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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79/90)

〈 79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 * *

"어쩌시려구요?"

"뭘?"

"아니.. 이제 어쩌실 거냐구요."

"...."

"아니 잠깐만 그만 걷고 말씀 좀 해보세요."

칠러웨이는 당당하게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 구레드의 팔을 잡고 물었지만 구레드는 피식 웃은 뒤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는데?"

"뭐라고요?"

"모르겠다니까?"

"예?"

"모르겠다고!"

그의 대답에 어이가 없는 듯 칠러웨이는 멍하니 몇 초간 그를 보고 있었고 구레드는 무슨 문제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진짜.. 저 구레드님 버려도 됩니까..? 아무 계획도 없이.. 하.. 참..."

"뭐..? 자네 다시 말해봐."

"계획도 없이 이렇게 나오신 겁니까?"

"그럼 뭔 생각을 하고 나와! 칠러웨이 자네가 설득만 하자고 했잖나!"

"갑자기 막 화가 나려고 하네."

"또 이 어린놈의 자식이.."

칠러웨이의 얼굴이 붉어지자 구레드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팔을 들어 올렸지만 칠러웨이는 그와 거리를 벌린 뒤 소리쳤다.

"어쭈?"

"그 성격 좀 고치세요!"

"안 때릴 테니까 이리 좀 와봐!"

"싫어요!"

"...."

"그러게 제대로 생각을 하셔야 저도 믿고 따를 것 아닙니까!! 아무 계획도 없이 저 방에서 나와 무작정 찾아가기만 하면 어떡합니까!"

"... 진짜 섭섭하구만.. 그래도 도와주려고 열심히 하는 건데.."

"뭐라고요?"

"진짜 섭섭하다고!!"

"섭섭해하세요!"

마치 어린아이들이 싸우는 모습에 공국의 기사들은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칠러웨이와 구레드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무슨 계획도 없이 무작정 도와준다고 합니까!!"

"그딴 것 없어도 돼! 남자는 근성이지!"

"근성 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다 목 잘려 죽으면 끝이라구요!"

"안 죽는다니까!"

"이곳에 올 때까지 계속 없으셨잖아요! 한 번이라도 좀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뭐!?"

"뭐요!"

"이... 어린놈의 시끼가...!"

결국 구레드가 폭발하자 칠러웨이는 그에게 으르렁대며 지지 않겠다는 듯 노려봤다.

"그만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

"너무 시끄럽게 하시는군요, 이곳은 공국의 가장 높으신 분이 계신 곳입니다."

"... 당신 뭐야!"

"...."

"비켜!"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가 자신을 칠러웨이에게서 떨어뜨리자 구레드는 그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기억이 나시지 않나 보군요, 당신들을 왈츠님에게 데려간 트레버라고 합니다."

"누군지 모를 놈한테 경고받고 싶지 않아!"

".... 어찌 되었던 이곳에서는 소란을 피우지 말아 주십시요."

"누가 그런 법을 정했지!? 나 때는 이곳에서 떠들어도 아무 말도 안 했어!"

"왈츠 디 피올레님의 명령이 있어 추방을 시키지 않는 것일 뿐.. 그만하시길 바랍니다."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구레드가 귀를 파자 트레버는 그의 손을 잡고 살기를 내뿜었다.

"당장이라도 제 권한으로 당신들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 그놈의 살기는 중요한 분이 있는 곳에서 마음대로 뿜어도 되나 보지?"

"저는 왈츠 디 피올레님을 지키는 기사, 이 정도의 권한은 존재합니다."

구레드의 말에 트레버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찌푸렸고 구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고! 그만하고 네 주인에게 가!"

"제 말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라니깐!"

결국 구레드가 졌다는 얼굴로 손을 휘휘 젓자 트레버는 자신의 기사들을 이끌고 피올레의 방으로 향했다.

"...."

"구레드님."

트레버가 복도 끝으로 사라지자 칠러웨이는 얼굴 표정을 풀고 그에게 다가갔고 구레드는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구레드님?"

"... 아 미안하네 뭐라고 했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자네는 내가 위협을 받는데 도와주지도 않나?"

"나설 수가 있어야죠."

구레드가 다리가 후들거리는 듯 자신의 어깨를 붙잡자 칠러웨이는 그에게 고생했다는 듯 등을 토닥였고 구레드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칠러웨이를 바라봤다.

"뭐 물어봤었더라?"

"어떻습니까? 저 트레버라는 남자."

".... 어떻냐고..? 할 말은 많지 따라와."

칠러웨이의 물음에 구레드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칠러웨이를 빈 방으로 끌고 갔다.

"그 짧은 순간에 다 보셨습니까?"

"그래 내가 눈썰미가 좀 좋아서 말이야.. 좀 많은 걸 봤지."

"그래서.. 어땠습니까?"

"확실히 실력이 좋은 놈이다, 손봤어?"

"아뇨?"

"기사라는 놈이.. 그 정도는 보고 사람 실력 파악은 해야지!"

"좀 조용히 하세요..! 계획 다 들키면 어쩌려고...!"

"여기는 왈츠 디 피올레가 알려준 방이야, 사람이 들어 올리는 없어."

"아니 그래도.."

"뭐 자네 말대로 조심하는 게 좋겠지."

"... 진짜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칠러웨이가 문을 열고 밖에 누군가 서있는지 확인하자 구레드는 그의 뒷덜미를 확 당겼고 칠러웨이는 뒤로 넘어져야만 했다.

