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4화 (14/415)

# 14

14화 진짜인 나를 나만 안다(1)

서울 종합병원 VIP 특실 병동 화장실 세면대 앞.

나는 세면대 거울 앞에 서 있다.

‘너는 백범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기분 탓인지 거울 속에 보이는 백범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넌 어디로 갔니?’

내가 이 몸에 본의 아니게 환생이라는 빙의를 했기에 진짜 백범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가끔 궁금해진다.

어쩌면 내 영혼에 눌려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교통사고 때 사망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백범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진짜 백범이 살았던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또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백범의 진짜 영혼은 어느 무의식 속에서 봉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증스럽나?’

사실 나는 가증에 가까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선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선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률로는…….’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진다.

‘이제는 제대로 살자.’

* * *

서울 종합병원 VIP 특실.

“장모님, 저 왔습니다.”

병원 VIP 특실 문을 열고 환한 미소로 장모님께 인사를 올렸고, 장모님께서는 이 VIP 특실에 입원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백 서방, 사업하느라 바쁜 사람이 매일 이렇게 찾아오고 그래…….”

여전히 내 눈치를 보시는 장모님이다.

‘가난하면 저렇지…….’

저 심정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정말 가난해 봤으니까.

그리고 그 가난 때문에 좌절해 봤고 또 달라졌었으니까.

하여튼 장모님께서는 우리 결혼식 때 정말 많이 우셨다. 아마도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자신이 못나 또 은혜의 오라비와 두 남동생이 은혜의 삶에 짐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개망나니인 나와 결혼했다고 생각해서 그리 울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된다.

“장모님, 몸은 어떠십니까?”

“몸이야 항상 그렇지, 그래도 많이 좋아졌네.”

장모님은 VIP 특실에 입원했다고 좋아질 상황이 아니다.

-만성 신부전입니다. 신장이식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현재 투석을 받고 있지만 일시적일 뿐입니다.

장모님 주치의의 말이 떠올랐다.

-신장을 이식하면 된다는 겁니까?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가족 중에는 일치하는 신장이 없습니다. 장기이식은 이식 후 면역 체계의 부작용 문제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확률적으로…….’

내가 결심하고 실행했던 일이 떠올랐다.

“많이 힘드시죠, 장모님. 불편한 것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은혜는 연수를 받느라 바빠서 오고 싶어도 자주 못 오니까요.”

나는 병실 침대에 앉은 장모님 옆에 의자를 가져와서 앉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

여전히 내게 말을 놓지 못하는 장모님이시다.

“저 때문에 은혜에 대해서 걱정이 많으시죠?”

“아니, 그게 아니라…….”

장모님도 결혼식장에서 서럽게 우셨던 것이 떠올랐는지 말꼬리를 흐리셨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조심히 장모님의 손을 잡았고, 내 다정다감한 행동에 물끄러미 나를 보셨다.

“백 서방, 내가 미안해요. 그때는 정말 내가 백 서방을 오해…….”

“말씀 놓으십시오. 장모님.”

“이 못난 장모가 소문만 듣고 우리 착한 백 서방을 오해했어요.”

“아닙니다. 그 소문은 사실입니다.”

“사실이라고요?”

파락호에 바람둥이 개망나니.

그게 진짜 백범이었다. 그래서 걱정하시는 것이다.

“하하하, 제가 바보온달입니다. 평강공주를 만나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바보온달이랑 평강공주랑 잘사는 모습을 오래 보시려면 건강하셔야죠. 하하하!”

분명한 것은 바보온달은 평강공주 때문에 장군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후에…….’

전쟁터에 나가서 뒈진다. 그래서 명작 동화나 전래 동화는 해피엔딩 이후를 찾아보면 안 되는 것이다.

하여튼 지금의 나는 은혜 때문이라도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을 꼭 지킬 것이다.

‘누구로부터?’

지랄 같지만 진짜 나로부터 지킬 것이다.

진짜의 나는 야망과 탐욕에만 불탔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혈액투석이 아주 힘들죠? 의사들에게 들으니까 정말 힘든 과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우시는 장모님이시다.

“우리 울보 장모님, 또 우신다. 울지 마세요. 지금까지 너무 많이 우셨잖아요. 이제는 제가 은혜랑 웃게 해 드리겠습니다.”

“백 서방…….”

장모님의 손을 내가 먼저 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보다 더 힘을 줘서 내 손을 잡으시는 장모님이다.

“제게 고마우시면 오래 사셔야 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어요. 아니, 꼭 그럴게요.”

