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2화 (12/415)

# 12

12화 법률 자문 수임료 10억의 효과?(3)

“사업을 진행하려면 태양기업은 태평양법무법인이라는 간판이 필요하십니까?”

역시 공부 잘했던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대형 법무 법인을 비롯한 법률 집단이야말로 흑막에서 대한민국을 핸들링하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법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고, 가진 자들은 법 앞에 설 때가 많다. 이들은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 정치인, 돈을 가진 재벌들의 일을 처리해 준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인맥을 형성하며 정보를 제공받고 확보한다. 그래서 나는 태평양법무법인을 내 사업체인 태양기업의 간판으로 쓰고자 한다.

“그렇습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인맥과 간판입니다. 개구리는 뛰어 봐야 폴짝 이죠.”

“폴짝 이라, 하하하……?”

사람은 무엇보다 주제를 알아야 하고 분수를 알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몇백억을 가졌다고 해도 거만한 은행을 마음대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태평양법무법인이다.

“하지만 제게 태평양법무법인이 투자했다는 계약서가 있다면 저는 제가 가진 깜냥 이상의 인맥을 만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주선해 주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묘한 미소가 또 묘한 눈빛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저희 태평양법무법인은 기업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정중한 거절이다.

‘이 정도는 예상했지.’

내가 하는 일이 다 잘되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가 부도에 투자해 보시겠습니까?”

내가 가진 히든카드를 꺼내지 않으면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예?”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아직 정보가 없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나를 떠보려고 되물어 본 것일 수도 있다.

“저는 단언컨대 대한민국의 국가 부도까지 딱 7개월 남았다고 확신합니다. 한보그룹이 그 뇌관을 터트렸죠. 닥쳐올 국가 부도는 이제 막을 수 없습니다.”

“의뢰인께서는 비현실적인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나를 더욱 유심히 살피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지금 나는 저 시선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알면서 시치미를 떼는 것인가, 정말 모르는 것인가에 따라 오늘 거래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

“말씀해 보십시오, 대표님께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대표님과 태평양법무법인에는 지금이 기회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저와 파트너십을 체결하신다면 딱 7개월 후에는 법무 법인 업계 1위로 거듭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할 것입니다.”

법무법인도 인적 자원이 핵심인 사업체다. 그리고 그 인적 자원은 결국 자금을 써서 스카우트로 얻는다.

당연히 검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퇴직을 하는 지검장급 이상의 검사를 변호사로 스카우트해야 하고, 법원에서는 최소한 부장판사급 이상을 스카우트해야 법무법인의 능력이 향상된다.

‘결국 법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얼마나 많은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가에 따라 법무 법인의 서열이 달라지는 것이다.

“법무 법인이라고 해서 재판 변호만 수임하고, 그룹 법률 자문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어떤 증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바로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 부도에 관한 정보가 있거나 내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많은 곳에서 외환 위기의 증후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정말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버블이라는 것은 터지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경제가 버블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음거래는 큰 문제를 만들 것이고, 한보그룹이 뇌관을 터트렸다.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어음으로 거래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어음거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한보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보그룹 아래도급 업체가 줄도산을 했습니다. 이게 전초 징후입니다.”

“한보 사태가 전초 징후라고요?”

한보그룹은 불법 대출을 받으며 막대한 뇌물을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살포했고, 그에 따라 수많은 공무원이 뇌물을 받아먹고 한보그룹이 은행에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은행에 압력을 행사했다.

‘한보그룹 때문에 은행도 부실화가 됐지.’

둑에 구멍이 생기면 결국 터지게 마련이고, 여기서 핵심은 언제 터지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예, 그때 봤듯이 대기업이 발행한 어음은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중소기업으로 가고, 중소기업에서 받은 어음은 다시 협력 업체로 전달됩니다. 만약 한곳이라도 부도 처리가 되면 줄줄이 도산합니다. 은행들은 어음을 담보로 대출해 줬습니다.”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은행은 신용을 담보로 한 종이 쪼가리를 받고 현금을 내줬습니다. 어음이 부도 처리가 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곳은 금융사입니다. 종합 금융이 부실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련의 사태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외환 보유고가 급락해야겠죠.”

어떤 측면에서 어음거래는 대기업의 횡포다. 물건을 받고 현금이 아닌 종이쪽지를 주는 것이다. 물론 자본이 충실한 신용 사회에서는 어음거래는 나쁠 것 없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 그 신용이 무너졌을 때 어음은 말 그대로 종이 쪼가리로 전락한다.

“핵심은 그것입니다. 아직 제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대한민국이 보유한 외화는 아직 넉넉합니다.”

이건 사실이다.

여전히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담담한 어투다.

“미국이 비밀리에 힘을 쓰면 어떻게 될까요? 만기가 도래하는 외환의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국 투자자들의 명분은 충분합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외환 위기가 대한민국의 외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무디스의 평가서 한 장이면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도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남아에서 불고 있는 외환 위기가 곧 대한민국을 강타할 것입니다.”

사실 동남아시아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모든 경제인이 애써 외면하는 부분이고, 대한민국은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경제 기반이 튼튼하다며 무시하고 있다. 아니 경제전문가들은 청와대에 그렇게 보고하고 있을 것이다.

“말씀드린 것처럼 다량의 외국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외국 투자 자금까지는 외환에 대한 만기를 연장해 줬습니다. 하지만 무디스나 다른 평가 기관이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도를 두 단계 이상 낮다고 발표하면 모두 떠날 겁니다.”

“으음…….”

“거기다가 정부는 지금도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달러를 구입하느라 매달 20억 달러씩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정보는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 말에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는 거기까지 알고 있냐는 눈빛을 내게 보였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 모르는 숨겨진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인맥이 일천하기에!’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를 등에 업으려는 것이다.

“장담컨대 올해 7월이면 대한민국은 달러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위기는 곧 저와 태평양법무법인에는 기회입니다. 국가위기에 부를 축적한다는 것이 매국처럼 느껴지십니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태평양법무법인 대표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다.

‘폭탄을 터뜨려야 하나?’

더 큰 충격요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요?”

“사실 저는 돈밖에 없습니다. 제가 가진 자본은 총 600억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은행이 제게 우선적으로 달러를 내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제가 달러를 매집할 명분은 충분합니다. 제 기업인 태양기업은 태양광 패널 수입 및 설치 전문 기업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일이 합당한 명분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론은 은행장을 움직일 만한 인맥이 필요하시다는 말씀이시군요.”

맞는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