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쓸모없는 도련님과 견습 기사
* * *
"두 사람, 안전하게 가게 꼭 사람 많은 길로만 다니고."
"...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느새 홀쭉해져 눈물을 흘리고 있는 라틴이 데브라와 칠러웨이의 손을 잡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말하자 두 사람은 멋쩍은 표정으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쩜 저렇게 닮았는지.. 페르온이 아들이 아니라 칠러웨이가 아들인 것 같네요."
그동안 피렌디는 그들의 돌발적인 행동에 피곤했는 듯이 투정을 부렸지만 데브라는 그저 "허허." 하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핀에게 많이 의지하게, 라틴 핀은 분명 재능 있는 기사고 자네의 옆에서 빛나는 영광을 잡게 될 걸세."
데브라의 말에 라틴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예, 그건 무지한 저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앞으로는 핀을 제 곁에 더 가까이 둘 겁니다."
"라틴님.."
라틴의 바뀐 모습에 핀은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흘리려 했지만 라틴은 그에게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울지 마라 핀, 그동안 내가 나에게 너무 힘을 쓰지 않았어 칠러웨이님 덕분에 이리도 강한 정신력을 얻었으니 똑바로 살아봐야지."
라틴의 말처럼 칠러웨이는 그동안 그에게 살을 계속해서 빼도록 강요했고 그가 힘들어 쓰러지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감사합니다 칠러웨이."
"아니야.. 내가 뭘 했다고.."
훈련의 효과는 나쁘지 않았는지 라틴의 눈은 더 또렷해져 지금은 완전히 아버지와 자신에 대한 것들을 떨쳐버렸고 지금은 영지로 돌아가 홀로서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해가 지기 전까지 칠라렌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 얼른 가보게."
"예 데브라님."
데브라는 마치 자신의 손주들을 멀리 보내듯 아쉬운 눈빛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얘기했던 대로 전쟁은 일어날 거고 그전에 칠라렌 성국에는 피바람이 한번 불 거야 지금 또한 마찬가지고 이건 칠라렌 성국의 현재 소식일세."
사에트가 자신의 동료와 함께 물러난 이후 한 자유기사에게 서신을 받은 데브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양피지를 건넸고 두 사람의 얼굴은 흙빛이 됐었었다.
"핀, 너는 네 주인을 위해 모든 걸 의심하고 조심해라 알겠느냐?"
"예."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피렌디님도 그동안 챙겨주어 감사했습니다."
"아냐, 라틴 너의 음식은 최고였어 덕분에 남편에게 많은 걸 해줄 수 있게 됐어."
"하하.."
라틴은 피렌디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후 고개를 숙이며 칠라렌 성국의 방향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데브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우십니까?"
"울긴."
"근데 왜..."
"그냥 나이가 많으니 감정 기복이 심할 뿐이야.. 이별이라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을 오랜만에 다시 깨닫는구만..."
"그게 우는 것 아닙니까?"
"칠러웨이 말대꾸하지 말고 그냥 이별을 즐기도록 해주게.."
".... 즐기는 겁니까?"
칠러웨이는 별 이상한 사람을 본다는 듯 그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지만 데브라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아... 자유기사로 이 대륙을 몇 년씩 돌아다니며 그 감정은 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여러분!!!"
데브라가 이별의 여운을 즐기며 그렇게 물건을 챙기고 있을 때 한 귀족이 말을 타고 그들의 앞에 달려왔다.
"하아.. 하아 아직 안 떠나셨군요."
"이제 가려고 하던 참인데 자네는 보면 타이밍이 좋아."
"하하하!"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긴 귀족, 타미르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키메라들과 구울들이 영지의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한 것도 없는데 뭘."
"그래도 숲으로 가신 뒤에 키메라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으니 데브라님과 칠러웨이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쑥스럽구만."
다른 사람의 감사 인사가 오랜만이었는지 데브라가 머리를 긁적인 후 그가 내미는 손을 마주 잡았다.
"다음에 또 볼 수 있다면 보도록 하세 타미르 자작."
"예, 브라이언 공작님에게는 제가 먼저 전령을 보내놓았습니다 아마도 별일이 없으신 이상 데브라님과 칠러웨이를 마중하러 나오실 겁니다."
"그래주면 우리야 고맙지, 아까 전 떠난 아이들은?"
"그분들도 톤 왕국에서 잘 빠져나가실 수 있도록 전령을 보내뒀습니다."
"일처리가 확실하구만 고맙네."
"저도 감사드립니다."
데브라와 칠러웨이가 감사 인사를 표하자 타미르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저희 영지로 꼭 찾아주십시요."
"그래, 가세 칠러웨이!, 피렌디!"
"예!"
세 사람이 말을 타고 떠나자 타미르는 그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다 아쉬운 듯 숲을 바라보았다.
".... 안전히 가시면 좋으련만.."
타미르의 영지를 떠나 다시 톤 왕국의 숲으로 들어온 세 사람은 지겹다는 듯 높은 나무 위를 바라봤다.
"톤 왕국은 왜 이렇게 나무가 많습니까?"
"신화적인 것으로 알려줄까, 아니면 현실적인 것으로 알려줄까?"
"뭐... 음... 둘 다요?"
"욕심이 많네."
"아.. 예 귀찮으시면..."
"아냐 나도 심심하던 차였거든."
칠러웨이의 시무룩한 표정이 재밌는지 그를 바라보던 피렌디는 나무를 가리켰다.
"보면 알겠지만 헬하임이나 칠라렌 성국보다 더 굵고 튼튼한 나무들이 이 톤 왕국에는 많아."
"아.. 예 그런 것 같아요."
