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 * *
"예?"
"후후.."
뜬금없는 여자의 말에 칠러웨이는 눈을 찌푸리고 그녀를 봤지만 날아오는 건 그녀의 살기 어린 단검들뿐이었다.
"뭐 하는 짓입니까!?"
"제 말을 못 들었나요?"
'.... 진.. 진심이었구나.'
칠러웨이는 그녀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탁 쳤다.
'저.. 영감 이럴 줄 알고 나 혼자 보낸 거야?'
닫힌 문 뒤로 서있는 구레드를 마구 때려주고는 싶었지만 칠러웨이는 당장 살아나갈 걱정부터 해야만 했다.
"어서 죽어서 제 발아래에 깔려주세요."
"미친!"
"얼른!"
"타... 타임!"
통에 가득 담긴 단검들을 계속해서 던지며 왈츠 디 피올레는 칠러웨이의 목숨을 노렸지만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단검들을 모두 피해낸 그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 그만..."
"조금 피하시네요, 가지고 놀기 아주 좋겠어요."
"왜.. 왜 죽이는지 이유나 듣고 죽읍시다."
"이유?"
"그래요! 이유! 내가 왜 죽어야 되는 겁니까?"
칠러웨이의 말에 왈츠 디 피올레는 움직임을 멈췄고 칠러웨이는 그 틈을 타 기사들이 꽉 잡고 있는 문을 열어보려 애썼다.
"왜 죽이냐라는 말은 하실 줄 몰랐는데..?"
".... 끄.. 응! 당연히 모르니까 물어보죠! 왜 죽이는 겁니까!"
"후후... 저랑 장난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생각하던 그녀의 낮은 웃음소리가 칠러웨이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칠러웨이는 이제는 문을 부술 기세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당신의 정체라고나 할까요?"
".... 예?"
"당신의 정체 때문에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 모르겠다는 표정은 의외인데?"
"...."
왈츠 디 피올레의 한 마디에 칠러웨이는 문을 여는 것을 멈추고 돌아보았고 그녀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정말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 당신은 압니까?"
"아무리 저라도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답니다."
"왈츠 디 피올레라고 했나요?"
"피올레라고 해주세요, 마지막인데 그 정도는 부르게 해드릴게요."
"...."
"뭐해요? 앉지 않으시고? 죽기 전에 자기 정체는 알고 죽어야죠 안 그럼 억울하잖아? 그렇죠?"
칠러웨이는 당장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싶어졌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의자를 가리켰다.
'보면 볼수록 짜증 나는 인간이네.'
칠러웨이는 조용히 구석에 박혀있는 의자를 끌고 와 그녀와 떨어진 곳에 앉았고 피올레는 미소를 짓고는 빛나는 금안으로 칠러웨이를 바라봤다.
"당신의 정체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을 텐데?"
"....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니 이렇게 앉았죠."
"흐음..."
피올레는 그를 의심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칠러웨이의 표정이 바뀌지 않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모르나 보군요?"
"만약 알았다면.. 문을 부수고 대륙 끝까지 도망갔을 겁니다."
"후후.. 제 손에서 도망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 일단 그건 둘째치고 빨리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칠러웨이의 말에 피올레는 다시 미소를 띠었다.
"알려드리죠."
"예."
피올레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자 칠러웨이는 몸을 움찔했지만 그녀는 그를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칠러웨이는 긴장한 몸을 유지시킨 채 그녀를 바라봤다.
"만들어진 존재에 대해서 아시는지?"
".... 만들어진 존재..?"
"당신의 신체와 정신 둘 중 아무것도 일치하지 않아요."
"...."
"특히나..."
피올레가 갑자기 자신의 팔을 잡자 칠러웨이는 그녀가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게 팔에 힘을 주었지만 피올레가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커억...!"
"후후후..."
언제 찔러 넣었을지 모를 단검이 가슴에 박혀있자 칠러웨이는 신음을 뱉으면서 그녀를 올려다보았고 피올레는 그의 머리를 잡았다.
"당신의 존재는 대륙에 너무나도 위협적이야.. 이런 몸을 가지고 있다는 당신이 나라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도 밸런스가 무너지지."
"크으윽..."
피올레가 심장을 찔렀던 검을 뽑자 칠러웨이의 상처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피는 그의 몸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만...!"
칠러웨이가 그녀를 떨어뜨리려 팔을 올렸지만 피올레의 힘은 그를 누를 만큼 강대했고 칠러웨이는 피올레를 노려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죽지 않는 몸과 용사가 오더라도 막상막하인 강인한 신체... 또한..."
"끄으으으윽!"
피올레의 검이 칠러웨이의 허벅지에 다시 박혀들어왔고 칠러웨이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피올레는 그의 머리를 잡고 놓지 않았다.
파아앗!
순식간에 오두막 안을 밝은 빛이 덮쳤고 칠러웨이는 누군가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느낌에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그.... 만하세요!"
"호오..?"
