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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화 〉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는 주먹으로 (87/90)

〈 87화 〉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는 주먹으로

* * *

"브라이언님."

"아! 왔나?"

손에든 주먹밥을 브라이언에게 던져준 디온은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고 브라이언은 전장에서 군소리 없이 명령을 받드는 그가 기특한지 미소를 지었다.

"조용하네요."

"조용하지."

"왜 저렇게 조용한 걸까요?"

"으음.. 잘 모르겠군, 다만 저쪽이 저렇게 조용한 이상 우리는 쉽사리 공격할 수 없으니."

"에휴."

아빌론의 진영에 팔라인이라는 남자가 오고 나서부터 칠라렌 성국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디온과 브라이언의 속 또한 타들어갔다.

"보급은 계속 축나고 있고... 이런 소모전은 조금 힘든데."

"그래, 성국은 제국 못지않게 부유하니 이러다가는 우리가 먼저 굶어죽겠지."

"...."

"그나저나, 성녀들은?"

"모두 왕성에 잘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그거 좋은 소식이군."

브라이언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디온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어디 가십니까?"

"둘러보러 가네."

"뭘...?"

"적진."

"예?"

디온이 당황한 듯 그의 앞을 막아서자 브라이언은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안됩니다."

".... 심심하지 않나."

"전쟁이 장난입니까?"

"아직 서로 눈치싸움만 하는 중인데 이게 전쟁이라고 할 수 있나?"

"서로 사상자가 나오면 그게 전쟁입니다!! 잠깐 좀 앉아서 경치 구경이나 더 하십시요."

"자네도 얘기하지 않았나? 소모전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아니..!"

디온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지만 브라이언은 빙글빙글 미소를 지었다.

"브라이언님, 그냥 계십시요."

하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한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로 브라이언을 보며 서있었다.

"리타!"

"쯧..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자네도 왔군 카일록!"

리타는 한숨을 쉬며 브라이언의 앞으로 다가왔고 리타의 호위 역할로 온 카일록과 게리 또한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진정하고 앉으시지요."

게리와 카일록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듯한 브라이언의 팔을 잡고 바닥에 앉혔고 리타는 조용히 적진을 살폈다.

"디온."

"예 리타님."

"적들이 움직이지 않은지 얼마나 됐습니까?'

"저번에 브라이언님이 사로잡힌 뻔한 이후로는 없었습니다."

".... 꽤 오래 움직이지 않았네요."

리타는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움직이는 성기사들을 바라봤다.

"성녀들을 이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게리가 리타에게 묻자 카일록은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성국과 전쟁을 하는 것은 성녀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야, 절대 안 되네."

"카일록의 말이 맞습니다, 성녀들을 사용했다가는 제국까지 순식간에 치고 내려올 겁니다 지금은 브라이언님을 이용하는 게 가장 맞지요."

"나는 항상 준비돼있네!"

브라이언이 자신감 있게 얘기하자 리타는 혀를 차며 뒤를 돌아봤다.

"이제부터 가이덴님과 함께 움직이실 겁니다."

"...."

"아 그리고 또 소개해 드릴 분이 있군요."

리타는 뒤에 서있는 가이덴과 벡커를 가리켰고 두 사람은 브라이언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오랜만이군 신참."

"제국의 망령이 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오랜만입니다."

"꽤 강해졌다고 들었는데?"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끌끌.."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 벡커는 자신의 검을 손질하기 바빴다.

"벡커님도 오랜만이군요."

"그래 브라이언."

"그래서 이 인원을 모두 여기 모은 이유가 뭐지?"

브라이언은 벡커와 마저 인사를 나눈 뒤 리타를 바라봤고 리타는 아직까지 생각이 많은지 턱을 괴고 있었다.

"브라이언님의 말이... 맞다고 생각을 한적 없지만.."

"...."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는 찔러봐야죠."

"호오."

브라이언은 리타의 선택이 마음에 드는 듯 말에 올라탔고 가이덴 또한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보는지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벡커님은 괜찮으시겠습니까?"

"성녀들은 한 명 빼고 모두 여기 있네, 그리고 이미 칠라렌을 떠날 때 나는 성기사들의 피를 손에 많이 묻혔어."

"괜찮다는 의미십니까?"

"물론."

리타는 벡커의 말을 듣고 안심했는지 품에 있는 지도를 꺼내 세 방향을 짚었다.

"세 곳으로 갑니다."

"지휘는?"

"각자 알아서 해주십시요."

"좋구만!"

브라이언이 환하게 미소를 짓자 리타는 고개를 내저으며 가운데 방향을 가리켰다.

"브라이언님은 깊숙이 침투하지 않는 가운데 방향으로 갑니다, 적만 보면 환장을 하고 돌진을 하시니.."

"제가 자제 시키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디온이 브라이언의 옆에서 엄지를 치켜들자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고 브라이언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꼭 나를 이렇게 구속해야겠나?"

"가이덴님과 벡커님은 기본적으로 싸움을 즐기지 않으십니다, 브라이언님은 칠라렌의 아빌론님만 봐도 당장 싸우려고 드시지 않습니까."

