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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 검은 탑과 두 기사 (70/90)

〈 70화 〉 검은 탑과 두 기사

* * *

"...."

칠러웨이는 앞에서 걷고 있던 데브라가 손을 들자 검은 탑의 문 앞에서 발을 멈췄다.

"일?"

"맞네."

".... 파울로 황자인가?"

가벼운 검은 가면과 복장을 한 남자가 간결하게 질문하자 데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

"어이!"

남자는 데브라와 칠러웨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조용히 누군가를 불렀다.

"약속이 오늘 맞나?"

"예."

".... 인원은?"

"둘이라 하셨습니다."

남자는 꼼꼼히 무언가 체크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부하로 보이는 남자 또한 가면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어라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 음.. '그것'맞나?"

"...."

갑작스러운 물음에 데브라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몸을 움찔하며 그들이 눈치를 못 채도록 검자루에 손을 올렸고 칠러웨이 또한 덩달아 몸을 긴장시켰다.

"맞네만."

".... 평소에 꼼꼼하지도 않은 분이 이런 때만.. 쯧.. 최하층 맞지요?"

"... 맞네."

"받으시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데브라에게 낡은 열쇠 하나를 던져주었고 준비된 가면 두 개를 건넸다.

"얼른 들어가시요, 탑을 닫아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안에 있는 녀석들이 시비를 걸면 절대 대꾸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시길 권장 드리죠."

"고맙네."

"아닙니다, 똑같이 고생하는 입장에서."

다른 간수들에게 다가간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데브라는 부하로 보이는 간수의 안내를 받아 검은 탑으로 발을 들였다.

"처음 이곳에 오십니까?"

".... 처음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낯설군."

조용히 걷던 간수와 두 사람 사이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간수 쪽이었다, 그는 데브라의 말에 낄낄 웃더니 손에 든 등불을 이리저리 비추며 감옥 구석에 누워있는 이들을 보여주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광경은 밖에서 보기 힘드니까요."

"음..."

"녀석들은 쓰레기들입니다, 갱생도 안되는 녀석들이죠..."

"억울한 사람들도 있을 것 아닙니까?"

"...."

칠러웨이는 신나서 이야기하는 남자를 불쾌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데브라는 그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하하!"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간수는 배를 잡고 크게 웃으며 가면 아래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젊은 기사님의 패기가 보인달까...? 뭐... 억울하게 잡혀온 녀석들도 있겠지만 제국은 반란군들이 아닌 이상 철저하게 조사합니다."

"음..."

"그리고..."

갑작스럽게 바뀌며 느껴지는 간수의 살기에 데브라와 칠러웨이는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런 말들은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만 하는 것이라죠..? 저희는 이 '검은 탑'에 들어온 녀석들이 죄가 없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 내가 미안하군."

".... 하하하! 아닙니다! 요새 젊은 분들은 거의 저렇게 이야기하니까요."

"음.. 이해하네."

"그렇죠? 하하! 저는 용병 출신이지만 거두어준 이 나라에 정말 감사하고 있어서.."

간수는 데브라의 말에 마음이 조금 풀린 듯 더 가벼워진 걸음으로 탑의 계단 앞에 멈춰 섰다.

"한 번 오셔서 아시겠지요?"

".... 알고 있네."

"이곳에서부터는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이상 저희가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좀만 내려가시다 보면 하층의 간수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넘어지지 마시고 조심히 가시길.."

"고맙네."

"그럼 저는 이만.."

간수가 사라지자 칠러웨이와 데브라는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고 한발 한발 발을 뻗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 아까 그 살기.. 느끼셨습니까?"

"아, 느꼈지 아주 강하게."

"이곳 탑의 간수들은 다 이 모양입니까?"

"하하..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모르니까 강한 간수 하나를 붙여준 것이네 저 아래에는 더 강한 간수들이 분포해 있으니 저렇게 돌아간 거고."

"음..."

완벽한 왕실 기사로서 이곳에 들어왔지만 문 앞에서 봤던 대장으로 보이는 간수의 철저함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끝이 없군."

"올라갈 때가 걱정인데.."

두 사람은 잡담을 나누며 계속해서 내려갔고 내려가던 중 여러 문을 볼 수 있었다.

"간수가.. 없네요?"

"이곳은 지하고 올라올 길은 이곳 밖에 없기 때문에, 웬만한 간수들은 모두 위층에 머물고 있고 감옥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배치돼 있지."

".... 어차피 땅을 파도 이 깊이면 분명 못 올라오긴 하겠네요."

몇 개의 계단을 그렇게 내려갔을까, 칠흑 같은 어둠 한가운데 몸이 좋아 보이는 간수 하나가 횃불을 들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억...!"

"까.. 깜짝이야.."

"... 안녕하십니까."

무서운 그의 모습에 두 사람은 식겁했지만 이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에 두 사람은 한숨을 쉬었다.

"최하층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까지야.."

".... 가시지요."

자신의 용건을 굵은 목소리로 말하며 말하는 간수는 그들을 잠시 살펴보고는 능숙하게 어디론가 움직였다.

"거기!"

쾅!

하지만 바로 옆에서 큰 소리가 들리자 칠러웨이는 발을 멈춰 세웠고 감옥 안에서 팔을 뻗고 자신을 부르고 있는 한 남자를 봤다.

"기사단인가?"

".... 그런데요?"

