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2화 (2/415)

# 2

2화 결혼부터 해?(2)

“그래?”

“예, 제가 개망나니기는 했죠.”

아버지는 내 말에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 내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몸뚱이의 주인이 저질렀던 수많은 사건 사고가 다시 떠올랐다.

‘건드린 여자가 도대체 몇이야?’

돈밖에 없는 파락호라고 해야 딱 맞는 표현일 것이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니 거두절미하고 말하마. 너, 교통사고가 나서 죽다 살아났을 때 아찔했다. 대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아버지께서는 가부장적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이제부터가 중요할 것 같다. 아버지께서 이런 강압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것은 내게 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압박은 이유를 동반한다.’

진짜 나는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살았으며 적절하게 이용하고 산, 악당에 가까운 놈이었다.

“너, 결혼부터 해라.”

“예?”

정말 뜬금없으시다.

“네 나이도 이제 서른이다. 그러니 장가라도 가야지. 이번에도 이 아비의 말을 어기면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아.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내가 한 말을 꼭 지킨다.”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아버지……?”

“왜, 싫어?”

“사귀는 사람도 없는데 갑자기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

그렇게 많은 여자를 건드리고 찝쩍거렸는데 진실하게 사귄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마디로 호구였지.’

여자들이 벗겨 먹기 딱 좋은 호구가 백범이었다. 여자 벗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돈 써 가면서 이 여자, 저 여자하고 연애질하던 놈이 결혼할 여자가 한 명도 없어? 쯔쯔쯔!”

처음으로 나를 째려보는 아버지다.

“아무하고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연애랑 결혼은 다른 겁니다.”

“그렇지, 아무하고 결혼할 수는 없지.”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어머니를 보셨고, 어머니께서는 내 앞에 사진 몇 장을 내려놓았다.

“이건 또 뭡니까?”

힐끗 보니 한가락 할 것 같은 집 딸내미들 사진으로 추정된다.

“범아, 겨우겨우 구한 사진이야.”

어머니께서 말씀했고, 아버지께서는 나를 흘겨보았다.

“네가 아무리 개망나니로 살아도 대는 이어야 하지 않겠냐? 평생 놀고먹겠다고 작정한 것 같은데, 그거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냐?”

결국 아버지께서는 어떻게든 손자를 보겠다고 이러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더 기대하지 않겠다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 저는 당장 결혼할 마음 없습니다.”

나는 회귀 및 환생자다.

그리고 지금은 1997년이다. 나는 1997년부터 2018년까지 미래의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을 이용해 졸부 집 망나니가 아닌 당당한 재벌로 거듭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에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돈이 있는데 결혼이 필요해?’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결혼을 강요받고 있다.

“그래?”

“예, 이제부터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사업과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뭐, 그렇다면 방 빼, 이럴 줄 알고 카드는 정지했다.”

“예?”

황당할 뿐이다.

“사업하든지 투자하든지 마음대로 해라. 파락호로 사는 것도 네 마음이니 하고 싶은 그대로 하고 살아, 그 대신 네 돈으로 해. 네 어머니도 더는 너한테 돈 주지 않기로 했다.”

내 돈줄은 어머니셨다. 물론 아버지께서 묵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

“결혼하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뭐든 할 수 있게 해주마. 그러니 지금 결정해.”

아버지께서는 작정하고 온 것이다.

‘결혼하면 사람 구실 좀 하고 살 거라는 희망을 품으셨나?’

분명한 것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내게 희망이 없기에 대라도 이으라는 것이다.

“아버지, 꼭 결혼해야 합니까?”

“해야지, 대라도 이어야지, 내 돈 펑펑 쓰면서 그거라도 안 하겠다면 도둑놈 심보지.”

아버지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옹고집이지.’

한번 정한 일은 절대 번복하지 않았다. 그러니 끝까지 결혼을 못 하겠다고 하면 돈줄을 막을 분이다.

돈줄이 막히면?

IMF 구제금융 사태를 이용한 투자고 나발이고 없다. 물론 내가 가진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투자자를 모으고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딘 행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빌 언덕이 있는데 그 비빌 언덕을 비비지 못하면 짜증날 뿐이다.

‘결혼이라?’

결혼만 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주신다니 못 할 것도 따지고 보면 못 할 것도 없다.