"미친 건가!?"

"왜요!"

"인마! 그러면 더 수상하지!"

"아.. 그런가..?"

칠러웨이의 바보 같은 모습에 구레드는 한숨을 쉬고는 조용히 얘기했다.

"손을 보니 상처가 하나도 없어."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이 거대한 숲의 가운데 있는 공국의 기사라면 몬스터를 상대하며 상처를 입었을만 한데.. 하나도 없는 건 분명히 둘 중 하나지 실력이 좋거나 실력이 아예 없거나."

"후자라고 하면 전투에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나요?"

"공국의 기사단장 자리에 오르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나?"

".... 그렇긴 하죠."

"어쨌든 상처도 하나 안 보였고... 순간적으로 느낀 저 살기... 이 나이 먹고 오줌 지릴 뻔한 걸 보면 분명히 실력자라는 거다."

".... 저희가 뭔가를 하기 힘들다는 말이랑 비슷하네요?"

"그렇지 자네가 저 녀석보다 강하면 좋겠지만..."

"하아.. 여기서 더 힘들면.."

"걱정하지 말게."

그의 말에 칠러웨이는 이마를 탁 짚었고 구레드는 걱정 하지 말라는 듯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아무튼 연기하느라 수고했어."

".... 뭐.. 그 정도야.."

"근데.. 조금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았는데.."

"아 예.. 뭐 진심이 조금 담겨있긴 했죠."

"우라질 놈이.."

"아! 거짓말이에요!"

구레드가 다시 팔을 들어 올리자 칠러웨이는 그의 팔을 잡아챘고 구레드는 잠시 그를 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저희가 도와준다는 말이 저자에게 알려져도 되는 겁니까?"

"상관없어, 오히려 다 듣고 먼저 우릴 공격하거나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만한 행동을 보여주면 좋지."

".... 그런가요..? 위험한 것 같은데..."

"우리가 왈츠 디 피올레를 도우려면 저들이 먼저 다가오게끔 유도를 해야 돼."

"엮여야 한다 이 말인가요?"

"그래, 우리가 '왈츠 디 피올레'의 어떤 것에 도움을 줄지 궁금하게 해야 저들의 의도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있고..?"

"왈츠 디 피올레가 그들의 압박으로 인해 아무것도 못하는 건지... 정말 도움을 바라는지.. 그것도 알 수 있지."

"예?"

자신의 말에 칠러웨이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보자 구레드는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봤다.

"귀족, 기사, 병사, 공국의 영지민들... 이곳의 구조에 대해서 대강 얘기해 줬지?"

"예.. 거의 대부분 전 대륙에서 온 귀족들이라고.."

"그래, 그게 문제다 과거 '용사'라는 이름으로 이 공국을 세운 사람은 각 나라의 뛰어난 인간들이 모여 대륙의 평화를 지키길 원했어 또 이론적으로는 귀족들이 온다면 이곳의 권력은 한쪽으로 쏠릴 수가 없지."

".... 그런데 그 권력이 쏠린 거군요."

"말이 공국이지 이곳은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전쟁터라고 할 수 있어 근데 용사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녀석이 나쁜 마음을 먹고 권력을 잡고 흔든다?"

"...."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는 거지.. 공국의 영지는 점점 확장되고 왕국... 제국... 점점 커질 거다."

"용사라는 게 대륙에서 그렇게 큰 존재인가요?"

"신의 이름을 빌린 나라인 칠라렌 성국과 맞먹는다고 해야 하나... 뭐 내가 나와있던 것은 오래전이니 지금은 잘 모르겠군."

구레드의 말에 칠러웨이 또한 생각에 빠졌고 방은 침묵만이 흘렀다.

"다음은 어떡하실 겁니까?"

"나가서 찾아야지 권력을 쥔 녀석을."

"쉬울까요?"

"어려워도 해야 하지 않겠나?"

"하아... 근데 이럴 시간이 있나 싶네요.. 톤 왕국에 헬하임 제국이 쳐들어오면..."

"데브라가 톤 왕국에 귀화했다고 했나?"

"예."

"그럼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는 우리 할 일만 끝내면 돼."

"...."

칠러웨이는 아르웬에 대한 걱정에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지만 구레드는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것 같던데 맞나?"

"예."

"걱정 말게, 톤 왕국에는 신참 브라이언도 있으니까."

"... 신참이요?"

"응?"

"브라이언 공작이 신참입니까?"

"공작?"

"공작이요."

".... 떡잎부터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공작을 달았다고?"

"예."

"아이고... 십오 년이 이렇게 길다니..."

브라이언의 소식에 감옥에 갇혀있던 세월이 야속한 듯 구레드는 가슴을 텅텅 두드렸고 칠러웨이는 그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두 사람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또 위층에 있던 녀석도 데리고 나갔나?"

그의 말에 칠러웨이는 위층에 있던 노인 가이덴 폴 겐이 기억에 떠오른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도..?"

"그 녀석까지 있다면 절대 안질 거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내 직속 기사였지.. 가이덴... 아니 겐은 미친놈이야."

".... 미친놈이요?"

"나중에 이곳에서 설득을 하고 나가면 알 수 있을 거야 그 녀석의 실력을.. 감옥 안에서 몇 년이 지났지만 실력은 녹슬지 않았을 거다."

칠러웨이는 심상치 않았던 가이덴의 눈빛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구레드는 칠러웨이의 팔을 이끌며 문을 열었다.

"자 가세, 할 일이 많으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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