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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 검은 탑과 두 기사 (69/90)

〈 69화 〉 검은 탑과 두 기사

* * *

"아직 조용한 모양이군."

숲과 강을 통하여 황성의 근처까지 도착한 톤 왕국의 기사들은 젖은 옷을 벗어던졌다.

"얼른 갈아입거라."

"예."

그들은 미리 황성에 도착한 데브라가 준비해둔 옷들로 갈아입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본다면 그들은 기사가 아니라 헬하임 제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아저씨들 같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 그러게요."

옷을 먼저 갈아입은 칠러웨이는 데브라의 말에 대답하며 엘로나가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큰 천으로 그녀를 가려주었다.

".... 조용히 이동하도록 하지, 각 5명씩 흩어진다, 카일록 기사들을 반으로 나누어 저 여관으로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어느새 황성 내의 마을 앞에 도착한 칠러웨이 일행은 모두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두 팀으로 나누어져 여관으로 들어왔다.

"...."

수상해 보일만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노련하게도 각자 퍼져 자신의 일인 것 마냥 다른 척을 하고 있었고 여관 안에 있는 제국의 용병들과 병사들은 자신들의 얘기를 하느라 바빠 보였다.

"카일록."

"예."

"상황을 어떻게 보나?"

"잘 모르겠군요.. 아.. 리타가 남겼던 말이 있습니다."

데브라의 말에 그는 솔직하게 얘기했지만 리타가 한 말을 떠올렸다.

"아마 이렇게 평범한 시민들조차 거리에 다니지 않을 정도면 제국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

".... 나랑 똑같은 생각이군 그 친구는."

데브라는 카일록이 전한 리타의 말에 동의를 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몇 명의 기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두 번째입니까?"

"그래,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 최소한의 병력으로 움직여야겠지 부상자까지 달고 있는 이 상황에서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무리야 잡혔다가는 몰살당할 걸세."

카일록은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데브라는 잠시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부상당한 케미안을 데리고 기사들과 함께 대기하도록 하게."

".... 데브라님께서는..?"

"나야.. 뭐.."

"... 왜 저를 보십니까?"

칠러웨이는 조용히 자신을 보고 있는 데브라에게 불만 어린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렸고 데브라는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자네는 지금 있는 이들 중에 가장 강하니 나와 함께 가는 게 맞아."

"....."

"엘로나는... 빠.."

"나도 갈 거야."

배에 부상을 당한 엘로나를 빼려 데브라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는 그의 의도를 알아챈 듯 말을 끊었다.

"안돼."

"싫어."

"죽고 싶은 건 아니잖나 엘로나."

"...."

"자네만의 문제만이 아니야, 칠러웨이 또한 잡힐 수 있네 여기는 제국이야 어떤 녀석들이 튀어나올지도 몰라 저번에 바튼과 롤란이 한 트럭 있는 곳이 이곳 제국이라고."

"그래도.."

데브라는 그녀가 무어라 이야기하려 하자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잘 생각해."

"...."

"저곳은 괴물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어, 갈리드와 달리 그 파울로 일황자 녀석은 바보 같은 자식이라 어느 정도 속이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알겠어!"

엘로나는 짜증이 난 듯 팔짱을 끼며 빽 소리를 질렀고 그 목소리에 여관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목소리는 좀 줄이는 것이 어떤가?"

"... 미안."

"그러면 결국엔 저와 데브라님 둘만 움직이는 겁니까?"

"그게 좋겠지."

"하아.."

칠러웨이는 힘들어진 상황에 기사들을 바라봤고 기사들은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봐도 어쩔 수 없어, 리타와 내 생각대로라면 제국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황실 또한 굉장히 예민해져 있을 거네 조금이라도 들킨다면..."

"알겠습니다, 알겠다구요."

칠러웨이는 결국 못 이기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데브라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그럼 카일록, 엘로나 다른 이들을 잘 부탁하겠네."

"예,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요..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 물론이지 자네들의 참모가 나를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데브라는 엄지를 척 치켜들며 칠러웨이와 함께 여관을 빠져나갔고 카일록은 기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나님 저희는 일단 탈출로를 확보해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 그래,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네.. 저 둘은 내 눈과 귀가 없으니.."

"두 사람이라면 분명히 잘 빠져나올 겁니다, 그리고 용병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클라인님 또한 저 안에 있으니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엘로나는 여관을 나서는 칠러웨이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고 카일록은 그녀의 마음을 백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갈 생각이십니까?"

두 사람의 걱정 속에 여관을 빠져나온 칠러웨이와 데브라는 황성의 앞에 도착해 조용히 성문 앞을 보고 있었다.

"모르네."

"....?"

데브라의 대답에 칠러웨이는 다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걱정 말라는 듯 데브라는 조용히 골목길로 들어선 두 기사에게 다가갔다.

"커억!"

"억..."

