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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 자유를 사랑한 기사의 검은 제국을 향한다 (64/90)

〈 64화 〉 자유를 사랑한 기사의 검은 제국을 향한다

* * *

"폐하."

"....."

굳게 닫힌 문 앞 깔끔하고 누가 봐도 귀티가 흐르는 중년의 남자가 황제를 불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폐하."

".... 듣고 있다."

굳게 닫힌 문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오자 중년의 남자는 익숙한 듯 고개를 숙였다.

"로드웰 폐하, 파울로 황자가 오셨습니다."

"파울로가?"

중년의 남자가 신호를 주자 파울로는 문에 다가와 다시 노크를 했다.

"제가 왔습니다! 아버님!"

"..... 들어오거라."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치료사 필렉스도 왔습니다!"

"그래."

중년의 남자가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파울로의 코를 후벼팠지만 그는 얼굴만 살짝 찌푸리고는 침대 위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 왔느냐."

백발의 머리를 늘어뜨린 채 얼굴은 피폐해져 있는 남자가 파울로에게 손짓을 하자 파울로는 그 옆에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은 어떠십니까?"

".... 계속 누워있었더니 힘이 없구나."

"그래도 이리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하하하하!"

"그렇구나."

로드웰은 뼈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몸을 보면서도 파울로의 옆에 서있는 필렉스를 고마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모든 건 이 사내 덕분이지, 치료사 필렉스가 없었다면 아마 깨어날 수 없었을 거다."

"아닙니다, 폐하 저는 그저 치료의 방법만 찾았을 뿐 모든 건 폐하의 기운이 좋아서입니다."

"고마운 얘기도 해주는군."

파울로의 옆에 서있는 필렉스 자작은 뱀 같은 미소로 로드웰을 바라봤지만 로드웰은 그를 꽤나 오래 본 듯 개의치 않았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방의 분위기가 바뀌며 로드웰의 표정이 굳자 파울로와 필렉스는 몸을 긴장시켰다.

"성녀는?"

".... 아직.."

".... 너의 말 하나로 꽤 많은 귀족들이 감옥에 들어갔다."

"예.. 알고 있습니다."

"성녀가 도망가고 아르티네 백작과 팬저우드 후작.. 그리고 갈리드 2황자가 내 자리를 노린다고 네 입으로 얘기했었다."

"예."

파울로의 손이 덜덜 떨려왔지만 필렉스는 그의 두려움을 알아챘는지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툭툭 두들겨 주었다.

"충신들이라 생각했던 많은 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잡아넣었으니 그 말들이 거짓이라면..."

"모두 제 책임이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거겠지요."

필렉스가 힘을 돋아준 덕분이었을까 파울로는 몸에 힘을 주고 로드웰에게 말을 했다.

"호오.. 파울로 꽤 성장했구나 내 앞에서 말을 하게 되다니."

로드웰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파울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 문제가 많은 놈이기는 했지만 네 아들이자 일황자로써 내 자리를 물려받을 존재니.. 그런 담을 키운 것은 칭찬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 하지만.."

"...."

병상에서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엄청난 기운이 그에게서 흘러나왔고 파울로는 그 기운에 숨이 막히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성녀의 위치는 파악했나?"

"... 놓쳤습니다."

"...."

"톤 왕국이 개입된 것 같습니다, 또한 자유기사들도 방해를 했기 때문에..."

"...."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 톤 왕국에서.."

"....."

"시간을 주십시요 폐하.. 제가 헬하임의 황자로써... 꼭.."

자신의 말에도 침묵을 유지하는 왕에게 당황한 듯 파울로는 말을 이어갔지만 그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됐다."

"예?"

"이미 톤 왕국으로 넘어갔다면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

"자유기사들까지 개입된 것이면... 내 수가 악수가 됐구나."

"폐하."

로드웰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두 사람에게 손짓하자 필렉스와 파울로는 서로의 눈치를 봤다.

"내가 알기로는 데브라의 아들이 우리의 기사들에게 살해당했다고 들었는데 맞나?"

".... 예."

"아무리 생각해도 자유 기사들까지 건든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알고 있나?"

".... 예."

"데브라 녀석을 갈리드가 계속 묶어뒀던 이유는 헬하임에 계속해서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

로드웰의 입에서 갈리드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파울로는 기분이 나빠진 듯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자유 기사들이 헬하임 제국에서 탄생되고 난 뒤 우리가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는 것을 알지?"

"예.."

"하지만 지금 그것들을 네가 네 손으로 부숴버리면서 엉망이 되었다, 만약 성녀가 우리의 손에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해결이 됐겠지."

"...."

"전대 톤 왕국의 왕은 만만한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젊은 왕은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야, 브라이언 공작의 나라라는 별칭이 붙어지긴 했지만 그 척박하고 습한 땅에서 기사의 나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건... 무슨 뜻인지 알겠나?"

"..... 예."

로드웰의 말에 파울로는 고개를 끄덕였고 로드웰은 머리가 아파졌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 다 나가보거라."

"... 폐하.. 하지만..."

"성녀를 얻을 수 있다면 자유 기사던 뭐든 포기하겠지만... 아르티네 백작을 감옥에 넣고 성녀를 놓친 이상 아무런 방법이 없다."

"....."

