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첫 투자에 착수하다(1)
서울 유명호텔 예식장.
일주일 후, 내 요구대로 서울 유명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놀랍게도 은혜의 간곡한 부탁에 현직 대법관께서 흔쾌히 주례를 서 주셨다.
‘엄청난 인맥 하나를 확보했군.’
현직 대법관께서 내 주례를 섰다는 것은 은혜가 정말 내게 은혜로운 여자라는 증거이며, 은혜가 사법부에서 촉망받는 인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은혜에게 기대한 것 이상을 얻은 순간이다.
‘나를 위해서기도 하겠지.’
덩치가 큰 민사 및 형사 재판은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된다.
하여튼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내조 아닌 내조를 시작한 은혜다. 그래서 은혜로운 내 아내 은혜다.
‘형님의 재심 청구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우리 결혼식에 서울대 출신 하객이 꽤 많이 참석했고, 차후에는 저들 역시 내 인맥이 되고 또 내가 부릴 도구가 될 것이다.
‘단지…….’
나를 보는 눈빛이 참 거시기할 뿐이다.
‘그렇게 가여우면 지들이 데려가지?’
은혜만 본다면 그러려고 했던 놈들이 꽤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은혜에게는 사고뭉치가 셋이나 있고, 은혜 하나만을 보고 처가 뒤치다꺼리를 할 용기가 없기에 포기했을 것이다. 저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은혜가 가진 인맥은 저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은혜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내 아내 은혜에게 그 누구보다 잘해 줄 것이다.
결국 부부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다.
하여튼 그에 반해 우리 쪽 하객은 그저 평범할 뿐이고, 내가 알고 지내던,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의 백범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끝났고, 은혜가 사법연수원생이기에 신혼여행은 사업연수원 수료 후로 미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주례를 서 주신 주례께 따로 인사를(?) 올리는 일이다.
-운전기사에게 사과 박스 건네세요.
-대놓고요?
-감사의 마음으로 사과 한 박스를 드리는 건데 뭐가 문제인가요?
-보통 사과 박스에는…….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내 운전기사에게 이미 지시를 내렸고, 이것은 내 나름의 은혜에 대한 외조가 될 것이다.
하여튼 주례를 서 주신 대법관님의 운전기사가 기겁한 눈빛으로 급히 대법관님께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운전기사는 대법관님께 다가가서 귓속말로 뭔가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에게도 보였다.
대법관께서는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나와 은혜 쪽으로 걸어오셨다.
‘딱 걸려드셨네.’
나라는 사람을 대법관에게 제대로 각인시킬 기회가 오는 순간이다.
“백범 군.”
내 이름을 부르는 대법관의 목소리가 냉랭하다.
“예, 선생님.”
“나는 백범 군을 가르친 적이 없으니 선생이 아닙니다. 조용한 곳에서 나 좀 따로 봅시다.”
제대로 경직된 말투다.
차가우면서도 싸늘하다. 그저 나를 근본 없는 졸부의 아들로 보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실이 밝혀질까 걱정하는 눈빛이다.
‘쪼셨네…….’
한마디로 사과 박스에 제대로 분노하신 것이다.
“왜 그러세요? 대법관님.”
은혜가 놀란 눈빛으로 대법관에게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닐세, 백범 군에게 조용히 내가 충고할 말이 있어서 그래. 내가 그래도 두 사람 행복하게 살라고 주례를 섰으니까.”
찰나의 순간 은혜를 가엽다는 눈빛으로 보시는 대법관님이시고 은혜도 대법관님의 눈빛의 뜻을 감지했는지 나를 힐끗 봤다.
지금까지 내가 은혜에게 보여준 모습들은 모두 정의롭고 멋진 모습이었기에 의문의 호기심을 거두는 눈빛이다.
‘은혜 씨, 나는 항상 착하게 살 겁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은혜를 보며 미소를 보여 줬다.
* * *
호텔 지하 주차장.
대법관께서는 이곳까지 내려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심각한 얼굴로 일관하셨고, 가끔 긴 한숨만 내쉬셨다.
“트렁크에서 꺼내서 내려놓게.”
대법관께서는 운전기사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고, 운전기사는 트렁크에서 사과 박스를 꺼내 바닥에 놨다. 그리고 운전기사는 바로 대법관에게 고개를 숙인 후 멀리 떨어져서 주위를 살폈다.
-돈보다는 명예를 중요시하시는 분이시고 판사의 소신과 본분을 지키시는 분이세요.
내 아내 은혜가 내게 해줬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백범 군, 이게 뭔가?”
