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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 쓸모없는 도련님과 견습 기사 (58/90)

〈 58화 〉 쓸모없는 도련님과 견습 기사

* * *

"그와는 인연이 있으십니까?"

"...."

자신의 질문에 데브라가 말도 하지 않고 가파른 언덕을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자 칠러웨이는 분명 사에트와 그의 사이에 뭔가 있다고 느껴졌다.

"데브라님."

".... 아, 그래."

칠러웨이가 어깨를 잡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데브라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왜 그러나?"

"이상하십니다."

"뭐가 말인가?"

"제가 사에트라는 이름을 얘기하자 반응이 느려진 것도 그렇고..."

칠러웨이의 물음에도 데브라는 고개를 돌려 바위를 오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데브라님."

"...."

심각함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애써 그것을 숨기려 표정을 감추는 데브라를 보며 칠러웨이는 그에게 무언가 있다고 느껴졌다.

"데브라님,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그와 인연이 있습니까?"

"....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고 할 수도 있지."

".... 있다는 거군요."

"그래."

한동안 말없이 바위를 오르던 두 사람은 숲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도착하자 짐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정말 말씀 안 하실 겁니까?"

"....."

"답답하게 하지 마시구요."

"잠깐.. 쉿."

데브라는 숲의 뒤바뀐 공기에 긴장한 듯 검자루를 쥐었고 칠러웨이 또한 눈치챈 듯 주변을 살폈다.

"긴장하게."

"...."

"쓸데없는 건 나중에 이야기해줄 테니 정신 똑바로 잡으라는 말일세 알겠나?"

"예, 데브라님이나 조심하십쇼."

두 사람은 이윽고 풀숲에서 나타난 키메라들에게 달려들었고 데브라는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를 베어냈다.

".... 잘 가시게들 그 안에서 고생 많았네."

키메라의 입에서 그동안 키메라들이 먹어왔던 시신 조각들이 떨어지자 데브라는 그들을 위해 잠시 기도를 올리고는 칠러웨이를 돌아봤다.

".... 으득.."

"역시나 아직은 감정 조절이 안되는 모양이군."

"개자식들이.."

"이봐 칠러웨이! 너무 막 행동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근데 화가 나는데 어떡합니까?"

데브라의 말대로 칠러웨이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모습은 아르티네의 영지에서 일 황자를 막아설 때와 같았다.

"저래서는 이 황자님이 데리고 오라고 해도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쩌억!

데브라가 몸을 바삐 움직이며 키메라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미쳐버렸는지 칠러웨이는 키메라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고 맹렬하게 그들의 머리를 뽑아냈다.

"...."

짐승과도 같은 모습에 데브라는 조금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피를 뒤집어쓴 칠러웨이에게 다가갔다.

"이봐."

"....."

"이봐!!"

"아.."

데브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칠러웨이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그를 돌아봤다.

"자네 괜찮은 것 맞나?"

"... 예."

칠러웨이는 정상적으로 대답하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멍해져 버린 머리를 부여잡고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키메라들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나?"

".... 제가 뭘 한 겁니까?"

"이제는 정신줄까지 놓는 건가?"

".... 죄송합니다."

"뭘... 어차피 맨손으로 중급 키메라의 머리까지 뜯어낼 정도면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

데브라는 그에게 씨익 웃어 보이고는 다시 투박하지만 정확하고 간결한 동작으로 키메라들의 머리를 쪼개버렸다.

"데브라!"

"왔구만."

두 사람은 어느새 짙어진 숲의 살기와 뒤로 한걸음 물러나 자신들을 보고만 있는 상급 키메라들을 경계하며 아직까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하급 키메라들을 처리했다.

[.... 톤 왕국에서 온 놈들인가?]

"... 듣기 싫은 목소리.. 그놈이 맞군요."

한 번 들어봤었던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지자 칠러웨이는 얼굴을 찌푸렸고 데브라 또한 듣기 싫은 듯이 한쪽 귀를 막았다.

[네놈들은..]