“제가 결혼하면 뭐든 할 수 있게 지원해 주신다는 말씀이시죠?”

“그래.”

“좋습니다. 아버지, 결혼하겠습니다. 그 대신에 300억을 저한테 투자해 주십시오.”

“300억?”

살짝 놀라는 눈빛을 보이시는 아버지셨다.

‘저렇게 놀라시는 것은?’

내가 빙의하기 전, 이 개망나니는 사업하겠다며 돈 달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허구한 날 술 마시고, 여자들과 놀던 놈이었으니 저리 놀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작은고모의 아들인 종수라는 사촌 형에게 많이 휘둘리며 온갖 사고를 치며 살았다. 그래서 저리 놀라실 수도 있는 것이다.

“예, 300억만 주시면 결혼하겠습니다.”

결혼을 조건으로 아버지께 돈을 요구하는 상황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충 아버지의 재산이…….’

700억 정도다.

일산 신도시 개발로 받은 보상금이 600억이고, 그중 50억으로 판교에서 농사지을 땅을 샀다.

남은 보상금은 은행에 넣었고, 개망나니인 내가 7년 동안 100억쯤 까먹은 것 같다. 그런데도 자산 규모가 700억대의 졸부 농사꾼이다.

“그리고 나머지 300억 모두 판교 땅을 사시면 아버지 말씀대로 결혼하겠습니다. 그리고 1년 안에 떡하니 손주를 안겨 드리겠습니다.”

내 2차 요구에 아버지께서는 결혼의 조건으로 300억을 요구했을 때보다 더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보셨다.

“판교 땅을 더 사라고?”

“예, 땅은 배신하지 않잖습니까? 그렇게 해주시면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하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제안 어떠십니까?”

나는 삼대독자다. 그러니 아버지의 재산은 훗날 내 것이 된다.

내 말에 아버지가 나를 뚫어지라 보셨다.

“오냐, 좋다. 결혼하면 주마.”

정말 손자를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시면 내가 결혼을 하면 책임감이 생기고 철이 들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못 미더운 아들에게 300억을 내놓으신다?’

이것만 봐도 아버지께서는 돈에 미련도 여한도 없는 분이라는 증거다.

-부자가 되어보니 부자라는 것이 먹고 싶을 때 마음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부자더라.

아버지께서 내게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 진짜 부자는 아버지이실 것 같다.

재벌이라도 가진 것보다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더욱 탐욕을 부리기에 지옥에 사는데, 아버지는 700억을 가졌는데도 이리 소박하게 사시니 진짜 부자일 것이다.

“정말이시죠?”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 봤어?”

“못 봤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보며 미소를 짓고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 이 여자는 뭐 하는 여자입니까?”

나는 사진 하나를 들어 어머니께 보였다.

“강남 뚜쟁이한테 겨우 구한 사진이야.”

우리 집이 졸부 집이니 우리 집 돈을 보고 달려든 여자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시겠죠, 뭐 하는 집 딸내미입니까?”

“그 사진은 국회의원 집안 막내딸이야.”

정말 제대로 돈 좀 쓰신 모양이다.

“국회의원 집안이 졸부 집안이랑 사돈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때마다 수억에서 수십억의 비용이 들고, 졸부랑 사돈을 맺어 선거 자금을 구할 심산일 것이다.

“그리고 유학파래, 유학파.”

추측건대 사진 속 주인공은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

“다음 사진은요?”

“그 아가씨는 이번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네, 얼굴도 예쁘고, 머리도 좋으니까, 손자 머리도 좋겠지.”

1997년이기에 아직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다.

“그럼 사법연수원생이겠군요?”

사진 속 여자는 미인이다. 거기다가 사법시험을 통과했다니 머리도 좋을 것이다.

‘그 대신에 싹수도 없겠지.’

공부 잘하는 것들은 보통 싹수도 없다.

“아버지, 우선 이 여자들이랑 선부터 보겠습니다.”

IMF 사태를 이용해 떼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결혼부터 해야 했다.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겠다.

진짜 악당이었던 나처럼 살지도 않고, 이 몸뚱이의 주인인 백범처럼 살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다.

‘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잖아.’

수신은 내가 이 개망나니의 몸에 빙의했으니 끝난 것이고, 아버지께서 간곡하게 제가를 원하니 나는 이제 치국평천하만 이루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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