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 자유를 사랑한 기사의 검은 제국을 향한다 (62/90)

〈 62화 〉 자유를 사랑한 기사의 검은 제국을 향한다

* * *

"칠러웨이.."

"네 아르웬."

"... 칠러웨이.."

"네 아르웬."

칠러웨이의 등에 업혀있는 아르웬은 브라이언과 데브라의 뒤를 따라 내려가는 칠러웨이의 이름을 계속해서불렀다.

"... 고마워.."

"뭐가 말입니까?"

"계속... 보호.. 해주어서..."

"성녀님인데 당연하죠."

"... 내가 성녀..라서 보호.. 하는 거야..?"

칠러웨이의 말에 아르웬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지만 칠러웨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이 아니죠."

"그럼...?"

"비밀입니다."

"...."

아르웬의 기분이 더 나빠진 것 같았지만 칠러웨이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해줄 수 없었고 자신과는 달리 죽은 아들을 업은 데브라의 등에서 슬픔이 느껴졌기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브라이언."

"예 데브라."

"앞으로의 계획은?"

"전쟁입니다."

".... 전쟁이라."

"예."

"받게."

브라이언의 말에 데브라는 자신의 백금패를 주었고 브라이언은 패와 데브라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백금패는 어느 나라에서도 작위를 줄 수 있다는 데 맞나?"

".... 데브라."

"왕에게 전해주게."

"....."

"나는 자네의 나라에 충성을 바치겠네."

데브라의 말에 브라이언은 놀란 듯 그를 바라봤지만 데브라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 지킬 건 없네, 황자도 잡혔고 아르티네 또한 이렇게 머리만 돌아왔으니.. 자유 기사들이 머물 곳이 필요해."

"그게 우리 톤 왕국입니까?"

"맞네."

"...."

"게다가 기사의 나라이니 자유 기사에게는 가장 잘 어울리지 않겠는가? 하하하!"

억지로 웃는 데브라의 모습을 보며 브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패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앞으로 저는 할 일이 많아질 테니 이 협곡과 주변 영지의 방어는 두 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괜찮습니까?"

"좋네."

"데브라님은 빈 영지가 아직 많으니 그곳으로 배정이 되실 겁니다."

"자유 기사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네."

"다행입니다."

"아 잠깐만."

"....?"

갑자기 칠러웨이가 손을 들자 데브라와 브라이언은 고개를 돌렸고 칠러웨이는 멋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패를 보여주었다.

"이거 데브라님이 귀족이 된다고 해도 자유 기사 신분은 유지가 되는 거죠?"

"그렇지.. 내가 톤 왕국에 속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유 기사의 신분을 버릴 이들은 많이 없을 걸세."

"데브라님의 말이 맞네, 자유 기사는 전 나라들을 모두 돌아다닐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니."

"아 감사합니다."

"그렇네만.. 자네 정도면 우리 톤 왕국에서 귀족 신분을 하사할 수 있네."

"아뇨 저는 귀족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자유 기사의 신분으로 남겠습니다.."

".... 정말인가?"

"예.. 저는 이게 편합니다, 데브라님이 주신 금패가 아깝기도 하고..."

"... 귀족이 되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도?"

"네, 이게 좋습니다."

"잘 생각하게 칠러웨이 내가 자유 기사의 신분을 버린다면 자유 기사들을 보호할 헬하임 제국의 길드까지 사라지는 걸세.. 그래도 괜찮나?"

"예.. 뭐 제 몸은 스스로 보호할 수 있으니까요 하하!"

".... 자네는 정말.."

브라이언이 안타까운 듯 그를 바라봤지만 데브라는 오히려 칠러웨이의 태도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자네라도 나와는 달리 자신의 신념을 지킬 줄 알아서."

"하하.. 뭐 신념이라기보다는 여러 귀족들을 만나봤지만 상당히 번거로울 것 같더라구요... 그냥 이대로가 좋습니다."

"칠러웨이.. 귀족.. 신분.. 받는 게.."

"아뇨 아르웬, 저는 받지 않습니다."

아르웬의 걱정 어린 표정에 칠러웨이는 고개를 내젓고는 미소를 지으며 브라이언을 바라봤다.

"귀족이라면.. 브라이언님 같은 기사 중의 기사도 있겠지만 너무 역겨운 부분들을 많이 봤어요."

"...."

아르웬은 칠러웨이가 칠라렌 성국에서 받은 치욕과 수모를 떠올리며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안해.. 떠올리게 해서."

"아닙니다 하하! 그리고 데브라님 말대로 신념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유도 있긴 하지만..."

"...."

"저는 어느 곳에도 얽매이기 싫어요.."

칠러웨이의 말에 아르웬은 더 이상 설득할 생각이 없는지 조용히 있었고 브라이언 또한 아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은 여기 사람인데 머리는 다른 곳 사람이라고 어떻게 얘기해..'

칠러웨이는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성국에 뒤통수를 맞은 후로부터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는 입을 더더욱이 꾹 다물었다.

"어쩔 수 없지 자네 같은 사람을 놓치는 건 아쉽지만... 데브라님이 오셨으니.. 걱정은 덜었다고 볼 수 있지."

"내가 뭐라고.."

"아닙니다 데브라님은 제 우상이기도 하셨는데요."

브라이언은 데브라가 자신의 톤 왕국에 온 것이 꿈만 같다는 듯 데브라를 바라봤다.

"그리 부담스럽게 보지 말게, 톤 왕국에 뜻이 있어 온 것이 아니라 이제 이 늙은 몸뚱이를 의탁할 곳이 사라져서 억지로 온 거네.. 자유 기사들의 거처도 마련해 주어야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만족합니다."

