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검은 탑과 두 기사
* * *
"...."
칠러웨이와 데브라는 간수를 따라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간수는 익숙한 듯 횃불을 이리저리 비추어가며 움직였고 두 사람은 벽 여기저기에 부딪혀야만 했다.
'칠러웨이.'
'예.'
'길을 잘 외워야 하네, 올라올 때 헷갈리면 큰일이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간수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귓속말을 하며 그를 따라갔고 얼마나 내려갔을까 간수의 걸음이 멈췄다.
"여기입니다."
"...."
"갈리드 황자가 갇혀있는 곳이 여기입니다, 노기사님께서는 이곳에 와보신 것 같으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아시겠지요?"
"알고 있네."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에 데브라와 간수는 천으로 코와 입을 막았지만 칠러웨이는 무언가 맡아본 냄새 같아 코를 킁킁거렸다.
"칠러웨이?"
".... 알고 있는 냄새입니다.. 분명.."
"알고 있다?"
"예 기억이 오래됐지만..."
칠러웨이는 옆에 놓여있는 물통에 횃불을 넣는 간수를 보고는 조용히 바닥에 묻어있는 검은 액체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 원유?"
정확히 기름 냄새와도 같은 원유의 냄새는 타이어 공장에서 일했던 칠러웨이가 과거 많이 맡아봤던 냄새였다.
"불을 끄는 이유를 알겠군요."
"액체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모양인데.."
"예.. 이거 불붙으면 다 죽습니다."
"...."
데브라와 칠러웨이는 검은 원유로 뒤덮인 문을 힘차게 열었고 그 안에서는 더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우욱!"
".... 시체 썩는 냄새와 이 역겨운 냄새가 섞여있군."
칠러웨이가 그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자 데브라는 익숙한 냄새인 듯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고 간수는 먼저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미끄러우니 조심해 주시길."
어둠에 점점 익숙해지고 간수가 조심히 벽에 걸린 몇 개의 등에 불을 붙이자 공간이 환하게 드러났다.
"...."
간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선 곳은 처참했다 검은 액체 위에 시체들이 둥둥 떠있었고 썩은 시신들은 문 앞에 쌓여있었다.
"중죄인들이 갇히는 제국 최고의 감옥입니다."
"미친..."
구역질을 멈춘 칠러웨이의 눈에도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검은 원유가 가득 담긴 웅덩이 옆으로는 죄인들이 덜덜 떨며 흩어져있었다.
"...."
그 가운데에는 한 남자가 조용히 앉아있었는데 그의 강인한 눈빛은 그 지독한 공간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갈리드 황자."
"누구지?"
"잘 계셨습니까?"
"이것들이 묻은 딱딱한 빵 쪼가리만 주는데 잘 있을 수 있겠나?"
"그렇군요."
꽤나 오랜만에 입을 여는 듯 남자의 목에서는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고 데브라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 이분들은 파울로님의 명을 받아 황실에서 나오신 기사단입니다."
"파울로?"
갈리드는 의외라는 얼굴로 빼빼 마른 몸을 일으켰고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
화려했던 금발은 어디 갔는지 회색으로 변한 그의 머리와 검은 액체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옷은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데..."
"파울로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빛에 눈이 익숙해지고 보이는 데브라의 모습에 갈리드가 놀란 듯 입을 열었지만 데브라는 간수에게 들킬세라 그의 말을 가로챘다.
".... 어떤 것이지?"
제국에서는 둘째가면 서러울 머리를 가졌다는 갈리드답게 눈치를 챘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고 칠러웨이와 눈을 마주친 데브라는 조용히 간수를 가리켰다.
"커억!"
칠러웨이는 순식간에 간수의 목을 꺾어버렸지만 그의 손에서 벗어난 등이 액체 위로 떨어지려 했다.
"조심하게."
"후..."
하지만 데브라가 빠르게 뽑은 검에 등의 손잡이가 걸렸고 칠러웨이는 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 데브라.."
