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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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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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방 안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는 꽤나 불편했다.

"어찌 사람 허락도 맡지 않고.."

"씻긴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쾅!

결국 참지 못한 노인이 책상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른 두 사람, 칠러웨이와 피올레는 한숨을 쉬며 그를 올려봤다.

"왜!! 나를 마음대로 그 우락부락한 놈들한테 맡기는 거냐고!"

"아니.. 솔직히 구레드님.. 힘없는 하녀들 보다 남자들이 더 낫잖아요."

칠러웨이가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하자 구레드는 화가 더 많이 올라오는 듯 얼굴이 새빨게졌다.

"너는 왜!! 하녀들이 씻겨주고 응? 나는 어!?"

"그만하시죠 영감님."

"맞아! 이 모든 일의 원흉은 피올레... 자네였지."

구레드는 피올레를 획 돌아보며 따지듯이 말했고 피올레는 피곤하다는 듯 칠러웨이에게 눈짓했지만 칠러웨이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 도와주지 않았다.

"이런 수치는 내 평생 처음이네! 감옥에서도 당하지 않았던 일을... 흑... 흑흑..."

결국 구레드가 수치스러웠는지 눈물을 터뜨리자 칠러웨이는 그의 등을 두들겨주었고 피올레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제가 미안하니까 얘기를 좀 하면 안 될까요?"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구레드는 피올레의 허락을 받아내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고 칠러웨이는 잘했다는 듯 그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주었다.

"그럼 얘기해 볼까요? 지금까지의 일과 앞으로 계획을.. 칠러웨이?"

"일단... 사에트가 타나스의 사제들을 데리고 잠적해 있는 상태입니다, 칠라렌과 헬하임 제국은 전쟁을 준비 중이구요."

"한 마디로 올 게 왔다 이거군."

"예 구레드님 칠라렌과 헬하임은 어느 정도 시간을 끌 수 있다지만... 타나스의 사제는 제가 만났을 때 제정신들이 아니었어요."

칠러웨이의 말에 구레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피올레는 고민에 빠진 듯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과거에 잠깐씩 등장했을 때부터 일을 벌이곤 했었지... 전혀 감정이 없고 자신의 신만을 생각하는 녀석들이라 협상의 여지는 없을 걸세."

"구레드의 말이 맞아요, 아마 키로스의 사제들이 모두 사라지고 칠라렌 성국까지 멸망시키면 그제야 살육을 멈추겠죠."

피올레가 자신의 말에 동의하자 구레드는 조용히 대륙이 그려진 그림을 바라봤다.

"해상 왕국 가르텐, 릴 왕국, 톤 왕국, 헬하임 제국, 칠라렌 성국, 하마르 공국 그 어떤 나라도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걸세."

"... 그렇겠죠."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구레드의 말에 피올레와 칠러웨이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구레드는 조금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지도에 그려진 대륙 북쪽에 있는 나라를 가리켰다.

"펠 왕국?"

"그래 펠 왕국."

"나서줄까요?"

국토의 절반이 산으로만 이루어진 나라인 펠 왕국은 몇 백 년간 침략은 물론 전장에 나서지 않았었다, 피올레는 구레드의 선택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칠러웨이는 그의 말에 경청했다.

"이 녀석들이 운용하는 병사들이라면 헬하임 제국을 견제할 정도는 될 거야, 뭐 헬하임 제국과 사이도 좋지 않고 그만큼 써먹기 좋다는 거지."

구레드의 말에 피올레는 고개를 끄덕였고 칠러웨이는 궁금한 듯 펠 왕국을 바라봤다.

"칠러웨이?"

"산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약하지 않습니까?"

"약해?"

"누가요?"

칠러웨이의 말에 구레드와 피올레가 묻자 그는 '안 약해?'라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물론 지리상으로는 가장 약해 보이는 나라이지만, 몇 대의 왕에 걸쳐서 이 나라는 다양한 왕국들과 교류를 해왔고 산에서 나오는 것들을 발판 삼아 앞으로 도약했어요."

"오..."

"게다가 침략을 하기에도 너무나도 힘든 나라라서 헬하임 제국조차 건들지 못했죠."

"그럼 그만큼 힘이 강해졌겠네요."

"네, 게다가 민족 자체의 힘도 강해 일 인당 열 명은 죽인다는 소문을 가지고 있죠."

피올레의 설명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방법은 여기까지고...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피올레?"

"저 말인가요?"

"그래, 타나스의 사제들이 직접적으로 이 대륙의 운명에 끼어들고 있는데 용사의 후예로서 가만히 있을 생각인가?"

구레드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칠러웨이를 바라봤다.

"전 이 하마르 공국을 버릴 수 없어요."

"그 말은..."

"참가를 불허합니다, 아직까지 타나스의 사제들이 모든 걸 계획했다는 보장도 없고 쉽사리 움직였다가는 모두의 표적이 되어버려요."