제국의 두 기사는 영문도 모른 채 데브라의 주먹에 쓰러져야만 했고 데브라는 그들의 옷을 벗긴 뒤 밧줄로 꽁꽁 묶어 나무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 설마."

"몰래 숨어들 때는 변장만한 것이 없지 안 그런가?"

데브라의 두근댄다는 표정을 보며 칠러웨이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고 헬하임 제국의 기사 복장이 퍽 마음에 드는지 데브라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시간 없습니다."

".... 미안하네 기사 옷을 입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가만 보면 애 같다니까..."

칠러웨이의 꾸중에 데브라는 머리를 긁적였고 칠러웨이를 선두로 두 사람은 허리를 펴고 당당히 성문 앞으로 걸어갔다.

"칠러웨이."

"마.. 말 시키지 마요.. 당황할 것 같으니까."

"내가 말하겠네."

"뭐 좀 아십니까?"

"자네는?"

"... 데브라님이 하세요."

칠러웨이를 뒤로 물러나게 한 데브라는 황성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어여."

".... 정찰인가..?"

"그렇지."

두 사람을 보고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는지 한 노기사가 데브라의 인사를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잠깐."

"...."

하지만 노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데브라의 어깨를 붙잡았고 칠러웨이는 가죽 장갑에 땀을 흠뻑 흘리며 주먹을 쥐었다.

"무슨 일인가?"

칠러웨이의 행동을 알아챈 데브라는 그에게 눈을 깜빡였고 칠러웨이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지만 몸에 긴장을 풀고 데브라의 뒤에 섰다.

"로드웰 황제께서 깨어나신 후로 상당히 황성이 예민한 상태인 건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 그럼 다행이구만, 특히 로티스님이 일황자님과 말다툼을 한 후로 황성의 분위기가 더 어수선하니 어디서든 행동 조심하라는 바튼님의 말이 있었네."

"고맙군, 주변을 정찰하느라 얘기를 못 들어서."

"아닐세, 우리 나이에 기사 생활 잘리면 용병 밖에 못하질 않나."

"하하하!"

데브라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아무렇지 않게 황성으로 들어갔고 칠러웨이는 노기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그를 뒤따라갔다.

"그나저나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 뭐 이번에 폐하께서 다양한 사람들을 성에 들이고 있다고 하니까 자네들은 자네들 할 일이나 하게."

한 기사가 두 사람이 수상한 듯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노기사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저었고 기사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후... 칠러웨이 아무 데서나 주먹 휘두르지 말게 이곳은 황성이야 지금 우리는 들켰다가 파리 목숨도 안돼."

".... 죄송합니다, 그게 긴장이 되니까.."

"어쨌든 조심하게."

칠러웨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데브라는 입을 다물고 황성 안을 익숙하게 걸어갔고 데브라는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클라인이 어디 있는지 짐작하고 계십니까?"

"... 대충은?"

"도대체 어디에..."

"저기."

데브라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검은 탑을 가리켰고 칠러웨이는 그 꺼림직한 생김새와 주변에서 풍겨오는 괴이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 뭐 하는 곳입니까?"

"초대 헬하임 제국의 황제가 건국할 당시 반란군과 주변 왕국의 걸림돌을 밀어 넣던 곳이네."

".... 그렇다면..."

"감옥이다 이 말이지."

데브라는 바로 옆에 떨어진 검게 변한 뼛조각을 들어 올렸고 칠러웨이는 마른침을 삼켜야만 했다.

"이 주변은 전부 시체가 매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네, 감옥 안에서 죽어버리면 시체 냄새가 역하니 간수들이 위에다 몰래몰래 묻은 게 이제는 땅에 쌓이고 쌓여 이렇게 나오기도 하지."

"그런데 황제는 왜..."

"경고."

"예?"

"황성에 찾아오는 귀족들과 주변국의 사신들에게 경고하는 거야 '허튼짓'을 했다가는 저곳에 틀어박혀 이곳에 묻힐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뭐 이런 느낌?"

".... 그런 말을 들으니 온 게 좀 후회되기도 하네요."

칠러웨이가 한숨을 내쉬자 데브라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툭 쳐주었지만 자신도 저곳에 가는 것은 두 번째인지라 온몸의 털이 삐죽삐죽 올라왔다.

"그런데 클라인님이 저곳에 계신다는 확신은...?"

"클라인은 용병이야, 누구보다 정보를 빨리 파악했을 거고... 또 저곳은 기사들과 병사들 대신에 더러운 꼴들을 많이 본 험악한 용병들을 간수로 쓰는 경우가 많아."

"...."

"신분을 속이고 분명히 들어가 있을 걸세, 내가 사라진다면 갈리드 황자님이 저곳에 갇히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니까."

데브라는 검은 탑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칠러웨이는 그를 따라 안 떨어지는 발을 움직여야만 했다.

"두려워하지 말게, 칠러웨이 어차피 죽음은 모두에게 오는 거야.. 신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겠나? 하하하!"

"신은 개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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