조용히 나타난 남자는 전과는 달리 여유로운 모습이었지만 쇠를 긁는듯한 거친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여전한 듯 보였다.

"사에트."

[익숙한 얼굴들이군.. 그리고 가장 보기 싫은 얼굴들이 내게 찾아왔군.]

"사에트!"

[....]

데브라의 부름에 사에트는 안 그래도 흉측한 얼굴을 팍 찌푸렸지만 데브라는 들으라는 듯 검을 들고 소리쳤다.

"그만해라!"

[.... 그만해?]

"그래!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 신에 대한 광적인 믿음을!"

[.... 흠..]

데브라의 말에 화를 낼 줄 알았던 사에트는 오히려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했고 칠러웨이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 적대관계 아니었습니까?"

"... 아까 얘기했던 대로 맞다고 하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젠장.. 뭘 자꾸 돌려 얘기하십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데브라는 그에게 무언가를 하나 던져주었고 칠러웨이는 그것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 브라이언 공작과 클라인에게 받은 것과 비슷한데..."

"저 녀석은 릴 왕국 출신 귀족이다."

"...."

"그것도 내가 호위했었던."

"설마.. 저게 사람이었단 말입니까?"

칠러웨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키메라 속에서 아직까지 생각을 끝마치지 않은 듯 조용히 있는 사에트를 바라봤고 데브라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키로스의 신관이기도 했지만 결국 성국과 왕국 둘한테 버림받아 지금은 저렇게 저주받은 몸이 된 녀석이다."

"... 저주받아 보이기는 하네요."

[그의 설명은 맞지만 틀리다.]

".... 뭐?"

[정확히는 '축복'이지.]

데브라의 말에 사에트는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런 그가 못마땅한지 데브라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 자신의 위치도 모른 채 무조건 맞는 길만 가려다가 죽어버린 교황과 자신과 왕국을 위해 살았지만 자식들에게는 버림받은 왕이 나를 내보냈지.]

"그래서 귀족이자 신관이 뭐 때문에 나라에서 버림받은 거지?"

칠러웨이의 질문에 사에트는 킬킬킬 웃고는 하늘을 길고 검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처음에는 저 위에 있는 신에 대한 모욕을 했지.]

"...."

[그는 위에서 계속 내려다보면서 굶어죽어가는 내 동생에게 손을 뻗어주지 않았고 가엾은 영지민들에게조차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어.]

"지금의 신은 줬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보이는 데브라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묻자 사에트는 자신의 옆에 있는 키메라들을 가리켰다.

[줬지, 나에게는 아주 벅찬 힘을.]

".... 그건 저주다 힘이 아니라."

[상관없다 저주던 힘이던 내 것을 다시 되찾기만 한다면 상관없어..]

그의 말에 칠러웨이는 데브라의 말을 멈추고 사에트를 바라봤다 그는 굉장히 악하고 찝찝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두 눈동자는 누구보다 맑게 살아있었다.

"아까 전 '처음'이라고 했었지.. 그럼 다른 이유들도 있었나?"

[그래, 있었지.. 두 번째는 나에게 이 힘을 준 신의 이름을 고문서에서 찾아냈고 그를 따르는 이들을 성국의 미네르 숲 깊은 곳에서 찾아냈거든.]

"...."

[그렇게 얻은 지식들로 돌아간 왕국에서는 비밀스럽게 나를 다뤘어 전쟁을 막아주고 승리해 주기만을 바랐지.. 그래서 행한 거다 내 나름대로의 벌들을..]

"결국 그거군."

[그래.. 내가 발견한 고문서에도 타나스님의 나라에 키로스의 나라가 세워졌다고 들었지... 그들은 벌을 받을만했고 빛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그 신이 너무나도 역겨워 참을 수가 없었다.]

"... 거짓말 치네."

[뭐....?]

"결국 타나스고 사람들의 자유도 다 필요 없고 영지민과 동생의 복수를 위한답시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구울로 만들어 또 죽이고... 아니야?"

[.....]

