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 * *
"이거 맞는 겁니까?"
"... 조용히 하게."
"아니.. 좀.. 원래 이런 식으로 데려가냐구요."
"조용히 하라니깐!"
칠러웨이와 구레드는 손과 발이 쇠사슬로 묶여 있었는데 두 사람은 굉장히 억울한 표정으로 금발의 여인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럽니까!"
"닥쳐!"
"분명히 잘 데리고 간다면서요!"
"이... 이 어린놈이 끝까지!!"
칠러웨이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자 구레드는 결국 폭발했는지 옆에 서있던 기사의 검을 뺏어들려 했고 칠러웨이 또한 쇠사슬을 끊으려 힘을 줬다.
"그만!"
"...."
하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하마르 공국의 기사들이 뽑은 검 때문에 멈춰야만 했고 앞서가던 여인, 피올레 또한 불편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 그쯤 하고 그만두세요."
"아니 이 영감탱이가..!"
"뭐!? 영감!? 진짜 죽고 싶어 환장을 한겐가!?"
피올레의 말에도 두 사람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피올레는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죽여봐!"
"뭐!?"
"죽여보라고 이 노인네야!"
"이... 이이이익...! 이봐! 검을 좀 빌려주게 당장 이 자리에서 이놈을 죽이고 나도 따라 죽을 테니!"
"그만!"
"...."
결국 폭발한 피올레는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소리를 빽 질렀고 칠러웨이와 구레드는 깜짝 놀랐는지 그녀를 바라봤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나..?"
"구레드님 저를 보자마자 단검을 던진 여자예요... 즉.. 미친 여자라는 거죠... 저희가 좀 이해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야!"
결국 폭발한 피올레는 칠러웨이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던져버렸고 구레드는 그 모습에 하마르 공국의 기사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봤다.
"한두 번 이러면 이해해! 지금 몇 시간째 떠들고 있잖아!!!!"
"아.. 아니 저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거니까..."
"그만하라고 할 때 그만해!!!!"
".... 네.."
피올레의 살기에 칠러웨이는 결국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고 피올레는 당장이라도 칠러웨이를 패고 싶었지만 그의 멱살을 놓아주고는 구레드를 찌릿 바라봤다.
"하하.. 나 같은 노인네는 그렇게 맞으면 훅 간다고.."
".... 후우.. 둘을 떨어뜨려 놓고 걸으세요, 한 마디라도 하면..."
피올레는 기사들에게 작은 단검을 나눠주었고 기사들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받아들었다.
"뒤에서 엉덩이를 찌르세요."
"예."
"...."
피올레의 말에 두 사람은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말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 근데.. 언제까지..."
"...."
"아니! 잠깐! 아니 단검 좀 치워봐요! 그냥 질문! 질문이라고!"
"그만."
칠러웨이가 말을 하자 기사는 바로 엉덩이를 찌르려 단검을 뽑아들었지만 피올레는 기사를 멈춰세우고는 칠러웨이의 옆에 섰다.
"저기."
".... 저기?"
"그쪽 말고!"
피올레의 손가락 끝에는 무언가 인위적인 건물들의 꼭대기가 보였고 칠러웨이는 실눈을 뜨고 건물들을 바라봤다.
"... 저.. 저거.."
건물들의 탑 끝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키로스의 문양들이 가득 있었고 조금 더 걸으니 건물의 모습이 칠러웨이의 눈에 들어왔다.
"돈을.. 얼마나 처바른 거야.."
숲 안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성벽이 나타나자 칠러웨이의 입은 떡 벌어졌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구레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지나서 봐도 놀랍구만."
".... 허어.."
"입 좀 닫아라 칠러웨이, 촌구석에서 온 것 티네나?"
"아니.. 생각해 보세요 구레드... 저거.. 거의 다 황금이라니까요?"
성문은 온전히 황금으로 만들어져 그들의 앞에 서있었고 칠러웨이는 멍하니 그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 용사의 후손들이 사는 곳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히 이런 대우를 받아야지."
"....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후원을 한 겁니까..?"
"이곳의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들 또한 거의 대부분 황금일세, 대륙에 유통되는 금화 또한 이곳 공국에서 만들어지지."
"허어... 통일된 화폐를 쓴다.. 이 말입니까..?"
"그래,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해야 관리가 편하니까.. 이 공국은 화폐를 제공하는 대신 식량이나 다른 것들을 조달하고 있지."
".... 얼마나 금맥이 크길래.."
칠러웨이는 상상도 못했던 공국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고 구레드는 그의 등을 팡팡 쳤다.
"그러게 세상에 빨리빨리 나올 것이지 이 세상은 더 놀랄게 많다고 촌뜨기."
"... 놀리지 마시라니까요."
"자네도 아까 노인네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동하시죠."
두 사람이 잡담을 하는 사이 기사 하나가 다가와 그들의 등을 떠밀었고 칠러웨이와 구레드는 천천히 열리는 성문으로 발을 내디뎠다.
".... 와.. 씨.."
칠러웨이의 감탄사와 걸맞게 공국의 성안은 과연 이곳이 숲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널찍했고 길 또한 하나하나 깎인 돌로 포장돼있었다.