"골치 아프긴 하겠지."

"그러니 저희는 참가하지 않습니다."

"...."

피올레가 딱 잘라 말하자 칠러웨이와 구레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것참 유감이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네."

".... 아니 좀 생각이라도.."

"생각할 것도 없어요."

"...."

"그만하게."

칠러웨이가 무어라 말하려 하자 구레드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쩔 수 없어, 이건 개인의 일이 아니라 나라 간의 일이니까 그리고..."

"....?"

"이곳 공국에 사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나라에서 한 따까리 하던 귀족이나 용병, 기사들.. 그 후손.. 하여간 엄청난 이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그들의 마음을 통일하기란 어려울 거네."

구레드의 말에 칠러웨이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봤고 구레드 또한 조용히 피올레를 바라봤다.

"저를 더 보더라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전쟁으로 허덕이는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뭐 어쩔 수 없지."

"어디 가십니까?"

갑자기 구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칠러웨이는 쳐다봤고 구레드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나오게."

"예?"

"이곳에서는 얻을 게 없어."

"무슨... 아무리 그래도 타나스의 사제들입니다, 제가 만나봐서 알지만 도움 없이는..."

"용사의 후예라는 자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위험을 내버려 두니..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 손으로 해결해 봐야지."

"하지만...!"

"더 있어봤자 시간 낭비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안 좋네요."

구레드의 말에 피올레는 기분이 나쁜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구레드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기분이 나쁘지? 사실이잖아? 뭐 씻겨줘서 고맙긴 한데.. 시간 낭비는 맞아."

".... 그렇긴 해도 그런 말투는..."

"말투? 하하하! 말투는 어쩔 수 없는 거고 이 세상은 자네가 말했다시피 이익으로 돌아가는 세상인 것 아닌가?"

"...."

"다시 얘기하지만 칠러웨이, 이곳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는 것은 세상에 다가오는 위협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알겠습니다.."

"좋아 말이 통하는군."

구레드의 윙크에 어느 정도 그의 말을 알아챈 칠러웨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뭐 더 할 말 있나?"

칠러웨이와 구레드는 그녀의 말에 뒤를 돌아봤고 피올레는 무언가 분한 얼굴로 자신의 옷을 꽉 잡았다.

".... 당신의 그 말들... 정말 무례하네요.."

"그럼 아닌가?"

"... 저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럼?"

".... 모두 맞는 말이에요.. 공국은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고 모두가 저를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 호오? 인식은 하고 있군."

"이 공국은 각국에서 보낸 인간들에 의해 지금 놀아나고 있어요... 저희 오라버니는 다방면으로 해결하려 노력하는 중이지만... 불가능에 가깝구요."

"흠."

구레드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피올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나 보네..'

칠러웨이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분노하는 피올레의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꼈고 구레드는 조용히 그녀를 지켜봤다.

"뭐가 문제인지 조금 알려줄 수 있나?"

구레드는 방금 전과 다르게 태도를 바꾸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칠러웨이에게도 손짓했다.

"뭡니까?"

"앉게 칠러웨이."

"갑자기요?"

"앉으라니까?"

"아니.."

"앉아!"

"아.. 예.."

칠러웨이가 계속 서서 나갈 준비만 하자 구레드는 짜증이 났는지 펜을 던졌고 칠러웨이는 당장이라도 그를 때리고 싶었지만 피올레의 안타까운 표정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자자 얘기해 보게."

"... 그게.."

"얘기해도 되네, 그래야 이 친구와 내가 도움을 줄 것 아닌가?"

"예? 저희가요?"

"좀 닥쳐!"

"넵."

칠러웨이의 입을 한 대 때려준 구레드는 또르르 눈물을 흘리는 피올레에게 자신의 주머니에서 더러운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고마워요.."

"그래그래 진정하고."

'.... 능숙하구만..'

칠러웨이는 능숙하게 피올레를 위로하는 구레드의 모습에 치를 떨었고 구레드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게 윙크를 날렸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공국은 몇 사람이 꽉 잡고 있어요.. 그건 저도 아니고 저의 오라버니도 아니죠..."

"그렇구만 그게 누구지?"

"수비대장 파르마인과 전에 보셨던 기사 단장 트레버.. 각각 헬하임 제국의 후작, 펠 왕국의 자작 출신이죠..."

"으음.. 그렇군 군사들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 자네가 힘을 쓰기란 불가능이겠구만."

"네.."

"그리고 외적으로 못 나가게 막고 있는 인물이 있을 텐데?"

"... 그 사람은.."

피올레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입을 다물어버렸고 칠러웨이와 구레드는 서로를 바라봤다.

".... 그놈이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군?"

"...."

피올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구레드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고 칠러웨이는 왜 또 그러냐는 듯 그를 올려다봤다.

"가세."

"예?"

"전부 엎어버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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