"그 폐쇄적인 칠라렌 성국의 교황에게 인정받은 성녀가 다른 나라로 향한다는 것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파울로가 입을 다물자 그의 옆에 서있던 필렉스는 고개를 숙이고 로드웰에게 물었고 로드웰은 자신을 치료해 준 필렉스에게 인자한 미소를 짓더니 조용히 파울로를 바라봤다.

"전쟁이다."

"....."

"네가 그렇게 외쳤던 전쟁을 시작하겠다 파울로, 귀족들을 끌어모으고 아직까지 산에 처박힌 티마라스 공작과 팔라스 공작을 불러들여라."

"예."

"바튼 또한 돌아오는 대로 기사들을 이끌고 너와 함께 전장으로 나설 것이다, 또한 네 산하에 롤란을 데리고 톤 왕국으로 향해라."

"명 받들겠습니다."

파울로가 무릎을 꿇자 로드웰은 자신의 머리맡에 걸려있던 검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성녀를 데려와라, 데브라 또한 최대한 살려서 돌아오면 좋고.. 만약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면..."

"...."

"무슨 말인지는 알게다."

"알겠습니다."

"준비할 것이 많을 테니 나가보거라, 필렉스도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예!"

파울로가 필렉스와 함께 방에서 다급히 나가자 문 옆에 서있던 중년의 남자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더니 로드웰에게 다가갔다.

"폐하."

"로티스, 내 곁을 계속 지키고 있었군."

"당연합니다."

".... 후작으로써 자네 또한 할 일이 많을 텐데 나에게 잡혀있어서 되겠는가?"

"하하, 저의 직위는 폐하가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겁니다."

"후후..."

로티스가 고개를 숙이자 로드웰은 주변을 살피고는 옆에 서있던 기사들을 바라봤다.

"다들 나가있게."

"...."

"폐하의 명령이다."

로티스의 말에 기사들은 잠시 로드웰의 눈치를 보더니 방 밖으로 우르르 나갔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이 확인되자 로드웰은 자세를 낮추고 로티스를 바라봤다.

"내가 오랜 시간 누워있을 때 무슨 일이 있었지?"

".... 아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파울로 황자님이 상당히 말썽을 피우셨지요."

"듣기로는 아르티네 백작의 영지에 쳐들어가 깽판을 쳤다고 하던데."

"...."

"나에게는 숨기지 않기로 하지 않았는가?"

".... 예, 파울로 황자님께서 분명히 아르티네 백작의 영지에서 영지민들을 죽이고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고 몇몇 기사들이 이야기하더군요."

"쯧쯧쯧..."

로드웰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차고는 자신의 허약해진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독의 주인은 찾았나?"

".... 아무래도 필렉스 자작의 소행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 몸을 건들지 못하게 자네가 막았을 테니까."

"예."

"그렇다면 내 자리를 노리는 건 갈리드가 아니라 파울로라는 이야기가 되는군."

"맞습니다."

로드웰이 모든 게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로티스는 궁금한 것이 있는지 입을 달싹거렸다.

"하나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자네라면 대답해 주지."

"어째서 파울로님을 저렇게 두시는 겁니까? 갈리드 황자님 또한 로드웰님의 자리를 지킨 것뿐 아무런 잘못이 없으신데..."

"로티스."

자신을 조용히 부르는 목소리에 로티스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독에 중독되면서까지 이렇게 오래 누워있었던 이유 기억 나나?"

"....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죠."

"그래, 이제는 그 범인들에 대해서 윤곽이 잡혔어.. 그게 내 아들이라 문제지만."

"...."

"어차피 전쟁은 일어나야 할 것이었네, 칠라렌은 다섯 명이나 되는 성녀를 자신의 손으로 쥐고 있어, 톤 왕국은 조용히 있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해서 그 힘을 키워가고 있어... 이 모든 것은 필요한 거다."

".... 폐하."

"갈리드와 자유 기사들이 손을 잡은 것을 자네는 알고 있을 거네."

".... 갈리드 폐하는 반역을 생각하신 적이..."

"없겠지, 나도 그 아이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아네.."

"그렇다면 왜 갈리드 폐하와 함께하시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분명 그 아이라면 이 전쟁을 반대했을 거야, 그저 나를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만 급급했겠지..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우리의 힘을 확장시킬 수 없어."

"...."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키고 반역을 일으킬 녀석들까지 모두 색출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나."

"갈리드 폐하가 없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래."

로드웰은 씨익 웃으며 쇠약해져 덜덜 떨리는 다리로 침대 밖으로 나왔고 로티스는 그의 팔을 잡아주었다.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야, 모든 것이 갖춰진 후 파울로 황자를 내치고 그 아이를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면 되는 일이다."

".... 예 폐하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성녀는 우리에게 중요해.. 그리고 내가 건강해지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자네는 알겠지."

"성녀의 피.. 그것도 많은 양이 필요하다고 했었지요."

로티스의 말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방 한구석에 놓인 레버를 당기자 어두운 방이 드러났다.

"준비를 해야겠으니 로티스, 자네는 내 방에 당분간 아무도 들이지 말게."

"예."

방안에 들어가는 황제의 표정이 소름 끼치게 보였지만 로티스는 애써 그 모습을 떨쳐내고는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시간이 다가오는 걸세 로티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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