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자유를 사랑한 기사의 검은 제국을 향한다
* * *
"비켜라!"
"브라이언 공작?"
"고.. 공작님이다! 성문을 열어!"
자신의 깃발을 들고 빠르게 달려오는 브라이언 공작의 뒤를 따라 데브라와 칠러웨이, 피렌디, 리타가 순식간에 성문을 향해 다가오자 병사들은 다급하게 뛰어가 성문을 열었다.
"치센 협곡이 코앞입니다!"
"말하지 말고 빨리 가게!"
데브라는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왔지만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더 다급해 보였다.
"잠깐!"
협곡에 들어선 브라이언은 일행을 멈춰세웠고 데브라 또한 무언가 느꼈는지 말에서 내려 자신의 검을 뽑아들고 얼굴을 굳혔다.
"피 냄새."
그들의 뒤를 따라온 칠러웨이는 협곡에 퍼지는 진득한 피 냄새에 코를 막았고 리타 또한 긴장이 되는지 주변을 바라봤지만 칠러웨이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칠러웨이님?"
"피렌디를 데리고 돌아가세요 리타."
".... 하지만.."
"저 사람들이면 위험에 빠져도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저 상태의 피렌디와 리타 당신은 짐이나 마찬가지예요."
"...."
"톤 왕국에 돌아가십시요."
"알겠습니다, 칠러웨이 조심하세요."
리타는 피렌디의 팔을 붙잡고 돌아가려 했지만 피렌디는 그의 팔을 뿌리치며 칠러웨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 남편이야."
"살아계실 겁니다."
"그러면 내 손으로 구하겠어."
"그러다가 당신이 죽으면 페르온은 누가 위로해 줍니까?"
"...."
"고집부리지 말고 돌아가세요, 데브라님과 브라이언 공작의 실력은 저보다 당신이 더 잘 알 터."
"제발.... 꼭 그이를 데리고 와줘."
"예."
피렌디가 울음을 참는 것을 보며 그녀를 조심히 안아준 칠러웨이는 브라이언과 데브라의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리타는 다시 자신을 붙잡았다.
"칠러웨이님."
"이게 뭡니까 리타?"
리타가 건네는 주머니는 상당히 가벼웠는데 칠러웨이는 그와 주머니를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헬하임에 도착한 클라인님의 전언입니다, 나중에 칠러웨이님만 열어보라고 하시더군요."
".... 감사합니다."
"꼭 돌아오세요."
"예."
리타와 피렌디가 협곡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본 칠러웨이는 조심스레 협곡에 발을 들였고 깊어질수록 점점 진해지는 피 냄새에 칠러웨이는 헛구역질까지 올라왔다.
"잠깐."
어느새 두란트들의 목책에 도착한 세 사람은 거대한 시체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두란트들이군.. 브라이언 그쪽은?"
"헬하임 기사들의 시체입니다 상당히 격렬하게 싸웠군요."
".... 역시.. 이 개자식들이 범인이었군."
시체의 목에 걸린 일황자 파울로의 표식을 보며 데브라는 이를 갈았고 그의 얼굴은 새빨게졌다.
"데브라 진정.."
"잡아라!"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가 데브라를 진정시키려던 브라이언의 귀에 들어왔고 그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들었습니까?"
"엘로나가 발견된 게 며칠이나 됐나?"
"이틀입니다."
"협곡에 보낸 병사는?"
"없습니다."
"그럼 저 소리를 들어보니 생존자가 기사 녀석들에게 쫓기고 있나 보군."
말을 끝마친 데브라가 순식간에 두란트들의 목책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브라이언은 칠러웨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목책 안에 들어서자 가득 쌓인 두란트들의 시신과 기사들의 시체는 세 사람의 눈을 잡았고 저 멀리 얼마 남지 않은 두란트들은 기절한 여인을 둘러싸고 기사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 하프가 지원군을 부를 거다! 그때까지...!"
"체체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체체로가 기사들을 밀어내며 힘겹게 버티고 있을 때 데브라가 등장해 순식간에 기사들의 목을 쳐버리자 체체로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말썽쟁이 친구가 드디어 왔군."
"오래 기다렸네.. 어떻게 된 일인가?"
"성녀가 잠에서 깨고 얼마 되지 않아 저 녀석들이 찾아왔네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더군..."
".... 페르온은?"
"...."
