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졸부 집 망나니-1화 (1/415)

# 1

1화 결혼부터 해?(1)

거두절미하고 나는 회귀자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눈을 뜨니 촌스럽지만 넓은 병실에 누워 있었다. 이게 내 새로운 시작이었다.

‘1996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분명한 것은 팔이 부러진 듯 아픈 것뿐만 아니라 온몸이 욱신거리니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생은 덤인가?’

그런데 이 세상이 좀 이상하다. 내가 살던 대한민국과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는 딱 모르겠는데 살짝 미묘하게 다르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데 또 꿈은 아닌 것 같고!’

환생을 했다는 것보다 더 혼란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도 살아가 볼 참이다.

‘살 만큼 살았는데…….?’

왜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는지 모르겠다.

* * *

3개월 후 강북 고급 아파트 안방.

1997년 2월 12일 뉴스는 황장엽 조선로동당 국제담당 서기가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나는 그 뉴스를 보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했다.

회귀 및 환생을 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내가 환생자란 말이지?’

회귀한 인생?

해괴한 인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회귀에 환생까지 했으니까.

병원에 있었던 3개월 동안 내게 왜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지에 고민해 봤지만 답은 없었다. 그러니 그저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지금 와서는 방법도 없었다.

내 이름은 백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몸뚱이의 이름이 백범이다.

놈의 기억에서 땅 부자 졸부 집안 삼대독자이며 개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했던 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졸부 부모 만난 철없는 개망나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놈이다.

‘여자 여럿 후리고 다녔지.’

병원에 있을 때 엄청난 양의 전화를 받았고, 대부분이 여자였다. 통화 내용을 듣고 녀석이 제대로 호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퇴원하자마자 휴대전화 전화번호부터 바꿔 버렸다.

‘영양가 없는 여자들이지.’

그저 즐기기에는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백범의 등에 빨대를 꽂은 거머리들이 대부분이기에 역겨웠다.

‘여자들만 탓하면 안 되겠지.’

호구를 자처했으니 당연히 여자들이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밖에 없는 새끼지.’

거기다가 자기가 번 것도 아니었다.

내가 환생하기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으로 꼽았던 분이 지금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환생하기 전까지는 천애 고아로 살았는데, 환생하자마자 아버지가 생기니 좋을 뿐이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분명 내 영혼은 백범이 아닌데 내 할아버지라고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받아들일 것이다.

‘진짜 나는!’

내가 살았던 그 모진 삶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이 깨물어졌다.

‘완벽한 백범으로 산다.’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다. 하지만 과거의 백범과는 또 다르게 살 것이다.

이것도 새로운 기회라면 기회일 것이다.

하여튼 내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시다.

광복군 출신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전하셨으며 김좌진 사령관을 옆에서 보좌했던 분으로 알고 있다. 또한 조부께서는 상해임시정부에 투신하면서 김구 선생님을 존경하게 됐고, 아버지께 아들을 낳으면 백범으로 지으라는 유서 형식의 편지를 남기셨다. 그래서 내 이름이 백범이 됐다.

‘왜 하필 내가 왜 그분의 손자일까?’

내 전생의 기억이 휘몰아치는 순간이다.

왜 하필!

하여튼 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가난하고 못 배우셔서 일자무식 농사꾼으로 사셨다.

‘대한민국은 정의롭지 않은 세상이지.’

대한민국은 단언컨대 정의롭지 않다. 그리고 나는 정의롭게 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아무런 이유 없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하여튼 강북에서 실시된 재건축 사업 부지에 아버지의 농지가 포함됐고,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3억의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셨다.

‘강북 아파트가 1억이니…….’

내 아버지께서는 보상금으로 아파트 세 채 값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받은 것이니 대박을 친 것이다.

‘내 아버지라…….’

나는 점점 더 백범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하여튼 아버지는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사신 분이라 보상금 3억으로 서울 외곽 촌구석이라고 말하는 일산에 농지를 구입해 다시 농사를 지으며 사셨고, 7년 후 제1기 신도시 개발이 발표되면서 농사를 짓던 땅이 3억에서 600억이 되어 졸부가 되었지만 일산에서도 쫓겨났다.

여기서 아버지의 천운이 끝이라면 내가 말하는 대한민국 최고로 운 좋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참 대단한 분이지…….’

이 몸뚱이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참 대단한 분이다.

-판교라는 곳의 땅이 기름지고 싸다네. 거기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판교는 분당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꽤 오른 지역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농지가 많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곳이 판교였다.

-보상금으로 600억이나 받으셨는데 이제 편히 사시지, 무슨 농사를 또 짓고 사시겠다는 겁니까?

-돈은 네가 쓰는 거고, 내가 강북 가서 뭐 하게?

-600억 부자가 똥지게 들고 농사짓고 살면 사람들이 바보라고 그럽니다. 똥지게가 그리 좋으세요?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농사밖에 없어, 땅은 절대 배신 안 해.

-미치겠네, 정말!

-이번에는 과수원을 해보련다.

-과수원이라고요?

-이왕 지을 농사라면 농장주 소리를 들어야겠다.

-어떤 과일을 심으시려고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사과는 수도권에서 잘 안 크거든요.

이게 바로 백범이 가진 기억이다. 나는 내 본래의 기억과 영혼이 사라져 버린 백범의 기억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다.

하여튼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판교로 다시 이사했고, 개망나니인 백범만 강북에 살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다 살아난 것이 딱 3개월 전이다. 그리고 그의 몸속에 내가 이유도 영문도 없이 들어앉았다.

‘하여튼 운은 타고난 분이지.’

아버지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에서 땅은 절대 사람을 배신하지 않기에 몇 년 후면 또 엄청난 보상금을 받고 판교에서도 쫓겨날 것이다.

“이 집, 복덕방에 내놨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께서 다짜고짜 집을 내놓으셨단다.

‘명의가 아버지 것이었군.’

한마디로 백범, 아니, 나는 아버지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증거다.

아파트 명의 하나 가지지 못한 놈이니까.

‘거덜을 낸 것이 한두 푼이 아니구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하여튼 그 기가 차는 기억들은 여자와 연결되어 돈을 날려 먹은 것이 대부분이다.

“예?”

“없이 살다가 갑자기 졸부가 되어 버린 후에 네 엄마가 너를 망쳤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게 놔뒀더니 결국 망나니가 됐구나.”

맞는 말이다.

농사짓고 없이 살다가 졸부가 된 후 어머니는 삼대독자인 내게 금전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 몸뚱이는 돈 쓰는 재미에 빠져 개망나니로 살았다.

‘일본에 가서 신주쿠 골든벨도 처 본 놈이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인데 일본까지 건너가서 돈을 물 쓰듯 쓴 놈이었다.

“인정합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 말에 아버지께서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셨고, 어머니께서는 자기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냐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흘겨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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