하지만 밝은 빛을 밀어내는 검은 안개가 칠러웨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칠러웨이의 안개는 머릿속의 밝은 빛을 순식간에 밀어내고 오두막을 차지했다.
"허억.. 허억... 커억!"
칠러웨이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그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피올레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검은 안개를 휘휘 손으로 걷어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보셨죠?"
"...."
"당신은 이런 힘을 가지고 있고 나는 그런 당신을 놓아줄 수 없어요."
"이게 뭔지는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키메라를 아나요?"
"키메라..?"
"키메라를 엮는 것은 누구의 힘일까요?"
칠러웨이는 그녀의 물음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그녀는 이제야 눈치챘냐는 듯 빙글빙글 웃었다.
"이 세상에는 기적이란 게 존재하죠 그게 뭘까요?"
"...."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알려드리자면 바로 저 용사와 성녀들이에요."
"당신도 성녀와 같은 입장이라는 거군요."
"조금은 다르지만 키로스의 힘이니 같은 것은 맞아요."
"...."
"그럼 당신은~?"
피올레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칠러웨이는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타나스.. 겠죠."
"빙고."
칠러웨이의 말에 피올레는 천진난만하게 손뼉를 쳤고 칠러웨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그녀를 바라봤다.
"당신의 그 이질적인 힘.. 분명히 당신이 만났던 이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브라이언과 데브라.. 그들을 만났었었죠?"
"....."
"그들도 당신을 보고 알았을 겁니다 어떤 힘을 갖고 있었는지.. 다만..."
"말을 못 했겠죠."
칠러웨이는 그녀의 말에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고 피올레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대화가 잘 통하자 만족한 듯 그에게 다시 웃어 보였다.
"... 당연히 말을 못 했을 겁니다, 타나스의 힘을 받아 키메라를 제작하고 있던 사에트라는 녀석이 몇 번이나 공격했으니까요.. 제가 충격 먹을 것을 알고..."
"후후후... 데브라와 브라이언..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복수, 나라를 위한 충성심.. 그 두 가지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러니 칠러웨이의 도움은 어느 정도 필요한 입장이죠."
".... 제가 뭘 해야 하는 겁니까..? 당신 말처럼 이곳에서 죽어야 하는 겁니까?"
칠러웨이의 물음에 피올레는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렇게 해도 되나요?"
"당연히 안되죠."
"...."
자신의 물음에 대한 칠러웨이의 대답에 피올레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고 칠러웨이는 뭐가 문제냐는 듯 그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피올레라고 했나요? 당신 말은 이해했지만 저는 죽기가 싫습니다."
".... 뭐 그렇겠죠."
"방법은 없는 겁니까?"
"방법?"
"예."
칠러웨이의 말에 피올레는 잠시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했고 칠러웨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허벅지에 박힌 단검을 빼내며 그녀를 훑어봤다.
"흐음..."
'저런 사람이 성격 파탄자라니.. 끔찍하군..'
자신의 금안을 이리저리 굴리며 흰 피부와 잘 어울리는 금발을 배배 꼬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칠러웨이에게는 단순히 '미친 여자'로 보일 뿐이었다.
"세 가지를 생각해 봤어요."
"... 그렇게나 많은 선택지가 있는데 죽이려고 했던 겁니까?"
".... 지금 죽으실래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말에 칠러웨이는 딴 곳을 바라봤고 피올레는 잠시 그를 찌릿 바라보더니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일단 이 모든 건 당신이 '위협적이지 않다.'라는 판단하에 내리는 거니 알아두시길."
"예."
"첫 번째, 이대로 숲속에 들어가 평생 나오지 않는다."
"...."
"두 번째, 하마르 공국의 지하 감옥에 봉인 당해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제길."
"세 번째, 같은 동족들을 처리하고 대륙에 유일한 '타나스의 하수인'으로 남는다."
칠러웨이가 자신의 말에 무언가 희망이 생긴 듯 눈을 크게 뜨자 피올레는 피식 웃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세 번째군요."
".... 당연한 거 아닙니까?"
"후후... 뭐.. 사실 당신을 죽이거나 할 생각은 없었어요."
"예?"
"당신이 그 사에트라는 남자에게 맞서 톤 왕국과 칠라렌 왕국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니."
"그런데 왜 죽이려..."
"제 입장에서는 죽으면 더 좋으니까요."
칠러웨이는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지만 피올레가 자신의 검자루를 만지작거리자 주먹에 힘을 풀었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하마르 공국에 들어오는 것은 허락해 주겠어요, 물론 뒤에 있던 구레드 드 펠테로 또한 허락해 드리죠."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당연하죠! 우리 공국의 늙은이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으니."
".... 유명한 사람입니까?"
"헤라임 제국의 역사상 처음 있던 반란군의 수장, 제국의 이단아, 과거 하마르 공국의 든든한 지원자 뭐..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 남자예요."
"...."
칠러웨이는 문 뒤에 대기하고 있는 저 늙은이의 별명에 조금 놀랐지만 다시 그 짜증 나는 얼굴을 볼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저 사람은 빼고 가면 안 됩니까?"
"네?"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