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3화 (13/415)

# 13

13화 법률 자문 수임료 10억의 효과?(4)

“그렇습니다. 저는 600억을 모두 달러로 환전할 예정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파트너십을 요청한 것입니다.”

“의뢰인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태평양법무법인이 필요한 겁니다. 법은 모든 곳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하하하!”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마치 법률가보다 법의 핵심을 더 잘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그리고 환전된 달러를 다시 그 은행에 예치해서 한화 600억을 빌릴 생각입니다. 그 자금으로 태양광 패널 사업에 착수하고 풋옵션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저는 현재까지는 달걀 한 바구니를 들고 소를 구입하는 상상을 하는 소년에 불과합니다. 그 달걀 한 바구니를 든 소년이 소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파트너가 되어 주십시오. 또 대한민국 지하 경제의 큰손을 연결해 주십시오.”

내 설명에 미소를 보이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진짜 나를 아는 것은 나뿐이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그리고 진짜인 내 미래의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옳지 않았던 삶…….’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은 삶이다. 그러니 나는 이 새로운 삶에 후회할 짓도, 죄도 짓지 않고 싶다. 물론 그런 삶이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아버지, 내가 가장 멋진 남자라고 알고 있는 아내에게는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제가 너무 몽상가 같은 발상을 말씀드렸다고 생각하십니까?”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죠. 그리고 몽상가들은 가끔 엄청난 일을 일으키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예견한 경제 전망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현 정부는 국가 부도 상황이 일어나도 끝까지 국민을 속이고 숨길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량 인출 사태를 걱정하겠죠. 결국 정부는 최악의 선택을 할 것입니다. 아니지요. 미국이 최악의 선택을 강요하게 할 것입니다.”

“미국을 거론하십니까? 그건 위험한 발언이십니다.”

처음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모든 국가의 외환위기 뒤편에 IMF가 존재하고 IMF에 최대 자본 출자 국가는 미국입니다. IMF의 뒤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은 자본 침략을 위해 IMF를 이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최악의 선택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최악의 선택이라면?”

“말씀드린 것처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으음…….”

“빠르게 준비한다면 다른 방법도 꽤 있겠지만 현 정부를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국가 부도 상황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될 겁니다.”

“그 말씀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국가 부도 직전에 자본이 충실하고 외환 보유가 상당한 재벌은 부를 몇 배나 늘릴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의뢰인님의 분석은 다른 각도에서 봤을 때 제법 신빙성이 있고 예리하십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판단하기로 IMF는 침략 자본의 선두 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의 말을 끊었다.

“제 예측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아마도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몇 가지를 요구할 것이고, 그중 하나가 금융 자율화일 것입니다. 외국 자본이 기업 투자 비율을 50퍼센트까지 차지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받아들일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차후 많은 기업이 이름만 국내 기업으로 전락할 것이고, 배당이라는 명분으로 국부가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입니다.”

“그것을 막겠다는 말씀입니까?”

“제가요?”

나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제가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600억 규모의 달러를 확보한다고 해도 수익은 2.5배 정도일 것입니다. 고작 1500억으로 거대 외국 자본의 침략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저는 그 기회를 이용해 거대 자본가가 되는 것만으로도 벅찰 겁니다. 저는 몽상가일지는 모르나 애국자가 될 만큼의 거대 자본이 없습니다.

내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애국이 별거겠어?’

우리의 것을 지켜 내는 것이 애국이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아무 사심 없이 나라를 되찾으시려고 목숨을 바치신 분이다.

그분의 손자인 나는 사심이 가득해 대한민국이 가진 부를 외국으로부터 지켜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과 싸우신 할아버지.

그 손자가 이제는 사심 가득한 야망으로 IMF를 앞세우고 침략 자본으로 돌변할 미국과 싸울 것이고, 많은 것을 가질 것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된다.

“또한 수많은 사모펀드가 부실한 은행을 승냥이처럼 공격할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외환 위기로 부실해진 금융회사들을 정리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기업과 그룹의 주주는 종합 금융회사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래서요?”