나를 정말 안 될 사람이라고 보는 눈빛이다. 마치 감히 자신에게 뇌물을 쓰려고 하냐는 눈빛이기도 하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나를 어떻게 보고!”
대법관께서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셨다.
“자네는 내가 어떤 사람 같나?”
“예?”
나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러는 건가?”
“제 아내 은혜에게 듣기로는 청렴결백하고, 훌륭하고, 가장 존경하는 판사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이러는가! 지금 나를 무엇으로 보고 이런 사과 박스를!”
사과 박스는 원래 국회의원이 참 좋아하는 박스다. 그리고 저 사과 박스에 만 원짜리 돈다발을 꾹꾹 눌러 넣으면 1억 정도가 들어간다.
‘농담 삼아 국개의원들이…….’
사과 박스에 1억밖에 안 들어가기에 5만 원권을 만들었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다.
5만 원짜리 지폐 뭉치를 넣으면 7억까지 들어간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의도적으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법관을 보며 되물었다.
“가져가게, 안 받은 것으로 하겠네. 남이 볼까 두렵네.”
“선생님.”
나는 내 행동에 분노한 대법관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나는 자네를 가르친 적이 없다고 말했네.”
역시 단호하다.
“아끼는 제자인 은혜가 간곡하게 부탁해서 주례를 섰어. 지금은 이 결혼식의 주례를 섰다는 사실이 후회스럽군. 내가 이 결혼의 주례를 섰다는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겠지. 나는 그런 사람 아닐세.”
제대로 단호한 어투로 내게 말하는 대법관님이시다.
“대법관님께서는 사과 박스에 뭐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담담한 어투로 되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
“사과 박스에는 사과만 담겼습니다.”
“뭐, 뭐라고?”
살짝 당황하는 눈빛을 보이는 대법관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사과 박스를 대법관 앞에서 보란 듯 개봉했다.
“이, 이게 뭔가?”
당황한 눈빛을 보이시는 대법관님이시다.
“사과입니다.”
“사과구먼…….”
제대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변한 대법관이시다.
“제 부친께서 작년에 수확한 무공해 사과입니다.”
“아……!”
“수도권에서는 사과가 잘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제 부친께서는 사과 과수원을 시작하시면서 그 더운 날에 농약 한 번 치지 않으셨고, 정성을 다해 키운 사과입니다. 그래서 이런 탐스러운 과실을 수확하셨습니다.”
이제야 내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이셨다.
“제 부친께서 농사를 짓는다는 말은 제 아내에게 들으셨을 겁니다.”
“그, 그건 나도 아네…….”
창피해서 그러시는지 말까지 더듬고 계시는 대법관님이시다.
“저는 제 아버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이 사과는 제 아버님의 진심이 담긴 사과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아버님께서 손수 수확하셨고, 저온 저장고에 정말 조심스럽게 저장해서 가져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오해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제 아버지처럼 사과 박스에는 사과만 담기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아…….”
정말 제대로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변하신 대법관이시다. 그리고 나를 다시 보는 눈빛이시다.
“죄송합니다. 명예로운 길로만 가시는 분을 오해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저희 부부를 자주 부르셔서 좋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아, 아닐세, 내가 백범 군을 오해했네.”
사실 내가 필요로 한 것은 이렇게 조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다.
“아닙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나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대법관에게 묵례하고 고개를 들어 대법관을 바라봤다.
‘이게 바로 남자의 외조다.’
사실 주례를 선 대법관이 뇌물에 익숙한 판사였다면 이렇게 직접 담지 않고 사과 박스 10개 정도를 돈다발로 채워 택배로 보냈을 것이다.
우리 집은 누가 뭐라고 해도 돈밖에 없는 집안이니까.
“하하하, 알겠네, 주신 사과는 정말 잘 먹겠다고 춘부장께 말씀드려 주게.”
“감사합니다.”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진 대법관이시다.
“자네는 소문하고 아주 딴판이군. 하하하!”
나를 다시 보는 눈빛이시다.
‘나도 그렇고 은혜도 점수를 땄군.’
소기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는 순간이다.
“백범 군.”
대법관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예, 선생님.”
나는 대법관을 대법관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혹시 자네 바둑을 둘 줄 아나?”
백범의 기억 속에는 바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환생한 나는 바둑을 아주 잘 두고 프로기사 3단 정도의 수준이다.
“겨우 돌만 놓을 정도입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바둑 한번 두세.”
또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이다.
“예, 선생님.”
“내가 자네를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어.”
개인적인 친분도 만들 기회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