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9화 (9/415)

# 9

9화 첫 투자에 착수하다(3)

“저는 정말 아버지가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135억입니다.”

존경스럽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모처럼 미소를 보이셨다.

“그래도 낼 돈은 내야지, 지금 내나, 나중에 내나 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꼭 그려서야 한다면 저랑 절충하시죠.”

“절충?”

세상의 모든 일은 거래고, 제안이고, 상호 절충의 관계다.

그리고 세금을 내는 일에 무슨 절충이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시는 아버지시다.

“예, 12월 31일에 증여세를 내겠습니다. 135억에 대한 증여세를 그때 제가 내겠습니다. 그에 따른 과징금도 제대로 납세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제게 투자하신 겁니다.”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IMF 외환 위기가 터지고, 그해 12월 27일이 되면서 1달러당 1,962원까지 상승한다.

‘지금은 801원이니…….’

지금 미리 달러를 매집해 놓고 그때 팔면 2.5배의 단기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문제는 300억이 있어도 달러를 확보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편법 아닌 편법을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쯔쯔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버지.”

“왜 또?”

“올해 말에 손자 안아 보실 것 같습니다.”

오늘 이른 아침에 피임에 실패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정말?”

아버지께서는 한없이 반가운 눈빛을 보이셨다.

“예.”

바로 표정이 밝아지는 아버지시다. 이렇게 포석을 깔아 놓고 시작해야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가지고 계신 돈으로는 모두 판교 인근 땅을 사십시오. 증여세는 9개월 후에 제가 냅니다.”

“증여세 낼 돈을 빼고 네가 사라고 해서 샀다. 내가 이 지역의 땅값을 배나 올려놨네.”

하여튼 아버지는 자기 입으로 한 말씀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나머지 자금으로도 땅을 구입하시고요, 구입하신 그 땅으로 대출 좀 받아 주세요.”

“뭐라고?”

아버지께서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진정하시고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독립운동하신 분들 그리고 그 후손들 너무 어렵게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 말에 아버지께서는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눈빛이시다.

“아버지, 제가 돈 많이 벌면 할아버지의 존함으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후손을 지원하는 단체를 만들 생각입니다. 나라가 돌봐 주지 못하는 독립운동가 유족을 할아버지의 존함으로 제가 돌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말해야 아버지에게 먹힌다.

“네가?”

“예, 지금 아버지가 가지신 재산으로 돕다가는 금방 바닥이 날 겁니다. 제가 재벌 이상으로 부자가 되어서 5년 안에 독립운동가 유공자 지원 영리 법인을 만들겠습니다. 재단 이름도 이미 정해놨습니다. 선우재단입니다.”

한마디로 그분들을 지원도 하고, 투자도 하겠다는 소리다.

“정말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겠습니다.”

“너, 지금 한 말 진짜지?”

못 믿겠다는 눈빛이시다.

“예, 그렇습니다. 최소한 10조는 만들어야 지원 재단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뻥을 치겠다고 작정을 하면 제대로 쳐야 한다. 사실 내가 5년 안에 10조를 만들려면 불법과 편법을 모두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는 싫다.’

무엇이든 한 번이 무섭다.

편법까지는 모르겠지만 불법적인 일을 한 번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나를 내가 통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럼 행복은 사라지는 거지.’

돈도 가지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탐욕이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환생을 했다고 꼭 거대한 재벌이 될 필요는 없잖아.’

지금도 사실 살아가는데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의 돈이 아버지께 있다. 아무 일도 안하고 그 돈을 받아쓰는 것이 미안하기에 또 내가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무엇이라도 해서 돈을 벌 생각이고 내 아내 은혜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네가 5년 안에 무슨 수로 10조를 벌어?”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안 된다고 말할 때 불가능이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저는 된다고 확신하고 사업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목숨 걸고 독립운동 하실 때 이길 줄 알고 하셨습니까? 해야 해서 하셨지 않습니까?”

“백범아!”

내 말에 아버지께서는 감격스러운 눈빛을 보이셨다.

그리고 교통사고가 나기 전 3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벽히 다르다.

“포부는 좋은 것 같다마는 망할 것 같은데?”

“망할 거라고 생각하시면서 왜 300억을 주셨습니까?”

내 물음에 아버지께서 나를 빤히 보셨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거든. 농사야 어디서라도 지을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입에 풀칠은 하고 사니까.”

“그러네요. 처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망할 수가 없습니다. 집에 오기 전에 할아버지 산소에 들려서 할아버지께 약속드렸거든요. 그렇게 살겠다고 맹세를 드렸기에 그래서 절대 망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는 이런 감성팔이가 제대로 먹힌다.