데브라의 물음에 체체로는 고개를 내저었고 데브라는 눈을 조용히 감고 있는 성녀 옆에 누워있는 페르온에게 다가갔다.
"브라이언."
"... 예."
"잠깐.. 저들을 도울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협곡은 톤 왕국과 헬하임 제국의 공동 구역.. 이곳을 침범해 두란트들을 죽였다는 건 저들이 죽고 싶어 이리 찾아왔다는 거겠지요."
데브라의 마음을 아는 듯 브라이언은 아르웬이 쓰다 떨어뜨린 대검을 주워들고 순식간에 헬하임 제국의 기사들에게 달려갔다.
"멈추시오!"
"롤란인가?"
제국의 기사들이 겁을 먹어 뒷걸음질 칠 때 중갑옷을 입은 한 남자가 나와 그의 앞을 막았고 브라이언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를 바라봤다.
"브라이언 공작, 무슨 일인지는 들어보고..."
"닥치시오 롤란, 이곳은 당신도 알다시피 공동 구역입니다... 이곳을 침범했다는 건 톤 왕국을 공격하는 것과 똑같은 것..."
"성녀는 우리가 먼저 차지했소 그러니..."
"그전에 톤 왕국에 왔었지, 그리고 우리와 서약도 했고."
브라이언은 품 안에서 아르웬이 작성한 양피지를 꺼내들었고 롤란은 그것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을 텐데?"
"내가 할 소리 성녀가 먼저 서약을 한 건 우리 톤 왕국이다 헬하임 제국이 성녀의 존재를 마음대로 쥘 수는 없지."
".... 쯧.. 일을 크게 만들려 하다니.."
롤란은 올곧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혀를 찼지만 브라이언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시키기 싫은지 순식간에 그들의 앞으로 달려왔다.
"막아!"
"감히!"
'캉'들이 앞으로 나서서 브라이언의 움직임을 막으려 했지만 브라이언은 갑옷을 통째로 베어냈다.
"대륙 최고의 기사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군 브라이언!!"
브라이언은 롤란에게 다가가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길에게 막혀 튕겨나갔다.
"자네까지 왔는가 길! 자네들의 주인은 누가 지키고!"
"신경 쓸 필요 없다."
"하하하! 그런데 그것 아는가?"
"....!!"
길과 롤란은 브라이언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브라이언의 뒤에서 나타난 백발의 남자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네들은 건드려서 안 될 것을 건드렸어."
"당.. 신이 이곳에 왜...!"
"자유기사를 건드린 것을 보면 아르티네와의 조약 또한 파울로가 깬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
"...."
데브라의 질문에 두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데브라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게 전부."
콰직!
"길!"
브라이언을 제치고 순식간에 길의 머리를 두 동강 내버린 데브라는 롤란에게 다가갔지만 그의 앞을 브라이언이 막아섰다.
"데브라!"
"비키게 브라이언!"
"진정하시길!"
카앙!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히며 협곡에 파열음이 울려 퍼졌고 브라이언은 데브라의 분노를 힘겹게 막아냈다.
"이곳에서 저자를 죽여봤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습니다! 성녀도 되찾았으니...!"
"내 아들은?"
"...."
데브라의 짙은 살기에 롤란은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고 몇몇 기사들은 오줌까지 지리기 시작했다.
"성녀를 지킨 것은 내 아들과 이 두란트들이야.."
"...."
"체체로!"
"그.. 그래 데브라."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자네의 동족을 죽인 저들을."
"...."
데브라가 풀어헤쳐진 머리를 하고 자신을 노려보자 체체로는 침을 삼키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더 이상 싸움을 원치 않네."
"....."
"이곳에서 저들에게 맞서 봤자 우리 두란트들은 더 죽을 걸세 자네가 우릴 모두 지켜줄 수 있는가?"
".... 나약하긴, 칠러웨이!"
"예 데브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뿌리를 뽑아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 나까지 저들을 모두 죽이는 것에 동의하는데... 자네는 싸우기 싫으면 물러나게 브라이언."
"..... 마음대로 인건 여전하시군요."
데브라는 칠러웨이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고 다시 롤란을 노려봤다.
"당신이 여기에 있을 줄은 예상외였습니다만..."
툭..
데브라는 자신의 앞에 굴러온 피투성이의 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롤란은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파울로님은 모두 예상하셨더군요."
".... 너희가 설마.."
"당신이 그토록 황제에 올리려 했던 남자는 당신을 배신했습니다."
".... 이황자님이..?"
