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6화 (6/415)

# 6

6화 300억을 가진 유부남이 되다

일주일 후, 판교 본가.

“아버지, 일주일 후에 결혼식 올리겠습니다.”

내 옆에는 심은혜가 공손히 앉아 있고, 내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입이 쩍 벌어진 상태시다.

“뭐, 일주일 후?”

제대로 당황하신 아버지시다. 방탕하게 살려고 결혼을 미룰 거로 생각하신 모양인데 내가 사법시험 합격자를 며느릿감으로 데려온 것도 모자라 일주일 후에 결혼하겠다는 데 이리 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은혜 씨를 번갈아 보고 계시는 아버지시다.

“예, 아버지께서 원하시던 일입니다.”

나는 못을 박듯 말했다. 그래야 돈 내놓으라는 소리를 쉽게 할 수 있다.

“그, 그렇기는 해도 너무 빠르지 않아?”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무슨 결혼식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도 아니고…….”

“저희 쪽에는 일가친척이 별로 없고 꼬장꼬장한 두 고모님만 모시면 됩니다.”

아버지에겐 여동생이 두 명 있는데, 큰고모님은 좋은 분이지만 작은고모는 참 못되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아버지께서 정말 철면피에 가까운 두 여동생이 계신데, 과거의 백범처럼 참 많이도 아버지께 많이 뜯어 가셨고, 지금도 뜯어 간다.

“은혜 씨 쪽도 친척이 많지 않습니다. 일주일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신혼집은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혼수를 바라시는 것은 아니죠?”

“너, 요즘 이상해.”

마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병에 걸려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눈빛을 보이시는 아버지시지만 그래도 싫지 않은 눈빛이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던 겁니다. 그리고 이거 좀 봐 주십시오.”

나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뭔데?”

“주민등록등본입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이미 나는 은혜 씨에게 청혼을 했고 은혜 씨도 내 청혼에 수락을 했다. 그리고 바로 우린 결혼식도 하기 전에 혼인신고부터 끝내버렸다.

“보시는 것처럼 혼인신고 끝냈습니다.”

내 말에 아버지께서는 내가 내민 주민등록등본을 뚫어지게 보셨다.

“아…….”

“저 이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유부남입니다.”

뭐 이런 결단력까지 보이냐는 눈빛으로 입이 쩍 벌어지시는 아버지시다.

‘결단력도 없던 새끼였지.’

우유부단하고 천하태평으로 돈만 쓰던 놈이 바로 개망나니 백범이었다. 한마디로 인생 편안하게 쾌락만 즐기며 살았다.

‘종수 형이랑 너무 막살았지.’

내 개망나니의 짓에는 항상 작은고모의 아들인 종수라는 인간이 함께했다.

“아버지께서 저한테 약속하신 금액은 300억입니다.”

한마디로 돈 내놓으라는 소리다. 그리고 내 말에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심은혜도 놀란 눈빛으로 나를 봤다가 다시 담담해졌다.

‘사업자금 규모를 보고 놀랐군.’

나는 이미 내 결혼의 목적이 사업자금 확보라고 은혜 씨에게 말해 줬다. 그래도 놀라는 것은 300억이라는 액수 때문이고 사실 서민들에게 300억이라는 돈은 상상조차도 안 되는 거금이다.

‘사업을 시작해도 욕심을 부리지는 말자.’

탐욕은 결국 평범한 행복을 깨트리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돈 많은 졸부의 아들로 그리고 그 돈으로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투자자가 되어 볼 참이다.

“그런데 이거, 진짜야?”

주민등록등본은 국가보증 문서인데 이 역시도 못 믿겠다는 아버지시다.

“제가 공문서를 위조했을 것 같습니까? 판사 될 분이 위조에 동조했겠습니까?”

“판검사님이시죠?”

아버지께서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은혜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직은 사법연수원생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법시험만 통과하면 모두 판검사가 되는 줄 아는 분이시다.