“사업비가 얼마나 필요한데?”

“다다익선이죠?”

“그게 무슨 뜻인데?”

아버지께서는 일자무식이시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애써 숨기고 싶은 비극일 것이다.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의 아들이 가난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과 여전히 친일파들은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입니다.”

“다다익선은 내가 외우마.”

“예.”

아버지께서는 배우지 못했지만 총명하시다.

지식보다는 지혜가 많으신 분이다.

“그건 그렇고 이자가 비싼데…….”

“농협 조합원 대출을 받으면 이자가 저렴합니다.”

현재의 대출이자는 거의 13퍼센트다. 놀라운 것은 그 13퍼센트가 최저 이자라는 것이다. 뭐 사실 지금은 은행에 적금을 넣어 놔도 10퍼센트를 이자를 주는 시대이니 대출이자가 13퍼센트라는 것은 놀랄 것도 없다.

“그래도 10퍼센트는 줘야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12월 30일에 전액 상환할 겁니다.”

IMF 금융위기가 터지면 당연히 환율은 올라간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 받은 돈을 우선 달러에 투자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은 불법적인 일이 아니다.

‘그런 후에!’

풋옵션에도 투자해 볼 참이다. 문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고 내 첫 단추는 아버지의 전 재산을 달러로 환전하는 것을 성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말한 대로 다 되면 누가 부자가 안 되겠어?”

“아들 한번 믿어주십시오.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며느리도 제 사업 계획이 놀랍다고 했어요.”

사실 이런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은혜를 데려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의심스러우면 안사람한테 전화해 보시든가요.”

뻥카를 날릴 때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으면 좋다.

“공부하는 예비 판사님한테 전화해서 방해할 필요는 없지.”

“아버지 그러니 대출받아 주십시오.”

“알았다. 이왕 믿기로 했으니 아들놈이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한 번은 믿어주마.”

아버지가 보유하게 될 농지는 종합해서 350억 정도의 가치가 될 것이다.

‘또 4년 후면 대박을 치시겠네.’

그때 판교 개발 사업이 발표된다.

‘분당이 신도시로 개발이 됐지만!’

여전히 판교는 개발이 되지 않고 땅값도 답보 상태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보유한 농지와 대지가 350억 상당이니 개발 계획이 발표되면 땅값이 더 오를 것이고, 그에 합당한 분양 딱지를 받으면 최소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이다. 정말 농사만 지으시는데 준재벌이 되는 것이다.

‘재물 복은 타고난다는 말이 정답이지.’

하여튼 토지를 담보로 아마도 최대 300억까지 농협 대출이 나올 것이고, 나는 아버지께 받은 300억과 아버지가 대출받은 300억으로 달러를 구입할 생각이다.

‘산업수출은행에 달러로 예금하고 대출받으면…….’

다시 600억의 운영자금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 600억을 풋옵션에 투자할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졌다.

“뭐가 좋다고 쓸개 빠진 곰처럼 히죽거리고 웃어?”

“제가 국가유공자들에게 좋은 일을 할 생각을 하니 기쁩니다.”

“야!”

“왜요?”

“너, 코피 흘러.”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이 딱 좋을 때이니까. 이런 코피도 흐르는 것이다.

“제가 요즘에 사업을 구상하느라 무리해서 그럽니다.”

“공부하시는 예비 판사님, 밤마다 그만 괴롭혀라.”

아버지도 남자이시기에 정확한 팩트를 집어내셨다.

“그래도 좋을 때다. 허허허!”

한없이 오늘을 기뻐하시는 아버지시다.

“예, 좋을 때죠.”

그러고 보니 아버지랑 나랑 이렇게 친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망나니로 살 때는 이렇게 친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이 몸뚱이가 돈 쓰느라 바빴거든.’

분명한 것은 아버지께서는 지금의 내가 흡족하신 것 같다. 아들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하니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무슨 사업을 하려는 건데?”

“금융 외환 투자라고만 알면 됩니다.”

대한민국은 곧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환율이 하락한다. 국가의 위기를 이용해 돈을 벌겠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아버지 옆에 놓인 목침이 내게 날아올 것을 잘 알기에 차마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아버지의 앞에 다시 다짐하는 순간이다. 물론 국가 전체의 부도 상황에서 내 실리만 챙기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IMF 금융 위기는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 돈이야 원래부터 없던 거였으니 네가 하고 싶은 것하고 살아라.”

이렇게 돈에 초연하신 분이 내 아버지시다.

“예, 아버지.”

“고맙다. 철들어 줘서.”

나를 보며 미소를 보이시는 아버지시다.

‘선한 분들 옆에 있으면 나 역시 선해지는 건가?’

나는 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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