"톤 왕국의 초대 왕은 헬하임 제국의 기사단장이었지만 수련을 위해 이 숲으로 들어왔고 그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현재 톤 왕국의 숲에서 수련을 했다고 해."
"한 달씩이나?"
"응, 그렇게 먹지도 않고 검을 휘두르는 도중에 키로스가 그를 발견했데."
"신이 말입니까..?"
"내가 알기로는 나비가 돼서 나타났다나 뭐라나? 어쨌듯 그가 수련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특별한 힘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나무들도 영향을 받아 커졌다더라고."
"진짜 믿기 힘든 일이네요."
칠러웨이의 말에 피렌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데브라는 피식 웃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말을 들어봤는가? 그거랑 똑같지."
"뭐... 불가능도 있어 보이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지, 내가 대륙에서 전설의 자유 기사로 남은 기록이 후대까지 남게 되면 나는 날개로 날아다니며 전장을 누빈 신이 될 수도 있지."
"하하..."
칠러웨이는 데브라의 말에 웃고는 있었지만 그가 몇 번의 전투에서 보여줬었던 검 솜씨는 분명 검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뭐.. 진짜 얘기를 하자면 톤 왕국의 초대 왕은 정확히 헬하임과 칠라렌 성국을 피해 이 숲으로 숨어들었어."
"... 약한 사람이었습니까?"
"약한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원래 얘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려지고 자신의 조상을 높여주는 것이 있으니.."
"... 그렇죠."
"어쨌든 그는 이 숲으로 들어왔고 지형지물을 모두 이용해 자신의 백성을 지키며 나라를 세웠지.."
"... 음."
칠러웨이는 일루안이 키메라들과 성기사들을 피해 산등성이에서 농성을 했던 것을 떠올리고 왕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험난하고 힘든 지형이긴 해도 톤 왕국이 약한 힘으로 멸망당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야 또..."
"엄청난 인재들이 많았었죠."
"그렇지 피렌디 잘 아는군."
"인재들이요?"
"그래, 저기 오고 있지 않은가 인재 중의 인재에 젊기까지 한 재수 없는 녀석."
데브라의 손가락 끝에는 한 남자가 말위에 꼿꼿하게 앉아있었는데 여유로운 모습과 능청스러운 얼굴은 그대로였다.
"반갑습니다 자유 기사 데브라!"
"하하! 재수 없는 새끼! 오랜만이군!"
"하하하! 그렇군요! 그 재수 없는 말투 정말 오랜만입니다!"
두 사람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입가는 씰룩거리고 있었고 미묘한 살기는 브라이언의 뒤에서 나타난 몇 사람에 의해 사라졌다.
"칠러웨이님!"
"리타!"
"왔나?"
"카일록도 오셨군요."
칠러웨이는 마치 가족을 만난 듯 뛸 듯이 기뻤지만 그들을 반가워하는 것은 아르웬의 소식을 듣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아르웬은 잘 오셨습니까?"
"... 아르웬님?"
"자네와 함께 온 것 아닌가?"
"... 아직도 안 오셨다는 말씀... 이십니까? 그럼 자유기사들도 오지 않았다는..?"
"... 무슨 말씀이십니까 칠러웨이?"
리타의 물음에 칠러웨이는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의 얼굴을 심각하게 굳어갔다.
"아 맞다, 게리가 저번에 하프 여인을 데리고 왔다 하지 않았나? 심각하게 상처를 입어 분명 브라이언 공작의 저택에서 치료 중이라고.."
"그 귀가 긴 여인..?"
"그녀를 알고 있나?"
카일록이 무언가 생각난 듯 게리가 숲에서 주워온 여인을 떠올리자 칠러웨이의 확신은 더 짙어졌다.
"분명 엄청난 상처였네.. 아마 게리에게 "성.."이라는 한 마디만 남겼었지?"
"잠깐잠깐..!"
그들의 말에 데브라가 끼어들었고 여유롭던 그의 얼굴 또한 흙빛이 되어 카일록의 어깨를 흔들었다.
"또.. 똑바로 말하게 하프 여인 혼자만 돌아왔다고..? 혹시 돌아온 방향이 협곡 쪽이었나?"
"잠깐 데브라 진정하십쇼."
브라이언이 그를 카일록에게서 떨어뜨리자 데브라는 곧 이성을 잃을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 아들과 성녀가 하프.. 아니 엘로나 그녀와 함께 같이 왔다는 말일세! 빨리 말하게! 협곡 쪽 숲에서 그 아이가 발견됐나!"
".... 정말입니까?"
데브라의 말에 브라이언은 자신이 봤던 여인을 떠올렸다 게리가 품 안에 조심이 안고 온 여인은 색색 숨을 쉬며 겨우겨우 숨이 붙어있었고 배에는 두 개의 장검이 박혀있었다.
[... 칠.. 러.. 웨이... 성..]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칠러웨이가 돌아오면 물어보려 했던 브라이언은 자신이 행한 실수에 이를 갈았다.
".... 그녀가 차고 있던 금패에는 분명 후트, 엘로나 두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만약 데브라님과 칠러웨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으드득... 내 아들과 성녀.. 그리고 계곡의 두란트들이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아아.."
데브라와 브라이언의 말에 피렌디는 충격을 받은 듯 주저앉았고 칠러웨이는 자신의 검을 챙겨 말위로 올랐다.
"카일록님은 다시 수도로 돌아가 폐하께 소식을 알리고 전쟁을 극비리에 준비하라 얘기해 주십시요."
"알겠네."
카일록이 말을 타고 빠르게 수도로 향하자 리타와 남은 세 사람은 저 멀리 보이는 치센 협곡을 바라봤다.
"가세 칠러웨이, 브라이언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 성녀를 구할 거야 물론 내 아들도 살아있다면.. 구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