".... 자제하겠네."

"죄송하지만 안되겠군요."

"...."

"그럼 지금 당장 가면 되겠나?"

가이덴의 물음에 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셔도 됩니다, 단 바로 치고 빠질 겁니다."

"... 좋아."

가이덴은 오랜만의 싸움에 꽤나 긴장이 됐는지 숨을 들이켰고 숲에 대기 중인 기사들을 바라봤다.

"먼저 가겠네!"

"나 또한 가겠네, 뒤를 잘 맡아주게 브라이언."

".... 쳇."

브라이언은 혀를 차고는 두 사람의 뒤를 빠르게 따라갔고 기사들은 세 사람을 따라 순식간에 언덕을 내려갔다.

"적이다!!!"

기사들이 순식간에 내려오는 것을 보던 칠라렌 성국의 병사들은 이미 대처준비를 마친 듯 순식간에 창을 들고 쏟아져 나왔다.

"왔군요."

"자네 말이 맞군."

"안 그래도 보급이 떨어지던 와중이었는데 잘 됐어요."

팔라인은 시끄러운 소리에 천막 밖으로 빠져나와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고는 검을 뽑아들었지만 아빌론은 그의 손을 잡았다.

"자네는 여기 있게."

"예?"

"지휘관이 검을 들면 안 되지, 안 그런가?"

"...."

아빌론이 자신을 막아서자 팔라인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뒤에서 나온 블라인이 어깨를 잡자 한숨을 내쉬었다.

"다치지 마세요.. 그리고.."

"잡히지 말라고?"

"예."

"알겠네."

두 사람이 만류하자 결국 팔라인은 뒤로 물러섰고 아빌론은 입을 삐쭉 내민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브라이언을 바라봤다.

"뒤에 있을 모양이군."

"그런 것 같군요.. 그런데.."

블라인이 가리킨 곳에는 벡커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아빌론은 한숨을 쉬며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

"벡커와 검을 맞대야 하다니."

"그리고 처음 보는 노인이 있군요."

"...."

아빌론은 실눈을 뜨고 맨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 저자는.."

"아는 사람입니까?"

"자네는 벡커를 맡게."

".... 아는 분인가 보군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아니.. 톤 왕국에 있으면 안 되는 남자야."

아빌론은 말을 마치고는 순식간에 가이덴에게 달려갔고 가이덴은 아빌론의 존재를 눈치챈 듯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일세!"

"어찌 그곳에서 나왔습니까!"

"어떤 젊은 청년이 꺼내주어서 말이지."

"....!"

아빌론은 그가 말하는 청년이 누구인지 알아챈 듯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가이덴은 씨익 웃으며 검으로 그를 겨눴다.

"아빌론."

"...."

"당장 물러가게."

"협박하는 겁니까?"

"머리는 쓰러졌고, 성국의 능력자들은 모두 톤 왕국으로 넘어왔을 텐데 어째서 승산 없는 싸움을 이어가려는지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감옥에 있더니 말이 많아지셨군요."

"나올 것을 대비하고 혼잣말을 많이 연습했지."

"죄송하지만 물러나는 것은 못합니다, '가짜' 성녀들을 모두 잡아들여야 하니까."

"하하하하!!!"

아빌론의 말에 가이덴은 말에서 내려 크게 웃었다.

"아빌론, 잘 생각해 보게 과거도 지금도 가짜 성녀는 없었어."

"...."

"그저 가짜라는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해 너희가 만든 말이지."

"닥치십시요."

"잘 생각하라는 걸세, 권력을 쥐고 흔들지 못해 안달 난 귀족들과 리에티라는 남자를 계속 따를 생각인가?"

"...."

"대륙 최고의 검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이곳에 있네, 그런데 그 괴물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나?"

"하나만 말씀드리죠."

아빌론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가이덴의 앞으로 다가왔다.

"제국과 손을 잡을 생각입니다."

"...."

"당신까지 나와버린 마당에 제국 또한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아무리 강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톤 왕국은 혼자입니다."

"진심인가? 자네가 제일 싫어하는 제국을 끌어드리려고?"

"상관없습니다, 성국을 지킬 수만 있다면.. 성녀만 지킬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

"부유한 제국과 신의 사제들로 가득 찬 성국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요."

가이덴의 가슴을 툭 밀친 아빌론은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고 가이덴은 그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다시 말에 올라탔다.

"자네의 마음을 잘 알았네 아빌론, 과거와는 꽤나 달라졌군."

"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저를 이렇게 만든 거지요."

"쯧.. 후퇴한다!"

혀를 차며 빠져나가는 가이덴의 명령에 성기사들과 맞붙고 있던 기사들은 순식간에 그를 따라 진영을 빠져나갔다.

"지원해라."

"지원!!"

브라이언은 기사들이 빠져나가기 편하도록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검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빌론님."

"부상자는?"

"미리 준비를 해놓아 저번처럼 쉽게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다시 경계를 삼엄히 하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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