"그렇습니다."
"... 거짓말 치지 말거라."
데브라의 말에 롤란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고 데브라는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그가 던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헬하임 제국 이황자 갈리드.]
"...."
"직접 주신 것이니 잘 보도록 하십시요."
"...."
"그리고 황제 폐하의 명령입니다."
"황제의.. 명령?"
"며칠 전 아픈 몸을 털고 일어나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황자 갈리드는 반역죄로 감옥에 가두고 그를 도운 아르티네 백작과 팬저우드 후작을 처형."
"이 개 같은...!!! 폐하께서 그런 말을 하실 리가 없다!!"
데브라는 분노에 차 그를 보며 소리를 질렀지만 기사들을 헤치고 나오는 한 남자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제국 황실의 기사단장님께서 직접 가져오신 것이니.. 이제는 믿으시겠습니까?"
".... 바튼 공작.."
거대한 체구와 강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는 롤란의 앞에 서서 조용히 데브라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서는 슬픔도 분노도 없었고 그저 데브라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데브라님."
".... 자네가 어찌... 나를!!!!"
"죄송합니다 데브라님, 황제 폐하.. 로드웰전하가 일어나셨습니다."
"그동안 못 깨어나셨던 분이 지금 일어난다고..?"
"예, 치료사 필렉스님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는 분명 일황자의...."
데브라는 무언가가 이상한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바튼은 조용히 자신이 할 말들을 데브라에게 전했다.
"일어나시자마자 파울로님이 보낸 전령의 말을 전해 들었고 폐하는 분노하셨습니다."
"... 분노..? 아르티네와 팬저우드 경이 무엇을 했길래 그들을 처형한다는 얘기인가!!!"
"자유기사들로 제국과 대륙에 대한 정보를 모았고 아르티네의 영지에서는 폐하께서 원했던 성녀를 잡기는커녕 풀어주었다고."
".... 그건 황제께서도 바란 것..."
"폐하를 위한다는 핑계로 파울로와 싸우고 황제의 자리를 강탈하려 했던 갈리드 이황자는 지하 감옥에 갇히셨고 당신의 눈앞에 있는 건.."
"... 설마.. 그럴 리가.."
데브라는 바튼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천을 조심히 풀었고 그 안에는 아르티네의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풀어헤쳐져 있었다.
"....."
"폐하는 헬하임 제국에서 반역죄를 앞장서서 진행한 자유기사들 모두를 섬멸이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자네는 아닌 것을 알지 않는가... 어찌.... 이 가여운 아이를.... 어째서... 이 아이를 죽인 것이야!!!!"
"죄송합니다, 명령입니다."
".... 어찌... 어찌!!!!!!! 지키려 했던 것이 뭐가 잘못이더냐!!! 바튼!!!! 말해보거라!!!"
"...."
"탐욕에 찌든 황자가 황실로 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아르티네와 갈리드님과 막아섰거늘....! 나를 이리도 버리신단 말인가!"
바튼은 그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에 롤란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한 뒤에 서있는 브라이언 공작은 들으라."
".... 듣고 있네 바튼 공작."
"폐하의 말씀이시네 '협곡을 침범한 것은 유감스러우나 우리가 가져야 할 성녀를 데리러 온 것이니 톤 왕국이 개입한다면 그대로 전쟁을 선포한다.'라고 하시더군."
"멍청한 황자가 모든 걸 흩뜨려놨군..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미래에 후회가 될 선택인지도 모른 채."
"톤 왕국은 개입하지 말아주게, 내 부탁이기도 하네."
바튼은 브라이언이 개입하지 않기를 원했지만 브라이언은 예상된 일이라는 듯 누워있는 아르웬을 조용히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성녀와의 서약은 우리와 먼저 했으니 우리 쪽으로 오는 게 맞네."
".... 그런 것은 이미 상관없다는 것을 알 텐데?"
"아르웬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브라이언.. 절대 넘겨줄 수 없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칠러웨이 우리는 아르웬 성녀를 보낼 생각이 없어."
바튼은 갑자기 끼어드는 칠러웨이를 보며 심기가 불편한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브라이언은 그를 제지하기는커녕 검을 바튼을 향해 들어 올렸다.
"내 말을 그대로 비겁자 로드웰 황제에게 전하게, 폐하께서 직접 말씀하시길 '그대들이 전쟁을 원한다면 나 레온 또한 키로스님의 뜻으로 전쟁을 원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