"구하러 왔습니다, 빨리 위로 올라가 아르티네와 팬저우드를 데리고 빠져나가시죠."
"..... 고맙네.. 이리도 위험한 곳에.."
갈리드는 눈물을 글썽이며 데브라를 안았고 데브라는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까앙!
"크크크.... 큭..."
그 순간 숨이 붙어있던 간수는 천장에서 아래로 길게 내려와 있는 줄을 잡아당겼고 녹슨 종이 움직였다.
".... 제길."
데브라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오고 갈리드 황자도 눈치챈 듯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갇혀있었던 그의 다리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이봐!"
하지만 그 순간 아래로 뛰어내려온 간수 하나가 그들에게로 달려왔고 칠러웨이와 데브라는 검을 들어 올렸다.
"날세!"
"클라인?"
그는 지하 감옥으로 내려오기 전 입구에서 봤었던 간수였는데 가면을 던진 그의 얼굴은 두 사람이 그토록 찾고 있었던 클라인이었다.
"칠러웨이! 그 줄은 왜 잡아당긴 거야!"
"이 녀석이.."
"제길! 아무튼 빨리 나오게! 위층의 간수들이 전부 내려올 거네!"
".....!"
"내가 이곳에서 일하며 몰래 갈 수 있는 비상계단을 알아냈으니 얼른 나와!"
"데브라 업고 가실 수 있겠습니까?"
".... 칠러웨이?"
"얼른 가십시요."
"무슨..."
"아르티네와 팬저우드님은 데리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위층에서 만납시다."
칠러웨이의 말에 데브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갈리드를 업은 채 공간을 빠져나갔고 클라인은 칠러웨이의 팔을 이끌었지만 칠러웨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클라인."
"나오게! 얼른!"
"좀 더 위에 계신 아르티네와 팬저우드를 데리고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누군가는 시간을 끌어야죠."
"미친 소리 하지 말게! 갇힐 셈인가?! 이곳의 간수들은 1급 용병들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야! 자네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가세요 얼른."
칠러웨이의 말에 클라인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다시 가면을 썼다.
"자네가 죽으면 일루안님이 분노하실 걸세."
"걱정 마세요 쉽사리 죽지는 않으니까."
".... 톤 왕국에서 보지."
"예."
클라인마저 감옥에서 빠져나가고 칠러웨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 후우.. 생각을 하자."
칠러웨이는 간수들이 몰려오기 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주변에는 썩은 시체들과 힘없이 쓰러져있는 죄수들뿐이었다.
"이보게."
"....?"
그 순간 건너편에 있던 죄수 하나가 자신을 불렀고 칠러웨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나에게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죄수들의 말은 믿지 말라 했습니다."
"클클.. 그렇겠지, 하지만 죽어서 나갈 건가? 그럼 뭐..."
"....."
"아니라면 내 말을 좀 들어보게."
꽤 이곳에서 오래 지낸 듯 검은 기름에 온몸이 젖어있는 그는 천천히 칠러웨이에게 다가왔고 등불을 뺏어들었다.
"무슨...!"
"자.. 이렇게 하면.."
"....!!!"
남자는 검은 원유에 등불을 집어던졌고 순식간에 집채만한 불은 죄수들과 감옥을 뒤덮었다.
"이 미친 짓을....!"
"자! 이제 나갈 차례가 아닌가!"
"개 같은....!"
"시간이 없어! 빨리 부수게!"
남자는 팔을 들어 어느 벽을 가리켰고 칠러웨이는 그를 원망스러운 얼굴로 보다가 달려가 벽을 내리쳤다.
쾅! 쾅!
몇 번을 내리쳤을까 벽이 무너져 내렸고 칠러웨이는 놀란 얼굴로 남자를 돌아봤다.
"나를 업어!"
"뭐... 뭐요!?"
"빨리!"
"나가면 꼭 모가지를 비틀어놓겠습니다!"
"말할 시간에 빨리 뛰게!"