“진짜 쟤랑 직접 혼인신고를 하셨습니까?”

마지막 확인 절차를 하시는 아버지시다.

“예, 그렇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아, 그래서 보자마자 제게 큰절하신 거네요.”

“며느리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심은혜는 똑 부러지게 말했다. 사실 본가에 오자마자 나와 은혜 씨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큰절부터 올렸다. 그리고 그때 두 분께서는 무척이나 놀라시며 몸 둘 바를 몰라 하셨다.

“내가 판검사가 되실 분에게 이런 말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은혜 씨를 뚫어지게 보셨다.

“말씀하세요. 아버님.”

“그럽시다. 우리 귀한 며느님, 혹시 미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나와 심은혜가 혼인신고까지 끝냈기에 바로 심은혜를 며느리라고 불렀고, 아버지의 뜬금없는 말에 심은혜는 황당한 눈빛을 보였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은혜 씨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다.

“쟤가 어떤 놈인지 알고 덜컥 혼인신고까지 하셨나요? 저희야 판검사가 되실 분께서 우리 며느리가 되어주시면 고마운 일이지만 쟤에 대해서 모르고 혼인신고를 한 거라면 평생 후회할 짓을 하신 겁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순간에 남의 귀한 딸 데려다가 마음고생 많이 시킬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하여튼 아버지께서는 이런 분이시다.

법 없이도 사실 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욕심이 없으셔서 법이 필요 없는 분이다.

“아버님.”

은혜 씨는 이제야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했다는 눈빛을 보였다.

“저는 백범 씨가 30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분명하게 들었고요, 알고 지낸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믿음직한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은혜의 말에 두 분께서 입이 쩍 벌어지셨다.

-형님의 사건에 재심을 청구할 생각입니다.

-예?

-사건을 살펴보니 정당방위에 가까웠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전 유죄, 유전 무죄더군요.

-어떻게 아셨어요?

-돈이 하는 일은 뭐든 쉽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돈밖에 없는 집안 아닙니까?

-아…….

-저랑 결혼해 주세요.

형님이 될 사람의 사건 기록을 찾아봤다. 사건을 살펴봤을 때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제대로 한번 물고 늘어져서 재심을 청구할 생각이다.

“그럼 혹시 저 녀석이 여자 후리고 다닌 것도 아십니까?”

아버지께서는 꼭 할 필요가 없는 말씀까지 하셨다.

“파락호로 살았다는 이야기도 이미 들었습니다.”

“정말요?”

“예, 아버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는 과거의 백범 씨가 아닌 오늘의 백범 씨와 결혼했습니다.”

미소를 보이는 은혜 씨고 나는 이 순간 은혜 씨에게 살짝 미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내가 과거 여자들을 후리고 다닌 것이 뭐 좋은 일이라고 며느리에게 말을 하냐고 아버지께 눈을 흘기셨다.

“며느님, 눈에 콩깍지가 씐 건가요? 아니면 혹시 300억 받고 반으로 나누기로 해서 이러는 건가요?”

아버지께서는 은혜 씨에게 말을 놓지 못했다. 은혜 씨가 판검사가 될 사람이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백범 씨를 너무 과소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째려보셨다.

“너, 판검사님한테 무슨 짓을 했냐?”

“약속은 약속입니다. 300억 주시죠.”

결혼도 해드렸으니 이제 받을 것은 받아야 할 때다.

“아…….”

“이제부터 아버지께 또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백범이 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겠습니다.”

내 말에 아버지께서 나를 한참이나 보시다가 고개를 끄덕이신 후 심은혜를 봤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며느님, 특이하시네요.”

나는 이렇게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듯 300억을 가진 유부남이 됐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교도소에 계신 형님의 사건을 파 보는 것이고, 또 구치소에 있는 처남을 꺼내서 정신교육 단단히 하는 일과 22살에 유부남이 된 막내 처남을 사랑의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장모님은 이미 서울 종합병원 특실에 입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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