“제가 꼭 그렇게 되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장모님께 다시 환한 미소를 보여 드렸고, 장모님은 내 미소를 보며 이제 곧 죽어도 원이 없다는 눈빛을 보이셨다.

“그런 눈빛 안 됩니다.”

“내가 뭐가요?”

“오래 사셔야죠.”

“알았어요. 열심히 치료받을게요.”

물론 신장이식을 받지 못한다면 주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혈액투석은 엄청난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을 장모님의 주치의에게 들었다.

‘연명 치료에 불과하다.’

신장은 한 번 망가지면 회복되지 않는 장기다. 그러니 지금의 치료과정은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정도다.

“장모님.”

“우리 백 서방이 나한테 할 말이 있어요?”

“형님 사건에 억울한 부분이 많아서 철저하게 준비해서 재심을 청구할 생각입니다. 형님께서 누명을 벗으셔야 은혜가 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법연수원 교육 기간은 2년이다. 다행스럽게 나와 은혜에게는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해결할 것이다.

‘합법적으로!’

한 번의 잘못된 선택과 행동이 지금의 행복을 깨트릴 수 있으니까.

“백, 백 서방…….”

장모님의 눈에 다시 눈물이 흘렀다.

“우리 울보 장모님, 또 우신다. 웃으세요. 이제부터는 웃을 일만 있을 겁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리고 철없는 둘째 처남, 정신 좀 차리게 제가 매 좀 들까 합니다.”

“매요?”

살짝 놀라는 장모님이시다.

“예, 오늘 중에 피해자랑 합의를 볼 생각입니다. 돈으로 하는 일인 만큼 쉬운 일이지만 둘째 처남을 옛날의 저처럼 개망나니로 살게 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매번 합의해 줄 수는 있지만 은혜는 판사가 될 사람이니 구설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둘째 처남도 저처럼 개과천선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는 장모님이시다.

“백 서방이 알아서 해요. 정말 고마워요. 처가에 이렇게 신경을 써주니 너무 고마워요.”

“예,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막내 처남도 제가 정신 좀 차리게 해서 살길을 열어 줄까 합니다.”

“백 서방은 정말…….”

또 우시기 직전이시다.

“웃으세요. 스마일~”

나는 장모님께 웃어 보였고 장모님도 나를 따라 웃으셨다.

“장모님 그리고 이 서류에 서명 좀 해주십시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10분 정도가 지난 후에 나는 장모님께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내 아내 은혜에게도 서류를 내밀었다.

-변호사를 통해서 확인하고 정신감정과 건강 상태를 확인해 본 결과 알코올 중독 초기 증상이며 음주 후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해요.

-그래도 정신병원 감금은…….

-감금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려는 거예요. 둘째 처남도 정신과 치료를 받아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야죠.

-새로운 삶이라…….

-무엇보다 당신의 판사 임용을 위해서라도 둘째 처남의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둘째 처남이 저렇게 살게 두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제 동생이기도 하니까요.

-백범 씨…….

-고맙죠? 그러니 고맙다고 울지 마세요.

-정말 당신은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세요?

-내 아내가 당신이니까. 그리고 내가 당신 사랑하니까.

나는 은혜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장모님을 봤다.

“백, 백 서방……!”

“둘째 처남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교도소로 가는 것은 제가 피해자와 합의해서 막겠습니다. 사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새사람이 되려면 교도소에 가서 고생 좀 하고 반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은혜가 판사가 될 사람이라서 다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장모님, 저 믿으시죠?”

“백 서방이야 믿지요.”

장모님께서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눈빛이시다.

“그럼 서명해 주십시오.”

내 말에 장모님은 서류에 서명했다.

“그리고 제가 몇 대 쥐어박을 겁니다. 사람 되라고요.”

“알았어요, 백 서방이 다 알아서 해줘요.”

“예,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년 후면 둘째 처남도 새사람 되어 있을 테니까요.”

양아치, 꼴통, 또라이, 개망나니 등 그런 부류는 원래 매로 다스려야 효과가 빠르다.

‘돈 많은 매형이 생겼다고 희희낙락하고 있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 둘째 처남의 망상부터 철저하게 깨 버릴 것이다.

‘수신처가부터 해야겠지.’

나를 바로 세우고 주변을 돌보며 단속하지 않고서는 큰일을 도모하기 어렵다.

‘결국 대통령 후보도 아들 병역 의혹 때문에 당선되지 못했으니까.’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냐고?

훌륭한 판사가 될 내 아내의 미래 포지션을 나는 이미 정해 놨다.

‘왕의 남자라, 하하하!’

나도 모르게 묘한 미소가 머금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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