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기사로서의 도리
* * *
"저 자식 하나도 못 잡고 뭐 하는 거야!"
아르티네 백작의 영지 안, 마을의 광장에는 한 남자가 죽은 자신의 기사들을 둘러보며 홀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끄으..."
하지만 상태가 안 좋은지 입에서는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왼쪽 팔도 축 처져 그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잡아! 아르티네의 반란 혐의를 밝히기 위한 녀석이다!"
"백작님이.. 반란...? 웃기는구나."
이미 지친 그였지만 부어오른 눈을 치켜뜨고 기사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당당했다.
"폐하를 위해 힘쓴 갈리드 황자님과 아르티네님을 어찌 이리도 욕보이는지.. 쿨럭! 너희들은 기사로서 부끄럽지도 않느냐!"
"닥쳐라 케미안! 생포하라는 명령만 아니었어도 당장 이 자리에서 죽였을거다!"
"... 이제는 일황자의 개가 되어버렸구나 피렉스!"
케미안은 눈앞의 남자와 아는 사이인 듯 그에게 일갈했고 피렉스라 불린 남자는 몸을 움찔했지만 자신의 행동에는 부끄러움이 없는지 이를 부득 갈았다.
"바튼의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황실 기사단이라는 자들이 겨우 이런 실력이라니!! 당장 내 앞으로 데려와서 무릎을 꿇려!! 죽여서라도 데려오라는 말이다!!"
피렉스는 한 기사가 가져온 의자에 앉아 케미안의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황실의 직속 기사단에게 소리쳤다.
"미안합니다 케미안."
"...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오, 그저 이 나라의 잘못이지."
"...."
"어서!!!! 내 앞으로 끌고 와!!"
자유기사였던 케미안은 황실 기사단에 재능 있는 다수의 평민들을 보냈던 이력이 있었고 그를 아는 기사들은 검을 들기 꺼려 했지만 뒤에서 소리치는 피렉스 후작의 명령에 결국 검을 휘둘렀다.
"끄으으!"
두 개의 검을 받아친 케미안은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결국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금방 자세를 잡고 다시 달려드는 기사들의 검을 쳐냈다.
[케미안, 아버지 대신 내 옆에 남아 있어줘서 너무 감사해요.]
검 하나가 그의 어깨를 스쳐가자 그의 머릿속에는 야속하게도 아르티네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주인을 지키지 못한 죄 많은 못난 기사를 탓해주십시요.'
까앙!
검이 튕겨져 나간 후 케미안은 결국 무릎을 꿇었고 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항복하십시요, 케미안.. 그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미안하지만 못하겠네."
"...."
황실 기사 중 한 명은 케미안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려다봤지만 피렉스의 시선이 느껴지자 조용히 검을 들어 올렸다.
"죄송합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나는 자네들을 탓하지 않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기사의 검이 떨어졌지만 케미안은 인자한 미소로 그를 바라봐 주었다.
쩍!
"....!"
하지만 검이 케미안의 목에 닿기 전, 빠른 속도로 달려온 한 남자가 기사의 머리를 내려쳤고 황실 기사단의 기사답게 엄청난 맷집으로 일어나려 기사는 허우적댔지만 이내 푹 쓰러져 버렸다.
".... 누구냐!"
피렉스는 갑자기 등장한 남자에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지만 그는 케미안에게 손을 내밀 뿐이었다.
"갑시다."
".... 칠러웨이..!"
"일단, 구하러 왔지만 정보가 부족해서 말입니다."
"아르티네님이 돌아오지 말라고...!"
"그게 중요합니까?"
케미안이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따지려 들자 칠러웨이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를 들처 업었고 황실 기사단은 당황한 듯 피렉스를 바라봤다.
"잡아! 잡아!!!! 뭘 멍하니 서있어!!!"
피렉스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자 기사단은 한 번에 칠러웨이에게 달려들었지만 칠러웨이는 능숙하게 그들의 검을 피해내며 급소를 내리쳤다.
"죽이진 말게 칠러웨이!"
"애틋해 보여서 그러는 중입니다!"
"커억!"
"내가 아는 이들일세! 부탁이네!"
"거참 시끄럽네! 이 정도로는 안 죽어요!"
케미안은 칠러웨이의 어깨에 업혀서도 그들을 걱정했지만 칠러웨이는 귀찮다는 듯 그의 말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 녀석들!!! 캉들을 불러!!!!"
피렉스의 명령에 어디엔가 숨어있던 캉들이 숲에서 뛰쳐나왔고 칠러웨이는 그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들도 있었습니까?"
".... 내가 꽤 중요한 역할이라.."
"참.."
케미안을 성벽에 기대어둔 칠러웨이는 주먹을 꽉 쥐고 가까이 다가온 한 캉의 머리를 후려쳤다.
"어억..."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찌그러진 투구와 함께 머리가 부서져 버린 캉을 보며 달려오던 캉들은 멈춰 섰지만 한 남자는 예외였다.
"황제 폐하를 위해!"
쩌억! 쩍!
"미친!"
칠러웨이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올 만큼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남자의 주먹은 그만큼 묵직했고 과거 만났던 길, 롤란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칠러웨이는 꽤나 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굉장히 능숙해져 있었고 아직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싸우는 것이 서툴러 보이는 젊은 기사를 넘어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커억!"
