남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주치의는 자신이 말해 놓고 후회하는 눈빛이다.

‘내가 오케이를 해도!’

주치의가 말실수였다고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나는 스스로 정한 선을 넘게 된다.

“선생님.”

나는 애써 담담한 눈빛으로 의사를 불렀다.

“예, 보호자님…….”

오늘만 바라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 내일도 살아가야 한다.

“저는 제 와이프가 나온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모두 똑똑하고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주치의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많이 배우고 깊게 배웠기에 나쁜 짓을 더 많이 하고, 그 나쁜 짓으로 부와 권력을 쌓는다.

“그리고 제가 본 선생님께서는 참 훌륭하신 의료인입니다. 사실 제 쪽에서 그런 못된 제안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 못된 의중을 읽으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선생님께 암묵적으로 강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는 엄청난 자산가니까요.”

“으음…….”

“제가 선생님의 동정심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제가 파악한 선생님은 감성적인 분이니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장모님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

내 말에 파르르 떠는 의사다.

“아…….”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주치의다.

“보호자님…….”

“못된 눈빛을 선생님께 보여 드린 것, 그리고 선생님께서 잘못된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 몇 마디를 해서 죄송합니다.”

“제, 제가 무, 무슨 짓을 한 거죠?”

“괜찮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주치의에게 말했다.

“저도 모르게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될 생각을…….”

눈앞이 먹먹해지는 의사다.

‘지금이 저 주치의 인생의 변곡점일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제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분명한 것은 주치의는 정신이 없어 보인다.

“말이라는 것이 입 밖으로 나오면 되돌릴 수 없지만 선생님께서는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다른 방법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예를 들어서 중국으로 가서 장기이식을 받는 방법도 있죠. 거긴 불법이 아니라 편법이니까요. 그런 부분을 말씀하시려고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 부끄럽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가 암묵적으로 강요한 실수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저희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순번을 기다리겠습니다. 마음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의사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의사는 나를 따라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현기증을 느꼈는지 휘청거리며 책상을 짚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눈빛부터 뭔가 달라진 의사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나는 또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 스스로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는 순간이다.

‘내민 손을 잡았어야 했나…….’

후회스러운 순간이다.

돈이 있는데, 그 돈이 제대로 힘을 쓸 인맥까지 생겼는데, 장모님을 위해 질끈 눈감으면 되는 일인데 알량한 양심이 나를 막았다. 그래서 후회스럽다.

‘뭐든 한 번이 무섭지.’

환생하기 전의 기억이 있으므로 나는 그 말의 뜻을 안다.

[법정에서 위증 한 번이면 인생이 바뀝니다. 당신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본의 아니게 휘말린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이게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환생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그렇게 살 이유가 없다.’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지는 순간이다.

지킬 것이다. 악당이었던 진짜 나로부터 지금의 나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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