"왕실 기사라니 오랜만에 보는군! 밖은.. 밖은 어떤가?"

"예?"

"제국은 지금 어떠냐 이 말이네!"

"그게..."

칠러웨이가 무언가 말을 하려 하자 앞을 걷고 있던 간수가 조용히 그의 앞으로 다가왔고 감옥 안에 있는 남자의 어깨에 횃불을 지졌다.

"끄아아악!"

".... 말을 걸지 말라고.. 했을 텐데?"

"크크크큭! 궁금한데 어쩌나!"

간수와 남자가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칠러웨이는 데브라에게 다가가 남자를 가리켰다.

"누굽니까?"

"음... 워낙에 지저분해서 잘 몰랐었지만... 아마 15년 전 제국에서 나타났던 반란군의 수장일 걸세."

"예?"

"이곳 최하층은 그런 중범죄자들만 갇힌 곳이니.. 저 정도의 얼굴을 이곳에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

"그렇게 유명한 인물입니까?"

"사실 나는 사람을 잘 몰라.. 아는 사람들의 얼굴만 기억하지."

데브라와 칠러웨이는 최하층에 온 것이 실감이 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살폈다.

"자네도 눈을 뜨고 잘 보게, 아르티네와 팬저우드가 여기 어디 있을지 몰라."

"알겠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다시 가겠습니다."

"아 그러지."

간수가 남자를 두들겨 팬 후 두 사람에게 다시 돌아왔고 두 사람은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찾으시는 사람이라도..?"

"아 미안하네! 가던 길 가지."

".... 아닙니다, 이곳 최하층에 오시면 귀족이건 왕족이건 구경을 하시느라 바쁩니다.."

".... 그런가?"

"예, 모두 유명한 이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친절하네...'

느린 말투로 잘 설명해 주는 간수를 보며 칠러웨이는 의외의 면을 봤는지 놀라워했고 데브라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아르티네.. 팬저우드... 그들도 이곳에 갇혀있습니다."

"그게.. 사실 그 두 사람이 잘 있는지 확인하라는 말씀도 있어서."

"... 그 정도 보여드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고맙네."

데브라는 조용히 그의 손에 금화 몇 개를 쥐여주었고 간수는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빠르게 걸었다.

"여기입니다."

"읏!"

간수의 횃불이 감옥 안을 비추자 안에는 한 여인이 눈을 가렸다.

"음..."

긴 머리가 사라진 채 엉망으로 잘린 머리로 자신들을 보고 있는 그녀의 눈은 아직 살아있었지만 데브라는 찢어진 옷과 그녀의 처참한 모습에 화가 났는지 주먹을 쥐었다.

"이곳에서는 죄인들에게 손도 대는 겁니까?"

".... 아닙니다, 조금 더 위층은 모르겠지만.. 이곳은 최하층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모두 금기시됩니다 단 저희의 명령에 반항할 때는..."

"그렇군."

데브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장갑에서는 이미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유명인을 다 봤으니 저희할 일을 해야죠!"

칠러웨이는 그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주변을 환기시켰고 간수와 데브라는 자신의 역할이 기억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파울로님이 전달하라는 말이 있어서 저는 잠시만..."

"아 그렇군 잠깐 얘기 좀 할까?"

".... 좋습니다."

칠러웨이의 말에 눈치챘는지 데브라는 다시 금화 몇 닢을 간수에게 찔러주었고 눈치가 빠른 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 당신은 누구죠..?"

"아르티네."

".....!"

"치.. 칠러웨이?"

칠러웨이가 가면을 벗자 아르티네는 불편한 다리를 끌고 창살로 다가왔다.

"쉿."

"아 죄송해요."

".... 일단 갈리드 황자라는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니 잠시 기다려 주시길.."

"네.. 당연하죠, 칠러웨이님 혼자 올리는 없고... 저분은...?"

"데브라님이십니다."

"아..."

"그럼 오래 지체되면 안되니..."

"네."

"잠깐."

칠러웨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자 옆방에 누워있던 남자가 손을 뻗었다.

"당신은..?"

"팬저우드.. 팬저우드라고 하네."

"아.. 찾고 있었는데 바로 옆방이라 다행이네요."

"... 이곳에서 탈출 방법은 생각했나?"

"아뇨.. 일단은 힘으로 밀고 올라갈 생각인데.."

".... 그렇다면 들어올 때 '현재 제국은 어떤가?'라는 질문한 남자를 봤나?"

"예."

팬저우드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칠러웨이에게 다가오라며 손짓을 했다.

".... 그 남자는 꼭 데려가야 하네, 탈출을 위해서라도."

"위험한 사람은 아닙니까?"

"사람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 간수가 끼어들자 팬저우드는 아쉬운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가지 우리는 이들을 보러 온 게 아니니까."

"예."

안타깝게 두 사람을 보던 데브라는 작은 쪽지를 남긴 채 뒤를 돌아섰고 아르티네와 팬저우드는 희망의 눈빛으로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라고 적혀있나?"

".... 흑..."

"왜 우나?"

"여기요.."

하지만 쪽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르티네의 목소리를 들으며 팬저우드는 손을 뻗었고 아르티네는 그에게 쪽지를 건넸다.

".... 울만 하군..."

[기다리게 최대한 빨리 빛을 보게 해줄 테니, 모두 함께 이곳에서 나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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