자신에게 달려든 캉의 발에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칠러웨이는 그가 죽지 않도록 타격을 입혔고 투구를 벗겼다.
"...."
나이가 어려 보이는 그는 씩씩대며 칠러웨이를 올려다봤고 칠러웨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봤다.
"이름은?"
"... 너 같은 적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어!"
"...."
데브라와 브라이언이 가끔 얘기했던 전도유망한 기사의 힘을 느낀 칠러웨이는 그의 머리통을 당장 부숴 아르웬이나 톤 왕국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할까 생각도 했지만 몸의 원래 주인보다 더 어려 보이는 소년을 죽일 수는 없었다.
"잘 들어 인마."
".... 퉤!"
"더럽게.."
소년이 뱉은 침을 피해낸 칠러웨이는 그에게 다시 한번 꿀밤을 맥인 후 가까이 다가왔다.
"네가 바치는 명목적인 충성은 나중에 꼭 후회하게 될 거야."
"...."
"그러니 생각 잘 해."
"... 네가.. 뭘...!"
"어려 보여서 얘기해 주는 거야."
칠러웨이는 그의 등을 툭툭 쳐주고는 자신의 눈앞에 다가온 캉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보이지?"
"...."
"너 머리는 금방 날려버릴 수 있어."
".... 죽여라."
"이름."
"...."
"이름 인마."
"코드웰..."
"그래, 잘 쉬다가 돌아가."
소년, 코드웰의 머리를 툭툭 쳐준 칠러웨이는 캉들과 황실 기사단을 홀로 때려눕히며 피렉스에게 다가갔고 피렉스는 예상 밖의 상황에 눈을 껌뻑이며 그를 바라봤다.
"돌아가."
".... 뭐... 뭐!?"
"돌아가 죽기 싫으면."
"...."
"케미안의 부탁 때문에 모두 안 죽인 거니까, 다음에 나 혼자 있을 때 보이면 국물도 없어."
피렉스에게 경고를 먹여준 후 케미안을 다시 어깨에 짊어진 칠러웨이는 능숙하게 성벽을 올라갔다.
"엘로나!"
"잘 싸우는데?"
"그래요?"
자신의 부름에 스르르 나타난 엘로나가 칭찬을 하자 칠러웨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고 케미안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살아있었군 후트."
"죽을 뻔했지만."
"페르온은? 톤 왕국에서 데브라님과 잘 만났나?"
"...."
".... 미안하네."
케미안의 물음에 엘로나가 입을 닫자 그는 페르온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녀에게 사과했다.
"괜찮아, 누군가를 지키면서 죽었으니 그 녀석도 만족할 거야.. 케미안도 녀석을 알잖아?"
"예 후트.. 그렇겠죠."
"윽..!"
"괜찮아요?"
"응.. 조금 아픈 것뿐이야 칠러웨이는 케미안을 데리고 먼저.."
엘로나가 배를 부여잡으며 식은땀을 흘리자 칠러웨이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그녀를 옆구리에 안았고 엘로나는 놀랐는지 그를 바라봤다.
"호.. 혼자 갈 수 있어..!"
"저기서 쉬다가 잡혀서 다시 죽을 일 있습니까? 조용히 가시죠?"
칠러웨이는 그러게 왜 따라왔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엘로나는 얼굴이 새빨게져 고개를 돌렸고 케미안은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귀한 고대종의 하프라고 페르온과 이야기할 때는 고개를 빳빳이 들더니... 지금은 아닌가 봅니다?"
".... 조용히 해, 케미안."
두 사람을 데리고 칠러웨이는 일행이 숨어있던 장소로 다가왔고 데브라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데브라, 엘로나는 왜 보내신 겁니까?"
"가고 싶다고 해서 말이지."
데브라가 허허 웃으며 넘어가려 하자 칠러웨이는 그를 찌릿 바라봤고 카일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카일록님도 말릴 수 있었으면서.."
"나도 못 말렸네, 이 구출대의 권한은 내게 없어서 말이야."
"이럴 때만?"
".... 뭐 그렇지."
칠러웨이가 카일록을 째려보고 있을 때 데브라는 숨을 헐떡이고 있는 케미안에게 다가가 자신이 직접 제조한 약물을 입안에 흘려 넣었다.
"진통제네, 치료사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약하겠지만 버틸만할 걸세."
"감사합니다, 데브라.. 이렇게 다시 와주시다니."
"아르티네의 일인데 어찌 안 올 수 있겠나? 혼자라도 와야지."
오랜만에 만난 케미안이 반가운지 데브라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그를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살아있어주어 고맙네, 키로스 신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케미안은 약초의 효과가 올라왔는지 조금은 편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데브라는 경계를 서고 있는 카일록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케미안의 앞에 앉았다.
"클라인이라는 용병을 아는가?"
".... 예."
"아르티네와 갈리드에게 접촉을 했겠지 맞나?"
"맞습니다 실제로 저도 만났습니다."
"그는 어디 있나?"
".... 그게.."
케미안은 조용히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데브라와 칠러웨이의 눈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게 좀 찾기 힘드실 겁니다, 저희도 연락하는 데 삼일 이상은 걸렸으니까요."
".... 어디 있길래.."
"그게..."
계속해서 뜸을 들이는 케미안의 모습에 데브라는 이상한 듯 그를 바라봤고 케미안은 아르티네의 성 건너편을 가리켰다.
"황성 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