"그리고 계속 뽐냈겠지 네 능력을 지금처럼 다 죽이고 다니면서."

"칠러웨이 너무 화나게 하지 말게."

데브라가 칠러웨이의 어깨를 잡으며 그를 말리려 했지만 칠러웨이는 그의 손을 쳐냈다.

"근데 데브라님이 얘기한 대로 왜 그 능력이 저주받은 건 줄 알아? 결국에는 모든 나라들에게서 쫓겨나고 지금은 받아줄 곳 없이 이 숲에서 처량하게 그러고 있잖아."

[... 네놈이...]

"그래서 저주받은 능력이라는 거다."

[또.. 나를 농락하는구나!]

칠러웨이의 말에 결국 화가 난 듯 주먹을 불끈 쥔 그에게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고 데브라는 큰일 났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아.. 화나게 했나 보네... 죄송합니다 데브라."

"하아.. 칠러웨이!! 싸움은 피하고 싶었는데!"

"그나저나 저 상태인 놈을 호위했어요?"

".... 그때는 저 상태가 아니었다, 키메라는 그때 당시 없었고 전쟁에서 죽은 기사들과 병사들만 일으켜 세웠던 놈이야."

"데브라님도 별 이상한 놈을 호위하셨네요."

"돈을 받았고 또 자유 기사를 돕는 헬하임 제국의 부탁도 있었으니 갈 수밖에 없었지."

".... 진짜 자유 기사들은 욕먹을만한 것 같아요."

".... 그때 봤을 때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전부 태워 없어질 시신들이었으니 전장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이 드는 게 모든 귀족들의 생각이었고 그래서 릴 왕국에서는 저 녀석을 가장 중요한 인물로.. 그러니까 한 마디로 비밀병기로 점찍어 둔거다."

사에트가 결국 이성을 잃자 통제력을 잃은 중급 키메라들이 달려들었고 두 사람은 손쉽게 공격을 피해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성국과의 전쟁이 끝난 뒤로 릴 왕국과 사이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네.. 뭐..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녀석이긴 하지만 구울들을 일으키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으니..."

"진짜 한마디로 깊은 관계도 아니었다는 거네요?"

"그래... 뭐.. 내가 말했잖나 자네에게 얘기를 안 해준 게 아니라 딱히 할 얘기가 없어서 그랬어.."

"...."

"그래도 저런 것에 심취하기 전에는 정말 멀쩡했었네 시신들을 일으킬 때도 죄책감이 들었는지 하루 종일 꿇어앉아 기도했으니까.."

[죽이겠다!!]

데브라는 한숨을 쉬며 사에트의 괴기한 모습을 바라봤고 사에트는 자신의 공격을 계속해서 피하는 그들에게 분노를 느낀 듯 구울들까지 불러왔다.

"게다가 내가 얘기했던 말들은 다 경청하고 새겨들었던 남자일세.."

"...."

"마지막에 자신이 자리를 잡고 자신의 신을 위해 도움을 주면 안 되겠냐는 부탁을 들었음에도 떠나온 내 잘못이겠지."

데브라는 한탄하며 자신이 도와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사에트.]

[....]

[너무 날뛰었다.]

[무슨 일이지?]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한 검은 로브에 의해 키메라들의 움직이 멈추자 데브라와 칠러웨이 또한 새로 등장한 인물을 바라봤다.

[나는 이곳을 마무리 짓고 가지 먼저 가라.]

[사에트.]

[.... 저 둘만 죽이면 된다.]

[저자는 데브라, 너도 알지 않는가? 우리만으로는 그리 쉽게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아까운 키메라들을 낭비하지 말고 가세.]

[.....]

[시간이 없네, '회담'이 있어.]

[후우.. 알겠다.]

검은 로브의 설득에 사에트는 잠시 데브라와 칠러웨이를 보며 머뭇거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고 자리에 남은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숲으로 다시 사라지는 키메라들을 바라봤다.

".... 데브라님."

"알고 있네, 대비할 필요가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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