"그만 감탄하고 따라오지 않겠어요?"
"아니 잠깐.. 구경 좀..."
"가시죠."
"아니.. 잠깐...! 잠깐이면 된다니까.."
구레드와는 달리 자꾸만 뒤처지는 칠러웨이에게 짜증이 난 듯 피올레가 손짓하자 두 기사가 붙어 칠러웨이의 양팔을 잡고 끌고 갔다.
"왈츠 디 피올레님께 축복을."
"축복을."
피올레와 함께 성을 걸으며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귀족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피올레를 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 이제 알았나요?"
"당연히 전 몰랐죠."
"당신처럼 예의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뭐 복수는 해줬지만."
'그래서 칼로 찌른 거구만..?'
피올레가 자신을 찔렀던 것이 방법이 없어서가 아닌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는 이유라는 것을 알고는 칠러웨이는 당장이라도 쇠사슬을 풀고 그녀에게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피올레님."
"문을 여세요."
"예."
피올레와 기사들과 도착한 곳은 거대한 저택이었는데 그 위에는 멀리서 봤던 첨탑이 세워져 있었다.
"오셨습니까?"
"네, 기사들이 쉴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이 사람들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하녀들이 피올레에게 다가왔고 피올레는 구레드와 칠러웨이를 보며 코를 막았다.
"일단 씻기세요."
"예 피올레님."
"빡빡."
"예."
"잠깐! 잠깐만! 나는 씻고 왔다고!"
피올레의 말에 구레드가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했지만 덩치 큰 하인들이 다가와 그를 붙잡았다.
"저 남자도."
"예."
"잠깐! 왜 나는 남자들이고 저놈은 여자들을 붙여주는 거야! 바꿔! 바꾸라고!"
구레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남자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칠러웨이에게 달려왔지만 바로 붙잡혀 맥없이 끌려가야만 했다.
"저.. 저는 제가 씻을게요..."
"피올레님의 명령입니다."
"아니 물만 주세요 알아서 씻을게요!"
하녀들이 천천히 다가오자 칠러웨이는 팔을 빙빙 휘두르며 그녀들에게서 벗어나려 했고 하인들 또한 그를 잡으려 달려왔지만 날렵한 몸을 가진 칠러웨이를 잡기란 무리였다.
".... 당신은 정말 귀찮게 하는군요."
"그러니까 혼자 보내달라고!"
"..... 쇠사슬을 풀어주세요."
칠러웨이의 고집에 피올레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귀찮은 듯 손짓했고 하녀들과 하인들은 뒤로 물러났다.
"피올레님."
"페르판."
"...."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까지는 위험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 풀어주거라."
피올레와 똑같이 금발과 금안을 가진 페르판이라는 남자는 칠러웨이의 쇠사슬이 풀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를 바라봤지만 무거운 쇠사슬이 벗겨지자 칠러웨이는 기지개를 피우며 씨익 웃었다.
"걱정 마세요, 어디 도망도 안치고 잘 씻고 나올 테니."
".... 하아..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페르판이 한숨을 쉬며 구레드가 끌려간 반대 방향을 가리키자 칠러웨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하녀들이 주는 천을 건네 받았고 피올레는 그 모습이 웃긴지 피식 웃었다.
"피올레."
"오라버니, 위험한 남자는 아닙니다."
".... 그래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항상 말씀하셨다, 공국에 오는 자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특히나 저 기운은.."
"왈츠 디 페르판."
"...."
"걱정하지 마세요."
페르판은 피올레가 짓는 미소를 보며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오라버니.."
"아, 그래 알고 있다 구레드 드 펠테로... 제국의 이단아.. 드디어 보게 되는군."
피올레는 칠러웨이에게서 눈을 떼고 구레드가 끌려간 방향을 바라봤다.
"아버지께서 입이 닳도록 얘기하셨죠 저 남자를 믿되 조심하라고."
"이미 늙은 노인일 뿐이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없어."
페르판의 말에 피올레는 칠러웨이와 투닥거리던 구레드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오라버니 말대로 그저 늙은 노인일 뿐이니까요."
"아아아아악!"
피올레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레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피올레는 머리가 아픈지 휘청였다.
"괜찮니?"
"오늘.. 너무 머리가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조금만 쉬러 가겠습니다.."
"그래, 고생했구나."
"그럼.."
피올레가 터덜터덜 힘이 빠진 모습으로 자신의 방에 향하자 하녀들은 모두 그녀의 뒤를 따라 사라졌고 홀로 남은 페르판은 조용히 칠러웨이가 지나간 복도를 바라봤다.
".... 듣거라."
"예, 페르판 단장님."
그의 부름에 하인들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숙였고 페르판은 그들에게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감시하거라, 어떤 행동이든 위협이 될만한 것은 나에게 알리고."
"예."
"아무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기사들에게도 다시 한번 숲을 살피라 일러두거라."
"예."
"가거라."
페르판의 명령에 하인들은 저택 곳곳으로 흩어졌고 홀로 중앙 홀에 남은 페르판은 눈을 번뜩였다.
"... 내 누이에게 조금이나마 해를 끼친다면.. 바로 네 신에게 보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