"하하.. 여전히 자네는..."

브라이언의 말에 데브라는 위안이 된 듯 등에 업고 있는 페르온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됐구만."

"...."

"과거에 내 아들이 그랬지.. 어느 한곳에 정착해서 살라고.. 아르티네의 영지에 있었지만 내 마음은 계속 바깥에 있었네, 자유 기사들을 위해서 길드를 만들었지만 지금 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 이제 진짜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된 것 같군."

"칠러웨이가 자유기사들의 마음을 돌린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 저도 몰랐습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걷던 세 사람의 저 멀리 리타와 피렌디가 협곡에서 먼저 빠져나온 체체로와 두란트들과 함께 서있었다.

"...."

"피렌디.."

"죽은... 건가요?"

피렌디는 데브라의 등에 업힌 페르온의 얼굴을 매만지며 눈물을 흘렸고 데브라는 조용히 아들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미안하구나.. 지키지 못했어.."

"... 체체로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어요.."

"....."

"그런데 정말이네요... 지금도 일어나 보며 웃어줄 것 같은데.. 이렇게 차갑다니.."

"미안하다."

데브라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피렌디에게 사과했지만 피렌디는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품에 있던 반지를 페르온의 가슴에 올려두었다.

"체체로가 이야기해 줬어요.. 누구보다 용감히 두란트들을 지키는데 힘썼다고."

"...."

"늙고, 어린 두란트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고 페르온은 용감히 황실 기사단을 물리쳤다고."

"그래.."

피렌디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

"항상 페르온이 이야기했죠, 누군가를 지키다가 죽는다면 그건 어떤 것보다 값진 자유 기사의 죽음일 거라고."

"피렌디.."

"그는 선택을 했고 저는 그의 선택을 존중해요.. 뱃속에 있는 이이의 아이도 분명 태어나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겠죠... 다신 이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하겠지만 전... 저는..."

피렌디가 다시 눈물을 흘리자 데브라는 그녀를 안아주었고 체체로는 안타까운 듯 그들을 바라봤다.

"미안하네, 우리가 좀 더 강했더라면..."

"체체로, 사과하지 않아도 되네 황실 기사단의 단장까지 내려온 이 시점에 자네들은 중립자로서 최선을 다한 거야."

"...."

"자네의 식구들과 함께 브라이언이 마련한 숲으로 가게."

"데브라.."

"내 아들은 명예를 지켰고 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이네.. 나는 자네들을 탓하지 않아... 모든 건 빌어먹을 헬하임 제국이지."

"자네와 아들이 우리에게 준 은혜는 평생 잊지 않도록 하겠네."

"... 가보게."

체체로가 두란트들과 함께 숲으로 사라지자 데브라는 힘이 풀린 피렌디를 바위 위에 앉히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피렌디."

".... 네."

"나는 이제 내 사람을 잃지 않을 것이다."

"....."

"특히 너와 내 손자는 이제 내가 죽더라도 지켜주마."

"데브라.."

"그리고.."

데브라는 저 멀리 헬하임 제국의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저들을 부수고 말 것이다.. 다시 일어난 황제도.. 황자들도 그 자손들도 이 땅에 살지 못하도록 해줄 거다."

"데브라.. 그게 페르온이.. 바라는 걸까요?"

피렌디의 물음에 데브라는 고개를 내저었고 그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봤다.

"이 아이라면 분명하지 말라고 했을 거다.. 그건 안된다고 얘기했겠지.. 하지만 내 아들은 내 아들이고 나는 나다.. 내가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말이 뭔지 알고 있지 피렌디?"

".... 맞은 것은.. 배로 돌려줘라.."

"그래, 더 이상 나는 망설이지도 않을 것이고 잃지도 않을 것이니 이제 검을 뽑을 때가 된 거다 피렌디."

"...."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브라이언은 만족한 얼굴로 칠러웨이의 옆에 서있는 리타를 바라봤다.

"리타."

"아 예.. 예!"

"일루안님이 자네를 후계자로 얘기했다고 했나?"

".... 후계자라니 너무 벅찹니다."

"... 그렇겠지, 데브라님을 어떻게 이용했으면 좋겠나?"

"예?"

브라이언의 말에 리타는 당황했는지 다시 되물었고 브라이언은 말없이 칠러웨이와 데브라를 가리켰다.

"혼돈이 다시 올 걸세 리타, 저 두 사람은 우리 톤 왕국이 그 앞을 헤쳐나가기 위해 내려준 키로스님의 뜻이고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야 하네."

"...."

"나는 병사를 다루는 것에 일루안님보다 능숙하지 않네, 하지만 유일하게 자네만큼은 인정했다고 카일록과 게리가 말했었지."

"그.. 그런!"

"자네에게 톤 왕국의 군사 권한을 일임하지."

"자네에게 병사들을 맡기지 나 또한 이용해도 좋네."

"예.. 예!?"

리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브라이언은 눈을 찡긋하고는 자신의 말위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폐하와 함께 보도록 하지."

"... 허어.."

어이가 없어하는 리타에게 다가온 칠러웨이는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종기사에서 출세했네요."

".... 출세라뇨.."

"잘 부탁드립니다 총사령관."

"....."

리타는 총사령관이라는 중압감에 눌렸는지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칠러웨이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클라인님은?"

".... 하아.. 제가 말씀드린 것을 하러 가셨습니다."

"... 말한 것?"

"예... 브라이언 공작이 전쟁을 치르기 쉽게끔 만들려고 했는데..."

리타는 모든 계획이 망했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양피지를 꺼냈고 무언가 슥슥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건..?"

"....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겠습니다."

"계획?"

"... 보시면 알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