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는 주먹으로
* * *
"그나저나.."
"...."
"하아.."
자신의 옆에 서있는 노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칠러웨이는 짜증이 난 듯 한숨을 쉬었다.
"이게 그 방법입니까? 구레드님?"
"조용히 하라니까."
"그러니까...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 이게 맞냐구요."
"진짜 시끄럽네."
냄새나는 뒷골목에 숨어 어딘가를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은 며칠째 씻지도 않았는지 몸에서는 악취가 풍겼지만 이미 익숙해진 듯 보였다.
"그러니까.. 말은 해줘야죠 그래도 똑똑하신 분이라 안 물어보고 있었는데 여긴 왜 온 건데요?"
"...."
"구레드님!!!!!"
칠러웨이가 큰 목소리로 소리치자 뒷골목을 거닐던 사람들은 깜짝 놀란 듯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 미친놈이..!!"
"말 해달라구요!!!!!"
칠러웨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커지자 구레드는 그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
"예.."
"과거에 내가 알던 사람은 겉보기에 멀쩡하고 돈도 많고 신망도 많이 받는 인간이었다."
"...."
"그런데 그 녀석을 보며 가이덴 폴 겐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나?"
"구레드님이랑 질투했습니까?"
"...."
"아니면 흠모..?"
"장난치지 말게."
칠러웨이의 말에 구레드는 그의 멱살을 잡았고 칠러웨이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똥 구린내가 난다."
"...."
"그래서 그 녀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한테 찾아와서 '저놈 좀 지켜봅시다, 진짜 똥 구린내가 나서 그래요.'라고 했지."
구레드의 말에 칠러웨이는 어이가 없는지 그를 바라봤지만 구레드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 다음날에 무슨 소리인가.. 하고 그 녀석의 옆에 가봤는데 진짜 똥 구린내가 나는 거야."
"예?"
"참 이상하지? 그렇게 깔끔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똥 내가 난다는 게."
"노망났어요?"
"그냥 좀 들어볼 수 없나?"
칠러웨이가 한숨을 쉬며 자신을 한심스럽게 바라보자 구레드는 당장이라도 주먹을 들어 올릴 기세였지만 겨우 참아냈다.
"그래서 나도 궁금증을 못 이겨 겐 녀석과 함께 그 녀석의 뒤를 밟았지, 그때는 젊었을 때라 뭘 하든 소리도 안 나고 잘 움직일 수 있었어."
".... 예."
"그리고 그 녀석을 따라갔는데... 냄새나는 곳도 안 들어가게 생긴 녀석이 글쎄 똥이 가득한 뒷골목으로 들어갔지."
"...."
칠러웨이는 구레드의 이상한 말에 화가 끓어올랐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에 화를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거기서 녀석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
"뭘 하고 있었는데요?"
"살인."
"...."
"정확히 겐이 맡은 건 뒷골목의 똥내도 있었지, 근데 녀석의 무슨 냄새가 제일 구렸는지 아나?"
"아뇨.."
"녀석은 변태 그 자체였어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의 로브는 절대 빨지 않았지, 피가 묻고 묻어 그 로브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을 하게 됐고 녀석은 그것도 모른 채 밤마다 그 옷을 오랜 시간 동안 입은 거야."
구레드의 말에 칠러웨이는 그제서야 그가 어떤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 구린 내가 수비대장 파르마인과 기사단장 트레버한테 난다는 거네요?"
"아니?"
"예?"
"뭐.. 따지고 보면 그 녀석들 중에 하나도 나긴 했었지."
"그럼 제일 구린 내가 많이 나는 녀석이 누구라는 겁니까?"
"왈츠 디 페르판."
"피올레의 오빠.. 맞습니까?"
"그래."
예상외의 말에 칠러웨이는 놀란 듯 그를 바라봤지만 구레드는 그의 표정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오빠란 작자는 동생을 위하는 것 같지만 저택의 분위기.. 동생을 보는 눈빛 모든 걸 고려해 봤을 때 절대로 좋은 태도는 아니야."
".... 전 못 느끼겠던데."
"그래서 네가 하수라는 거다."
"...."
칠러웨이는 구레드를 당장이라도 때리고 싶었지만 주먹에 힘을 풀고 그의 얘기를 계속 들었다.
"자기 동생을 위하는 것은 분명히 맞지만... 그 심성은 심히 뒤틀려 있어, 수상하기 짝이 없지."
"아니 그래도 가족인데..."
"가족? 지금 이 대륙에서는 귀족과 왕가의 가족은 서로 적이야 가족이 서로를 위한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부와 명예에 욕구가 그리 없는 평민들에게 속하는 이야기고."
"...."
무언가 말하려 칠러웨이는 입을 달싹였지만 구레드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듯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네요."
"생각할 것도 없어, 왕이 죽고 왕자들의 난과 귀족들의 귀하신 자녀들이 왜 싸우는데."
"...."
"가족이라는 건 그 녀석들에게 없어 거의 대부분이 욕망 덩어리다."
구레드는 옛날이 생각나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칠러웨이 또한 더 이상 무어라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럼.. 그 페르판이라는 녀석은 그렇다 치고... 나머지 둘은 뭡니까?"
"우리 헤라임 제국에는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 있지."
"무슨..?"
"수상한 놈들은 뒷골목으로 모인다."
"...."
구레드의 말에 칠러웨이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결국 화가 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씨... 그럼 여기에 녀석들이 오는지 안 오는 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기다린 겁니까?"
"뭐?"
"겨우 속담 하나 때문에 여기서 시간 낭비하고 있던 거냐구요!"