“그렇게 되면 론스타 같은 약탈 자본이 달려들어 대한민국의 국부를 날로 먹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대표님이 이번 기회를 잡으면 론스타가 먹을 파이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합니다. 제가 대표님의 곰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대표님과의 파트너십 계약서는 사채업 큰손에게 투자를 받는 미끼로만 쓰겠습니다. 손해를 보실 것은 없습니다. 이런 설명을 드리기 위해서 저는 10억을 사용했습니다.”

“손해는 없다? 실패했을 때 이미지 손상만 해도 10억 이상의 가치죠.”

“곰인 제가 제대로 재주를 부려 흥행하면 1년에 500억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겁니다.”

나는 바로 또 하나의 계약서를 태평양법무법인 대표에게 내밀었다.

“IMF는 정부에게 반드시 적대적 인수 합병을 승인하게 할 겁니다. 제 손에 최소 1500억의 자본이 있고 또 풋옵션 투자에 성공하게 된다면 최대 1조원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표님께서는 제가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내 말에 나를 뚫어져라 보며 마치 거대한 백색 호랑이를 본 듯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하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담담해졌다.

“그 말씀은 결국 IMF가 자신도 모르게 의뢰인님을 위해 재주를 부리는 곰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하하하!”

어떤 측면에서는 이이제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대표님. 저와 함께 대한민국 국가 부도에 투자하시겠습니까?”

“저희 쪽에서 해야 할 일은 뭡니까?”

“은행에서 원활하게 달러 환전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시는 것이고, 양아치가 아닌 진짜 사채업 큰손을 소개해 주면 됩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수확한 열매를 나누겠습니다.”

“돈의 흐름이 바뀌는 일이라?”

백영기 변호사가 사전에 이야기한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정권도 바뀔 것입니다.”

“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다 좋은 이야기지만 의뢰인께서는 순진한 부분이 많으시군요.”

“이런 이야기를 아무 조건 없이 꺼냈다는 것 때문에 제가 순진하게 보이십니까?”

이 역시 예상했던 부분이다.

“그렇습니다.”

“혼자 다 먹기에는 파이가 너무 큽니다. 저 혼자 다 먹을 수 없습니다. 제 제안을 거절하고 단독으로 움직이셔도 제가 먹을 파이는 충분합니다. 태평양법무법인이 양아치라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안한 겁니다.”

“허허허, 제안을 거절하면 양아치가 되는 거군요.”

“저라는 적을 만들 겁니다. 법무법인의 입장에서는 아군을 10명을 만드는 것보다 적을 한 명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만약 제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저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국적의 투자 전문 회사를 설립할 생각입니다. 주식도 우회 상장을 하는데 투자라고 우회하지 말라는 법이 없죠.”

나는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말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할 참이다.

“하하하, 하하하!”

내 미소에 호탕하게 웃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국가 부도 위기가 낳을 풍운아가 되겠군요.”

“저의 파트너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내가 더 많은 인맥을 가졌다면 이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희 태평양법무법인은 태양기업의 법률 자문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가 내게 악수를 청했다.

“감사합니다.”

태평양법무법인과의 파트너십 계약이 성사되었다. 이제는 태평양법무법인이 가진 인적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한 꼭지를 넘겼군.’

절반 이상의 성공이다.

“대표님.”

“예, 말씀하십시오. 의뢰인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완벽하게 달라졌다.

“저는 이틀 후에 산업수출은행으로 향할 생각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의뢰인님의 존함처럼 제가 백호의 등에 올라탔군요. 과연 올라탄 백호의 등에서 내리고 싶을 때 내릴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내릴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숨이 멈출 때까지 맹렬히 달릴 겁니다.”

이제 단기적으로 내게 남은 일은 수신처가다. 그것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후에 치국까지는 아니라도 세상의 돈을 긁어모으고 평천하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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