벽을 부수고 나타난 공간은 몇 명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었는데 칠러웨이는 검은 원유에 불이 붙어 공간이 터져나가기 전에 빠르게 뛰어나갔다.
"제길 제길!"
"열어!"
끽.... 끼익... 끼이이익!
그리고 칠러웨이와 남자 앞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나자 남자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녹슨 철문을 가리켰고 칠러웨이는 온 힘을 다해 문을 열어젖혔다.
"닫고 뛰게!"
"끄아아아아!"
쾅! 콰앙!
칠러웨이가 문을 힘껏 닫자 검은 원유들이 가득했던 공간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철문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뛰어 얼른!"
남자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칠러웨이는 긴 통로를 빠르게 뛰어갔지만 철문을 뚫고 들어온 불길은 그의 뒤를 바짝 따라왔다.
"저기다!"
그 순간 나타난 물웅덩이를 남자가 가리켰고 칠러웨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다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어서! 가게! 어서!! 바로 뒤야!"
"그만 말하고 숨이나 들이키세요!"
숨을 크게 들이킨 칠러웨이가 물속으로 들어가자 불길은 그의 머리 위를 바로 스쳐 지나갔고 불에 집어삼켜질세라 두 사람은 물속 깊이 들어갔다.
"읍읍!"
"....!"
물속에서 남자는 무언가 아는 듯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켰고 그의 손짓을 따라 칠러웨이는 물속을 헤엄쳤다.
"...."
"....!"
하지만 점점 숨이 차오르는 칠러웨이의 등에서 남자가 한계가 된 듯 꼬르륵거리며 떨어져 나가려 하자 칠러웨이는 그의 팔을 잡아 이끌었고 저 멀리 보이는 빛에 그는 더 빠르게 헤엄쳤다.
"푸하!"
"쿨럭! 쿨럭!"
물속에서 빠져나온 칠러웨이는 남자를 물 밖으로 끄집어냈고 남자도 정신이 돌아온 듯 물을 뱉어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여긴...?"
"... 허억... 허억... 이곳은... 검은 탑과 이어진 지하 수로일세.. 이곳은 바로 옆의 강이고 쿨럭! 진짜 죽을 뻔했구만!"
"지하수로가 왜 거기 있는 겁니까!"
"클클.."
"그리고! 왜 불을 붙인 겁니까!! 사람들이 죽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은 죄인들이야 죽을만한 사람들이지, 특히나 내 옆에 앉아있던 그 녀석 기억 나나? 귀족 여섯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인 또라이야."
"...."
"또 검은 물 위에 둥둥 떠있던 머리 벗겨진 시체를 기억하나? 그 녀석은 기사였는데 평민들의 피가 자신을 젊게 만들어준다고 50명도 넘게 납치해 욕조 위 천장에 매달았던 놈이지, 그런 놈들이 저기에 갇혀있어 물론 억울한 놈들도 있겠지만 저기서 죽는 것보다 저렇게 폭발로 죽는 게 나을 거야."
"그래도..."
"저들에게 동정은 하지 말게 어차피 저 검은 탑에 있는 녀석들은 죽기 직전까지 몰린 녀석들이니까."
얼굴에 묻은 검은 때를 벗겨낸 남자는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저 멀리 폭발하며 주저앉는 검은 탑을 바라봤다.
"어떻게 나가는 곳의 위치를 알고 계셨습니까?"
"저 탑은 과거에 내 아비가 설계한 탑이네, 힘이 없어 벽도 못 뜯고 있었는데 다행히 자네 같은 사람이 들어와줬지."
"...."
"정확히는 황실과 이어진 지하수로지 왕의 탈출구로 만들어지려 했지만 저 이상한 검은 물이 나오기 시작한 뒤로 저곳은 저렇게 만들어졌어."
".... 당신 정체가 뭡니까?"
"나?"
"예."
"구레드 드 펠테로, 헬하임 제국의 공작까지 올랐지만 과거 반역죄로 갇힌 사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