"소리 지르지 마!! 귀 아프니까!"
"아니... 진짜..!"
칠러웨이가 더 화를 내려고 하자 구레드는 그의 머리를 붙잡아 머리를 숙이게 만들었고 화가 난 칠러웨이는 그의 손을 벗어나려 했지만 구레드의 미소에 움직임을 멈춰야만 했다.
"쉿."
".... 뭐 왔습니까?"
"속담은 틀리지 않아 칠러웨이, 내 경험상 거의 들어맞았지."
"...."
"저기 봐라."
구레드가 가리킨 곳에는 기사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따라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 네가 소리를 더 질렀으면 들켰을 거다."
".... 죄송합니다."
"내 말이 맞지?"
".... 예."
"그나저나 저기 저 앞에 있는 녀석 그 트레버라는 놈 맞나?"
칠러웨이는 기사들의 맨 앞줄에서 걸어가고 있는 트레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구레드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뒤따라 골목길을 걸어갔다.
"잘 들어 칠러웨이, 예나 지금이나 구린 놈들은 뒷골목으로 모이게 돼있어 녀석들은 구린 짓을 할 때 사람들이 없는 곳을 원하고 이런 뒷골목은 그런 걸 하기에 안성 맞춤이지."
고개를 끄덕인 칠러웨이는 구레드의 뒤를 따라 그들을 쫓아갔고 트레버와 기사들은 어떤 낡은 집 앞에 멈추더니 문을 두들겼다.
"왕과 신하."
시간이 흐르자 문을 빼꼼 열고 누군가 트레버에게 뜻 모를 단어를 이야기했고 트레버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는 석상."
트레버의 대답에 문을 열고 나타난 남자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고 트레버는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 무슨 소리입니까?"
"모르겠는데?"
"암호 아닙니까?"
"... 으음..."
칠러웨이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지만 구레드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더 살폈고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실눈을 떴다.
"저거 보이나?"
"마차요?"
".... 잠깐 기사들 시선 좀 돌려봐."
".... 제가 말입니까?"
"그래."
칠러웨이가 머뭇거리자 구레드는 답답한 듯 로브를 씌운 뒤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고 골목길에서 쓰러지다시피 넘어진 칠러웨이는 낡은 집 앞에 서있는 남자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누구냐!!"
"... 아.. 저 그게..."
"로브를 벗어라!"
기사들이 검을 들이대며 칠러웨이의 주변으로 몰려들자 구레드는 조용히 마차 안으로 다가갔다.
".... 허어.. 이 자식들이 되먹지도 않은 짓을 하고 있네?"
마차 안에는 쇠로 만든 사슬과 수갑이 널려있었고 구레드는 무언가 떠오르는지 주변을 바라봤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차의 바닥 아래 떨어져 있는 것은 어디선가 가져온 계급 표였는데 구레드는 어떤 것인지 예상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마차 밖으로 나왔다.
"정리 끝났나?"
"... 허억... 허억..."
마차 밖으로 나온 구레드는 어느새 기사들을 때려눕히고 밧줄로 묶고 있는 칠러웨이를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고 칠러웨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봤다.
"뭐 찾으셨습니까?"
"이거."
".... 그게 뭡니까?"
"불법 노예."
".... 불법 노예요?"
"말 그대로 불법 노예지, 대륙 전체에 있는 종족들을 싸그리 잡아다가 거래하는 것 같은데.."
"그 코가 정확하셨네요?"
"내가 뭐랬어 구리 댔지?"
구레드는 의기양양하게 등급 표를 품 안에 집어넣었고 칠러웨이의 어깨를 툭 쳤다.
"일단 먼저 들어가."
"예?"
"하나를 처리할 기회인데 놓칠 수는 없지."
"구레드님은요?"
"피올레에게 간다."
"...."
"... 뭐야 그 표정 '왜 제가 혼자 저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서 난동을 피워야 됩니까?'라는 뜻 같은데?"
"잘 보셨습니다."
칠러웨이의 표정에 그의 의중을 바로 알아챈 구레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안 그래? 내가 들어가면 바로 죽을 거고.. 자네가 들어간다면?"
"안 죽으리라는 보장은 없죠.."
"그래도 나보다 시간을 더 잘 끌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
"...."
품에 있던 검을 칠러웨이에게 넘긴 구레드는 그의 등을 팡팡 때렸고 칠러웨이는 한숨을 쉬며 검을 허리춤에 찼다.
"돌아오시는 겁니다?"
"그래 내가 지원군을 끌고 오마."
".... 진짜죠?"
"얼른 가라니까!"
칠러웨이는 결국 구레드의 성화에 못 이겨 문 앞에 서고는 두들겼다.
"...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까처럼 한 남자가 빼꼼 머리만 내밀고 그를 바라봤고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죠."
"추천은?"
"안 받았어요."
".... 그럼 받아와라."
"잠깐..!"
남자가 문을 닫으려 하자 칠러웨이는 문틈으로 발을 집어넣었고 남자는 그를 더욱 수상하게 바라봤다.
"뭐지?"
"왜 반말이세요?"
"커어억!"
문을 통째로 뜯어내 남자에게 던진 칠러웨이는 구레드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구레드는 미친 사람을 보듯 고개를 내저었다.
"요란하게도 들어가네."
"꼭 오시는 겁니다 구레드!!"
"걱정하지 마!"
칠러웨이가 낡은 집으로 발을 옮기자 구레드는 뒤를 돌아 피올레에게 뛰어갔다.
"좀만 버티게 칠러웨이 금방 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